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곡리(長谷里) 고욤나무
이 문 구
시내에서 시간시 간에 다니는 장곡리 방면의 시내버스는 거기서 거기마다 가다 서고 가다 서고 하면서도, 버스터미널을 떠난 지 한 십오 분가량이면 대개 불뭇골 등성이를 시늉만 남기고 들어앉은 나산종합병원 앞에 이르기 마련이었다.
한창 용을 쓰던 버스가 뒷심 없이 서면서 그 복잡하던 차 안이 이내 허부렁해지는* 것이 보나마나 나산종합병원 앞이었다. 토요일 오후에 뜨는 차는 번번이 승객의 태반을 게다가 풀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입원한 환자를 문병하기에는 다들 토요일 오후가 제일인 모양이었다.
뒷전에서 하염없이 넋을 놓고 앉아 가던 이봉출(李鳳出) 씨는 차 안이 넓어지자 저도 모르게 얼른 담뱃갑을 찾았으나 운전석이 바로 저 앞이고 보니 그대로 참는 수밖에 없었다. 운전석 앞에 써 놓은 금연이란 글자는 언제 보아도 그렇게 너무 굵지 않은가 싶은 느낌이었다.
봉출 씨가 입이 멋멋해서 안 넘어가는 마른침을 힘주어 넘기고 있을 때였다.
“이런 구석배기에두 종합병원이 다 있구, 제법 살 만허겠네그려.”
터미널에서부터 약삭빠른 중고등학생들 탓에 좌석을 놓치고 서서 가던 넥타이 차림의 반백짜리* 하나가 차창을 내다보며 군소리를 하였다.
“살 만허지, 사램을 잡어두 제법 종합적으루다 잡으닝께.”
그 옆에 붙어가던 황토색 얼굴이 덕석*처럼 뒤퉁스런 오리털 잠바에서 목을 꺼내며 시적 지근한 대꾸를 하였다.
버스가 등성이를 넘어 엔진소리가 숙어 들 만하자
“그럼 장곡리 이기출(李麒出) 씨는 집이서 돌어가셨으니 종합적으루다 죽든 않었겄구먼그려.”
하고 반백짜리가 한참 만에 동을 다니
“집이서 돌어가셨어두 그러큼 자살했으면 역시 종합적으루다 죽은 거지 뭐라나.”
황토색도 그렇게 말품앗이를 하였다. 그리고 그 말이 난 것을 계제로 하여 이 사람 저 사람이 말추렴을 드는 바람에 졸며 가던 사람도 정신이 나게끔 차 안이 금방 왁자해졌는데, 그중에서도 바지를 너무 째게 입어서 아랫도리가 물퉁보리*처럼 덤턱스럽게 생긴 사십 줄의 여편네가
“참 그이는 엊그제까장두 멀쩡허던 이가 워째 느닷웂이 시상을 그냥 싸게 놔번졌대유?”
공산짝에 솔껍데기 비어지듯이 삐쭉하고 불그러지면서 누구보다도 자주 나부대는* 것이었다.
“멀쩡은 해두 원판 뙤똥허게 살던 노인네였쥬.”
서서 가는 사람 중에 이마는 이마대로 주먹 하나가 튀어나오고, 뒤통수는 뒤통수대로 주먹 하나는 더 붙은 남북대가리가 그렇게 받아주었다.
“깨묵 같은 소리 되게 허구 있네. 세상이 재밋성이 웂단 말을 장 입에다 달구 살던 인디 그게 뙤똥허게 산 게라나? 하나 보태기 하나는 둘, 둘 곱허기 둘은 닛, 해가며 웂는 건건이루 있는 밥 축내는 새에 막운이 닥친 거지.”
봉출 씨 앞자리에서 오갈 든 어깨에 비듬을 허옇게 얹고 가던 사내가 잔뜩 수리목 지른 목소리로 퉁바리*를 주었다.
“슬 쇠구 보름 쇠구 나면 도의원 나온 이가 내구, 군의원 나온 이가 내구 해서, 오늘 못 죽으면 니열 죽을 각오루다 한 손으루 고기 뒤집어가며 맥주가 싱거네 양주가 싱거네 허게 될 텐디 왜 재밋성이 웂으까나. 허기사 진드근히 살다가두 한번 퉁퉁증이 도지면 품자리에 든 노리개첩 등글개첩두 후살이* 온 흔지집만밖에 않다던디, 뎁세 막운마저 닿구 보면 취미가 열두 가지 취민들 무슨 재밋성이 있을껴.”
“아따 아줌니는, 그렇잖어두 햇덧 웂는 동지슫달에 먹은 그릇 설그지허기두 빠듯헐 텐디 워느새 지자제까장 연구를 다 허셨댜.”
남북대가리가 탄하는 것도 아니고 탓하는 것도 아닌 말로 지질러 두려고 하였으나
“설그지허다 보면 짐칫그릇두 만지구 짠짓그릇두 만지는 거지 지자제가 뭐 별스런 거래유, 보나마나 둔 있는 늠덜 둔지랄 허기만 심상이겠데유.”
그 여편네도 수그러들 기미가 없었다.
“쓰기는 부족해두 살기는 넉 넉헌 사람이 사는 게 재미웂다구 무단히 자긔 손으루 영결종천헐* 적에는 여북했을라구유. 다 그만침 말 못 헐 폭폭헌 속이 있었겄지유.”
수리목이 거듭 말참견을 하였다.
“씌다 냉긴 핑약두 수두룩헐 텐디 해필이면 목을 그랬으까나.”
“약을 먹으면 대번에 종합병원으루다가 실어 갈 텡께 곧 죽어두 객사는 마다헌 거지유.”
황토색이 훈을 달고 나서 문득 차 안이 잠잠해졌다. 차가 산수리를 에워 돌다가 길갓집 앞에서 멈춘 것이었다. 산수리 토박이로 봉출 씨의 국민학교 동창인 오종복이와 김순몽이가 차에 올랐다. 둘 다 오리털 잠바에 자라목을 한 것이 역시 장곡리로 문상을 가는 행색이었다. 봉출 씨는 그들하고 눈인사를 나눈 다음 길에서 다랑논* 서너 배미 건너에 있는 사촌아우 용출이네 집을 건너다보았다. 용출이는 동네 이장일을 본다고 집에 붙어 있는 날이 드물기도 했지만, 빨랫줄이 비어 있는 것을 보면 계수뿐 아니라 아이들도 죄다 장곡리에 일을 치러 가 있는 모양이었다.
차가 움직이자 아까 그 여편네가 다시 너스레를 떨었다. 그 여편네는 오종복이와 김순몽이하고도 안면이 있는지
“아저씨덜두 저 너머 초상집에 가시는개비네유.”
하고 어렴성 없이 부닐면서* 묻는 것이었다.
“나는 소 팔러 가는디 개 따러나서듯이 그냥 따러나서봤슈.”
입이 건 김순몽이가 고뿔기 있는 걸걸한 목소리로 시답잖은 대꾸를 하는 사이 이쪽으로 주춤주춤 다가오던 오종복이는
“자네 사춘성님이 올에 맺이시더라?”
봉출 씨에게 망인의 수를 묻고 있었다.
“기미생이니께 시방 일흔둘이시지 아마.”
“일흔둘이면 다 산 나이두 아니구 들 산 나이두 아닌디…….”
그 여편네가 또 끼어들었다.
“암만유. 아 저 삼 김씨를 보슈. 하나는 십사 금이구 하나는 십팔 금이구 하나는 이십사 금인디두, 나는 이 허연 머리를 이냥 자연보호 쪼루다 내번져두는디 긔덜은 워디 그렇담유. 테레비에 비칠 거 계산해갖구 머리 염색헐 거 염색허구, 넥구다이 골러 맬 거 골러 매구, 미얀수에 구리무에 찍어 바를 거 죄 찍어 바르구, 그저 워칙허면 일주일이래두 더 들 먹어 뵐까 허구 용쓰는 거 보슈. 한번 앉었다가는 김일셍이버덤 두 더 질기잖겠던가.”
