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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상의 흐름
1.후설의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후설 [Husserl, Edmund, 1859.4.8~1938.4.26]
독일의 철학자.
활동분야 철학
출생지 체코 프로스테요프 모라비아 프로스니츠
주요저서 《순수 현상학 및 현상학적 철학을 위한 여러 고안》(1913)
체코 프로스테요프 모라비아 프로스니츠 출생. 라이프치히대학교 ·베를린대학교 ·빈대학교에서 수학 ·철학을 공부하였다. F.브렌타노의 영향을 받은 후 할레비텐베르크대학교 강사를 거쳐 1901년 괴팅겐대학교 조교수, 1906년 동대학 교수, 1916∼1928년 프라이부르크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처녀작 《산술의 철학 Philosophie der Arithmetik》(1891)에서는 수학적 인식의 기초를 잡을 것을 지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심리주의적 경향을 취하고 있었으나, 뒤이은 《논리학 연구 Logische Untersuchungen》(2권, 1900∼1901)에서는 순수논리학, 논리주의적 현상학을 지향하였다. 그리고 1907년 괴팅겐대학교 강의에서, 처음으로 이 현상학적 환원(還元)에 대하여 언급하였으며, 현상학적 환원으로 도출(導出)된 ‘순수의식의 직관적인 본질학’으로서의 현상학의 이념은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 Philosophie als strenge Wissenshaft》(1910∼1911)을 거쳐 《순수 현상학 및 현상학적 철학을 위한 여러 고안 Ideen zu einer reinen Phänomenologie und phänomenologischen Philosophie》(1913)에 이르러 대체적인 완성(完成)을 보았다.
그후 《데카르트적 성찰 Cartesianische Meditationen》(1931)에서는 상호 주관성의 문제가, 더 나아가 《유럽 여러 학문의 위기와 초월론적 현상학 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und die transzendentale Phänomenologie》(1936)에서는 일체의 인식이 성립되는 궁극의 장(場)으로서의 ‘생세계(生世界:Lebenswelt)’의 문제가 논술되는 등, 후설의 사상은 그의 만년에 이르기까지 전개되어 나갔다. 그 양상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간행되기 시작한 유고집(遺稿集)에 의하여 밝혀졌으며, 그와 더불어 근래에는 ‘후설 르네상스’의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현상학은 시대의 사상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주체성 상실한 근대인의 실존위기 경고 - 해설 :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에드문트 후설의 대표작은 그의 최후의 역작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이다. 2차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1936년 프라하에서 행한 강연을 중심으로 한 이 책은 근대 서구 문화의 근원에 대한 심층적 해명임과 동시에 비판으로서 20세기 후반의 사상과 문화가 형성되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현상학 창시자의 최후 역작
후설 철학의 기본적인 입장 그리고 그가 꿈꾸는 이상은 학문을 통한 삶의 전개이다. 즉 인간 삶의 기반되어 삶의 방향을 그리며 또 그것의 정당성을 결정하는 것은 더 이상 신화나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바로 학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후설이 이렇게 학문에 삶의 토대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학문은 바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현실에 대한 투명한 접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학문은 믿음이나 권력에 근거하여 현실에 대한 불투명한 주장을 하는 것을 거부하고, 항상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반성하는 자기투명성을 추구한다. 학문은 바로 우리 앞에서 현실로서 생생하게 펼쳐져 있으며 우리의 삶이 진행되는 현상 세계를 있는 그대로 탐구하고 거기서 현실의 원리를 발견하여 그 원리에 맞게 삶을 이끌어 가려는 인간 실천의 핵심적 활동이다.
그러나 후설은 당시의 학문이 학문에 주어진 이러한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지에 대해 크게 회의적이었다. 당시의 학문들은 우리에게 생생한 현실로 나타나는 현실자체에 대한 투명한 탐구라기보다는 전승된 이론체계의 유희이며 이러한 가운데 현상자체는 이론과 사이비 논쟁의 유희 속에 은폐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설은 학문 본래목적의 회복 즉 현실 내지 현상자체에 대한 투명한 탐구를 통하여 학문의 삶에 대한 의미를 회복할 것을 요구한다.
