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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들이 재판 중인 판사를 법정서 쫓아내는 방법
국힘, 국감서 김미리 파상공세…언론과 '뻥튀기' 합작
윤석열 검찰의 판사사찰 문건, 김미리 최우선 지목해
허구의 빨간 딱지 '우리법연구회 출신' 공격 포인트로
재판부 유임 후 쏟아진 담합성 압박 보도…결국 밀어내
다음 타깃 신임 재판장 마성영…법조기자 배후엔 검찰
지금까지 2, 3회에서 살펴봤듯이, 김미리 부장판사에 대한 검찰의 위기감은 특감반원의 직권에 대한 잠정적 판단 노출로 1차, 검사의 사전 증인면담 관련 설전으로 2차, 다시 조권 씨의 1심 판결이 나오면서 절정에 다다르게 됐었다. 이런 검찰의 위기감은 조권 1심 판결 며칠 후 나온 중앙일보의 기사에서도 확인 되었다.
게다가 해당 중앙일보 기사에서는 검찰 혹은 법조기자들이 향후 김미리 판사를 공격할 포인트를 정리해준 셈인데, 실제로 이후 법조기자들과 야당의 김미리 판사에 대한 공격은 중앙일보 보도로 제시되었던 바로 그 방향대로 진행되었다.
국정감사 중 유상범, 장제원의 김미리 집중 공격
10월 국정감사 시기가 되자, 이번엔 야당 국민의힘이 나섰다. 국감 전 국민의힘은 법원 국감에서 김미리 부장판사 본인 증인 출석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조국 전 장관과 청와대 인사 다수가 기소된 사건을 재판 중인 판사를 국감장에 불러 직접 재판에 압력을 가하려 하 것이다. 물론 민주당은 동의하지 않았고, 그러자 국힘 의원들은 10월 20일 서울고법 등에 대한 국감에서 대신 그 상급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앉혀놓고 김미리 부장판사를 공격했다.
이날 검사 출신 유상범 의원은 보수유튜버 우종창의 법정구속, 유재수 판결의 양형에 이어 조권 씨 1심 판결의 형량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 사안들은 모두 조국 전 장관과 관련된 사안들이었다. 이어서 울산 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지연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는데, 조권 판결과 울산 재판은 모두 김미리 재판장의 담당 사건이다. 즉 유상범 의원은 철저히 조국-김미리를 겨냥한 공격성 질의를 한 것이다.
같은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김미리 판사 한 사람이 조국 전 장관 재판과 최강욱 재판, 울산 선거개입 의혹 사건까지 맡은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역시 김 판사 때문에 울산 사건 재판이 지연된다고 주장했다.
(유상범, 장제원 의원이 문제 삼은 울산 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재판 지연에 대한 질타는 실제 원인과 다른 전혀 엉뚱한 여론몰이를 한 것으로, 지연의 실제 이유는 김미리 재판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검찰의 탓이었다. 검찰이 법원에 이미 기소해 재판부 배당까지 된 사건을 계속 추가 수사 진행 중이라며 장기간 재판을 연기한 것이다. 스스로 수사도 덜 된 것을 정략적으로 기소부터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또 이 시점 이후로는 검찰이 피고인들에게 증거물 등사열람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서 또다시 재판이 장기간 지연되었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 김미리 부장판사를 집중 공격한 국민의힘 장제원, 유상범 의원 (오마이뉴스)
이어서 장제원 의원은 또다시 김미리 판사를 겨냥해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에게 김 판사가 공판 중에 했던 발언을 거론하며 정치적 편향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거는요, 정치적 용어예요. 그야말로 정치 프레임입니다. ‘개혁을 하려는 조국 장관에 대해서 검찰이 저항하려는 거다’ 이런 얘기는요, 사법부에서 이런 단어를 쓰면 안되는 겁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데 대해서 우리 고법 판사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재판장이 법정에서 검찰개혁 얘기를 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 용어 자체가 정치적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 판사들 내부에서도 이런 단어가 나오는 겁니다. 자, 제가 지금 우리 김미리 판사의 일련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이런 분한테 이런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이 모두 가 있다? 이러니까 사법부가 신뢰를 잃는 것 아닌가. 이 판결? 불 보듯 뻔한 것 아닌가. 조국 사건에 대해 검찰의 저항이라 생각하시는 분이 조국 사건의 판결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거 이대로 놔둬도 되는 겁니까?”