김순몽이가 넌덕*을 부렸다.
“아 그러게 우덜이 장 말허잖었어, 삼 김은 합금이구 자네가 순금이라구.”
오종복이처럼 뚱한 사람이 다 나서는 데에 힘 입어
“합금덜두 한번 나오구버텀은 서루 먼저 안 들어갈려구 저냥 질게 매다려서 뻗대가며 쓴맛 단맛 다 보구 있는디 순금이 가만있어서 쓰겄남, 이번에는 자네가 한번 뽄때 있게 나와보지그려.”
봉출 씨도 그러고 옆들이를 하였다. 사촌 아니라 삼촌이라도 이왕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마냥 심란하게 앉아만 있는 것도 하다 못할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우덜 같은 지게공학과 출신은 허리가 두 토막이 나게 뛰어봤자 잘 되어 새마을지도자루 짹허는 겨.”
오종복이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 여편네가 나대었다.
“저냥 한번 나온 뒤루 안 들어가구 질게 매달려서 뻗대며 쓴맛 단 맛 다 보는 노인네덜두 있는디, 그 냥반은 베랑 멀지두 않은 저승질을 뭣 허러 그냥 서둘렀으까나.”
그 여편네의 말을 받아 김순몽이가 아퀴*를 지어 말했다.
“아줌니, 한번 나오구버텀 안 들어가구 질게 매다려서 .뻗대는 건 개 가운뎃다리구유, 쓴맛 단맛 다 보구 가는 늠은 커핏잔에 빠진 퍼리 새끼래유.”
터미널에서부터 좌석을 안 내놓으려고 내동 딴전 보며 가던 중고등학생들마저도 그 말에는 할 수 없이 히쭉거렸으나, 차가 돌모루를 돌아서면서 장곡리가 먼발치로 내다보이자 사람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다들 입을 다물면서 웃음기를 거두는 것이었다.
기출이 형님이 손수 목을 매다니, 그것도 적지 않이 일흔둘이나 된 나이에 새삼스럽게 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고 스스로 세상을 놓다니, 봉출 씨는 생각이 그에 미칠 때마다 다만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힐 뿐이었다.
기출 씨네 이웃에 사는 조춘만이가 아침에 전화로 부음을 전할 때만 해도 봉출 씨는 당최 믿기지가 않아서 조춘만이가 해장술에 실성하여 말 같잖은 소리로 장난을 하는 줄만 알았었다.
“얼라, 아 그저께 밤에두 당신허구 하냥* 젊은것덜 노는 디 가서 백구야 허구 자셨다던 분이 그게 워쩐 일이랴, 교통사고가 났다남유?”
믿기지 않기는 마누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출 씨를 대접하다가 주머니를 톡 털고 들어온 줄 알고 찌그렁이* 붙는 바람에 새로 한 시가 넘도록 웬수니 악수니 하고 대판거리를 벌린 터였으니까.
“당신이 택시 잡어드리구 운전수헌티 차비까장 미리 줘 보냈더라메유.”
마누라는 불의의 횡액이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허무할 리가 없다는 거였다. 봉출 씨도 그랬으면 싶었다. 그러나 조춘만이의 말을 들으면 그것이 아니었다. 형수가 시내에서 보일러 대리점을 하는 작은 아들네 집에 다니러 가서 묵어오는 틈에 뒤꼍의 고욤나무에다 송아지 목사리*를 걸어 일을 냈다는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러지나 말 것을. 봉출 씨는 그저께 자기가 했던 말이 되살아날수록 후회막급일 뿐이었다.
봉출 씨가 기출 씨를 만난 것은 그저께 다 저녁때 시내의 목욕탕 안에서였다. 봉출 씨는 그날 풍년농약사에 묵은 외상값을 지우러 나왔다가 농약사 주인이 가서 구경이나 하다 가라고 자꾸 따리* 붙는 통에 할 수 없이 동남여관까지 따라가서 구둣방 신재일이, 안경점 하는 최충성이,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지부장 강준원이 따위와 어울렸다가 외상값은 외상값대로 고스란히 뉘어놓은 채 두 손 탁 털었고, 자기보다 먼저 떨어져서 물러앉아 양수거지하고* 있던 사거리서점 주인 양문재를 부추겨서 기분전환 차로 그 목욕탕을 찾았던 것이다.
기출 씨는 한여름의 등멱 외에는 생전 목욕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터였으니 만큼 그렇게 느닷없이 목욕탕에 발걸음을 한 것부터가 무엇이 씌어댄 짓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업세, 성님은 때가 아까워서 워치기 이런 디를 다 오셨다.”
하도 이상해서 그런 시답잖은 농을 다 건넸을 정도로 기출 씨는 본래 돈이라면 단돈 백 원 한 장에도 부르르하던 구두쇠였다.
“모처럼 이발을 했더니 똑 장화 신고 오바 입은 것 같아서 싸우나나 허구 갈까 해서 왔지.”
그러고 보니 머리도 시내 이발소에서 손을 본 머리였다.
“면도사는 웬만허 담유?”
봉출 씨는 내친김에 한 번 더 떠보았다.
“생긴 게 똑 현철이 노래 같은디, 그냥 나왔더니 애번에 눈깔을 흰죽사발 허구 자빠졌데.”
그러나 봉출 씨가 정작 놀란 것은 그다음이었다. 만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으으리, 하고 현철이 노래를 입속으로 흥얼거리고 있는데
“이늠 한번 펴볼려?”
기출 씨가 탕 속에 들어갈 생각은 않고 탈와장 걸상에 주저앉으면서 담배를 권하는데 말보로 담배였던 것이다. 봉출 씨는 사람이 않던 짓을 하기 시작하면 으레 얼마 못 가던데 하면서 기출 씨의 얼굴을 여겨보다가, 사위스럽게* 이건 또 무슨 방정맞은 생각이냐 하고 얼른 눈을 돌렸지만, 속심에 걸쩍지근하던 구석만은 비누칠을 두 번 세 번 하고 나온 뒤에도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기분을 홀가분하게 덜려고 왔다가 오히려 더쳐놓은 느낌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봉출 씨는 목욕탕을 나서면서 술을 사마고 하였다. 지닌 것은 없어도 한동네 정진석이 큰아들 범모가 논 열 마지기를 팔아다가 낸 ‘애마부인’이란 카페가 거기서 얼마 안 되는 차부 근처에 있었고, 범모도 아직은 누르면 들어가는 숫보기*라 달라면 달라는 대로 외상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접 때버터 술 끊었는디.”
기출 씨는 그러면서 걸음을 주춤하였다.
“성님이 술을 끊으셔? 아싸리 말해서 성님은 술을 끊는 것버덤 숨을 끊는 게 더 빠를규.”
봉출 씨는 농담으로 듣고 우스갯소리로 응수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기출 씨는 단박에 귀가 번쩍 뜨이는 기색을 하면서
“그럼 그러세나그려 .”
어느새 물렁팥죽이 돼가지고 도리어 앞장을 서는 것이었다. 봉출 씨는 그제서야 농담도 해서 좋은 말이 있고 그렇지 않은 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비록 열 번을 뉘우치더라도 이미 돌이키기는 틀린 일이었다. 술집에 다 와서 양문재가 울긋불긋한 불간판을 가리키며, 이 집은 지정곡을 틀면 그 노래에 알맞은 영상이 펼쳐지고 그 영상 위로 가사가 자막으로 나오므로, 일 절밖에 모르는 노래도 삼 절까지 부를 수 있는 비디오케 이라고 말하자
“내가 「동백아가씨」를 모르나 「신사동 그 사람」을 모르나, 인생 칠십을 거짐 뽕짝쪼루다 살었는디 이제 와서 좋구 안 좋구가 워디 있다나.”
