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삼절(松都三絶)
相思夢(상사몽) - 黃眞伊(황진이)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 그리워도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儂訪歡時歡訪儂 (농방환시환방농) 내가 임 찾았을 때 임도 나를 찾아 왔네.
願使遙遙他夜夢 (원사요요타야몽) 원하오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노중봉) 같은 시간 길을 떠나 길에서 만나기를
《憑- 기댈 빙, 儂-나, 저 농, 遙- 멀, 거닐 요》
위 황진이의 시를 구한말(舊韓末)의 시인 김안서(金岸曙/金億)는 다음과 같이 우리말로 번역했는데 거기에 작곡가 김성태(金成泰) 선생님이 멜로디를 붙인 것이 우리 합창단이 부르기로 했다는 가곡 ‘꿈길에서’이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 그 임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 다시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송도(松都)는 고려조 500년 간 수도였던 도시로 개경(開京), 송악(松岳), 송경(松京)으로도 불렸던 곳이고 근대에 와서 개성(開城)으로 불리는 역사의 도시이다. 조선 개국 후에도 한양(漢陽/서울)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수도였다.
고도(古都) 송도의 기생이었던 황진이는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서경덕(徐敬德/花潭), 황진이(자신), 박연폭포(朴淵瀑布)를 꼽았고,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은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시(詩)의 차천로(車天輅/淸妙居士), 글씨의 한호(韓濩/韓石峯), 문장의 최립(崔岦/東皐)을 송도삼절로 꼽았다.
삼절(三絶)이라 함은 ‘뛰어난 것 세 가지’라는 의미로 일반인들은 대체로 황진이가 꼽은 송도삼절을 기억하는데 황진이가 꼽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 서경덕(1489~1546)과 박연폭포 및 자신(황진이)은 다분히 상징적이면서 풍류적인 냄새를 풍기고, 서포가 꼽은 송도삼절이 송도가 배출한 걸출한 인물들로 진정한 송도삼절이라 할 것이다.
서포가 꼽은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청묘거사 차천로(車天輅)는 조선 선조(宣祖), 알성시에 장원하고 5천 여 편의 시를 발표하여 세인을 놀라게 하였으며, 명(明)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담당하였는데 명에서 그 문장에 놀라 동방문사(東方文士)라는 칭호로 부를 만큼 이름을 떨쳤던 송도가 배출한 걸출한 학자이다.
한석봉의 글씨는 설명이 필요 없는 당대 최고의 명필로 명나라의 명필 주지향(朱之香)은 ‘왕희지(王羲之) 및 안진경(安眞卿)과 견주어도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라고 극찬하였다.
마지막으로, 동고 최립(崔岦)은 조선 중기, 율곡(栗谷 李珥)과 함께 조선 8대 명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다.
황진이(黃眞伊, 明月)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분명한 것은 그녀가 천재였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당대 조선을 대표할 만한 수많은 천재 남성들이 그녀와 마주하였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녀의 시재(詩才)를 능가하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기생인 그녀는 춤과 노래, 가야금 연주 등 가무음율(歌舞音律)에 뛰어났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시서화(詩書畵)에 능통하였으며, 특히 천부적인 시재(詩材)는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당시 유행하였던 성리학(性理學)과 사서육경(四書六經)에도 능통하였다니 놀라울 뿐으로 대 학자와 비견하여도 손색이 없었다고 한다.
사서(四書)는 論語(논어), 孟子(맹자), 中庸(중용), 大學(대학)이고 육경(六經)은 詩經(시경), 書經(서경), 易經(역경), 禮記(예기), 春秋(춘추), 樂記(악기)이다.
황진이가 남긴 시 몇 편을 감상해 본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截取冬之夜半强 (절취동지야반강) 春風被裏屈蟠藏 (춘풍피리굴반장)
燈明酒煖郞來夕 (등명주난랑내석) 曲曲鋪成折折長 (곡곡포성절절장)
동지(冬至)ㅅ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내어
춘풍(春風)이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截- 끊을 절, 蟠- 서릴 반, 藏- 감출 장, 煖- 따뜻할 난, 鋪- 펼 포》
<감상> 임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靑山裏碧溪水(청산리벽계수) 莫誇易移去(막과이이거)
一到滄海不復還(일도창해부복환) 明月滿空山(명월만공산) 暫休且去奈何(잠휴차거내하)
청산리 벽계수(碧溪水)야 /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明月)이 만공산 하니 / 잠시 쉬어간들 어떠리.
《裏- 속 리, 誇- 자랑할 과, 復- 돌아올 복, 暫- 잠시 잠, 奈- 어찌 내》
<감상>
왕족(王族)이었던 이종숙(李終叔/호, 碧溪水)은 송도 명기(名妓) 황진이(호, 明月)의 이야기를 듣고 만나러 왔다가 황진이의 빼어난 미모에 놀라 나귀에서 떨어진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다. 이종숙의 호 벽계수(碧溪水)와 자신의 호 명월(明月)을 대비시켜 읊은‘청산리 벽계수’는 절묘하다.
<詠半月(영반월) / 반달을 노래함>
誰斷崑山玉(수단곤산옥) /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
裁成織女梳(재성직녀소) / 직녀의 빗을 만들어 주었던고
牽牛離別後(견우이별후) / 직녀는 견우님이 떠나신 뒤에
愁擲碧空虛(수척벽공허) / 시름에 젖어 허공에 던져두었네.
《誰- 누구 수, 崑- 산 이름 곤, 裁- 마를 재, 梳- 빗 소, 牽- 끌 견, 擲- 던질 척》
<감상>
그리워하는 사람을 반달에 비유해 노래한 아름다운 시다.
하늘에 걸린 반달을 직녀가 쓰던 얼레빗(梳)에 비유한 것도 절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