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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마님.
잘 지내시는지요.
이러한 말로 인사를 드려도 되는지....
하마님은 여름이 제 철인데,
지금이 한 겨울인데다가,
더욱이 지금은 연일 계속되는 한파로
시냇물도, 강물도, 심지어는 바다도 얼고 있는 판이니,
물 없는 하마를 생각할 수 없어.....
ㅎ ㅎ 농담으로 시작해서 죄송합니다!
님은 다음과 같이 질문해 주셨습니다.
“목사님과 통화를 끝내고 방금 전 로마서를 읽다가 12장 1절 하반부에 ‘이것은 여러분이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현대인의성경) 라고 쓰여져 있음을 보았습니다. 아래 부분에 주해를 보니 ‘합당한 예배’라고도 쓰여져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다가 궁금한 점은, 평소에 목사님께서 ‘영적’ 운운하는 것은 맞는 말이 아니라고 하신 것이 기억되는데, 그러면 여기에 쓰여진 영적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요. 제가 요즘 보고 있는 책에도 이 단어가 수시로 나옵니다. 아니라고 하시니 저도 평소에 쓰고 싶다가도 참곤 했는데, 정확한 뜻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ps: 아~ 하루 뒤에 생각하니 영적 이 아니라, 영성 이었던것 같다란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나 두 단어가 상관관계가 있다면 같이 설명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님이여.
저는 님과 대화를 갖는 것에서 ‘영적’이란 말을 쓸 수 없다는 말(이런 취지의 말조차도)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님은 처음 질문의 글을 올린 이후에 추가로 하루 뒤에 다시 생각해보니 제게서 들은 제가 써서는 안 된다고 한 말이 ‘영적’이 아니고 ‘영성’인 것 같다고 수정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주의를 갖게 하며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조심해야 할 것으로 언급한 것은 ‘영적’이란 말이 아닌 ‘영성’이란 말이었습니다. 왜 제가 이 말을 사용하는 것에 주의를 갖게 하고, 사용한다면 조심히 사용해야 할 것을 말했는가 하면요. ‘영성’(靈性)이란 말은 ‘영적 성품’(靈的性品)을 지칭하는 것인데, 이는 곧 ‘하나님의 성품’, 그러니까 ‘신(神)의 성품’을 말하는 것에서 이며, 이는 ‘신/하나님의 속성(屬性)’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자들은 ‘영성’이란 말을 즐겨 사용하면서 어떤 말을 하기까지 하는가 하면 “영성을 개발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모인터넷까페에서는 “영성개발에 필요한 자료를 나누는 공간”이라고 까페의 성격을 영성개발에 두고 있기도 합니다. 모목사는 교회에는 실패와 좌절을 겪고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그들에게 교회가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서 위로와 힘을 주는 것으로서 영성개발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며, 영성은 개발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영성개발을 하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내면적인 훈련으로 묵상훈련, 기도훈련, 성경말씀공부훈련, 금식훈련을 할 것을, 또한 외면적인 훈련으로는 단순화훈련, 고독훈련, 순종훈련, 섬김훈련을, 그리고 공동체훈련을 할 것으로 예배훈련, 인도훈련, 경축훈련을 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모두를 통해서 이가 생각하는 영성은 결국은 교회의 부흥/성장에 두고 있으며, 이것을 위하여 신자는 신자답게 살아야 할 것을 말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 안에서 새창조의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드려야 한다며, 이러한 훈련을 잘 받아가자는데 초점을 둡니다.
영성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니요! 영성을 훈련 받아야 한다니요! 신자가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개발해 나가고 훈련해 나갈 수 있는 것인지요. 이렇게 영성을 개발하고 영성을 훈련해 나갈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신자인 우리에게도 공유되고 있다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지성적이고 도덕적인 성품으로 말해지는 지식, 지혜, 선, 사랑, 거룩성, 공의성, 진실성, 주권성이 신자에게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이것을 잘 개발하여서 사용하면 보다 낫게 하나님께 쓰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이것을 영성으로 말하며, 이것의 개발과 훈련을 말합니다만, 이것이 신자에게서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누구로 말미암아서인지요.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께서 이들의 주님이 되신 것에 있지 않는지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께서 신자인 우리들의 주님이 되신 것에서 우리가 지혜를 발휘하며, 지식을 말하며, 선을 행하며, 사랑을 베풀며, 거룩하며, 진실하며, 의로우며, 주권(권한)을 행사하는 이 모두를 영성으로 말할 때, 이 영성은 ‘하나님의 영성’인 것이지 ‘우리의 영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공유적/보편적 속성으로 말해지는, 그리고 지성적이고 도덕적으로 말해지는 이 속성이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일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가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그 영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실유(實有)하신 분으로서, 그래서 영원무궁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영원무궁히 존재하실 것에서 우리들에게서는 하나님을 경외/경배/예배함에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영성이 어떻게 우리에게 있게 되었는지요.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주신 것에서입니다. 이때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성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개발해서 사용해야 하는 그런 것으로 주어진 것인지요.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성은 말입니다. 개발되고 훈련되어야 할 그러한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함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지식에서 말해지는 것이며, 이것에서 보는 하나님의 영성이요 신자의 믿음은 하나님의 의에 있는 완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영성을 개발해야 한다느니, 훈련해야 한다느니 하는 따위의 참으로 가당치 않은 용어로 사용하고 있기에, 그 잘못됨을 말하며, 영성이란 말을 사용할 때는 이 말이 쓰여질 수 있는 합당한 내용에 의해서여야 할 것이지, 잘못 알고 잘못 사용하는 것에서 함부로 말하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란 것에서 주의를 갖게 하며 조심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님의 질문에 대한 본론적인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님이여,