기출 씨는 전에 없이 희떠운 소리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었다.
시간이 이른 탓인지 꾸며놓은 칸막이마다 텅텅 비어 있는 것이 꼭 나간 집 같은 공기였다. 일행이 자리를 잡자 지금 한창 학교에 다니고 있어도 좋고, 공장에 다니고 있어도 좋고, 농사를 짓고 있어도 좋아 보일 젊은것 서넛이 검정 양복에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혹은 행주를 들고 오고, 혹은 재떨이를 들고 오고, 혹은 보리차를 날라 오고 하면서 연방 갈마들이로 부지런을 떨고 있었다. 기출 씨는 그들이 왔다가는 족족 눈을 곱지 않게 뜨곤 하더니
“저것덜이 여기 구만두면 공장에 가서 장갑 찌는 일을 허겄나 집구석에 들어가 허리 꺾는 일을 허겠나, 넘덜 허구 댕기며 노는 것만 봐서 눈깔은 높구 주둥이는 짧구, 된다구 돼봤자 제비족이면 찍헐 테니 보통것은 떼강도루 크거나 인신매매루 풀릴 수백이 더 있겄나.”
“여구 야구 간에 정치헌다구 아갈거리는 것덜버터 넘의 둔 뜯어 나가 놀 궁리만 허구 자빠졌는디, 성님이 걱정허신다구 희망이 있겄슈.”
“넘의 새끼덜 저러구 츤허게 사는 꼬락서닐 보면 똑 내 새끼덜 보는 것 같아서 그러는 겨.”
이야기를 둘러방치는* 것이 기출 씨는 이번에도 맏아들 효근이부터 시작해서 덕근이 선근이서껀 아들 삼 형제를 술안주로 삼아 묵새길* 기미였다. 봉출 씨는 양문재가 들으면 그것도 적지 않이 우세스러운 일이기에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우리찌리만 이럴게 아니라 다방에 즌화해서 언년이래두 하나 부를까유?”
“불러본들 촌냄새 난다구 붙어 있을라구나 헐 껴.”
“그것덜이 원제는 사람냄새루 왔간유, 둔냄새루 왔지. 그래두 워디 가나 티켓제라 시간 하나는 영락웂이 지키더라구유.”
“아직두 시간당 만 원쓱인감?”
“그렇지유, 딴건 다 올러두 사람값은 장 주는 값이 깎은 값이닝께유.”
“그래두 데리구 나가서 여자는 배 남자는 항구 헐라면 그렇지두 않을걸.”
“그렇지두 않유, 외박값 이만 원은 별도지만 차 웂이 걸어 댕기는 것덜은 오공 때버터 여자 구두 한 커리 값으루 굳었다는규.”
“부르면 차버터 마시구 술을 먹게 되잖여.”
“순서가 그전허구 뒤바뀐 게 세상 질선디 워칙헌대유. 그게 바루 새 질서 새 생활인개비다 허구서 그냥 따르야지유.”
“굿수 한 커리 값이면 요새 인건비치구는 헐헌 폭인디.”
“왜유, 아가씨덜두 놀구 가는 건디. 놀구 가는 요금치구는 비싼 심이쥬.”
“그런가베, 월급은 월급대루 받을 테닝께 말여.”
“그럼유, 우덜이 일 년 내 낮과 밤을 등에 짊어지구서 논 스 마지기 뒤져봤자 걔네덜 한 달 월급두 안 되거던유.”
“어여 집어쳐야 헐 텐디…… 그런디 논이구 밭이구 당최 작자가 나스야 말이지. 인저는 중간에 거간을 놓서 물어 오는 늠조차 씨가 말렀으니.”
기출 씨는 이야기가 농토에 미치자 이내 풀이 꺾여 시르죽으면서 목소리마저 잦아드는 것이었다. 다방에서 출장 나온 아가씨가 옆에 앉아 늙은이 골병들기 좋을 이야기만 늘어놓고 시시덕거리는데도 찬밥 두고 잠 안 오는 사람처럼 생각은 딴 데에 가 있는 것이 역연하였다. 그럴 법한 일이었다. 아무리 마실 것이고 집을 것이 흔전한 자리라 해도 구미가 썩 당기지 않기는 봉출 씨 역시 일반이었으니까. 아마 촌에서 농사치만 쳐다보고 사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비슷한 처지일 터이었다. 게다가 기출 씨는 나가서 사는 자식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며 오장을 뒤집은 지가 오래였다. 한번은 봉출 씨가 직접 옆에서 구경을 한 적도 있었다. 구경만으로 그친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는 숫제 가로맡고 나서서 기출 씨의 역성을 들기까지 하였다. 얼마 되지도 않은 양력 정월 초이렛날의 일이었다.
그날은 기출 씨의 생일이기도 하였다. 아침이나 먹자는 전화가 있었기에 새벽 댓바람에 올라갔더니 아들에 며느리에 딸이며 사위들이며 있는 대로들 내려와서 욱닥거리는 판이었다. 또 용출이 인출이 해서 기출 씨의 동기간들도 모두 모여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일견 홋홋하고 화목한 집안으로 비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공기는 그렇지가 않았다. 잠깐 앉아 있어 보니 자식들 사이에서 위아래도 없이 드티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는가 하면, 부엌에 있는 딸들이 서로 비비적거리는 소리도 엿들을 수 있었다. 이윽고 상이 들어오자 기출 씨는 그렇잖아도 차린 것이 없어 시서늘한* 터에 거냉*도 하지 않은 청주를 종발*에 하나 가득 따라 건네면서
“말은 부자 삼 대 웂구 빈자 삼 대 웂다더면서두, 이 모냥다리루다 근근이 사는 건 우리만 사 대짼개빌레.” 자못 비감 어린 어조로 군소리를 곁들이는 것이었다.
“성님이사 워디가 워떠시간 그류, 아녈 말루 우루과이라운드라구 해두 좋구 새 신미앵요라구 해두 좋구, 좌우간 핑계 하나 딱부러지는 짐에 그 지긋지긋헌 늠의 지게공학과 좀 졸업해번지구 남은 여생일랑 여벌처럼 사시면 구만이신디.”
봉출 씨는 그것도 덕담이라고 애써 비라리*를 쳤으나
“장근 오십 년 동안 해와 달을 묶어놓다시피 허구 물갈이* 마른갈이* 헐 것 웂이 엎어져 살어서, 농사두 배우구 가르치는 것이라면 나야말루 수십 년 농학박산디, 그런디 이제 와서 이게 뭐여. 삔 다리 어긋나기루 논이구 밭이구 정내미가 십 리 밖으로 달아나서 공매 부른지가 원젠디 도무지 거 래가 있어야 말이지.”
똑똑한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를 막는다고 머리를 싸매고 만들었다는 법으로 인하여, 도시의 땅값은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자고 나면 값이 오르게 되고, 농촌의 땅값은 죽어라 하고 가꿔도 자고 나면 값이 내리게끔 되어버렸으니, 그것은 그 법이란 것이 일자무식도 다 아는 방법을 그대로 채용하여 우선 도시자금의 농촌 유입을 막는 데에 큰 공을 세웠고, 그리하여 빚진 사람은 한 마지기만 팔면 될 것도 두 마지기 서 마지기씩 팔도록 농지값부터 뚝 떨어뜨려놓았을 뿐 아니라, 아예 농지 거래 자체를 포기케 하여 농촌경제를 생매장함으로써, 결국 죽는 사람만 죽어라 죽어라 한다는 비명이 저절로 나오기에 이른 것이었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면 부애만 나구, 뇡약 마시는 심치구 술백이 만만헌 게 웂다닝께.”
하면서 기출 씨는 ‘애마부인’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자학밖에 없다는 투로 잔이 나기 무섭게 맥주를 부어대는 것이었다.
“너는 옷가지나 화장품같은 걸 살 적에 즘방에 가서 사네 월부 장사헌 티서 사네?”
