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에서도 하이퍼적인 요소와 일상의 흔적이 들어간 작품이 우세한 요즘, 아주 유쾌하고 진솔한 향기가 느껴지는 공연을 보고 왔다.
앗, 내가 공연에 늦은 것일까?
분명히 입장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들어갔는데, 무대 위는 벌써 시끌벅적한 소리와 움직임이 가득했다.
'자, 삐에르 가르뎅, 구찌 등 유명 상품이 거져. 골라~ 골라서 무조건 3,000원~~'
걸죽하고 유머러스한 옷장수아저씨의 부름에 덩달아 무대 앞으로 나갔다. 역시 짝퉁! 그래도 한번 골라 보자. 함께 갔던 동생과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여 옷 한 벌씩 건지고 보너스까지 받고 자리에 와서 앉았다.
우리와 함께 옷을 고르던 임산부가 야채가게 주인 순미 (전형숙 역) 였고, 열심히 먹고 있다가 우리가 하는 말에 대답도 하던 귀여운 남자가 고시생 (정대진 역)이었다는 사실 등등이 공연을 보는 내내 우리를 즐겁게 만들었다. 게다가 나도 은연중에 무보수로 배우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언제 공연이 시작되었는지 모르게 그렇게 시작된 연극은 관객들을 시장바닥으로 성큼 성큼 걸어 들어가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요즈음은 보기 드물지만, 어린 시절 보았던 재래시장에서 만났던 정겹고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이 새록새록 펼쳐지고 있었다.
닭가게, 야채가게, 순대가게, 다방, 휴무인 생선가게 등의 고정된 사람들 뿐 아니라, 그 시장을 스쳐가는 손님들, 행인들, 배달원, 잘린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장애인, 폐휴지 수집하는 노인 등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우리들이 거기에 있었다.
문득문득 관객석의 조명을 환하게 비춘다.
처음엔 그 의미가 조는 관객에 대한 경종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되풀이 되는 조명에 깨달은 것은 우리들도 '배우'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 무대 위의 배우들도 특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각 장면마다 주요 테마가 되는 부분 부분은 물론 존재했지만, 모든 배우들이 각기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상을 함께 연기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긴장하여 관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왜?
일상의 모든 사건들, 그것들은 해당하는 개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일지라도,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그 당시에는 중요한 일처럼 함께 공유하고자 하지만, 결국에는 잊혀지고 마는 것이기에...... 그렇기에 이 극은 아주 다양한 느낌을 받게 한다.
술주정과 포악함만 일삼던 닭집 제천댁(박남희 역)남편이 전철역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에 대한 의혹으로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도는 시장판, 이 미스테리한 사건의 중심에 있는 제천댁, 목격자 상길 (양현석 역), 형사 (신기섭)의 구도 속에서도 삶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어떠한 커다란 사건도 그들의 시끌법적하고 활기찬 삶은 멈출 순 없는 것! 심지어 제천댁의 삶조차도...... 하지만, 그들의 삶을 존속시키는 데는 혈연관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고 느끼고, 때로는 함께 공유하면서 흘러가는 흐름이 있는 것이다. 마치 커다란 덮개로 팔다남은 물건들을 덮었다가 다시 거두는 되풀이 되는 작업이 인생이 아닐까?
삶의 목적이, 희망이 빛을 받기도 하고 어두운 장막에 덮이기도 하는 각자의 소소한 삶들이 어우러져 이루어 내는 소란스러움, 그것이 시장판, 바로 인간세계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세계를 그대로 재현해 내기 위해, 배우들은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다.' 이러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배우들이 등장하는 입구를 여러 곳으로 설정하였고, 무대 set에 온갖 실제 물건들을 한아름 배치한 노력이 돋보였다.
약간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은, 리얼리티 속에 숨어 있는 의도를 좀더 강하게 끄집어 냈으면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힘겹지만 서로의 삶을 토닥거리는 정겨운 이웃들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솟아나는 인간의 고독감과 갈등을 좀더 진하게 느낄 수 있었으면 했다. 특히 그 정겨움의 '배반'의 핵심이 되는 상길의 역할이 너무 미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갈등의 폭의 강함을 넘어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면 삶의 리얼리티 속의 인간의 강인함을 발견하고 더욱 깊은 감동의 기억을 아로새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연극은 끝났다.
배우들은 인사를 한다.
그런데, 관객들은 그대로 앉아 있다.
배우들이 이제 오히려 관객들을 쳐다본다.
그들의 일본관광객 놀이(?)에 연극이 끝났음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유쾌하다.
그 연극의 끝이...... 우리 일상의 시작이......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한 얼굴!
첫번째로 극장에 들어서서 직접 대면했던 위성신 연출님의 모습이 너무나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동안 내가 보았던 몇 작품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 <늙은 부부 이야기> 에 이어 이번 <닭집에 갔었다>, 늘 부딪치는,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상에 그리 무겁지도 않으면서도 이전에 내가 가졌던 편견과 무관심 속에서 잊고 있었던,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의 당연성이 그의 얼굴 위에 새겨져 있음을...... ---------------------------------------------------------------------------------- * 이 연극을 보는 중요한 TIP
첫댓글 우와~~~소름이 쫘악~~음~ㅎㅎㅎ
와우, 여기에도 카페가 있는 줄 모르고 싸이월드 클럽에 들어갔었는데, 정대진님 글 보고 들어와 봤더니, 활기가 넘치네요^^ 혹시 동분서주 1인 다역을 하시던 일수아줌마 최경미님이셔요?
멋지시다!!!
아하하하~~네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