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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사랑으로 충만한 성령이여...!
성령이시여!
우리 마음에 사랑의 불꽃을 일으켜주십시오.
영혼 깊숙한 곳에 사시는 성령이시여!
사랑의 불을 우리 안에 놓으시어
그리스도와 아버지하느님을 따르게 해주십시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에
형제애를 아로새겨 주시고,
언제나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고,
이기심을 버리고,
선의와 존경과 헌신으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가 하나가 되어
화목하게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성령이시여!
우리의 열의를 축복해주시어,
더욱 단결된 인류사회를 이루고,
사랑으로 충만한 하느님의 나라가 오도록
온 힘을 다하게 하시며 성령의 사랑으로 충만케 해주십시오.
< 사랑의 기도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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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떠남, 성찰(省察), 새로움의 길에서...
글 : 윤 클레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적지 않은 시간들이 흘러갔다.
많은 날과 시간들이 지나갔다.
세월과 시간 속에서 ...
시간과 세월 속에서 ...
우리는 그렇게 세월과 시간들 속에서 살아간다.
시간과 세월들 속에서 길을 걸어간다.
인간과 삶의 길 위에서,
순례(巡禮)와 구도(求道)의 길 위에서 ...
조금은 오랜만에 길을 나서고, 또한 이 글들을 만난다.
일과 삶의 여유가 없었고,
삶과 일에서의 마음의 공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그 일이 그 일들일 것이고,
그 삶이 그 삶들일 것인데도 우리가 이뤄간다는 일들이 그러하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삶이 그러하다.
지금은 다시 일들에서, 삶들에서 작은 길들을 나섰다.
삶의 길들을 떠난다.
묻히고 갇힌 채 잠기어서 일하고 살아오기도 했던 날과 시간들,
만나고 사랑하며 갈등하기도 했던 그 모든 사람들, 일들로부터...
지금은 다시 조금 멀리 서서 바라다보고 성찰(省察)하며
작은 기도를 드린다.
지나간 세월(歲月)의 길들을 회상(回想)한다.
과거 현재 미래, 어제 오늘 내일, 헤아리고 헤아리며 헤아릴 세월,
살고 살며 살아갈 날들... 지나고 지나며 지나갈 시간들...
사람들, 일, 관계성, 만남, 떠남, 망각, 봉헌기도, 새로움,
명예(名譽) 허무(虛無) 무상(無常)함, 빛, 어둠, 생명, 희망, 절망, 환희, 고통, 아픔, 감사, 영원 현세 내세, 꿈, 현실(現實), 이상(理想)...
언제 어느 때쯤 길이 완성(完成)되고,
어느 땅 어디에서 희망(希望)을 이룰 수 있을까?
지금 이렇게 길에서 길을 찾으며 길 위에 있는데...
지금 여기에서 길에서 길을 물으며 길 위에서 사는데 ...
어느덧 이 땅과 세월위에 세모(歲暮)의 시간이 흐르고,
신년(新年)의 날이 왔다.
지난 세월과 날들에서, 지나간 시간과 흐름에서,
사랑하고 괴로워하며, 기뻐하고 아파하며,
감사하고 안타까워하며, 행복해하고 섭섭해 하던
그 모든 사람과 일들, 그 모든 것과 행함들,
그 모든 땅과 현실들도 이제는 여기에서 ‘안녕’을 고(告)한다.
‘잘 가라’고 인사한다.
과거는 가고 되돌아오지 않으며, 어제는 떠나고 다시 오지 않으리니.
오, 하느님 !
내 살아오던 날의 그 모든 행복하고 슬퍼하던
인간과 삶의 길을 성찰(省察)케 하소서.
기뻐하고 안타까워하던 그 모든 사람과 일들을 위하여
기도의 마음으로 머물게 하소서.
희망하고 절망스러워하던 그 모든 고마움과 관계성(關係性)들에도
자유의 심혼(心魂)으로 살게 하소서.
새 하늘과 땅에서 새 육신 마음으로...
새 정신 영혼(靈魂)으로... 새 희망 빛으로...
새 날과 걸음으로... 새 얼굴 시간들로 깨어 있게 하소서.
깨어 살게 하소서. 깨어 공부하게 하소서. 깨어 정진하게 하소서.