앞서 3회 기사를 보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장제원 의원의 발언 내용은 그로부터 한 달 전에 중앙일보 박태인 기자가 지면에서 주장한 내용을 똑같이 베껴 발언한 한 것이다. 심지어 기사에 잠깐 등장하는 익명의 ‘수도권 고법 판사’의 출처불명 발언까지 장 의원은 마치 자신의 귀로 직접 들은 내용인 양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조권 씨 판결의 양형에 대한 불만, ‘검찰개혁’이란 단어만 가지고 앞뒤 자르고 확대 해석해 공격한 문제, 가공의 인물로 의심되는 ‘고법 판사’의 발언 내용까지, 이 모든 것이 해당 중앙일보 기사 하나에서 나온 내용이다. 검찰의 의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젊은 보수언론 법조기자의 기사 하나가 법원 국정감사 중에 야당 중진 의원들의 입을 조종해 법원을 압박한 것이다.
국민의힘 유상범, 장제원은 국감에서 김미리 판사를 집중 공격했다. (중앙일보)
이렇게 국감에서 김미리 판사가 집중 공격을 받은 사실을 당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의 법조기자들이 다시 기사화를 했다. ☞ “조국 동생 봐주기 판결” 국감서 김미리 판사 난타 ☞ “김미리, 김미리, 김미리" 국감 안나온 김판사 수없이 외친 野
특히, 중앙일보에서 해당 소식을 기사화한 것은 다시 박태인 기자였다. 이들 국힘 의원들에게 공격 소재들을 제공한 기자 본인이 그 결과인 국감 중 김미리 집중 공격을 다시 기사로 재확산 시킨 것이다.
요컨대 법조기자->국힘 정치인->법조기자 순으로 돌고 돌며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실을 의혹으로 만들고 각 단계마다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라는 주장을 덧붙이며 부풀린 것이다. 이런 수법은 주가조작 판에서 작전세력이 주식을 서로 사고 팔기를 반복하며 시세를 뻥튀기하는 행태와도 같다. ‘주가 부풀리기 작전’과 똑같은 방식의 ‘의혹 부풀리기 작전’인 것이다.
대검의 판사사찰 문건, ‘김미리는 우리법연구회’
이어서 2020년 11월엔 그 유명한 윤석열 검찰의 “판사사찰” 문건이 터져나왔다. ☞ [전문] "존재감 없음"... "검찰 대응 수월"... '판사 불법사찰' 문건 공개 이 문건의 첫 페이지, 첫번째 판사로 이름이 올려진 최우선 사찰 대상 판사가 바로 김미리 부장판사였다.
이 문건을 작성한 것은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할대로 불리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구 범죄정보기획관실, ‘범정’) 소속 성상욱 검사였으며, 해당 판사사찰 문건의 작성일은 2020년 2월 26일로 되어 있다.
윤석열 검찰의 판사사찰 문건 1페이지. 가장 먼저 거론된 김미리 부장판사의 이름 등은 가려졌다. (오마이뉴스)
이날 2월 26일은 김미리 부장판사가 조국 전 장관 재판 등을 배당 받은 지 한달 남짓밖에 되지 않은 상태였고, 조국 부부가 무차별로 기소된 여러 재판들의 병합 문제로 재판이 계속 지연되면서 재판이 시작되지도 못한 시기였다. 즉 김미리 부장판사는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전국의 모든 판사들 중 윤석열 검찰의 최우선 사찰 대상이 된 것이다.
이 문건의 첫 페이지에는 김미리 판사의 ‘출신’과 ‘주요판결’ 등 기본 프로필에 이어, ‘세평’으로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나 합리적이라는 평가”라고 쓰여 있다. 이어서 “말을 끊지 않고 잘 들어줌”, “적극적으로 검사나 변호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스타일” 등의 평가도 기재되어 있다.
검찰은 이 문건이 실무 검사들의 공판에 참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보다시피 실제로 실무 검사들의 재판에 유의미할 수 있는 판사의 재판 진행 스타일보다도 “우리법연구회 출신”을 최우선으로 내세운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은 실무 검사들의 재판에 아무런 참고도 되지 않는 정보일 뿐만 아니라(공판 검사들이 공판에서 재판장더러 ‘우리법연구회 출신이신데’ 하며 감정적 시비라도 걸라는 것인가?), 이전에도 수차 보수언론들의 근거 없는 공격의 소재가 되었던 이슈다.
