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등사
현등사는 가평군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찰로서, 신라 제23대 법흥왕 때 인도에서 온 마
라아미 스님을 위하여 창건한 것이라 한다. 그 후 수백 년 동안 폐허로 버려져 오다가 고려
제21대 희종 때 보조국사 지눌이 운악산 중턱에서 불빛이 비치는 곳을 찾아가니 석대 위
에 옥등이 달려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 절을 중건하고 현등사라 했다. 그 뒤 조선 태종11
년(1411) 함허대사가 중수했고, 순조 29년(1829) 화재를 만나 건물이 전소된 것을 이듬해
최윤 원빈스님이 보광전, 극락전, 요사등 건물을 중수, 1984년 충현 스님이 극락전, 보광
전 등을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경내에는 현재 3층석탑, 지진탑(보조국사사리탑), 화
담당경화탑, 함허대사 부도, 북악 부도 등의 문화재와 사찰 건물 내에는 아미타불 좌불상,
후불탱화, 동종 등 전래의 유물들이 보존되고 있다. 또한 무우폭포, 백연폭포, 궁소, 눈썹
바위, 치마바위, 거북바위 등 자연의 절경이 많아 명승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주차장에
서 절로 오르는 약 2km 의 구간과 현등사 주변으로는 단풍나무, 고로쇠나무,다래,
산철쭉,산진달래, 소나무 등이 우거져있다.

삼충단
현등사 일주문 우측에 자리한 이 삼충단은 조병세, 최익현, 민영환선생 세분
충신의 충절을 기리는 제단이다.
매년 11월 25일에 제향을 올린다.

운악산
운악산은 경기도의 동북 산간 지역에 위치한다. 북쪽에는 한북정맥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
으로 뻗어있고 남쪽에는 북한강이 동서로 흐르고 있다.
북쪽의 한북 정맥에는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1,468m)을 비롯해 응봉(1,436m), 촛대봉
(1,125m), 가덕산(858m), 북배산(967m), 계관산(655m) 등이 강원도와 경계를 이룬다. 한
북 정맥은 포천군과도 경계를 이루는데 운악산을 중심으로 하여 국망봉(1,168m), 강씨봉
(830m), 청계산(849m), 원통산(567m), 주금산(813m) 등이 솟아있다. 한편 한북 정맥의 본
줄기에는 속하지 않지만 운악산과는 조종촌을 경계로 하여 명지산(1,267m), 매봉(927m),
수덕산(749m) 등이 별도의 산줄기를 이루며 뻗어있다.
운악산은 해발 935.5m로 기암과 봉으로 이루어진 산세가 아름다워 小 금강이라고도 불리
워져 왔다. 또한 천연고찰인 현등사가 있어 그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다. 주봉인 만경대
를 중심으로 우람한 바위들이 봉우리마다 구름을 뚫고 솟아있고 골짜기마다 하늘을 가리
는 활엽수림은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들어 만산홍엽을 이룬다. 4월 중순의 자목련, 5월경
진달래와 산목련이 계곡과 바위마다 수놓은 꽃길은 정말로 장관이다. 또한 관악, 치악,
화악, 송악과 더불어 중부지방의 5대 악산 중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산이
다.

현등사 일주문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을 통과하여 약2km를 오르면 현등사가 나옵니다.
현등사에 오르는 길에는 계곡사이로 폭포수가 흐르고 운악산에서 내려오는
차고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절에 오르면 더운줄 모르고 절에 오를 수 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수행정진
현등사 오르는 길에 숲 사이로 계곡에서 바위에 앉아 참선 수행하는
한 불제자를 바라보니 절로 내 마음이 숙연해지고 고개가 숙여집니다.

백팔계단과 현등사 불이문

불이문에 걸려있는 시문

백팔 돌계단을 오르면 현등사 경내가 나옵니다.

경내 오르기전 우측 언덕에 고즈넉하게 해우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판리 지진탑 경기 문화재자료 제17호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된 현등사는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었다. 어느 날 보조국사는 이곳을 지나가는데 석등에서 불빛이 비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곳에 사찰을 재건하기로 결심한 지눌은 사찰 경내의 지기(地氣)를 진압하기 위하여 이 지진탑을 세웠다고 한다.
현등사 경내의 언덕 아래에 서 있는데, 본래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기단부 및 1층 탑신석·상륜부(相輪部)가 없어져 원형을 알 수 없다. 높이 1.88m이다.
하단에 있는 지대석(地臺石)에는 2단의 괴임대가 있고, 네 귀퉁이의 합각(合角)이 뚜렷하다. 기단의 갑석(甲石)은 2장의 판석으로 네 귀퉁이의 합각선이 뚜렷하다. 탑신석(塔身石)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었다. 탑신석에는 각각 양 우주(隅柱)가, 옥개석의 하단에는 옥개 받침이 있고, 2층이 4단, 3층이 3단으로 상층으로 갈수록 수가 줄어든다.
낙수면의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고, 추녀는 끝에서 반전(反轉)이 심하다. 각층 옥개석 위에는 탑신받침이 있다. 상륜부는 노반석(露盤石: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보주 등의 상륜부재를 받치는 장식)만이 남아 있는데, 지름 5㎝의 찰주공(擦柱孔)이 있다.