찬미와 감사로 흠숭하고, 어둠과 그늘에는 기다리며,
상처와 아픔은 용서하고, 고통과 절망에는 인내하며,
모해(謀害)와 몰이해(沒理解)는 묵묵히 간직한 채 길을 가면서 ...
기도(祈禱)하게 하소서.
떠남이게 하소서.
회상이게 하소서.
새로움이게 하소서.
- 신부님의 ‘순례자의 노래’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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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설 신부님의 서신 >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약속합니다
♱ 예수님 안에서 사랑하는 성서형제회(FㆍB) 회원 여러분 !
F‧B설립 50주년 맞이하여 예수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리면서 여러 회원들께도 축하를 드립니다.
그동안 F‧B 활동을 예수그리스도님과 성모마리아님께서 주관해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F‧B를 인간적인 부족한 면을 용서해주시고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F‧B의 장래를 이끌어주시고 강복해주시길 간청하옵니다.
무엇보다도 50년 동안 부족하기 그지없는 저를 용서해주시고, 사랑하는 F‧B회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님의 자비를 청하옵니다.
무엇보다도 F‧B에 몸담아 살아가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쉬고 있는 회원들을 주님께서 다시 F‧B회원들이 되게 해 주기를 간청드립니다.
F‧B 50주년의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의 새로운 마음가짐은 그토록 F‧B를 사랑하면서도 어떤 사연 때문에 팀회합(코이노니아)에 참여를 못하는 회원들을 위해서 우리는 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 !
우리는 F‧B회합(코이노니아)에 나오지 못하는 우리 회원들의 인간적인 고통을 이해하면서 새로운 길을 제시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늘 기억할 것은 상대방을 탓하기 보다는 나의 탓을 먼저 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F‧B회원들의 건전한 삶입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예수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을 늘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지혜의 삶을 기쁘게 실행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따라서 F‧B의 삶이 예수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을 본받는 삶이 되길 열망하면서, 부족하나마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삶’ 개정판을 F‧B회원들께 드립니다.
끝으로 Ecuador Guayaquil 대교구장이신 Mons. Juan Larrea Holguin 대주교님과 전주교구장이셨던 이 빈첸시오(병호) 주교님의 F‧B회헌 인가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20년 5월 17일, 설립 50주년 기념일에...
빨말에서... 여러분의 형제, 최 바오로 마리아 (규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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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F․B 설립 50주년을 준비하면서... ( 제 11부 )
수원 화서동 성당
한 바오로 (민희)
[사족 ] 10년 전에 한 바오로(민희) 형제님이 우리 FB회원에게 전해준 말씀이 새삼스럽게 마음속에 깊이 와 닿기에 ‘FB 설립 50주년’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해보고자 한다.
< 사랑하는 F·B를 위한 제언 >
사랑하는 전국의 F·B 형제자매님!
저는 요즘 출근하는 길에 건물 공사장 안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을 보며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하루의 시간도 주님의 뜻에 맞게 조금 더 기뻐하고 조금 더 감사하며, 조금 더 기도하며 살 것을 결심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금은 어려운 상황을 핑계 삼아 코이노니아를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안타깝고 배고픈 쉼을 하면서, 제가 한 한 십여 년 동안의 시간들을 잘 정리하며, 앞으로 내가 F·B를 통해 받은 많은 보물과 은총들을 갚아드리기 위한 맞갖은 준비를 아나윔 정신으로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삶 안에서 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원으로서 주님 앞에 서원을 했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F·B를 떠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한번 F·B 회원은 영원한 F·B인입니다.)
얼마 전 전국 봉사자 월례회의 후 어느 형제님의 의견을 보고 나름대로 좀 정리해서 이제야 부족한 제 의견을 적게 되었습니다.
