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 거의 매주 화요일이면 만나던 지기들이 이제는 제법 뜸해진다.
오늘도 (2024.11월 5일 화) 한 명이 빠진 3명이서 떠나기로 한다. 3륜구동형 답사길이다.
무주 적상산. 어제 갔다 온 보배지기는 적상산 단풍이 그렇게 아름다웠다고 극찬한다.
마침 보고 싶은 사고도 궁금하고 오래 전에 보아서 가물가물거리는 서창의 여신석도 궁금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날씨는 구름이 오락가락, 그런대로 괜찮은 가을날이다.
갈마역 3번 출구 밖에 맥문동 열매가 눈길을 끈다. 보라색 꽃들이 어느새 영글어서 빛나는 열매를 맺고 있다.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성경책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저 예쁜 열매들은 어디에서 또 생명을 이어갈지...
이번 적상산 답사 글은 몇 번에 나눠 실을 예정 ( 호국사 소실 건, 사고지관련 , 서창 고석 할미 등 )
맥문동 열매 위로는 감나무가 보인다.
똘감인지 삐주리 감인지 자그마한 홍시감 그것도 반쯤 이미 까치밥이 된 듯한 홍시감을 뱁새 한 마리가 와서 한 번 콕 찍어 먹고는 사라진다. 서로 돕고 사는 자연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감과 까치, 뱁새까지.
이윽고 약속한 시간이 좀 지나서 함께 출발한다. 9시 10여 분, 경부고속도로를 피하고 국도로만 가겠단다.
옛날 경부고속도로(1968년 착공) 흔적이 남아있는 비래동 콰이강다리 적문교를 바라보면서 길티재 오른쪽 터널 굴길로 들어선다.
질티산성 (질현성)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말이다.
머들령을 지나고 증약도 지나니 묘목 상점이 즐비한 이원 지나 옥천읍내를 벗어난다. 주변이 온통 산들,
백제 성왕의 구진베루 이야기도 나누고, 뜬금없이 병장 특별 진급에 대한 가슴 아픈 이야기로 옛날을 더듬어 본다.
1968년 김신조 청와대 습격 사건과 월남파병에 얽힌 슬픈 이야기들, 우리들의 아픈 옛날 이야기들이다.
주임상병이며, 노란 소위며, 물하사 이야기도 하면서.
역사는 이렇게 세월과 함께 주저리 주저리 열린 머루처럼 이어져 가는 것일까?
어느새 차는 오른쪽으로 장용산줄기도 보이는 곳을 지나치고...
드디어 영동, 학산을 지나 무주읍내를 에돌아 북창 푯말이 보이고 드디어 적상산길로 들어선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단풍든 풍광, 아름답다. 길가에 떨어진 낙엽들, 와인동굴 옆을 지난다.
곱게곱게 물들어 떨어지는 낙엽들, 소임을 마치고 훌훌 털어버리고 미련없이 떠난다.
뒤로는 차들이 쉴새없이 따라오고, 대형 버스도 보인다.
꼬불꼬불 돌아서 멈춘 곳, 적상산 천일폭포 광장이다.
' 천하제일'의 뜻인 줄 알았더니, '천하에 하나밖에 없다'는 뜻의 폭포 이름이란다.
천일폭포 주변의 가을 단풍 경치가 그야말로 일품이다.
푸른 가을 하늘 날씨에 붉은 단풍들, 형형색색의 풀빛이 아름답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다 아름답다. 폭포 출입은 금지다. 옆에 화장실도 금지다.
덕유산국립공원안내도만 들여다 본다.
다시 출발, 꼬불꼬불, 적상터널도 지나니 적상호 댐이 나타나고 그 위에 적상호가 보인다.
구경삼아 전망대가 있는 곳까지 들렸다 나온다. 규정을 어기고 들어온 관광버스기사와 한바탕 욕지거리로 항의하는 라이더들을 뒤로 하고 적상산사고지도 뒤로하고 안국사 경내로 들어선다.
호국사 편액이 걸려 있는 요사채 옆 빈터에 차를 세운다.
안국사 입구의 노란 은행잎도 예쁘고 호국사지 쪽 단풍은 환상적이다. 나만 얼른 호국사지를 둘러보고 온다.
걸음 내디디기가 불편할 듯한 두 지기들이 씩씩하게 앞장을 서서 향로봉을 향해 올라간다.
벌써 어느덧 12시가 넘은 시각이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둥산 계단 위로는 낙엽진 고산지대가 나타난다.
낯익은 적상산성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반갑다.
누군가가 쌓아 놓은 돌탑이 옛 성벽 한쪽에 보인다. 그 앞에는 뿌리채 뽑힌 고목나무 한 그루 누워있다.
낙엽 떨군 참나무 군락지대에 썰렁한 산성의 모습들, 오가는 등산객들이 떨어진 나뭇잎 밟는 소리만 사각거린다.
향로봉(1024m)이 제일 높은 곳인 줄 알았더니 기봉, 송신탑이 있는 곳이 제일 높단다. 1034m
출입금지, 산짐승도 있고,,, 조심하라는 경고판도 건성건성 보고는 등산길 따라 가는데 향로봉 가는 길을 순간 잃어버린다.
기억이라는 것이 이렇게 믿을 것이 못되는 걸까? 그리도 많이 다닌 곳인데, 오랜 만이라..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 헤어진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안렴대쪽으로 가고, 두 지기는 향로봉 으로 가고...