학문의 본래적 역할의 회복은 우선 기존의 모든 이론체계에 대한 판단중지를 수반한다. 이 판단중지를 통해 비로소 우리 앞에 나타나는 현상이 그 자체로 다시 탐구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현상의 구체적 원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현상 그 자체가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나는가를 해명하는 작업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후설은 이러한 과제를 간과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현상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원리(로고스)를 탐구하며 이 탐구에 문자 그대로 현상학(Phaenomenologie)이라는 명칭을 부여하였다. 후설은 여기서 현상은 우리 의식이 무엇을 지향하는 활동을 하지 않는 한 우리의식 앞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의식의 지향활동은 현상이 우리 앞에 떠오르기 위한, 즉 현상이 우리에게 경험되기 위한 선행조건이다. 따라서 의식은 지향성활동을 하는 한 선험적 이라고 불리어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후설의 현상학은 선험적 의식활동 내지 선험적 주체성이라는 것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일상적 우리의식을 초월해 일상적 우리 의식에는 전혀 발견될 수 없는 신비적인 것이 아니다. 선험적 의식은 우리에게 현상이 나타나는 한, 우리가 일상적으로 현상과 대면하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한, 우리 일상적 의식에서 항상 활동하고 있는 우리 의식의 본래적 차원이다.
이러한 입장을 토대로 이제 후설은 임종을 앞둔 1930년대에 그의 최후의 저서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에서 다시 한번 학문과 삶과의 관계에 대한 보다 진지한 반성을 바친다. 그가 이러한 문제를 모든 정열이 쇠진되었을 노년에 다시 심도있게 반복하는 이유는 그 당신의 역사적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차 세계 대전의 아픈 기억과 그리고 전쟁 상황에서의 학문의 역할은 후설에게 깊은 고뇌를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일차세계대전은 신화와 환상을 떨쳐버리고 과학이라는 학문을 손에 쥔 인간에 의해 삶의 대대적인 파괴가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진행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후설은 삶이 이와 같이 위기에 빠진 이유를 학문이 삶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단지 수단화 된데서 목격한다. 그리고 학문의 삶에 대해 의미를 상실하게 된 근원을 천착하기 위해 근대 학문과 근대 문화의 모태인 자연과학에 대해 과학의 세례를 과감하게 벗어나 냉철한 반성을 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반성 속에서 현대과학은 자연공간을 전면적으로 기하학화하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되며, 기하학이 근거하고 있는 전제는 세계가 수학적인 집합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임이 밝혀진다. 후설은 따라서 근대 이후 자연과학적 세계인식 과정은 세계를 수학적 집합화하는 과정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의 내면의 모습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 위해 후설은 집합의 존재론적 특성에 천착해 들어가 다음과 같이 집합의 성격을 규정한다. 일상적으로 말할 때 먼저 원소가 될 대상이 있고 이것들을 담는 그릇(집합)을 생각하게 되지만 수학적 입장에서는 먼저 그릇이 있고 그 다음에 이것에 들어갈 원소를 따지게 된다. 수학적 의미의 집합은 단순한 다수의 모임이 아니라 관념적으로 완결된 총체성을 의미하며 이때 집합의 모든 가능한 원소들은 그 총체성을 구성하는 법칙에 의해 완전히 규정되고 또 규정될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수학적 집합의 형성에는 원소가 아니라 그 집합을 형성하는 조건의 결정이 우선한다. 원소는 그 조건을 충족시키거나 그 조건에서 도출될 수 있는 한에서 비로소 집합의 원소로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는다. 집합에 있어서 원소들은 그의 고유한 의미나 자기성 내지 주체성을 주장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세계를 수학적 집합화하는 과정은 결국 세계의 모든 존재자들이 그 자신의 고유성, 자기성 내지 주체성이 침탈당하는 전체화의 과정이라할 수 있다.