또한 먼저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원래 취지에 있어 ‘봉사자 회의’는 전국의 임원 봉사자들이 한 달에 한번 모여 현실적으로 너무 먼 거리에 있어 인간적으로는 어렵고 힘든 모임이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기도하고 인간의 뜻이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로 하는 현안에 대해 심도있게 나눔으로써 우리 봉사자 자신과 회원들이 좀 더 성서형제회 회원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알찬 내용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이 자리에 많은 회원들이 참석하여 친교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부터라도 1차 식사와 친교시간과 본래의 취지인 봉사자(임원) 회의를 구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공동체나 조직이든 나라든 각자 필요한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몸의 각 지체와 음식의 각 재료들이 잘 어우러져야 하듯이 지금 우리 F·B가 지금 현재와 과거의 좋은 모습들을 잘 지키려는 보수 성향과 지금의 부족한 부분을 점검하고 개선하여 좀 더 좋은 모습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려는 진보, 개혁 성향이 있는데 우리 F·B도 그 두 성향과 의견들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만 알차고 건강하게 잘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부정적으로 본다거나 너무 인간적인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거나 하는 것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동안 저는 F·B와 함께 하며 우리 성서형제회 안에 있는 부족하고 안 좋은 성분의 작은 염증(종양)들을 제 때에 치료(수정,보완)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그냥 감싸 안았기에 그 종양(문제점)이 점점 자라 그 작은 조직(공동체)이 죽어가는 것을 많이 보아왔으며, 너무도 가슴안의 깊은 통증과 책임을 느끼며 이것이 우리의 성장을 위해 앞으로 기꺼이 지고가야 할 주님께서 주신 십자가로 안으며 부족한 기도로 위안과 희망을 싹트이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뒷받침하는 집의 기둥 역할을 하는 조직과 시스템의 부족에도 큰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매일 새롭게 우리 자신과 F·B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기도)과 지도(성서형제회 교본)를 잘 듣고 잘 보지 않거나 게을리 하거나 주저한다면 우리 배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기 힘들며 머지않아 고인 물이 썩듯이 병들어가고 죽어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또 주님의 뜻을 F·B를 통해 열매 맺게 하시려는 최규업 신부님의 뜻을 잘 새기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나 자신과 우리 F·B의 배는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향하여 가고 있는지 더 깊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더 깊은 영적인 기도의 눈으로 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 책임이 있는 봉사자 분들이...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영적으로 최규업 신부님과 안나, 미카엘라 자매님 등 많은 회원 분들이 진정 아나윔의 마음으로 보이지 않게 끊임없는 피땀의 기도를 먹고 살아왔음을 깊게 느낍니다.
이제 주님의 뜻과 최규업 신부님의 뜻이 우리 F·B와 회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싹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겨자씨만한 성령의 믿음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F·B가 주님의 나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가리켜 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바로 출발점을 겨우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F·B 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다시 한 번 모두 이번 하계연수회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달란트를 맡겨주실 것입니다.
너무도 인간적이고 표면적인 신앙생활의 틀을 벗어나 안주하지 않고 F·B의 더 깊은 우물 밑을 파고 들어가 우리가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영원한 생명을 위한 그 생수를 마실 수 있도록 우리는 더 열심히 땀을 흘리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의 시작은 내가 가진 것들을 모두 깎아 버려 가장 작은이가 되는 데 있을 것입니다.”
너무도 사랑하는 전국의 F·B 형제, 자매님이여!
이번 하계연수회를 통해 지금 주님께서 간절히 피땀 흘리시며 더욱 새롭게 거듭나라는 외침의 소리를 잘 듣고, 주님의 가장 사랑하는 어린아이가 아닌 F·B를 통해 이루시려는 과업을 이루는 성숙한 주님의 제자로 다시 태어나기를 진심으로 예수님과 성모님과 함께 성령님을 통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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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7
요한 3, 16 ~ 18
♠ 복음 공부 : 삼위일체로 나타나는 삶의 고백
* 16~18절 : 요한 공동체에서 예수님을 향한 신앙고백 개념은 메시아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느님과 함께하시는 관계, 영원한 관계를 갖은 분으로, 예수님이 ‘위로부터 나신 분’이며, 하느님과 같은 분으로 믿고 고백하고 있었다. 파견신조(16-17) : 마치 음악의 전주곡처럼 ‘복음서의 진수’ 라(16-17절) 할 수 있는 요한 주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어 그 세상을 구원하시려 당신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시어 당신을 믿는 자로 하여금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16절)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18절) ”아무도 하느님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품안에 계시는 외아들, 하느님이신 그분이 알려 주셨다“(1.18) 이와 같은 표현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요한 공동체만의 표현으로 ‘외아들’ 이란 표현은 아버지와 친밀한 부자관계로 하느님 품안에 계시는 유일한 관계이기에 둘은 동일시된다. 즉 하느님과 본질을 공유하신 하나이신 분이다. 그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우리를 살리는 묘기를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명은 단죄가 아니라 구원이다. 끝으로 하느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 필수불가결의 조건인 믿음에 대해 강조한다(18절). 즉 구원자로 오신 아드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 복음 요약 및 대화 방향
- 하느님이 세상을 위하여 외아들을 보내주셨다는 그 사랑의 고백이 성령의 역사 안에서 오늘도 우리의 삶 현장에서 계속되기에 삼위일체 신앙은 일상생활에서도 구현할 수 있도록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는 공동작업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결과다. 그 결과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지 않았다(17절)’ 하는가 하면 ‘심판하러 오셨다(18절)’ 는 상치된 표현은 하느님께서는 구원하실 의사가 있었음에도 그것을 ‘따르고 안 따름’ 은 각자의 자유다.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 예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 각자가 심판을 자초한다고 보면 좋겠다. 따라서 신덕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이 체험을 통하여 형성된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십자성호’ 는 우리 삶의 인도자이며, 수시로 하느님을 만나 친교를 나누는 우리의 일상이며, 우리의 몸짓이다. 그 몸짓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한다.