보다시피 윤석열 검찰은 ‘유사시 주요 공격 포인트’가 될 만한 소재로서 ‘우리법연구회 출신’을 우선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모든 판사들보다도 가장 먼저 기재한 것을 봤을 때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입장에서 김미리 부장판사가 맡고 있었던 조국 재판, 울산 선거개입 의혹 재판 등이 그만큼 결정적이었던 점을 재확인시켜 준다.
‘우리법연구회’라는 허구의 빨간 딱지
김미리 부장판사는 조국 사건을 배당받은 직후인 2020년 1월 초부터 ‘ 김미리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서울경제신문 법조기자의 견제성 공격을 받았었다. ☞ “[단독] '조국 가족비리' 재판장은 진보성향 '우리법연구회' 출신” 그런데 그 유일한 근거는 “2009년 월간조선이 보도한 회원 명단”에 김미리 판사의 이름도 있었다는 것뿐이다. (이 서울경제 기사의 소스 역시 검찰이 아니었는지 의심된다. 그게 아니라면 법조기자는 관심 재판에 판사들이 지정될 때마다 치열한 의무감으로 판사 이름을 일일이 월간조선의 우리법연구회 회원 명단과 비교라도 한다는 것인가.)
그런데 어느 판사가 어느 연구회의 회원이거나 말거나, ‘우리법연구회’는 단순한 법관들의 연구 동호회에 불과하다. 어떤 식으로든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고 최근 수십 년간 연구회 명의로 공식 성명 한 번 낸 적도 없다. 이 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진보 성향의 판결을 내린다는 주장도 최소한의 객관적인 근거도 없는 보수언론들의 주장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들의 음해가 계속되자 2018년에 공식 해체했다. 그럼에도 보수언론들은 이 ‘우리법연구회’가 마치 이적단체라도 되는 양 공격 꼬투리로 활용해왔다.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프레임은 노무현 정부 시절 강금실 법무부장관을 비롯한 몇 명의 인사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사실을 주목한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의 ‘좌표찍기’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법연구회가 뭘 했다고 해서 시작된 공격이 아니라, 노무현 시절 많은 인사들 중 몇 명이 우연히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니까 프레임을 씌울 대상으로 삼았던 것뿐이다.
그저 노무현 정부를 폄하하기 위한 가공의 프레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노무현에 대한 공격 이후로는 한동안 잠잠했던 것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공격이 또다시 시작됐다.
이런 프레임 씌우기의 효과는, ‘김명수가 회원이라서 우리법연구회에 문제가 있다’라는 명제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서 김명수에게 문제가 있다’라는 상반된 명제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 반복으로 실체 없는 의심과 혐오를 도돌이 방식으로 부풀리는 데에 있다. 정작 핵심 질문인 ‘우리법연구회가 뭐가 문제냐’라는 데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일단 만들어만 놓으면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부풀려지는 것이 이런 프레임의 효과다.
가령, 비교적 최근인 2022년 4월 조선일보의 ☞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의 사법부 장악... 친정권 인사 ‘봐주기 재판’ 포석 기사가 그렇다. 제목 첫 단어에서부터 ‘우리법연구회 출신’을 문제 삼지만, 이 기사 전체를 통틀어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언급은 기사 첫 줄에 써넣은 기자의 발제성 선언 한 문장 뿐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가 줄줄이 요직에 앉으면서 ‘봐주기 재판’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같은 첫 문장이 우리법연구회 관련 서술의 시작이자 끝이다. 독자는 이 ‘우리법연구회’를 문제 삼은 근거나 관련 전개가 뒤따를 거라고 기대하지만, 없다. 이렇게 ‘우리법연구회’는 실체도 없이 독자를 ‘호객’하는 미끼로만 쓰인다.