학문의 수단화 인간 삶을 파괴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체화의 과정이 인신론적, 방법론적 사건에 제한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전체화의 과정은 실천적으로 관철되는데 그것은 자연과학이 문자 그대로 실천적으로 응용됨으로써이다. 이것은 근대 자연 과학과 기술의 결합, 즉 생산수단의 과학화로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생산수단을 매개로 한 노동은 따라서 우리 실천세계에 수학적 집합 구조를 이식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결국 근대 자연 과학을 근거로 한 인간의 삶의 방식은 이러한 과정이, 즉 존재자에 대해 그의 자기성을 진공화시켜 이 존재자들을 전체로부터 부분의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 거대체계 안에 종속시키는 전체화의 과정이 인간의 전 삶의 영역 속으로 침투해 가는 과정으로 폭로된다. 그리하여 이 거대한 체계의 구성자들은 그 안에서 존재를 영위하기 위해 그 자신의 고유성 나아가서 자율적, 주체적 존재 방식을 포기하고 수학적 집합의 원소와 같이 그 자신에 외적인 질서에 종속시킴으로써만 의미를 획득하는 존재로 전락되기를 강요받는다. 근대의 숙명은 강요되는 주체성의 포기였던 것이다.
후설은 마지막 작품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에서 근대 역사의 주체 파괴적 경향이 완성되어가고 있음을 감지하여 위기를 경고하며, 우리의 선험적 활동과 상호 주관적 공동체성에 의해 펼쳐지는 주체들의 삶의 세계(Lebenswelt)의 실종을 폭로한다. 후설이 마지막까지 정열을 불살랐던 선험적 주체성의 현상학은 주체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주체의 구출을 시도하였던 필사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에 들어 선 오늘날, 결국 주체의 죽음이 선언되고 말았다.
2.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프랑스 '정신주의'철학의 진수(眞髓) - 해설 : 차건희(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지속은 전진하며 계속되는 진보
베르그송이 보기에 과학은 순간들만을 포착하는 '영화적 방법'에 의존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공간화된 시간을 측정할 뿐이지만, 그가 말하는 이른바 '지속'은 '흐르는 시간'인 동시에 '창조적 시간'이다. 이와 같은 창조와 자유의 세계야말로 바로 실제적 지속의 영역이며 과학의 도구인 '지성'이 아닌 '내적 직관'으로만 파악될 수 있는 철학의 고유 영역이 된다. 그런데 시간은 이렇게 심리학적 삶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창조적 진화>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지속은 단지 과거를 현재 안에 연장시키고 과거의 것을 현재 안에 밀어 넣는 계속된 삶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미래를 잠식하고 전진하면서 부풀어지는 계속적인 진보이기 때문에, 우리 내적 의식 상태는 시간의 여정 위를 전진하면서 갖게 되는 지속의 부피로 마치 눈덩이가 불어나듯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안의 의식, 즉 우주적 영혼은 스스로 전개되면서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을 계속적으로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꽃이 피어 열매가 맺을 때 열매는 꽃으로부터 된 것이지만 꽃과는 다른 '전적으로 새로운 어떤 것'인 것처럼, 지속한다는 것은 이전과는 차이나는 새로운 것으로 진화함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지속은 창조이다. 창조적 지속은 전개될 역사가 질적으로 농축되어 있는 일종의 기획인 바, 이 기획이 계속 새롭게 시도되는 가운데 조금씩 실현되어 결국 창조로 구현되는 역동적 진행이 바로 생명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창조적 진화>에서 베르그송은 생명에 관한 기존의 '기계론'과 '목적론'을 모두 물리치고 있지만 그의 생명관도 사실은 일종의 목적론이다. 그는 외적 목적성을 비판하였을 뿐, 내적 목적성은 역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여 개선되어 가고 이 증가되는 개선의 경향을 후손에게 전하려면 그 개별적 존재보다 먼저 있으며 그를 통해 유전되는 그 어떤 내적 충동과 같은 것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나 하나의 유기체들을 관통하여 생명을 흐르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충동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각각의 생명체들은 일장춘몽의 덧없는 기간동안 그 위를 다만 교차해 지나갈 뿐인 그 어떤 보이지 않는 흐름이 바로 생명의 흐름이며 이런 생명 진화의 계속성을 보장하는 추진력이 이른바 '생의 비약'인 것이다.