기출 씨는 별로 묵중한 편도 아니었지만 날계란 못 먹는다고 없는 찐 계란을 찾는 좀생원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그답지 않게 잠시나마 다방 아가씨에게 눈을 돌린 것은 순전히 술기운 탓이었을 거였다.
“임기가 한두 달인데 어떻게 월부로 사요.”
“즘방으루 간다, 그럼 증찰제를 허는 즘방으루 가네 바겐쎄일 허는 즘방으루 가네?”
“그야 늘 쎄일허는 쪽이죠 뭐.”
“그럼 너두 늘 쎄일루 허겄구나?”
“당연허지유, 벤츠두 한 번 타면 중곤디 더군다나 이런 포니야 나올 때 이미 밑창이 닳창 아니겄남유, 물어보나 마나지유.”
양문재가 간을 하였다.
“그런 쇠리는 허덜 말어유우, 주민등록은 약간 지저분해두 호적은 연태두 깨깟허구먼유우.”
아가씨도 느려터진 여기 말을 흉내 내면서 시룽거렸다.
“평사짓는 사램이 약간 지저분허다구 안 좋아허는 거 봤네? 허니 호적은 뒀다가 증찰제루 츠분허구, 주민둥록은 우덜헌티 단체루 쎄일해 번져.”
봉출 씨마저 추썩거리고 나서니
“그럼 세대교체론에 의하여 일차는 나.”
양문재가 재빨리 선수를 쳤다.
“나는 그럼 이차.”
봉출 씨도 술이 들어간 값을 그렇게 하였다. 그러자 기출 씨가 말했다.
“나는 막차.”
물론 말로만 그러다가 말았지만 봉출 씨는 그 막차란 말이 어딘지 모르게 앞짧은소리*처럼 들리면서 뒷맛이 쾌하지가 않았다.
심기가 불편해서 마시는 술은 취기도 여느 때보다 이르고 심할뿐더러 흔히 주사를 곁들이기 마련이었다. 봉출 씨 자신이 일쑤 그래 왔거니와 기출 씨 또한 그날사말고 정도가 지나쳐서 필경은 생각지도 않았던 푸닥거리를 한바탕 벌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기출 씨는 다방 아가씨가 시간이 되어 돌아갈 즈음부터 반벙어리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더니, 봉출 씨가 열두 시면 문이 닫히는 줄 알고 범모에게 택시비를 꾸어 일어설 채비를 마친 뒤에도 말수를 줄이는 기미가 없었다.
이 나뿐 늠덜. 기출 씨는 말끝마다 같은 소리를 되뇌었다.
“구만 좀 해둬유, 성님 심정이 지 심정이구 성님 말씀이 지 말이닝께 구만 좀 해두라먼유.”
봉출 씨는 달래도 보고 말려도 보았으나, 기출 씨가 칠십 늙은이만 아니었어도 달래고 말리기는커녕 도리어 추임새를 넣어가며 장단을 맞춰 주고 싶은 심사였다.
기출 씨가 그토록 이를 갈아댄 그 나쁜 놈들이란, 대개 농촌 지역의 부동산 투기를 근절시키는 길이 도시의 유휴자금 유입을 막아 부재지주의 농지 거래를 끊는 것이며,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농지 거래는 재촌(在村) 농민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도록 조치하는 것이며, 전업농(專業農)의 농지 확대를 돕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농지값이 묶이도록 누르는 것이라고 뒤떠들고 부추기고 덩달아서 북치고 장구 쳤던 정부당국자와, 오로지 당의 두목만을 쳐다보고 사는 여야 정객들, 책상 위에서 농사짓는 학자들, 시끄러워야 돌아다보는 기자들, 그리고 농촌의 농자도 모르면서 입만 살은 일부 직업적 재야 인사들까지도 싸잡아 넣은 것이었다.
봉출 씨도 기출 씨와 같은 생각이었다. 모르면 몰라도 오늘날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이라면 아마 열에 일고여덟은 역시 같은 생각일 것이었다.
기출 씨는 그동안 그만했으면 부동산 투기를 할 사람 투기할 것 다 하고, 졸부가 될 사람 졸부 될 것 다 된 뒤에야, 농산물이나 농지값은 하락(下落)이 곧 안정 이라면서 없는 법까지 만들어서 농지값을 하락시키고, 그리하여 자기처럼 손을 놓아야 할 나이에 이르렀거나, 되도록이면 어서 처분하고 나가서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할 영세농들로 하여금 잘 받았댔자 그전의 반값이요, 보통은 반의 반도 안 되는 헐값에 땅을 내놓게 한 농지매매증명 제와 토지거 래허가제를 두루 물어뜯은 끝에 겨우 비치적거리고 일어서면서
“이 나뿐 늠덜.”
하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것이 푸닥거리의 시초였다. 왈그랑 퉁탕 맥주병이 넘어지고 술잔이 떨어지는 와중에
“뭐가 나쁜 늠덜이라는 거요?”
발끈하고 대거리하는 소리와 함께 기출 씨의 옆구리를 밀치는 손이 있었다. 봉출 씨가 얼른 기출 씨를 부축하면서 여겨보니 그쪽은 두 사람이 일행인 모양인데, 경찰서 근처에 가면 흔히 왔다 갔다 하던 그런 종류의 얼굴들이었다. 두 사람이고 세 사람이고 심야영업을 단속하러 나온 경찰관에게 찍자*를 부려봤자 생기는 게 없을 것이 뻔한 데다, 알고 보니 바닥에 떨어지는 술병을 잡아주려고 서두른 탓에 팔꿈치가 기출 씨의 옆구리를 건드린 것이어서 애초에 따지고 자시고 할 건더기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기출 씨는 트집을 잡았다.
“이런 싸가지 웂는 늠, 늙은이 치는 거 보게, 이게 뭐 허는 늠인디 시방 누구를 치는 겨?”
“치긴 누가 누굴 쳐요, 아저씨가 테블을 쳤지.”
경찰관은 잘해야 서른대여섯밖에 안 된 젊은이였으나 버릇이 되어서 그런지 대뜸 짜증 어린 말투로 퉁명을 부렸다.
“그려, 테블은 내라쳤다. 왜 테블 점 치면 안 되겄네? 야 인마, 도시서는 자구 나면 억(億) 억 억 허구 애덜 입에서까장 억 소리가 나는디 촌에서는 왜 억 소리가 나면 안 된다는 거냐. 야 인마, 우덜두 그늠으 억 소리 점 들어가며 살어보자, 나뿐 늠덜 같으니라구. 야 인마, 하두 억 소리가 안 나와서 그늠으 억 소리 점 나오라구 탁 쳤어. 어쩔 래, 지금 볼래, 두구 볼래?”
“아따, 애덜마냥 그 말 같잖은 말씀 좀 웬만치 허시랑께는.”
봉출 씨가 핀잔을 하며 기출 씨의 겨드랑이를 끼고 나오는데
“우덜두 바쁘닝 께 아저씨덜두 어여 가보세유.”
하며 경찰관이 기출 씨의 등을 밀었다.
“야 인마, 비겁허게 사람을 뒤에서 쳐?”
기출 씨는 또 등을 쳤다고 억지를 썼다.
“친 게 아니라 민 거구유, 또 내가 아저씨를 민 게 아니라 법이 민 거예유. 그렇찮어두 걸프만 즌쟁으루 비상이 걸린 판인디, 아저씨 같은 노인네덜까지 밤늦도록 이러시면 어쩌자는 겁니까. 날두 찬디 살펴 가세유.”
경찰관은 웃는 얼굴로 한 말이었으나 기출 씨는 그전 같지 않고 기어이 오기를 부렸다. 기출 씨는 봉출 씨가 막을 새도 없이 몸을 획 돌리며 한 손으로 경찰관의 어깨를 힘껏 쥐어지르더니
“야 인마, 이건 인간 이기출이가 자네를 친 게 아니라, 장곡리 농민 이기출이가 법을 친 거여, 알겄네?”
