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종류의 못난이
文 熙 鳳
세상에는 못난이들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병신도 급수가 있다 했던가? 잘 한다고 한 일이 뒤에 좋지 않은 일로 변질되어 후회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모든 일이 돈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그렇고, 부부 사이에서도 그렇다. 특히 타인과의 사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형제자매는 물론 타인과는 돈거래를 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동업도 하지 말란다. 돈은 거짓말을 잘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 이간질을 한다. 사람은 그리 하지 않으나 돈은 인격도 사상도 인정도 없는 놈이기에 변심을 잘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돈이던가. 돈이 있으면 사람자체가 달라 보인다. 돈은 인간을 그럴싸하게 만들기고 하고, 치사하게 만들기도 한다. 돈 없이 살다보면 궁색하여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한다.
모든 재산을 일찍이 자식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궁핍한 생활과 병이 들어 고생하는 사람을 첫째 못난이로 본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돈이 없다. 돈을 나누어 가진 자식들은 서로 눈치를 본다. ‘불치의 병이 들었는데 굳이 돈을 쓸 필요가 있는가?’라고 반문하는 자식들을 본다. 부모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일이다. 자식은 사채업자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갖고 있는 돈은 어떻게 해서라도 가져가려 한다. 그리고는 갚지 않는다. 잠시 맡겨 놓은 돈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은퇴를 하고 나서 부인(남편)에게 다 주고 타 쓰는 사람을 둘째 못난이로 본다. 가지고 있을 때와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사람의 가치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아니, 벌써 다 썼수?’ ‘돈 가져간 지 얼마나 됐다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속이 끓어오른다. 친구들하고 밥도 한 끼 먹어야 하고, 어떤 때는 술도 한 잔 마셔야 한다. 영화도 보아야 하고, 노래방에도 가야 한다. 움직이면 돈이다. 왜 그랬는지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그런 면에서 내가 번 돈은 내가 스스로 간직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야 죽기 전까지 사람 대접을 받는다.
재산이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병들어 죽는 사람이 셋째 못난이다. 입는 것도 꾀죄죄하고, 먹는 것 또한 그렇다. 나들이 할 때도 항상 그 옷이다. 천생에 그렇게 타고 나서 그렇다고 자위할 일만도 아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사는 정도에 따라 추억의 색깔도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늙으면 힘 없고 근력도 떨어진다. 거기에 돈까지 쓰지 못한다면 인생은 더더욱 추할 터이다.
인간이 돈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부터 사회는 병들고 있다. 돈에 눈이 멀어 피를 나눈 가족끼리 재산 싸움을 벌이고, 심지어 생명까지 살상하는 인면수심의 범죄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평범한 몇몇 직장인들이 돈맛을 잘못 알고부터는 거액의 공금을 유용하는 사건도 늘고, 돈 때문에 폭행, 상해 등의 강력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최근 자녀를 두고도 노후에 홀로 쓸쓸히 사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돈으로 사람은 살 수 있으나 그 사람의 마음은 살 수가 없다. 돈으로 호화로운 집은 살 수는 있어도 행복한 가정을 살 수는 없다.
돈은 너무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돈에 눈이 멀면 불행하다. 그렇다고 돈을 너무 멀리하지도 말 일이다. 돈이 모자라면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구별해서 사용하면 된다. 땅에 묻어 놓은 돈은 실제로는 내 것이 아닐 수 있다. 돈은 써야 할 때에 바로 쓸 수 있어야 그 가치를 발휘한다. 늙어가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을 잘 대접하는 것이다.
“고기를 먹으며 다투기보다는 채소를 먹으며 화평한 것이 낫다.”라는 성서의 잠언은 풍족한 소유보다 풍요로운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삶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라도 못난이로 살아가는 우를 범하지는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