'생의 비약' 또는 생의 자발성은 생명의 형태를 '진화'하게 할뿐만 아니라 그 형태 자체를 계속적으로 '창조'한다. 물론 이와 같은 '창조적 진화'가 물질이라는 장애에 부딪혀 실패로 끝날 경우도 있으므로 생명의 진화는 다분히 우연적이다. 왜냐하면 생명이 지속이면 물질은 지속의 단절이며 부동성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비약이 물질에 의해 가로와 세로로 나뉘어 정지됨으로써 우주 안에서 현재 발견되는 유기체의 형태가 나오게 되며 이런 유기작용의 결과 생명은 육체를 입는다. 그러나 생명체는 일단 육체로 제한되어 그의 형태가 잡히면 무한히 그 형태를 반복하려 하고 한번 완수한 행위를 자동적으로 거듭 수행한다. 이와 같은 자동성과 반복은 생명이 멈춰서 답보상태에 있음을 알린다. 그러나 생명은 이렇게 겉보기에 패배한 듯 보이는 곳에서도 물질이 강요하는 지연(遲延)과 부동성을 무릅쓰고 기필코 전진하며 증가되어 간다. 그것은 잠시 방해를 받고 있던 생명의 비약이 장애를 극복하는 순간 최초의 비약의 순간과 똑같거나 오히려 더 큰 힘으로 용솟음쳐 오르기 때문이다.
생명 이해를 위해 삶에서 출발
그러므로 아직도 계속 진화하고 있는 종(種)들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이 물질을 누르고 승리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생명이 반복과 죽음이라는 장애를 딛고 승리하는 모습을 <창조적 진화>는 "인류 전체가 거대한 군대처럼 열을 지어 말 타고 달리면서" 수많은 장애를 극복하는 극적인 장면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 베르그송은 우리의 삶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인 우리는 무엇보다도 의식이다. "의식이 있는 존재에게 실존함은 변화함에 있고, 변화는 성숙해짐에, 성숙해짐은 곧 스스로를 무한히 창조함에 있다"고 단언한 후, 베르그송은 이어서 "일반적인 존재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묻는다. 의식의 삶을 이렇게 진화와 창조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자체 '창조적 진화'인 우리의 내적 지속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 실제적 지속을 전(全) 우주에서 새삼 발견했을 때 그 안의 모든 것 역시 창조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베르그송의 철학은 지속하는 자아로부터 지속하는 우주로의 이행, 심리학적 영역에서 생명과 존재의 영역으로의 이행이며, 이는 심리학의 내적 관찰의 방법을 철학의 방법으로 사용하여 심리학적 의식으로부터 존재 일반을 길어내는 프랑스 '정신주의' 철학의 진수(眞髓)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루카치 [1885.4.13~1971.6.4]
헝가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문학사가(文學史家).
원어명 Lukács György
국적 헝가리
활동분야 철학
출생지 헝가리 부다페스트
주요저서 《젊은 헤겔》(1948) 《이성(理性)의 파괴》(1952)
부다페스트 출생. 부다페스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베를린대학에서 G.지멜에게,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M.베버에게 사사했다. 그 후에 사상적 전환기를 겪어, 1918년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A.히틀러 등장 후 모스크바로 망명하여 과학학사원 철학연구소에서 미학 ·문학사를 연구했다. 1944년 귀국 후 《젊은 헤겔》(1948) 《이성(理性)의 파괴》(1952)를 발간했다. 1956년의 동란에는 페트위단(團)의 지도자로서 반소파(反蘇派)의 입장을 취하고, 한때는 나지 이무레 정권의 문화장관이 되었다가, 루마니아로 추방되었다. 1957년 사면되어 부다페스트로 돌아와, 그후는 미학(美學) 연구에 전념했다. 유고로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 Zur Ontologie des gesellschaftlichen Seins》과 《윤리학 Ethik》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발전과 완성에 기여 - 해설 : 김성민(중부대 교양학부 교수)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마르크스주의자 루카치(Georg Luk?s, 1885∼1971)는 철학, 미학, 정치론, 문학사, 문학 이론 등 인문 사회과학의 방대한 영역에 걸쳐 거대한 토대를 마련했으며, 단순한 이론가로 머물지 않고 때론 현실 정치에까지 관심을 가진 철학자이다. 루카치 사상의 이해를 위해서는 먼저 제2인터내셔널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제2인터내셔널(1889∼1914)의 마르크스주의에서 지배적인 조류는 기계론, 경제주의, 숙명론, 경험주의 그리고 이들과 관련된 기회주의, 수정주의였다. 루카치와 코르쉬 그리고 그람시를 비롯한 일단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바로 이러한 문제 속에 핵심이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루카치는 제2인터내셔널의 경제주의를 비판하고 수정주의와 기회주의에 맞서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전통을 옹호하고자 했다.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은 이러한 경향을 대변하는 중요한 저서중의 하나이다.