“알겄슈.”
두 경 찰관이 저희끼리 마주 보고 웃어넘기는 바람에 푸닥거리는 그만해서 그쳤으나, 봉출 씨는 매끼*가 풀어지고 사개가 물러난 듯한 기출 씨의 심상치 않은 변모에 일말의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기출 씨를 본 마지막 모습이기도 하였다.
차가 또 섰다. 유천리 어간의 정미소 앞이었다. 학생 두엇이 내리고 낯설지 않은 얼귤 서넛이 올라왔다. 장곡리로 문상을 가는 사람들일 텐데 그중에서 권석동이가 다가오며 위보랍시고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보면 사람 사는 게 죄다 팔자놀음이던개빌레.”
“그러게 말여 .”
봉출 씨는 헙헙한* 대꾸를 하였다.
“밤낮 삐딱허니 엇조루 나가두 두 마디 중에 한 마디는 으레 뻬 있는 소리 같더니, 그렇게 히마리* 웂이 돌어가신 걸 보면 그 냥반두 하릴웂이 앉은장군이 었던 개벼.”
“뻬가 있는 것 같어두 개표 끝나구 보면 소갈머리 웂는 게 촌사람덜 아닌감.”
“그건 그려, 둔 웂이 나왔다 허면 융니오 지나구 벤또 못 싸 갖구댕긴 것까장 숭을 잡어두, 둔 믿구 나와서 세금 웂이 번 둔 문서 웂이 쓴다 싶으면 옆댕이 앉은 애허구 누룽개 노나 먹은 것까장 어려서버터 의리가 있었노라고 뺑 끼칠을 해줘쌓는 허릅숭이*덜 아닌가베.”
그때 웬일로 가만히 듣고만 있나 싶던 김순몽이가 다들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나라두 다음버터는 훗세인 비젓헌 것이 좀 나와봤으면 쓰겄데.”
“나는 칼라 힐쓰 비스름헌 것만 나와두 좋겄데.”
오종복이의 말이었다.
“후지칼라?”
“왜 있잖여, 이것 사가라 저것 사가라 허구 넘의 나라 장관덜을 들었다 놨다 허는, 그 질쭉허구 삐쭉허게 생긴 미국 여편네.”
“거 애덜마냥 이랄머리 웂는 소리 자그매 허구, 내립시다덜 내려.”
어느새 문턱께로 옮겨 서 있던 남북대가리의 말이었다. 차가 장곡리의 경로당 앞에 이른 것이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남북대가리를 따라 반백짜리와 황토색이 내리고 수리목도 내렸다. 김순몽이와 오종복이 내리고 권석동이와 함께 유천리에서 탔던 사람들도 내렸다.
봉출 씨도 내렸다. 내린 사람들은 경로당을 끼고 굽어 돌아간 농로를 따라 걸어갔다. 기출 씨네 집은 거기서 담배 한 대를 물었다가 끌 동안은 걸어 들어가서 맨 끄트머리의 함석집이었다. 여러 날을 두고 얼녹은 탓에 해토머리*처럼 진 길을 봉출 씨는 연탄재가 몰린 곳만 골라 디디면서 징검징검 걸어 올라갔다. 날이 푹하여 한부조였으나 하늘이 흐리마리하게 끄무러지는 것이 저물녘 에는 빗낱을 던지거나 눈발을 하게 될 장단이었다.
가면서 보니 울안에 친 차일이 지붕 위로 수그러지고 그 차일 너머에는 바람만 건듯 해도 낭창거리도록 미끈하게 뻗은 고욤나무 우듬지*가 멀쑥하게 솟아 있었다. 봉출 씨는 부르루 진저리를 쳤다. 주인을 잡은 교수목(絞首木)이 아직도 처벌받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였다. 바깥마당에 희나리로 피워놓은 화톳불이 이만치까지 매움한 냇내를 보내고 있었다. 화톳불가에는 겨울철의 농민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국방색 털바지 차림들이 떼로 몰려 있었으나 한결같이 세고 찌들고 구부정한 몰골들이어서 일을 추는 데에 울력이 되어줄 풍신은 아니었다. 상가마다 구색을 갖추던 윷판도 보이지 않고 화투장을 떼는 모습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악상인 탓일 거였다.
삼 형제가 검정 양복 차림으로 문상을 받는 사랑 툇마루를 두고 안으로 들어가니 후끈한 불기와 함께 코를 막게 하는 연탄가스 냄새가 와락 달려들었다. 부조일을 온 동네 아낙네들의 추위를 막고 허드렛물도 데워 쓰기 겸하여, 뜨락 한구석에 연탄 한 리어카를 쌓아 놓고 벌겋게 불을 붙여놓은 탓이었다.
“진작 오셔서 목대 잡구* 일을 추어주시는 게 아니구, 워디서 충구리다가 제우 두 나절만이나 해서야 슬슬 올러오신대유.”
사내가 시내에서 자동차 정비공장을 하여 그새 집이 세 채로 늘었다던 큰당질녀가 한데에 걸린 다갈솥*에서 동태찌개를 뜨다 말고, 무엇이 틀렸는지 입 이 자가웃*이나 나온 채 무람없이 지청구를 하였다. 보아하니 그렇게 입을 빼문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탄불 위의 양은솥에서 더운 물을 떠가는 막내당질부도 그렇고, 탄불 옆에서 시금치를 다듬는 큰당질부도 부루퉁한 입으로 돌아앉아 있었다.
“엄니는 워디 지시냐?”
봉출 씨는 수돗가에서 플라스틱 함지박에 세탁기에서나 쓰는 가루비누를 거품이 넘치도록 풀어 놓고 설거지하는 작은당질녀에게 물었다.
“방에 워디 지실 테지유.”
작은당질녀 역시 지루퉁한 얼굴로 아무렇게나 대꾸를 하였다.
안방을 들여다보니 삭신이 나라져서* 갱신*을 못 하고 옷고름짝으로 이마를 테메운 채 누워 있던 형수가 간신히 베개를 짚고 일어앉으면서 첫마디에 뒤꼍의 고욤나무를 베어달라고 하였다.
“그렇잖어두 오면서 그 생각버터 했던 챔 이네유, 성님이 벌써버터 비어번지구 싶어두 톱이 안 들어서 못 빈다구 허시더니…… 바짝 벼서 모닥불에나 던 져번져야겄구먼그류.”
“내가는 날 날씨나 갱기찮으야 힐 텐디……”
“그나저나 상제덜 이 워째 잔뜩 볼물어가지구* 서루 어근버근허는* 것 같으닉 웬일이래유. 그새 뭔 일이 있었담유?”
“넘부끄러서 죽겄슈, 시상에 송장을 뻗쳐 놓구서 죄 아버지 쓰던 통장버터 내노라구 저 지랄덜이니, 새끼덜이 워째서 죄다 저 모냥이래유, 넘부끄러 못 살겄슈.”
“요샛것덜이 워느 집구석 새끼덜이라구 안 그렇간유. 새끼가 쇠면 삼파전이구, 늬면 사파전이구, 법대루 노나 가질 것 다 노나 갖구두 돌어서며 일변 서루 척지구* 담 쳐버리구, 웬수두 그런 웬수가 웂이지 낸다라구유.”
“시방 우리 애덜이 그 지랄덜 아닌감유. 내가 이냥 살어 있는디두 죄 아배 통장에 월마나 들어 있는지 봐야겄다는규, 올버텀은 벱이 갈려서 큰늠이구 즉은늠이구 시집간 년이구 안 간 년이구 똑 고르게 일대일씩이라니 워 쨌다나 해싸며……”
“그래 통장이구 뭬구 잘 두셨남유?”