☞ 나의 몸짓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 참고 문헌 : ▪ 요한복음 신학과 배경 ( 송봉모 / 서강대학교 수도자대학원 )
▪ 말씀으로 산 선종완 신부의 요한 복음 강해 ( 성모영보수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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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20. 6. 14
요한 6, 51 ~ 58
♠ 복음 공부 : 살과 피에 대한 설교 - 성체성사론
* 들어가면서 : 앞 단락(26-34절)에서 주로 예수님의 구원론적 역할을 밝히는데 비해서 뒷부분(35-51절)에서는 당신의 정체를 밝혀 “나는 생명의 빵입니다”(35,48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입니다(41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입니다(51절).” 라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자주 “나는 ...입니다” (ego eimi)란 표현을 한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한 번, 루카에서는 두 번, 요한복음에서는 무려 26번을 사용하고 있다. 이 표현은 고도로 압축된 신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즉 심원한 그리스도론적 신론적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는 하느님과 당신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자주 은유를 사용하였다. 예수님이 나는 “생명의 빵,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자처하자, 공공연히 드러나 있는 친자 관계, 곧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의 기원(起源)이 예수라는 인간의 신비에 유대인들은 웅성거리며 반론을 제기한다. 이와 같이 생명의 빵에 대한 담화 중심부에는 외적인 모습을 초월할 수 없는 인간의 앎이 자리 잡고 있다. 예리하게 매 순간 부각되는 스캔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논란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모세의 천상선물인 만나를 당신의 살과 피가 완전하게 하실 것이라고 결론짓게 만든다.
* 51~53절 :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라고 당신 본성에 대한 성체성사적 관점에서 계속 설명을 하신다. 생명의 빵이란 살아 있는 빵으로 강조하시고, 먹고 난 후의 효과는 영원히 살리라고 말하고 있다. 덧붙여 “내가 줄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고 한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오신 의미 핵심적으로 짚어준다. 예수님의 살과 그 빵을 동일시하고 있으며, 사람이 되신 말씀(Logos), 살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살아 있는 빵으로서 사람에게 먹히고자 하신다. 이 말을 듣는 유대인들이 살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대의 관습상 피가 철철 흐르는 살을 연상했기 때문에 논쟁을 일으킨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살을 먹지 않고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얻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 54~57절 : 예수님께서는 아랑곳없이 당신의 살과 피가 참된 음식이며 음료이고, 이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셔야만 당신과의 일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진리를 거듭 확인하신다. 이것은 성체성사의 빵과 포도주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과 연결이 되고 영생의 원인도 말씀하신다. 또한 마지막 날에 부활시키겠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영생과 부활을 3번이나, 언급하고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는 성체성사를 불멸의 약,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야 하는 해독제라고 불렀다(54-55절). 음식을 먹으면 살이 되어 일체(一體)가 되듯이, 성체를 영하면 그리스도를 우리가 먹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화 된다.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 이래 성만찬 때의 그리스도 현존을 변체설(變體設 / transsubstantiatio)로 설명했다. 즉 성체성사의 신비는 제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항구히 일치시켜 주며, 성자와 성부의 특성인 사랑의 역동성에 잠기게 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파견하셨고, 또 아버지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56-57절) 가파르나움 회당 설교의 뜻깊은 결어다. 즉 우리는 영성체를 통해 부활하신 그분과 하나 되고, 아들이 아버지께로 부터 받은 그 생명 그 자체를 살게 된다는 뜻이다.
