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오베른도르프의 성 니콜라우스 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하던 요제프 모르(Joseph Mohr, 1792~1848) 신부가 신자들과 함께 성탄 시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던 중 이웃 마을에 임종 직전의 시한부 환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자전거를 타고 환우의 집을 방문했다.
종부성사를 주고 성당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서는데 눈이 내려 주변이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깊은 밤 어둠 속으로 환한 달빛이 비추는 마을의 풍경이 무척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참으로 고요한 밤이구나.’ 그 평화로운 마을의 풍경에 감동받은 그 순간 그는 아름다운 시 한편을 떠올렸다. 그는 즉시 펜을 들어 떠오르는 글들을 써 내려갔다.
그 때 마침 사제관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나면서 성가단장이 들어왔는데,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이 갑자기 고장이 나서 성탄 대축일 밤 미사에 차질이 생길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화려하고 장엄하게 미사를 거행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연습하면서 준비했는데 성가를 무반주로 할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음악 교사이자 지휘자였던 프란츠 그뤼버((Franz Xaver Gruber, 1787~1863년)에게 기타로 반주하며 부를 수 있는 곡을 작곡해 보라고 권유하였다. 그뤼버는 적당한 가사만 있으면 작곡해보겠다고 나섰으며, 모르 신부는 바로 자신이 쓴 시를 제공하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만상이 잠든 때
홀로 양친은 깨어 있고 평화 주시려 오신 아기
평안히 자고 있네 평안히 자고 있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하늘의 천사가
기쁜 소식을 알려주니 착한 목동은 기뻐하네
구세주 나셨도다 구세주 나셨도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천주의 성자가
인간 모습을 취하시니 우리 구원을 알림인가
우리 주 강생했네 우리 주 강생했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하느님 사랑을
오늘 우리게 베푸시니 천하 만민은 화해하네
지극한 사랑이여 지극한 사랑이여
그뤼버는 이 가사를 토대로 성가를 만 하루 만에 작곡하여 완성하였으며, 성당의 성가대가 몇 번 연습한 후 바로 미사에 사용되었다. 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성가로 인해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는 정상적으로 봉헌되었고 신자들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모두가 큰 감동과 기쁨을 안고 서로 성탄을 축하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 사연이 이후 점점 유명해지면서 성가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졌으며, 1914년 12월 25일 제1차 세계 대전 중 크리스마스 휴전 때 부른 크리스마스 캐롤이 바로 이 노래였다. 오늘날에는 종교와 비종교를 막론하고 대중적인 크리스마스 캐럴이 되었다. 이 곡이 만들어지고 처음 불려진 성 니콜라우스 성당은 현재도 오베른도르프에 '고요한 밤 기념 성당'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 부르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모르 신부가 만든 시가 아닌, 개신교 버전이다. 본래 원곡은 가톨릭성가 99번이었음에도, 한국에서 개신교의 전파 속도가 빨랐기에 개신교에서 번안한 버전으로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2011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유네스코에 의해 오스트리아의 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