“죄 아배 부고 받구 온 것덜이 들어단짝으루 핑이구 서랍이구 들들뒤며 논문서 밭문서버텀 밝히러 드니…… 하두 기가 맥혀서 머리 풀새두 웂이 문서랑 통장이랑 챙겨설낭 작은서방님게다 뱉겨놨구먼유.”
“장례 모시구 나면 바루 시끄럽겄는디.”
“시끄럽구 말구두 웂슈, 나두 다 생각이 있으닝께유.”
하더니 형수는 음성을 한결 낮추면서
“저것덜이 시방 죄 아버지가 빚이 월만지 몰러서 지랄덜이거던유. 단협에 자빠져 있는 것만두 그럭저럭 팔백만 원 돈인디. 죄 아배 내다 묻구 나면 불러 앉히구서 이럴라구 그류, 늬덜이 늬 아버지 재산을 일대일씩 노나 갖구 싶걸랑 늬덜이 먼저 이렇게 해봐라, 시방 늬 아배 빚이 암만이구 암만이다, 그러니 늬덜버터 늬 아배 빚을 일대일씩 노나서 갚어줘봐라, 한번 이래볼 튜.”
“잘 생각허셨슈.”
봉출 씨는 상제들에게 잘코사니*라 싶은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한결 가벼웠다. 형수는 말을 이었다.
“아마 펄쩍 뛰구 모르쇠 허겄지유, 그러구서 나 죽는 날만 지달랄테지유. 그이가 생전에 장 허던 말이, 시상에서 기중 못난 늠은 저 죽어서 새끼덜헌티 재산 물려주려구 안 먹구 안 쓰구 가는 사람이라게 그게 다 뭔 소린가 했더니, 막상 자긔가 이렇게 되니께 나버터 당장 알어지너먼그류. 팔리는 대루 팔어서 내라두 죽기 전에 쓸 거나 쓰다가 가야 헐 텐디……”
“그럼유, 그러시야지유. 그런디 그동안 성 님은 무슨 이상헌 말씀을 허신다던지, 무슨 이상헌 눈치를 뵈신다던지, 아줌니는 뭐 좀 느끼신 게 웂으셨던감유?”
“글쎄유, 사는 게 재밋성이 웂다 웂다 허는 소리야 전버텀 장 허던 소리구, 이럴라구 그랬는지 생일날 애덜이 댕겨간 댐이버터 댐배를 솔담배두 애껴 피던 이가 양담배루 바꿔서 보루루 사다 놓구 피구, 술두 쇠주백이 무르던 이가 맥주만 자시러 들구, 시내에 나갔다 허면 꼭 택시루 들어오구, 땅이 안 팔링 께 단협에서 대출을 해다가 그러구 풍덩그렸는디, 생전 않던 짓을 헌다 싶기는 했지만……그러구서 딴 사건은 웂었지유.”
“사건이야 성님이 이렇게 되셨다는 게 바루 사건이지, 이버덤 더헌 사건이 워디 또 있겄슈.”
봉출 씨는 형수를 보고 나오는 길로 톱을 찾아서 뒤꼍으로 갔다.
기출 씨가 송아지 목사리를 걸었음 직한 곁가지부터 치고 볼 작정으로 이리저리 살펴부고 있자니, 문득 지난 정월 초이렛날 기출 씨가 큰아들하고 큰 소리를 낸 끝에 북창문을 열고 하던 말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두구 보니께 이 고욤나무만이나 쓸다리 웂는 나무두 드물레그려. 과일나문가 허면 그게 아니구, 그게 아닌가 하면 그것두 아니구…… 어린것 같으면 감나무 접목허는 대목으루나 쓴다건만, 그두저두 아니 게 늙혀 노니께 까치나 꾀들어서 시끄럽지 천상 불땔감이더먼.”
봉출 씨는 톱을 대려다가 놓고 담배를 붙여 물었다.
기출 씨가 생일날조차 구순하게 넘기지 못한 것도 땅이 안 팔린 탓이었다.
아침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솔직히 말씀드려서유 지가 저번에 그 말씀을 드린 것두유, 솔직히 지가 예비상속자닝께 그 자격으루다가 말씀을 드린 거예유.”
하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효근이었다.
기출 씨는 욱하고 북받치는 울뚝성을 삭히느라고 효근이를 찢어지게 흘겨보더니
“너 내 앞에서 대이구 사업자금 사업자금 해쌓는디, 그것두 내 보기에는 난봉쟁이 거울 들여다보기여. 어려서버터 일만 보면 미서워 미서워 허던 늠이 이 애비가 마디마다 뼛소리가 나도록 일을 해서 그만치 해노니께는, 이제 와서 그 땅을 팔어서 사업자금이나 헙시다…… 못 헌다. 농사는 수고구 사업은 수단인디, 수고가 뭔지두 모르는 것이 수단은 워디서 나와서 사업을 혀? 맨손으루 나간 늠은 나가서 손에 쥐는 것이 있어두, 논 팔구 밭 팔어서 나간 늠은 넘덜 되듯이 되는 것두 못 봤거니와, 뭐? 개같이 벌어두 정승같이 쓰기만 허면 되여? 니가 그따우 정신머리를 뜯어고치지 못허는 한은, 땅이 아침 먹다 팔려 즘슨 먹다 잔금을 받더래두 지나가는 으덩박씨*는 줄망정 너 같은 늠헌티는 못 줘, 못 주구말구. 대법원장이 주라구 해두 못 줘 이늠아.”
효근이도 올 들어서 나이가 오십이었다. 봉출 씨는 초로에 접어든 자식을 철부지 잡도리하듯* 마구 훌닦는* 것이 보기에 민망하여
“당질두 니열모리면 오이손자를 볼 판인디 성님 말씀이 좀 지나치시네유.”
한마디 신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같은 옷을 입어두 돋뵈는 늠이 있구 들 뵈는 늠이 안 있다? 저 화상은 미제 쎄무 잠바를 입어두 똑 개껍데기 둘러쓴 늠으루백이 안 뵈는 늠여.”
기출 씨는 어림없는 소리 하지도 말라는 듯이 고개를 외오 빼었다.
“솔직히 자꾸 개 개 허지 말어유. 솔직히 아버지는 개 안 팔어보셨남유. 솔직히 멕여서 팔으나 잡어서 팔으나 개를 고기루 팔은 건 일반 아녀유.”
효근이가 오금을 박으니
“그렇게 너 같은 소리만 골러가며 허거라.”
기출 씨가 발끈하여 효근이에게 집어 던질 것을 찾는 것 같기에 봉출 씨는 얼른
“그래두 성님 생신이라구 서울서버텀 바삐 내려왔는디 적이나허면 참으시 야지유.”
“혼인집 불청객이 장사집 불청객인 겨. 아우가 몰러서 그러지 저 화상이 시방 애비 생일 보러 온 중 알어? 땅 팔어주면 친구덜이랑 동업으루 무역회사를 채리겄다구 허길래, 워쩔라구 오목 두다 말구 바둑 두는 얘기를 다 허나 했더니, 엿장사 성공허여 고물장사 되는 쪼루다가 제우 개고기를 수입 해다가 팔겄다는 거 아녀.”
봉출 씨가 섞갈려서 무슨 이야긴지 통 못 알아듣겠다는 시늉을 하자
“아저씨, 솔직히 그게 워디가 워떻다구 저리 성화대시는지 지 얘기 좀 한번 들어보세유.”