우리가 ‘영적’이란 말을 쓸 수 없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영적인 사람’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한 ‘영의 사람’,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님이 읽은 로마서 12장 1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어서 ‘영적’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님이 궁금해 하며 질문을 갖게 된 것은 또 다른 한글번역 성경인 현대인의성경에서는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나님의 자비를 생각하며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은 여러분이 드릴 영적예배 입니다.” 라고 번역하고 있으면서 성경 아래 부분에 주해를 달기를 ‘영적 예배’에 대한 또 다른 번역으로서, 또는 ‘영적 예배’가 갖는 의미로서는 ‘합당한 예배’ 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님께서는 로마서를 읽으시는 중에 12장 1절에 이르러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를 보면서 여기에서의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란 말씀에 올바르게 알고자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님은 개역(또는 개역개정판) 한글성경 외의 또 다른 한글번역 성경인 현대인의성경에서 ‘영적 예배’란 말 외에 ‘합당한 예배’라고 주해를 단 것을 보았습니다만, 한글번역 성경은 이것 외에도 더 있으며, 그 모두에서는 로마서 12장 1절에서의 ‘영적 예배’에 대한 번역에서의 용어에 통일되어 있지를 않고, 번역자(번역위원회)의 번역하고자 하는 각각의 원칙적인 견해에 의하여서 각각 다른 용어를 사용하여서 번역을 취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 우리가 예배용 성경으로 채택하여 보고 있는 개역 한글성경 또는 개역개정판 한글성경을 비롯하여서 바른성경, 우리말성경은 ‘영적 예배’라고 되어 있으나, 이 용어와는 다르게 다른 한글번역 성경을 보면 (2) 님이 본 현대인의성경의 경우는 “이것은 여러분이 드릴 영적예배 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으면서, 아래 부분에 ‘영적예배’에 대해 주해를 해놓기를 ‘합당한 예배’라고 하였는데, 현대인의성경 외에도 한글킹제임스성경, 새번역성경, 표준새번역성경이 같은 입장에 있는 번역을 취하고 있으며, (3) 현대어성경, 공동번역 및 공동번역개정판성경은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라고 하였고, (4) 킹제임스흠정역성경(개정판)은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라고 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는 한글성경으로의 번역에 도움을 주는 영어번역 성경에서도 그렇습니다. (1)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보는 영어성경인 NIV를 비롯하여서 RSV, NRSV, ESV는 "This is your spiritual (act of) worship."라고 하여 ‘영적 예배’의 개념에서 번역하였으며, (2) 많은 신자들이 신뢰를 갖고서 보는 KJV는 ‘reasonable service’라고 번역하여서 ‘합당한 예배’의 뜻으로서의 입장을 취했으며, (3) ASV, NASB는 ‘spiritual service(of worship)’라고 번역하여서 ‘(예배의)영적 봉사/섬김’의 입장에 있는 번역을 취했고, (4) English Good News Translation, Today's New International version은 ‘true worship’라고 번역하여서 ‘진실한/진정한 예배’의 입장을 취했고, (5) English New Living Translation은 “This is truly the way to worship him.”라고 번역하여서 “이것이 하나님께 경배할 진정한 방법입니다.”이라고 하면서 이것에 대한 보충적인 설명으로 “Or This is your spiritual worship; or This is your reasonable service."라고 하여서 ‘영적 예배’ , 또는 ‘합당한 /봉사/섬김’로도 번역하여 말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졌습니다. (6) 그리고 English Basic Bible은 "which is the worship it is right for you to give him." 이라고 번역함으로써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께 드릴 옳은/정당한 예배입니다.”라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에 님은 그렇다면 개역 또는 개역개정 한글성경(그리고 또 다른 한글번역 성경)에서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라고 하고 있는 영적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한글번역 성경이든, 영어번역 성경이든 이렇게 다양한 용어의 사용으로 번역을 하고 있는 것은 ‘영적 예배’라고 말해지고 있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헬라어 원문이 ‘로기켄 라트레이안’(logikh;n latreivan)인 때문입니다. 여기서 ‘로기켄’(logikh;n)이란 단어는 무엇인가에 있어서 참되고 본질적인 뜻에 잘 부합한다는 것에서 ‘합리적인(합당한)/사리에 맞는(온당한)/진실한(진정한)’으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뜻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서 어떤 번역성경은 ‘합당한(합리적인)’의 뜻으로, 또 어떤 번역성경은 ‘진실한(진정한)’의 뜻으로, 그리고 또 어떤 번역성경은 ‘이치에 맞는’, ‘옳은’의 뜻으로 각각 번역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라트레이안’(latreivan)은 ‘하나님의 사역’, ‘예배(경배/경외)’, ‘(신적인)봉사/섬김’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따라서 각 번역성경의 번역자는 이 중에서 가장 적합한 뜻이라고 하는 것을 선택하여서 번역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서 각각의 한글번역 성경은 ‘영적 예배’, ‘진정한 예배’, ‘합당한 예배’, ‘합당한 섬김’ 등으로 다양한 번역이 취해진 것입니다. 그러니 말이죠. 어떤 용어로의 번역 입장을 취했든지 간에 각각의 용어 사용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진정한 예배’, 또는 ‘합당한 예배’, 또는 ‘합당한 섬김’이라는 번역의 입장을 취하는 보다는 ‘영적 예배’란 번역의 입장을 취했을 경우에는 ‘영적’이란 말이 의미하고 있는 뜻의 진정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이 말을 잘못 이해하고 왜곡시켜서 쓸 가능성이 있으므로 신중해야 합니다. 