제2인터내셔널 경제주의 비판
<역사와 계급의식>(1923)은 1919년부터 1922년까지 루카치가 헝가리 공산당에서 활동하면서 혁명운동의 이론적 문제들에 과해서 틈틈이 쓴 논문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책은 이론적으로는 제2인터내셔널의 수정주의를 거부하고 마르크스주의를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의 상황과 일치시켜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려는 노력의 소산이었다. 이 책에 나타난 루카치 사상의 핵심은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기초로 하여 헤겔식으로 해석된 계급의식론과 베버(M. Webber)식으로 해석된 '물화(Verdinglichung)'이론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론적인 접합은 변증법적 방법과 '총체성'의 원칙을 기초로 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루카치에 의하면 변증법적 방법이란 "전체의 구체적 통일성을 강조하고 가상이 가상임을 폭로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루카치는 첫째, 현상과 본질의 상관관계를 규명하기보다는 현상적, 경험적 사실을 중시하는 실증주의. 둘째,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개별적 문제에 집착하여 기계론적으로 해결하려는 미시론적 사고. 셋째, 사실과 가치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신칸트주의의 이원론적 사고 등을 비변증볍적 사고라고 비판한다. 바로 여기에 루카치의 주-객 변증법의 근본적인 핵심이 놓여 있다. 루카치는 제2인터내셔널의 경제결정론에서는 객관적 합법칙성이 주체에 의해 매개되지 못했다고 본다.
합리성 개념으로 마르크스를 해석
루카치의 '물화'이론은 헤겔의 변증법 이외에도 마르크스의 소외론과 막스 베버의 '합리성' 개념을 연결시킴으로써 마르크스를 새롭게 해석한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숭배'이론에서 출발한다. 물신숭배란 원래 원시종교에서 일반적인 현상을 일컫는 것인데, 사물에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믿고 이것을 숭배하는 것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그의 <자본론>에서 상품이나 화폐가 물신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 말하자면 돈이라는 죽은 사물이 마치 생명을 갖고 자기 증식을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결국 상품 생산 사회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죽은 노동(상품과 화폐)이 산 노동(인간)을 지배하는 소외현상이 나타난다.
루카치는 '물신숭배'를 '물화'라는 용어로 대체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물화란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사물들 사이의 관계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인간의 주체적 활동과 이 활동의 산물이 인간에게 대립되어 객체화되고 또 이것이 오히려 주체를 지배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소외'라고 불렀던 현상이다. 다시 말하면 물화란 인간 주체와 이 주체의 산물인 객체가 서로 분리 대립되고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을 말한다.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 구분
다른 한편 루카치는 베버의 '합리화' 이론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에 접목한다. 합리화란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전통적인 인간적 유대 방식이 사라지고 명확하고 체계적이며 계산 가능한 규칙과 절차가 들어서는 과정을 말한다. 근대 서양의 합리화란 '형식적 합리성' 또는 '계산 가능성'이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루카치는 베버가 말하는 근대 서양의 합리화를 '물화'로 해석한다.