더욱이 이렇게 우리법연구회를 거론한 첫 문장에서 주어는 ‘비판’님이다. 이 문장을 봐서는 이 ‘비판’님은 다른 어떤 주체의 도움도 없이 어딘가에서 홀연히 나온 초자연적인 생명체다. 존재하지 않는 비판이 실존하는 것처럼 가장하려니 주체 없는 ‘비판’이 주어가 된 것이다. 결국 주체가 숨겨진 이 ‘비판’의 주체는 사실 김민정 기자 본인과 조선일보 자신이다.
제목 시작부터 ‘우리법연구회’를 겨냥했지만 정작 내용에는 ‘우리법연구회’가 없는 황당한 기만 기사. (조선일보)
제목과 발제가 기사의 내용을 정면으로 배신하는 이런 기사를 보고도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법연구회가 문제네’ 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물론 이 나라 여론의 바다에는 이런 공갈 미끼도 드리우기만 하면 매번 재깍재깍 물어버리는 눈알 썩은 물고기들이 넘쳐나기에 ‘조국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이기도 하다.
대등재판부 변경 후 오히려 더 거세진 김미리 공격
몇 달 후인 2021년 2월 3일 법관 정기 인사 발표에서, 법조기자들은 김미리 부장판사가 인사 관행인 3년 근무연한을 채웠다는 이유로 타 법원으로 이동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의외로 유임되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는 그것을 극렬하게 문제 삼는 보도는 없었고, 법관 인사 관련 기사에서 ‘인사 이동이 예상되었으나 유임되었다’ 정도의 언급들이 나왔을 뿐이다.
그런데 이 인사 발표 이후 며칠이 지나면서 이미 지나간 법관 인사에 대한 문제 제기 보도들이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동아일보에선 김미리 판사를 유임시킨 것이 김명수 대법원장의 '코드인사’라는 주장이 나왔다. ☞ [단독]김명수 ‘코드인사’도 논란… 서울중앙지법 ‘빅3’에 내사람 심기
이어 다시 며칠 후 한겨레에서도 ‘똑같이 3년을 채운 판사들인데 여권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임정엽 재판부 2명은 이동시키고 김미리 판사만 유임시켰다’라는 내용의 주장이 나왔다. ☞ 논란 가라앉지 않는 법원 정기 인사…어땠길래? 정경심 1심 재판은 2020년 12월 선고로 이미 끝난 반면 김미리 판사가 맡은 조국 전 장관과 울산 선거개입 재판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언급도 하지 않은 채로 엉뚱한 형평성 의심을 제기한 것이다.
다시 며칠 후 2월 18일에는 서울중앙지법의 ‘사무분담’ 발표가 나왔는데, 법원의 ‘사무분담’ 발표는 한 법원 내에서 판사들의 직무 재배치 발표에 해당한다. 이때 김미리 부장판사가 재판장이던 형사 21부가 일반 합의부에서 부장판사 3명으로 구성되는 ‘대등재판부’로 변경되었다. 이로 인해 김미리 부장판사의 결정권은 사실상 1/3로 줄어들고 재판장도 다시 정해야 하게 되었다. 이는 정경심 교수의 1심 재판부에서 송인권 부장판사를 교체한 직후 대등재판부로 변경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서, 이는 수차 얻어맞던 법원이 법조기자들에게 내놓은 일종의 ‘타협안’ 제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미리 판사가 해당 재판부에 유임된 것은 2월 3일의 일이었고 당시엔 별다른 큰 문제 제기가 없다가, 2월 18일 대등재판부로 바뀌고 김 판사의 영향력이 1/3로 줄었는데도 도리어 법조기자들은 뒤늦게 ‘김미리 유임’ 문제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한다. ☞ 김미리 중앙지법 4년 유임시키더니…‘조국·선거개입’ 또 맡겨 ☞ ‘조국-사법남용’ 재판부 유임에… 판사들 “위헌적 특별재판부” 유임은 이미 2주 전에 결정된 것이고, 이날은 대등재판부로의 변경이 되어 김 판사의 영향력이 크게 줄었는데도 마치 이날 김 판사의 유임 발표가 난 것처럼 ‘김미리 유임’을 제목으로 뽑아 문제 삼는 이상한 행태를 보였다. 법원이 그만 때리라고 고개를 숙이고 한 발 물러났는데, 법조기자들은 도리어 ‘너 저번에도 잘못했잖아!’ 하며 뺨을 후려친 형국이다.