효근이가 그동안 부자간에 오고 갔던 이야기의 얼거리를 나름대로 설명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효근이의 친구들이 아는 대로 조사를 해보니 국내에서 식용으로 소비되는 개고기가 일 년에 마릿수로 이백십 만 마리, 무게로는 삼만삼천 톤가량이었다. 그러나 소 파동이니 돼지 파동이니 하는 말은 들었어도 개고기 파동이란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다. 공급이 적절해서 가 아니라 고양이고기로 조절을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성이 좋은 사람들은 같은 개고기라도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려죽인 개고기라고 해야 맛이 있어 하듯이, 몸에 좋은 것이라고 하면 덮어놓고 남의 말을 믿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았다. 가령 토끼고기만 해도 그러하였다. 토끼고기가 좋다고 하니까 제약회사에서 발암 물질이나 감염 바이러스 같은 온갖 병균과 약물을 번갈아 투여하며 실험용으로 썼던 폐토끼가 일 년에 수천 마리씩 시중의 음식점으로 흘러나와 비싼 요리로 둔갑하였고, 그와 아울러 그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제약회사의 간접적인 생체실험까지 당한 셈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우선 맛부터가 달라도 달랐으련만 애초에 맛으로 먹기보다 몸에 좋다는 미신으로 먹은 까닭에, 신문에서 떠들 때까지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고 아무도 구별할 줄을 몰랐던 것이다. 비단 토끼뿐이었던가. 실험용으로 썼던 소나 닭이나 개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개고기에 대한 미신은 어떤 음식보다도 강한 편이었다. 따라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되어 시장 개방이 확대되면 누가 해도 하게 될 것이 바로 외국산 개고기 수입임은 비록 삼척동자라고 하더라도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께 지 친구덜이 솔직히 넘보다 한 발짝 먼저 발 벗구 나섰다 그거라구유, 솔직히 국내 개고키 장수덜마냥 쓰례기 매립장 한구석에서 토치램흐* 불루 그포시르구 시삘겋게 각을 떠서 원시적으루다 팔겄다는 것두 아니구유, 솔직히 개값이 싼 동남아 워디에다 현지법인을 설립허구 공장을 차려가지구서, 솔직히 백화점이나 수퍼서두 팔게끔 수육이면 수육, 전골이면 전골, 탕이면 탕으루다 깡통 가공을 해서 들여오겄다 이거 거 던유.”
효근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출 씨가 말했다.
“여게, 저 나이 해갖구서, 저 껍데기 두꺼운 대갈빼기가 뻐개지도록 연구를 했다는 것이 제우 개장국 간쓰메* 장사유, 허구 자빠졌으니, 저 화상이 그래 내 새끼루 뵈겄나? 어이구 복장 터져, 도대체 워느 모이를 잘못 써서 저런 밥 빌어다가 죽 꿇일 물건이 나왔는지 몰러.”
봉출 씨도 기출 씨 편에 서서 거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간쓰메루 팔건 쏘세지루 팔건 그것두 땅버터 팔려야 그나마 허던지 말던지 힐 것 아닌가.”
“솔직히 땅만 내놓으면 뭐 헌대유, 받을 금을 안 부르구 팔 금만 부르구 있으니. 솔직히 그게 워디 팔자는 값이간유, 솔직히 츰버터 안 팔기루 작정 헌 값이지.”
효근이는 부르는 값이 높아서 임자가 안 나타나는 줄로 아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녀. 자네 농발대책 (농어촌발전종합대책)이라는 게 워떤 건지 알구나 그러는 겨? 그 골자가 뭔고 허면, 성님마냥 노령으루 땅을 묵히게 된 은퇴농지, 딴 디루 나가보려구 내놓는 이농농지, 생전 심 펼 날이 웂는 영세농지 같은 걸 실력 있는 사람게다 몰어줘서 전업농을 키우겄다 그 얘기여. 그러면서 부동산 투기두 막구 농발대책두 밀어붙이구 허느라구 웂는 법까장 맹글었는디 그 벱이 무슨 벱이냐, 한마디루 말해서 죽는 늠만 죽어라 죽어라 허는 그런 내용여. 농지매매증명 제다 토지거 래허가제다 신고제다 허구 이중 삼중으루 음나위*를 못 허게 얽어맸는디, 이게 뭐냐. 사유재산권 행사에 대한 가차압인 겨. 그러니 농지값은 값대루 떨어지구 거래는 거래대루 끊어지구, 결국 이농을 허는 마당에서까장 목돈을 쥐고 이농을 해두 션찮은 영세농덜더러 푼돈을 쥐구 이농허거라, 그렇게 됐다 이 말이여.”
“그러닝께 그 법이 솔직히 죽는 늠헌티만 죽어라 죽어라 허는 게 아니구, 사는 늠헌티는 살어라 살어라 허는 그런 법이구먼그류.”
“그거라닝께. 경자유전이 원칙이니 농지는 촌에서 실지루 농사를 짓는 농민덜찌리만 사구팔거라, 그것두 거주지서버터 팔 키로 이내에서 사거라 이건디, 아 말이야 좀 근사헌 말인가. 그러나 그게 아닌겨. 있는 땅두 일손이 웂구 수지가 안 맞어서 그냥 묵히는 농민덜이 사기는 무슨 둔이 썩어서 사며, 혹 썩을 둔이 있은들 우루과이라운드란 게 생기기 훨씬 전버텀두 생산비를 건지는 작목이 드물었는디, 싸구려 외제 농산물이 여기 만년 대목장이 섰구나, 허구 들입다 물물이 쏟어져 들어올 판에, 장차 바랄 게 뭐가 있어서 땅을 사러 들겄는가. 농발대책이란 걸 보면 농지구입자금이다, 영농자금이다, 농업기계화자금이다 허구 정책자금을 우선적으루다 배정허구, 또 해외연수다, 경영지도다, 기술지도다 허구 관리를 해서 전업농을 육성허겄다 이거지만, 것두 다 헛소리라구.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조건에 그런 걸 눈감어준다는 조항이 있다는 말두 못 들어봤구……그러닝께 농지거래가 끊겨서 농지값이 아주 웂어질 때까장 내버려두구 지달렸다가, 농어촌진홍공사에서 슬슬 거저 줏듯이 사들인 다음, 재벌이나 중소기업에다 농지구입자금 농업기계화자금 영농자금을 대줘가며 농사를 짓게 헐 속심이 아니냐, 즉 말루는 전업농 육성, 실지는 기업농육성이라 이 얘기여.”
“그거여 그거. 재벌이나 중소기업덜버러 농업회사를 채려가지구 농대 출신덜을 머슴으루 공채해서 컴퓨터농사를 짓게 허겄다 그 속이라구. 물런 머슴이라구야 안 헐 테지. 큰머슴은 논작 상무 밭작 상무루 헐 게구, 중머슴은 짐장채소 부장, 엇갈이채소 부장, 하우스채소 부장 허면 될 게구, 풋머슴은 호박 과장 꼬추 과장 참꽤 과장 들꽤 과장 워쩌구 허면 될 게구.”
기출 씨는 듣고 느끼는 것이 있으라고 짐짓 꽈배기를 꼬아댔으나, 효근이가 들어도 알고 안 들어도 안다는 듯이 비죽이 웃어 보이자 도로 비위가 뒤집혀서
“케비에쓴가 엠비씬가서 사랑과 진실이라나 뭐라나를 헐 때는 약이 웂어 못 고치는 찔꺽눈이*마냥 눈물을 달구 봐두, 죄 애비가 뻬에 맺힌 소리를 헐 적에는 저러구 비웃어가면서 귓등으루 듣는 늠이 바루 저늠이여.”
하고 또 한바탕 닦아세우는 거였다.
“드라마는 드라마구유, 솔직히 붙들구 있으면 붙들구 있을수록이 얇어지는 게 농지 값이라구 허시면서두 실지루는 틀리니께 그러지유.”
효근이가 벋버듬하게* 말대꾸를 하는 데에 놀라 봉출 씨는 생기는 것도 없이 다시 말품을 팔았다.