* 58~59절 :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은 너희 조상들이 먹은 만나와 같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결국 죽어갔다. 이 빵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 이 구절은 사막에서의 만나 이야기를 회상케 하면서 아주 멋들어지게 이 설교 전체에 막을 내린다.
♠ 복음 요약 및 대화 방향
- 예수님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살과 피, 곧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드러난 예수님의 사랑은 아버지께 바친 고귀한 희생 제사로서 성체성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현존하신다. 믿는 이들이 성체를 영하는 것은 사랑의 역동성, 즉 예수님의 삶을 재현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이루며 신앙의 증거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① 유다인들은 당신의 살을 내어주어 먹게 하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당혹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성체성사의 신비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심리적 반응을 요한복음 사가가 미리 보여주는 듯합니다. 예수님의 설교가 끝날 무렵에는 제자들마저도 많이 그분을 떠납니다.
☞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는 그분의 말씀이 어떻게 받아드리는지요?
아니면 신앙의 여정에 혼란을 가져오는지요?
② 성체성사는 모든 묘사를 초월하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 나는 성체성사의 생명과 사랑의 역동성을 통해 생활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성체성사가 나의 생활을 바꾸어주지 못하는 장애는 어디에 있는지요? (요한복음 주해 : 구원의 역사에서 발췌 (G.베르베르스)
♠ 참고 문헌 : ▪ 요한복음 이야기 ( 정양모 지음 / 성서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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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12주일
2020. 6. 21
마태오 10, 26 ~ 33
♠ 복음 공부 :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26~27절 :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언제나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고 안심을 시켜주신다. 밝은 데서 말하고 지붕 위에서 선포하라고 말씀하신다.
* 28절 : 이 땅에서 살면서 오직 하느님만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을 믿지 못하거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신 기적들을 믿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도 그들은 믿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요한 8,21).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은 죄 속에서 죽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희망을 가지고 하느님만을 두려워하며, 우리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 수 있습니다.
* 29~31절 : 하느님께서는 우리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신 분입니다. 우리에 대해 모든 것을 속속 알고 계십니다. 솔로몬의 영광도 들에 핀 들꽃보다 못하였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들꽃보다도 하늘을 나는 참새보다도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 32~33절 :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증언하는 것 중의 첫째는 성호를 긋는 것이다.
♠ 복음 요약 :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 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시편 23. 1-3) 송봉모 신부는 “성경을 통해 하느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사랑 받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으며, 현실적, 정서적 목마름에서도 벗어나, ‘다만 자유롭게 살라’는 말씀을 살아갈 수 있다”고 전하면서, “성경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통해 영혼의 목마름이 채워질 수 있도록 청해야 한다. 성서말씀을 읽으면서 자의적 해석을 두려워할 수 있지만, 성경은 이미 우리들의 구체적 삶을 반영하고 있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을 걸지 않는다. 걱정하지 말고 들리는 대로 이해하고 행동하라”고 당부한다. ‘아쉬울 것이 없다’ 라는 말은 목자의 돌봄에 대해, ‘더없이 만족한다’ 는 뜻도 된다. 현실적으로 팔레스티나 지방의 양들은 자주 먹을 풀이 없기에,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쉬울 것이 없다’ 고 말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마음만 잡수시면, 비를 내려 주시고 풀도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로운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착한 목자이신 주님을 완전히 신뢰하면서,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 다닌다면, 안식이라는 선물을 받게 된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께서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시기에 우리는 영혼으로 들어야 하고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그래야 힘겨운 인생살이 속에서도 두 다리를 펴고 편히 쉴 수 있다면, 그것은 착한 목자께서 매일같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해주시기 때문이다.
♠ 대화 방향 : 인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이다.
그 사람의 얼굴과 말에는 평화와 포근함이 있다. 분명 그 사람은 하느님과의 개인적인 추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그는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한다.
성서형제회에서 만난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내 안에 없는 부족함을 다른 형제 안에 있는 빛으로 채우고 또한 다른 형제에게 없는 것들은 내 안에 있는 빛으로 채운다면 우리는 평화의 공동체가 된다.