사실 대등재판부 변경이라는 법원의 ‘타협안’에 대해 법조기자들이 도리어 정색하며 문제를 키운 데에는 짐작 되는 이유가 있다. 대등재판부 변경 자체만 발표되고 부장판사 3인 중 누가 재판장이 될지 결정이 안 된 상태였던 것이다. 동등 경력의 부장판사 3명이 모였기 때문에 새로 재판장을 정해야 했다.
보름 후인 3월 3일에 이 형사21부의 재판장이 결정됐는데, 그런데 무작위 배당 결과 다시 김미리 부장판사가 재판장이 된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진 후, 사전 협의라도 한 듯이 ‘4년째 유임 김미리 또 재판장’이라며 일제히 문제 삼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서로 다른 언론사 법조기자들이 비슷한 기사들을 쏟아냈고, 심지어 서로 다른 언론사 소속이면서도 제목까지 똑같은 기사들도 여럿이었으며, 나머지 기사들도 대부분 제목에서 단어 순서 정도만 재배치한 것들이었다.
이 기사들 중 가장 먼저 송고된 것은 3월 4일 새벽 3시에 출고된 동아일보의 기사였으며 ☞ 김미리 부장판사, 조국사건 재판장 계속 맡는다 이를 뒤따른 다른 언론사의 기사들은 오전 8시30분부터 시작해 오전 중에 모두 송고되었다. 동아일보 기사는 내용에서 김미리 판사의 공판 중 ‘검찰개혁 시각’ 언급과 ‘관례를 깬 임기’, 민감 사건의 집중 등을 문제 삼았고, 나머지 언론사의 기사들도 이런 줄거리를 대체로 따라 썼다. 법조기자들의 이심전심과 단결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아, 물론 이 법조기자들 대부분과 업무상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언론계 외부의 누군가가, 동아일보 기사의 작성 과정에 주요 포인트들을 제공하고 또 다른 법조기자들에게도 따라 쓸 것을 적극 유도했을 가능성도 현실적으로 충분히 있다. 떠날 것으로 기대했던 김미리 부장판사가 유임되고 심지어 다시 재판장이 된 일로 심각한 위기감에 빠져있었을 ‘누군가’ 말이다.
김미리 재판장 결정 소식이 나온 당일 아침 일제히 쏟아진 보도들 중 일부 (네이버 기사 검색결과)
더욱이, 이 2021년 3월 4일은 전국법원장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날 법원장회의는 법원 조직 내에서 특히 중요했는데, 임성근 판사의 탄핵소추 관련의 후폭풍으로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 논란이 벌어져 대법원장의 입장이 크게 수세에 몰려 있던 상황에서 열리는 회의였던 것이다(이날 대법원장은 직접 사과까지 하게 된다).
즉 코너에 몰린 대법원장이 법원 구성원들 앞에 고개를 숙이고 전국의 법원장들 앞에 서는 날 아침에, 법조기자들이 일제히 똑 같은 제목으로 김미리 판사를 문제 삼는 담합성 기사들을 쏟아낸 것으로, 법조기자들의 ‘단일대오’가 자신들이 만들어낸 논란을 적시에 그리고 일거에 터뜨리면서 증폭 효과까지 끌어낸 것이다.
이날 전국법원장회의 관련 법조기자들의 보도에서는 이 회의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김미리 부장판사 문제를 포함한 소위 ‘코드인사’ 문제로 집중적 문제 제기를 받은 것처럼 포장한 보도들이 여럿 나왔다. ☞ '조국 가족 입시 비리' 김미리 판사가 계속 맡는다..김명수는 '묵묵부답' 하지만 이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김미리’라는 이름이 거론되었다고 쓴 기사는 하나도 없었고, 이 회의에서 코드인사 관련 문제 제기를 받았다고 제대로 적시한 기사도 없었다. 법조기자들이 이 역시도 허위의 부풀리기를 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대등재판부 개편 이후로도 언론들의 김미리 판사 유임에 대한 공격 보도가 줄기차게 이어지자, 결국 김미리 부장판사는 한 달 후 4월에 병가 휴직 처리되며 재판부를 떠나게 된다. 누가 봐도, 사실상 법원의 언론에 대한 백기 항복 선언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승자는 언론보다는 ‘검찰’이었다.
