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시편 119:174-176
맑은 샘 하나를 파면 많은 이가 마신다. 샘을 판 사람만이 아니라 의외의 사람들도 마신다. 표지판이 없어도 동물들이 찾아와 목을 축인다. 목이 말랐던 누군가 몰랐던 샘에서 물을 마시는 것만 한 고마움도 드물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 했던 생텍쥐페리의 말은 그런 경험을 담고 있다.
말씀을 나누러 찾았던 미국의 한 교회, 집회 후 차를 마시는 자리였다. 그날 말씀의 주제 때문이었을까, 교우 한 분이 시편 119편 이야기를 했다. 당신은 시편 119편의 마지막 절을 의미 있게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시편 119편의 마지막 절을 떠올리지 못했다. 당연히 그 구절을 왜 의미 있게 간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교우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그처럼 장구하고 아름다운 믿음을 고백한 시인이 고백을 마감하며 정작 자기 자신을 잃은 양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 너무도 마음에 와닿는다는 것이었다.
시편 119편은 성경 중에서 가장 긴 장에 해당된다. 무려 176절이다.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시편 119편은 대표적인 알파벳 시(아크로스틱)다. 히브리어의 알파벳 자음 22개의 순서를 따라 8절씩 기록을 했다.
시편 119편에는 빛나는 고백이 많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71절).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103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5절).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116절). 마치 거대한 바위 곳곳에 보석들이 박혀 있는 것 같다.
이처럼 빛나는 고백을 드린 시인이 마지막으로 바친 고백이 자신은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하니 주님이 나를 찾아달라는 고백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만한 고백을 바친 사람이라는 자신만만함이나 으쓱함이 없었던 것인데, 이야기를 나누는 교우는 그 점을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이었다.
시편 119편은 몇 가지 질문으로 다가온다. 나는 나에게 주신 재능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내가 드린 고백 중 가장 빛나는 고백은 무엇일까, 내가 드릴 마지막 고백은 무엇일까 등의 질문이다. 시편 119편의 마지막 구절은 릴케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묻는 자는 당신께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드러운 눈길로 당신은, 당신을 가슴에 품은 자를 바라봅니다.”
한 교우가 지닌 샘물은 맑고 달았다. 맞다, 누군가 맑은 샘 하나를 파면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이가 함께 마신다.
첫댓글 맑은 샘물을 함께 마시며
119편을 천천히 잘 읽어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