☞ 나에게 없는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옆 형제들의 빛에 대해 서로 칭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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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전야 미사
2020. 6. 28
요한 21, 15 ~ 19
♠ 복음 공부
* 15절 : 베드로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네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영어 성경에서는 ‘feed my lamb’ 으로 되어 있다. 내 어린 양들을 먹이기 바란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이 장면은 라틴어 불가타 역본이나 우리말 역본보다 헬라어 성경으로 읽는 것이 더 극적이다. 예수님께서 먼저 베드로에게 "나를 아가페 하느냐"(αγαπαs με)고 물으셨다. 베드로는 이 물음에 "주님을 필레오 합니다"(οτι φιλω σε)고 대답했다.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한 그로서는 '아가페'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령을 받고나서 사도들의 활동을 적은 성경에는 사랑이라는 단어 대부분이 아가페로 나오며 필레오는 350번중에 단지 15번만 나온다. 그렇다면 왜 4복음 저자들과 사도들은 그들의 글에 아가페 사랑을 그렇게 많이 사용했을까? 그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 16절 :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여기서는 ‘Take care of my sheep!’ 으로 되어 있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 복음 요약
-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부활하신 분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면, 베드로를 특별한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신 것은 그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반석이 되라는 사명에 대한 확증이다. 전체 교회의 믿음을 위한 '내 양들을 돌보아라'는 베드로의 이 계속되는 파견 사명은 교회를 형성하는 토대가 됐다"가 설명했다.
마르타와 마리아가 주님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앓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을 때 《사랑한다》란 그리스어는 《필레오》이다 한편 *예수는 마르타와 그녀 누이와 라자로를 사랑하였다* 의 《사랑하다》의 그리스어는 《아가페》 이다. 둘 다 우리말로는 《사랑하다》 이지만 그 뜻은 다르다 '필레오'가 형제적 사랑을 가리킨다면 '아가페'는 신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은 아가페이다. 아기페를 가장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서구절은 요한복음 3장16절에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다.* 예수께서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에게 주신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이다 이 사랑은 세상의 사랑과는 다를 수 있다. 이 사랑은 우리 영혼을 돌보아주는 사랑이다. 때로 아가페의 사랑이 필로스의 사랑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상처는 우리 심령을 더욱 정화시켜 주고 맑게 해주는 상처이다.
♠ 대화 방향 : 나는 정말 예수님을 아가페적 사랑을 하는가 아니면 펠레오적 사랑을 하는가?
♠ 참고 문헌 : ▪ 나자렛 예수」 1권 / 302~328쪽 참조 ▪ 상처와 용서 (송봉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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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존경하올 故 허 데레사 님을 생각하며...
조 세실리아 (혜경)
전주 중산성당 프란치스코 팀 F·B
36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딛을 때 천주교신앙을 어떻게 키워갈까 생각하던 중 처음 뵙는데도 자연스럽게 가까이 다가오신 검소하시고 순교자 같은 신앙을 가지신 김치영 선생님의 인도로 레지오와 F·B활동을 통해 신앙을 키워갔다.
그 당시 전동성당에서 매 주 F·B회합을 했는데, 회원들의 진솔한 생활나눔, 영적나눔과 존경하는 김기곤 프란체스코 신부님의 영성 깊은 훈화말씀 및 정성 어린 강복으로 우리 회원들은 영적성장을 하였다.
또한 옆에서 지켜본 사제관의 오빠이신 김치삼 신부님, 노모 아녜스 님과 김치영 선생님 세 분은 항상 기도 안에서 사랑이 넘치고 행복한 성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 후 독실한 개신교 집안의 시댁에서 살면서 올라가기만 할 것 같은 나의 천주교 신앙의 곡선은 바닥을 쳤는데, 공교롭게도 인근으로 부임하신 스테파노 신부님과 선생님을 만나면서 꺼진 신앙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하여 지금의 성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또 김치삼 신부님께서 은퇴하시어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이 시기에 선생님의 소개로 말씀으로만 듣던 허 데레사 님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김치영 선생님이 왜 이리 허 데레사님을 존경하고 영적 멘토로 삼으실까 궁금했다. 두 분을 가끔씩 집에 초대하였는데, 두 분은 편찮으심도 잊고 흔쾌히 초대에 응하셨다. 집에서 영적대화도 하시고, ‘님 뵙́고자’, ‘밀알 하나가' 라는 성가를 즐겨 부르셨다.