김미리 교체 후에도 계속된 재판부 견제
김미리 부장판사를 끝내 조국 1심 재판부에서 밀어낸 후에도, 법조기자들의 법원 견제와 조국 재판부 공격은 그치지 않았다. 조선일보에서 김미리 판사의 휴직조차 ‘사법농단’이라 주장하는 기사를 게재했는데 ☞ [사설] 靑 선거 공작 재판 뭉개던 김미리 휴직, 속 보이는 사법 농단 법원으로서는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상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김미리 판사의 휴직을 허가”함으로써 울산 사건 등의 재판이 지연된다는 것이다. 신나게 두들겨 패서 몸을 사리게 만들어 놓고는, 몸을 사리는 게 또 죄라고 후려친 모양새다.
또 같은 시점 조선일보는 조국 재판부에 신임 재판장으로 배정된 마성영 부장판사에 대해 ‘조국 의혹 유튜버 구속’이란 제목을 달아 의심을 부추기는 기사를 게재하기까지 했다. ☞ 김미리 판사 후임에 ‘조국 의혹’ 제기한 유튜버 구속 판사 조선일보 외에 다른 언론사 법조기자들 다수도 제목으로까지는 아니지만 신임 마성영 재판장을 소개한 기사의 내용에서 여러 이력들 중 이 이력을 우선적으로 배치했다.
김미리 부장판사 후임으로 마성영 부장판사가 결정된 당일에 실린 견제성 기사. (조선일보)
조선일보가 기사 제목으로 뽑은 ‘조국 의혹 제기한 유튜버’는 보수 유튜버로 유명한 우종창이다. 우종창은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2018년에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박근혜의 1심 선고를 앞두고 해당 재판의 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를 은밀히 만났다는 허위 주장을 했다. 이 일로 우종창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 받고 동시에 법정구속 됐는데, 당시 이 판결을 내린 재판장이 마성영 부장판사였다. ☞ 조국 명예 훼손한 보수 유튜버 우종창씨 법정구속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실형 8개월에 법정구속까지 한 것은 흔한 일은 아닐텐데, 그것은 고발한 조국 전 장관 때문이라기보다는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만났다는 허위 의혹이 제기된 상대가 현직 판사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종창은 조 전 장관을 대상으로만 허위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현직 판사가 재판을 앞두고 청와대 최고위 관리와 만나 뭔가를 모의한 것처럼 방송을 함으로써, 박근혜 재판 관련으로 행정부와 사법부 양쪽 모두의 신뢰를 한꺼번에 크게 실추시키려 했던 것이다. 마 부장판사 역시 현직 판사로서, 이런 현직 판사의 재판에 관련된 허위사실 유포 행위를 가볍게 여기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 권순완 기자는, ‘조국 의혹 제기한 유튜버 구속한 판사’라며 조국 재판의 재판장을 맡게 된 마성영 부장판사가 과거 조국 당시 민정수석에게 유리하게 판결한 것처럼 주장한 것이다.
조국 전 장관 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법정구속된 우종창. (우종창 유튜브)
앞서 김미리 부장판사도 조국 1심 재판을 처음 배당 받았던 당일에 서울경제신문으로부터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기사로 견제를 받았다. 그리고 이후 주요 고비마다 법조기자들의 공격 수위와 밀도가 높아지다가 조권 씨 판결에 이르러 집중 공격이 쏟아져 결국 재판부에서 밀려난 바 있다.
그 후임으로 마성영 재판장이 조국 1심 재판부에 배치된 당일에 이런 “조국 의혹 제기한 유튜버 구속 판사”라고 제목을 달아놓은 것은 사실상 ‘좌표를 찍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 판사 본인의 입장에서도 ‘김미리 부장판사의 전례를 잊지 말고 조심하라‘ 라는 사전 경고 혹은 압박으로 비쳤을 개연성이 농후했다.
이렇게 법조기자들의 실력 행사가 판사들을 검찰의 유불리에 따라 장기말처럼 움직인 것이고, 그런 법조기자들을 검찰들이 주물럭거리는 것이 현재의 우리나라 사법 현실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 정의는 없다.
이어지는 4부에서는 이렇게 법조기자들의 도움을 받아 검찰의 입맛에 따라 그때그때 재판부가 교체된 결과로 조국 부부의 판결이 어떤 심각한 영향을 받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