현등사 삼층석탑
경기도 유형문화제 제63호
경기 가평군 중서부에 있는 하면. 현등사 삼층석탑은 신라 후기 도선국사가 인도의 고승 마라사미를 위하여 조성한 탑이라고 한다. 높이 3m. 작품으로 보아서는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된다.

현등사 보광전

현등사 응진전

응진전 내의 부처님과 16나한들

현등사 극락전

현등사 극락전
건물이 특이하게 중간 기둥 보조목이 없고 건물기둥은 자연목 그대로 오랜세월의 흔적이
묻어납니다.

현등사 목조아미타좌상
시도유형문화재 제183호
극락전의 아미타 부처님은 조선 영조 35년(1759년)에 주조된 것으로 높이가 3자 6치의 좌불상이다. 또한 관세음보살 후불탱화는 1759년에 제작된 기록이 있다.

봉선사 종
1998년 4월 13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68호로 지정되었다. 1619년(광해군 11년)에 봉선사에서 제작한 조선중기의 범종(梵鐘)으로, 현재 현등사 법당 안에서 의식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단아한 모습의 장식성이 돋보이는 중종(中鐘)으로서, 종뉴(鍾紐)는 두 마리의 용이 어우러진 모양이며, 그 아래 포탄형의 종신(鐘身)이 연결된 형태이다. 종신의 외형선은 종의 윗부분에서부터 아랫부분으로 내려오며 벌어지는 형태이다.
전형적인 한국종의 특징인 음동(音筒)이 없고, 종신에 띠장식이 둘러 있어서 다소 중국종 양식이 보인다. 그러나 조각수법이 사실적이고, 풍만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짜임새가 있고, 장식문양에 생동감이 넘치는 우수한 범종이다.

현등사 지장전

현등사 청동지장보살좌상
시도유형문화재 제184호

지장전 내에 걸려있는 현판

현등사 삼성각

현등사 대자대비전. 관음전

목탁안 곤줄박
목탁안 둥지 곤줄박이 4마리 주지스님 길조로 여겨-sbs 세상에 이런 일이 취재
2003-05-12 12:04
운악산, 현등사 사찰의 목탁안 조그마한 구멍 안에 3년 전부터 새집을 짓고 철따라 새끼를 낳는 곤줄박이 새끼 4마리가 "어미 새가 열심히 먹이를 날라주는 모습은 전국에서 전무 유일한 일이라 범상치 않게 생각하고, 부처님의 자비가 미물인 새에게도 안식처를 마련해 주었다"는 현등자 주지 초격스님이 말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집을 짓고 그 후로 현등사에 경사스러운 일이 하나둘씩 생겨 길조로 여겨 현재까지 정성을 다하여 돌보고 있다고 한다.
한편, 이 소문은 멀리 서울에 까지 퍼쳐 "세상에 이런 일이" 취재침(PD 이경철외 3명)이 5월10일과 11일 이틀 동안 현등사 보광전 앞 목탁안의 곤줄박이 새끼를 취재하였다.
특히 취재 이틀 동안 어미 새가 보이지 않아 새끼 새가 배고픔으로 구슬피 울어 주지스님은 새집을 내려 일일이 먹이를 잡아 먹이고 하던 중 취재를 마치던 날 어미 새가 새집으로 드나드는 것이 포착돼 모든 이를 기쁘게 하였다.

불이문이 완성되기 전 까지는 이곳이 출입문 이었다.
경내로 들어가기전 나는 누구인가? 라는 화두를 들고 사찰에 들어갔다.

현등사 옛 출입구

입구 산아래 석불좌상이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계시네요.

민영환 암각석
폭포 상단 오른쪽 새하얀 바위면에는 ‘閔泳煥’(민영환)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1905년 을사조약의 파기를 주장하며 항거하다 자결한 민영환은 현리에 은거할 때 자주 이곳을 찾곤 했는데 당시 쓴 글을 자결한 이듬해인 1906년 새긴 것이라 전한다. 이 ‘민영환 암각서’는 ‘운악 8경’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현등사 찾아가는 길
1. 퇴계원과 광능내 쪽에서 접근할 경우는 47번 국도를 타고 서파에서 우회전해 37번 국도를 타면 현리까지 간다. 현리에서 상판리까지는 금방이다.
2. 국도 경춘가도를 타개 될 때는 청평을 지나 가평 검문소에서 현리방향으로 좌회전하면 37번 국도다. 이를 타고 현리까지 간 다음 현리 시외버스 터미널을 지나서 바로 우회전하면 상판리로 들어선다. 이길 을 따라 가면 현등산 입구가 나온다.
첫댓글 멋모르고 잘뒤 물흐르는 바위사이로 올라갔다가 너무 경치가 좋아 취해버렸는데 내려오니 스님께서 앞으론 거긴 가지말라하시네요>>> 물론 옛날 얘기지만,,,스님들의 청정수더군요~~
몇년새로 많이 변했군요.....현등사에서 불교식으로 결혼하는 분들을 처음 봤다는...그 분들 잘 살고 계실려나...
선방이 있는 현등사에서 선불장이라는 현판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던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네요.
아 현등사 이렇게 생겼군요. 오래전에 운악산을 다녀온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