́허 데레사 님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온몸이 극도로 아프셔도 전혀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시고 항상 평온한 모습이셨고,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매일미사를 다니셨다.
어느 날 말씀하시길, 영적인 말씀을 하실 때는 온몸이 아프다가도 힘이 솟는다고 하셨다.
또한 허 데레사 님은 수술하실 때 마취도 안하시고 신음소리를 안내시니, 오죽하면 의사선생님이 아프다는 신호를 좀 하라고 부탁하실 정도로 인내심이 강하신 분이셨다.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묵상하노라면 불쌍한 연옥 영혼과 하느님을 모르는 영혼들의 구령을 위해서 극도의 아픔도 참을 수 있고 기쁨이 솟는다고 하셨다.
내가 보기엔 허 데레사님은 성녀 소화 데레사처럼 한 순간도 하느님 생각을 잊지 않고, 작은 일에서도 하느님 현존을 느끼며 사신 분이셨으며, 성녀 아빌라의 대데레사 성녀처럼 관상가처럼 사신 분 이셨다.
코로나19가 한참 유행이던 4월 허 데레사 님은 그토록 사랑하시는 하느님 품속에 안기셨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러진 장례미사를 두고 미사를 집전하신 이병호 주교님께서는 허 데레사 님이 살아생전 예수님처럼 사셨듯이 돌아가실 때도 예수님처럼 눈에 띄지 않게 겸손하고 조용히 떠나신다고 말씀하셨다.
덧붙여 코로나가 없다면 허 데레사 님의 도움의 손길을 받은 사람이 모이면 성당 밖 인근 마을까지도 메우고도 남을 것이라 하셨다.
함께 미사를 집전하신 김 환철 신부님께서도 말씀하시길 언젠가 허 데레사 님은 성인품에 오르실 분이라고 예견하셨다.
이런 말씀은 내가 모르는 허 데레사 님의 덕행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음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영면하신 허 데레사 님을 김치영 선생님께서는 몹시도 그리워하시는 것 같다.
처음 뵈었던 36년 전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F·B를 사랑하시고, 비록 수도복은 입지 않으셨지만, 수도자처럼 온 몸과 마음의 정결을 지키면서 완덕을 향해 정진하시는 선생님을 하느님께서는 특별히 사랑하시리라 생각한다.
이번 몇 달 동안 지난 해 와는 달리 유독 선생님께서 육체적으로 쇠진하셨는데, 그럼에도 사력을 다해 매일 미사참석하시고 매일 성경필사하시며, 예수님 수난을 함께 하며 감사와 신앙의 기쁨 속에서 사시는 선생님에게서 경외심도 느끼고, 외람된 표현이지만 측은지심도 느껴진다.
주님을 닮아가고자 누구보다도 애쓰셨고, 애쓰시는 두 분을 가까이 알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나다시아 선생님을 통해 주위의 훌륭하신 많은 분들을 알게 됨 또한 감사드립니다.
주님! 선생님의 영육 간 건강을 기도드립니다.