제일 높다는 기봉에서 향로봉은 .1.5km, 안렴대는 겨우 0.15km 거리이다.
안국사 적상호 주변에는 단풍이 아름다웠는데, 이곳은 낙목한천, 그야말로 낙엽만이 뒹굴고 있다.
잎을 다 떨군 활엽수 참나무 군락지대다. 도토리가 많겠지. 그래서 그런지 야생동물 출현을 조심하라 하고...
무슨 줄 같은 것이 여기저기 기다랗게 처져 있고,
나혼자 안렴대길로 걸어간다. 길 오른쪽으로 서쪽 적상면 소재지 멀리 전망을 맛본다.
눈맛 !. 높은 산에서, 이 가을 하늘에서 맛보는 조국산천의 가을맛이다.
멀리로는 전주 곰티재로 넘어가는 길도 보이고.
북쪽 무주 방향으로는 바로 아래에 서창 마을로 보이는 곳도 보인다.
드디어 나타난 안렴대 안내 표지판을 찍어본다.
고려시대 흔적이 기록되어 있고, 적상산사고 비장처(석실)라는 이야기도 보인다. 극비사항이었을 텐데..
- 안렴대(按簾臺) 안내판 읽기 -
안렴대(按簾臺)
적상산(赤裳山) 남쪽 층암 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낭떠러지로,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고려 시대 거란이 침입했을 때 삼도(三道) 안렴사(按簾使)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불려지고 있다. 또한 병자호란( 丙子胡亂 1636 - 1637년)
때는 적상산사고실록을 안렴대 바위 밑에 있는 석실(石室)로
옮겨 난을 피했다고 한다.
Anryeomdae Cliff
Anryeomdae, a cliff high up the southern slope of Mt. Jeoksangsan,
(이하 생략)
마침 등산객 한 사람을 만나서 증명 사진 한 컷을 부탁한다.
무주군청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분인 것은 나중에 안다.
안렴대 안내판을 지나 안렴대 너른 바위 위에 내려서니 사서들을 감춰뒀을 석실이 궁금해진다.
얼마 안 있다가 어떤 멋진 하얀 수염을 한 어른과 여자 분이 온다.
내 사진 찍어준 분과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니 서로 잘 아는 사이인가 보다.
관광해설사, 신입 해설사 안내차 왔단다. 사고 비장처를 확인한다.
뜻밖에도 호국사 소실 건에 관한 이야기를 덤으로 듣는다.
(1949년) 추석 전날의 공비토벌 작전과 전투경찰 속에 숨어있던 경찰의 첩자 행위 등에 대한 이야기 호국사 소각 명령 등,
문화재 보존의 이야기 비화 : 8만대장경 보존 사연 등 . 시간이 없다고 헤어진다.
짧은 만남, 많은 정보 얻는다.
- 또 다른 만남의 시작 -
문화해설사 (송 ㅈ ㅍ) 만남 석실 사고 확인하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많이 나눌 수 있는 데, 바쁜 사람, 헤어질 수 밖에,
나중에 또 만날 줄이야.. 군청 출신 할아버지가 사진 한 방 찍어 준다.
- 문화해설사와 이야기 나누기 -
( 사고 비장처 석굴과 서창 마을 입구 여신석 확인하기. 호국사 소실 사연 듣기)
문화해설사가 들려준 사고석실비장처에는 출입 금지 목책이 있다.
바위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으로. 전에는 들어가봤는데...
- 사고 비장처 석실 동굴 입구 확인하기 -
옛날 답사 자료를 더듬어 본다. ( 검색창에서 '적상산' 입력하면 볼 수 있음 )
(*2014년 8월 12일(화) 답사시 사진 자료에서 : 어두워서 폰 풀래쉬를 켜고 찍은 사진이다.
두어 명이 앉을 만한 공간이다.)
극비사항이었을 곳. 지금도 접근이 용이치가 않다.
임진왜란때 전주사고지인 전주 경기전에 보존되었던 이태조 어진과 선원록, 왕조실록등 일체를 정읍 내장산 내장사로 옮긴 것이 생각난다.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보존 관리했으니 오늘까지 전해져 오는 게 아닐까? 물론 운도 따라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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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에 개인적으로 찾은 적이 있던 내장사 사진 자료들을 찾아 본다.
내장사 비장처 < 용굴암>도 본다. ( 검색창: 내장산 실록길 걷기 : 2022.5.29)
- 내장사 실록길에서 -
- 용굴암 입구 - ( 사서 등 비장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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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지에 보관된 사서들이 비상시(전란시 등) 에는 이곳 비장처로 옮겼을 것. (당시에는 극비사항)
주변이 절벽에 접근이 매우 어려웠을 곳이다.
바위에 아직도 성쌓은 흔적들이 남아있다. 풍화되고, 허물어지긴 했지만.
안렴대 사서 은익 석실비장처를 확인하고는, 숙제 하나 해결한 듯한 가벼운 마음으로 호국사 앞 마당에서 일행이 돌아오기를
기 다린다. 기다리기가 지루해지자 바로 아래에 있는 호국사지를 다시 둘러본다. 아까 대충 훑어본 곳이지만..
관광해설사가 들려준 사연들을 회상하면서 .. 벌써 오후 1시가 넘어간다. 배가 출출해진다. 배도 고프고, 아무리 단풍이 곱다 한들 배꼽시계의 알람을 이길 수 있을까? 호국사지로 가는 계단을 내려간다.
( 2024.11.09. 카페지기 씀)
<호국사지 소실 건 등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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