앞에서의 ‘영성(개발 또는 훈련)’의 개념에서 영적이란 말을 잘못 이해한다거나, 또는 영적이란 말을 '신령한' 것에서 보려고 한다거나 하는, 그래서 영적이란 말을 오해하여서 엉뚱하게 풀어 설명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로마서 12장 1절에서 ‘영적 예배’를 대하면서 이것에서의 ‘영적’이란 말을 올바르게 알 수 있기 위해서는 이것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의 뜻만이 아니라,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문장에서의 내용이 지니고 있는 의미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에 이 말을 하고 있는 성경 구절의 내용을 먼저 보면서 여기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이 뜻하시고 있는 의미를 알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본 구절은 ‘그러므로’란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그러므로’란 말은 접속사인데, 이것은 11장의 내용을 이어가는 말이기도 하면서 또한 동시에 1-11장까지의 전체 내용을 받는 말로서 이제까지 말해져온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의 심오한 경륜에 따라 있게 되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바칠 것에 따라서 그 크신 하나님의 자비를 입음으로 하고 있는 권면을 하는 것에서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이렇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이여, 나는 이제까지 말한 하나님의 크신 자비를 힘입어/하나님의 크신 자비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닌 여러분을 구속하신 주의 것이니)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여러분이 드릴 영적 예배/합당한 예배/진정한 예배/진정한 봉사(섬김)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구속하신 주의 것인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가 드릴/바칠 ‘영적 예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에서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자비, 곧 구원의 은혜를 생각할 때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희생될 산 제물로 드리심으로 구약에서 행해져 오던 율법에 의한 제사 제도에서의 죽음의 희생을 통한 제물을 종결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제 자신의 살아 있는 몸으로의 희생으로 앞으로 있게 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양이 될 모든 산 제물의 첫 번째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산 제물’이 되심을 좇아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림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룸에서 함께 하는 믿음의 지체를 위해 우리가 그리스도를 좇아 우리의 몸을 드려 섬김에 있는 것에서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의 실제입니다.
그렇다면, ‘영적 예배’로 말해지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의미하는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로마서 12장 2절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서의 ‘이 세대’에 사용된 원문 단어는 ‘이 시대’ 또는 ‘이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본받지 말고’에 사용된 원문 단어는 ‘다른 사람을 본받다’는 뜻과 함께 ‘비슷하게 꾸미다’ 또는 ‘같은 모양으로 만들다’를 뜻하고 있으며, ‘일치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를 현대인의성경, 공동번역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라고 번역하였는가 하면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현대어성경은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받지 말고”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에서, 그리고 새번역, 표준새번역성경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킹제임스흠정역(개정판)성경은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로 각각 번역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몸은 이미 주께 드려져 모든 영광을 영원토록 하나님께 바침에 있어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마음이 있지를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들과는 다른 새로운 삶이 주어져 있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의 마음에 계속적으로 활동하며 지배하는 성령님으로 인해서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서는 나오지 않는 우리에게서만 있는 생각이나 행동이 염두에 두어지고 있는 것에서 하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과는 같지 않은 것에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은 것으로 말해지는데, 3절 이하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완전한 몸을 이루고서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하시듯 우리 또한 서로를 대하여 우리 모두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높여 찬양할 것에서 말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장 1절에서 ‘영적 예배’를 언급하는 것은 이곳에 이르기까지에서 보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 있는 하나님의 심오한 경륜이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인 교회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이 온 세상에 주어진 결과물입니다. 무엇으로 말인지요. 하나님의 사랑(자비하심)으로입니다. 이 사랑으로 율법의 완성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율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것이며, 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 곧 진정한 예배(봉사/섬김), 합당한 예배에(봉사/섬김) 있게 함으로써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완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언제나 온전히 이룰 것입니다. 그러니 말이죠. 님은 이렇게 님 안에서 님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대함에서 자신의 몸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본 답글이 로마서 12장 1절에서 보게 되는 ‘영적 예배’가 의미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아는 것과 함께 이를 통해서 로마서 전체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선한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첫댓글 잘 알았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우연이 무얼 뜻 하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지만 ..) 확실하게 알고 지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