영원한 안식을 누리실 허 데레사 님 ! 저희를 위하여 주님께 빌어주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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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재정 회계 보고 >
♠ 2020년 4월 입출금 내역
일자
내 용
수 입
지 출
잔 액
3 /30
전월 이월금
1,921,090
4 /21
(서울 이문동) 일반 팀 F·B 의연금 (3월분)
50,000
1,971,090
4 /21
(서울 이문동) 일반 팀 F·B 의연금 (4월분)
50,000
2,021,090
4 /25
(서울 당산동) 로고스 팀 F·B 의연금
50,000
2,071,090
4 /25
(서울 당산동) 산상수훈 팀 F·B 의연금
50,000
2,121,090
4 /30
F·B 설립 50주년 평화방송 미사 봉헌예물
50,000
2,071,090
4 /30
F·B 회원 부친상 화환 구입
80,000
1,991,090
4 /30
사회복음화 지원금 (전주 교도소) (4월분)
50,000
1,941,090
4 /30
예수그리스도수녀회 에콰돌선교 후원회비 (4월분)
30,000
1,911,090
4 /30
<기쁜소식지> 인쇄비 (5월호)
170,000
1,741,090
4 /30
<기쁜소식지> 발송 우편요금 (5월호)
37,000
1,704,090
월간 전체 입출금 합계
200,000
417,000
******
다음 달 이월금 (통장 잔고)
1,704,090
<< 입금할 계좌 : 농협 100071-51-033709 이강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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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설립 50주년 행사를 위한 후원금> 안내
입금 시기
입금자
수 입
지 출
누 계
2020. 4. 20
전월 이월금 누계
2,060,000
2020. 5. 15
F·B 교본 제3차 개정판 제작비
470,000
1,590,000
2020. 5. 23
광주 권 ○○ 형제님
50,000
1,640,000
다음 달 이월금 (통장 잔고)
1,640,000
* 모금 계좌 : [ 우리은행 1002-860-557530 한남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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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콰도르 선교지 돕기 후원금 모금 상황> 안내
- 우리 F·B 창립자이신 최 바오로마리아 신부님이 선교하고 계시는 에콰도르 빈민 지역 빨말에 만연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지역민이 속수무책 사망하고 있어서, 지난 4월 12일 ‘전국 F·B 봉사자 긴급 임시회의’에서 선교지 후원사업을 하기로 결정하여 모금하고 있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 모금 계좌 : [ 국민은행 033201-04-137855 박원석(에콰도르 선교후원회)]
입금 일자
후 원 자
후 원 금
지 출
잔 액
2020. 4.26 ~ 5.20
전주 예수성심 F‧B 팀
100,000
0
전주 성모마리아 F‧B 팀
100,000
전주 이 ○○ 자매님
50,000
전주 박 ○○ 자매님
50,000
전주 이 ** 자매님
100,000
전주 최 ○○ 자매님
300,000
전주 김 ○○ 자매님
50,000
전주 문 ○○ 자매님
100,000
전주 김 ** 자매님
600,000
전주 이 ▣▣ 자매님
100,000
전주 김 ▣▣ 자매님
50,000
전주 강 ○○ 형제님
50,000
전주 공 ○○ 신부님
100,000
전주 김 △△ 자매님
50,000
전주 신 ○○ 자매님
100,000
군산 최 ○○ 자매님
100,000
서울 한 ○○ 형제님
100,000
서울 이 ○○ 형제님
50,000
이번 달 총 후원금 총액
2,150,000
에콰도르 송금액
2,000,000
다음 달 이월금 (통장 잔고)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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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그리스도 수녀회 총장 김 베로니카(옥) 수녀님의 말씀 :
“ 이곳 현장은 비참 그 자체입니다...
하늘만 바라보고 우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한 끼 걱정을 덜어주는 일입니다.
제 머리위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지만, 자식 잃은 부모와 부모 잃은 자녀들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며 현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회원님들이 보내주신 후원금,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성서 형제회 50주년을 맞이해서 이곳에서도 최규업 신부님께서 미사를 봉헌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훌륭한 사도이고, 여러분 모든 가정의 주님의 평화가 있길 기도하겠습니다.‘ 라고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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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소식란 >
♠ 6월 <전국 봉사자 월례회> 모임 안내
※ 일 시 : 2020년 6월 14일 (일) 오후 2시
※ 참석 방법 : 19명이 가입돼 있는 [전국봉사자 카톡 방]에서 카톡으로 진행합니다...
※ 부탁 사항 : 지구 봉사자 및 본당 봉사자님은 각 팀의 말씀봉사자를 이 카톡방에 초대해주세요...
※ 안 건 : ① 각 팀 주회합 진행 및 구성 상황보고 ② 50주년 행사 관련 협의
③ 기타 협의 사항
♠ 6월 <50주년 준비위원회 기획분과>모임 안내
※ 일 시 : 2020년 6월 21일 (일) 오후 2시
※ 참석 방법 : 7명이 가입돼 있는 [전국봉사자 카톡 방]에서 카톡으로 진행합니다...
※ 안 건 : 50주년 행사 관련 협의 / 기타 안건 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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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의 겨자씨
“ 형제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고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
- 2코린 13장 11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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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의 기도 지향
- 교황님의 기도 지향 -
“ 고통받는 이들이 그들을 어루만져 주시는 예수 성심께 자신을 내어 맡겨 생명의 길을 찾도록 기도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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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하느님의 자녀들이 안전하게 보호되고, 감염자들이 하루빨리 완치될 수 있도록 열절한 기도를 해주십시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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