“틀리는 게 아녀. 성님은 넘덜허구 닯어. 넘덜이 허구 사는 걸 보면 한눈에 알 텐디두 그러네그려. 넘의 집덜 좀 가봐, 바람벽이구 워디구 죄 헐어서 흙뎅이가 우술우술 쏟어져두 세면가루 한 줌 발러가며 사는 집이 있나. 저저끔 저 살려구 나가 사는 자식덜이 도루 들어와 농사짓구 살 리는 만무허구, 천상 노인네덜이나 사는 날까장 살다가 가시면 바루 헐어번질 집인디 뭣 허러 둔을 바르구 살겄나. 집만 그렇간, 논두 그렇구 밭두 그려. 요새 논밭에다 두엄 내는 사람, 객토허는 사람 봤남, 못 봤을 껴, 왜, 그런 거 허는 사람이 정신 나간 사람이지 성헌 사람이간. 내년버터 묵힐지 내후년버터 묵힐지 모르는 땅에 뭣 때미 허리나 도지기 좋게 거름을 낸다나. 일허다가 허리 도져봐야 나만 죽겄구 나만 억울허거던. 안 그려? 나 죽구 나면 자식덜이 우 몰려와서 죄찌리 싸움싸움해가며 가로 찢구 세로 찢구 숫자대루 찢어서 저저끔 팔어가번질 텐디, 어채피 효도 보기 다 틀린 땅에 지랄 정쳤다구 일을 혀? 그러나 나는 안 그려. 넘덜은 포기해두 나는 절대루 안 그럴 텨. 자식? 자식이 다 뭔디, 자식은 나서 질러서 가르쳐서 여워줬으면* 그걸루 끝여. 죄덜이 되구 안 되구는 각자 죄덜 분수구, 죄덜이 살구 못 살구 허는 것두 다 죄덜 팔자여. 냄이 말거리 해서 넘어지면 넘어졌지 왜 부모 앞으루 엎으러지러 들어. 나는 자식덜헌티 물려주려구 안 먹구 안 입구 안 쓰구 안 놀구 허는 사럼덜이 기중 측은허구 불쌍헌 사람덜인 중 아네. 인간이 인간답게 살자는 게 다 뭔디, 일할 때 일했으면 쉴 때는 쉬어야 헌다 이거 아녀, 세상 떠나기 전에 놀 거 놀구, 즐길 거 즐기구, 누릴 거 누리구 보자, ˙내라 벌은 재산은 내라 깨깟이 쓰구 가자, 나는 늘 그 주장여. 논 스무 마지기 밭 한 이천 평 있는 거, 나 죽은 댐이 자식덜찌리 추저분허게 서루 으르렁거리라구 놔두구 죽어? 천만에. 농지매매증명제라는 걸 보면, 넘덜은 여름에 아라스까에 가서 피서를 허구, 크리스마쓰나 연말연시 같은 때는 하와이다 동남아다 허구 나가 놀다 오더래두, 너는 츰버터 농토산이루 살었으니께, 그저 두더지마냥 그러구 평생 땅이나 뒤적거리다가 죽어두 논두렁이나 비구 죽어라, 아마 그런 취지루다 그런 법을 맹글은 모양인디, 웃기는 늠덜, 나는 그렇게는 못 허겼어. 나는 헐값이면 헐값, 반값이면 반값이래두 흥정만 걸어오면 얼른 옛수 허구 넴겨줄 텨. 나두 더 꼬부러지기 전에 백두산이래두 한번 올러갔다 내려와야 헐 거 아녀. 그러나 성님은 넘덜허구 닯으셔. 성님은 넘덜허구 닯어서 아직두 지자제에 한 가닥 기대를 허시는 거여. 무슨 기대냐, 슨거 때는 으레 슨거인심을 쓴다, 슨거가 끝나면 원제 그랬더냐 허구 도루 그 타령이 될망정, 슨거가 다가오면 농지 매매에 대한 통제를 워느 정도는 풀어서 반짝경기나마 농촌에두 경제적 인 숨통을 쬐끔 터줄 것이다, 그러니 그때까장만 참구 젼디어보자, 그것인 겨. 알겄남? 그러니 당질두 그때까장만 참구 지달려봐. 개고기 시장은 전천후니께 걱정헐 것 웂어. 더구나 백화점이랑 수퍼에서두 팔게 간쓰메루 맹근다면서.”
이야기를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아 섞갈려서 그랬는지, 내용이 짐작했던 바와 동떨어지게 흐르는 데에 질려버려서 그랬는지, 지자제와 선거선심이란 말에 귀가 솔깃하여 정말 참고 기다려보기로 작정을 해서 그랬는지, 효근이는 더 이상 어깃장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증말 고마웨.”
아들네고 딸네고 모두 썰물 빠지듯이 돌아간 뒤에 기출 씨가 한 말이었다.
“지가 뭐 어려운 말 했간유. 평소의 성님 생각을 술기운에 의지해서 대리루 옮겨본 것뿐이지유.”
“어려운 말 허다마다. 이날 입때껏 안방으루 여기구 살어온 논밭을 미리 쩌개서 개장국 간쓰메값으루 달라구 허니 오장이 뒤집혀서 부쩌지를 못 허겄던디, 그렇게 아우가 대신 나서서 퍼부어주니께는 그제서야 제우 숨이 쉬어지데그려.”
기출 씨는 그러면서도 후텁지근한 방에 답답증이 덜 가셨는지 여름에나 맞바람이 치도록 터놓던 북창문을 열어젖히는 것 이었다.
북창문을 여니 고욤나무가 보였다. 손을 안 타고 자라서 곁가지가 땅에 끌리도록 이리저리 늘어지고, 화라지*를 쳐주지 않아서 절반은 삭정이로 묵어버 린 볼품없는 나무였다.
기출 씨는 북창문께로 다가앉아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면서
“아까 아우가 큰늠 데리구 얘기헐 때 덕분에 나두 깨달은 게 있었느니. 첫째는 내 땅이 절대루 개장사 밑천이 돼서는 안 되겄다는 것이구, 또 하나는 내 생전에 내 손으루 증리허지 못허구 워느 날 불쑥 쓰러졌다가는 자식덜찌리 칼부림인들 마다허겄느냐 허는 것이구. 큰늠 입에서 사업자금 소리가 나오구버터 애덜이 울퉁불퉁허기 시작허는디, 메누리는 메누리덜대루 딸덜은 딸덜대루…… 애비가 죽으면 일대일씩 쩌개서 아파트두 늘리구 차두 바꾸구 허야 힐 텐디, 야중에 계산허기 복잡허게 니가 왜 먼저 물 말어놓려구 수작을 부리느냐, 그래 그런 겨.”
“넘의 얘기가 우리 얘기긴 허지만 그래두 그렇지 설마 그러기야 헐라구유.”
“설마라니?”
“그러먼유.”
“글쎄……”
글쎄, 장차 자식들 사이에 의가 날 것을 걱정하던 이가 어떻게 스스로 생을 미리 마감할 수 있었을까.
아까 버스에서 오가던 말을 되새겨보면, 사람들은 이렇다 할 사건도 없이 다만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앞당겼다는 사실에 한결 재미없어하고 있는 내색이 역연하였다.
그러나 봉출 씨는 망인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망인이 은근히 기다렸던 지자제 선거용에 대한 기대가 물거품이 되어버린 탓이란 것을.
그것이 농어촌대책이란 명색으로 천해진 것은 정월 스무사흗날이었다. 우량농지 구역을 농업진홍 지역으로 정하여 그 지역에서는 농지소유 상한선을 지금의 구천 평에서 만 오천 평 내지 삼만 평 정도로 늘려주는 방안으로 검토키로 하였다는 것, 그리고 농업진흥 지역 이외의 농지는 공장부지나 주택지로 전용할 수 있게 규제를 완화하고, 그것도 어려운 농지는 농어촌진흥공사로 하여금 사들여서 개발한 뒤에 분양을 하겠다는 것으로, 역시 보통 농민들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것들이 대책이란 이름으로 보도되었던 것이다.
퉤. 재미없어서 죽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재미없어하는 병신 같은 놈들. 봉출 씨는 톱자루를 쥔 손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고욤나무 밑둥을 베기 시작하였다.
『우정 반세기』 (창비 19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