합리화란 계산 가능성의 증대를 말하며, 계산 가능성이란 질적인 통일성이 해체되고 수량화되고 인간이 사물처럼 계산과 조작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과 대상의 질은 모두 교환가치에 의해 '양화'되고 만다. 이처럼 마르크스와 베버의 연결을 통해 루카치는 '합리적으로 물화된 관계'라는 표현에 이른다. 루카치 사상의 또 하나의 축은 '계급의식론'이다. 물화이론과 계급의식을 매개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가치론이다. 상품 교환이 보편적으로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화론은 원칙적으로 노동자도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소외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루카치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 계급은 물화된 직접성에 사로 잡혀 상호 분리된 도구주의에로 전락하는데 반하여 프롤레타리아는 이러한 개별화와 이원론을 지향하는 각성된 계급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오직 프롤레타리아만이 변증법적인 총체성의 관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물화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총체적으로 물화된 객체이자 동시에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카치는 프롤레타리아 개개인들이 지닌 실제의 심리적 의식과 진정한 계급의식을 구분한다. 진정한 계급의식이란 계급 상황과 계급 이해에 '귀속(歸屬)되는 의식', 즉 한 계급이 그들의 상황과 이해 관계에 따라 응당 가질 것으로 기대되는 의식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프롤레타리아 내부의 여러 집단과 계층의 계급 의식은 통일되어 있지 못하다.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여 '귀속의식'을 구현하고 집행하는 기관이 바로 '당'이다.
루카치가 1936년에 행했던 자기비판에도 불구하고 <역사와 계급의식>이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기여한 점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첫째,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헤겔 변증법을 복권시킨 것. 둘째, 소외와 물화의 문제를 마르크스이래 처음으로 자본주의 비판의 핵심 문제로 취급한 점. 셋째, 물화론을 통해 마르크스와 베버를 종합함으로써 근대 자본주의를 보는 두 패러다임 사이의 생산적인 통로를 마련한 점 등이다.
4.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
하버마스 [1929.6.18~]
독일의 철학자·사회학자.
원어명 Jürgen Habermas
국적 독일
활동분야 철학, 사회학
주요저서 《이데올로기로서의 기술과 과학》(1968), 《사적(史的) 유물론의 재건을 위하여》(1976)
프랑크푸르트학파 속에서 성장하여 《공공성(公共性)의 구조전환(構造轉換)》(1962)으로 하이델베르크대학교 교수가 되고, 곧이어 프랑크푸르트대학교 교수로서 철학과 사회학을 강의하였다. 1971년 이후 과학기술에 의하여 각인(刻印)된, 현대문명세계에서의 인간의 생생한 체험의 여러 조건을 연구하는 막스프랑크연구소 교수로 임명된 후로는 저술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학파적(學派的)으로는 M.호르크하이머와 T.W.아도르노의 의발(衣鉢)을 이어받은 제2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마르크스주의자지만 특히 사회학에서의 비판적 합리주의(H.알베르트, K.R.호퍼), 정신과학에서의 해석학(H.G.가다머)의 방법논쟁을 통하여 마르크스주의에 결핍된 유연한 방법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주저에 《이데올로기로서의 기술과 과학 Technik und Wissenschaft als ‘Ideologiie’》(1968), 《사적(史的) 유물론의 재건을 위하여》(1976) 등이 있다.
체계와 생활세계의 분리 사회합리화 과정으로 이해 - 해설 : 장춘익(한림대 철학과 교수)
지난 20년간 인문사회과학 영역에서 1981년 출간된 하버마스(1929∼ )의 <의사소통행위이론>만큼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된 저서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이론을 이해하는 데에 좋은 비교의 대상은 마르크스의 노동 개념 및 자본주의 비판이다. 마르크스의 '노동'개념이 그렇듯이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도 하나의 포괄적인 사회이론의 핵심적인 범주이다. 또 마르크스가 노동을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행위양식으로 파악하고 노동의 소외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의 규범적 토대를 찾았던 것처럼, 하버마스는 근현대사회의 병리적 현상들을 의사소통행위의 왜곡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마르크스와의 이런 비교에 출발하여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의사소통행위론의 과제는 다음의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의사소통행위가 인간의 사회적 삶을 형성하는 데에 노동에 못지 않은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이다. 만일 의사소통행위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행위양식이라면, 그런 행위 개념에서 출발하여 포괄적인 사회이론을 세울 전망을 가질 수 있다.
둘째, 근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겪는 주요한 고통들이 의사소통행위의 왜곡에서 비롯된 것임을 해명하고 대응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 과제는 앞의 두 과제에 선행하여 해결되어야 할 철학적인 과제이다. 그것은 의사소통행위가 독자적인 합리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과제의 중요성은 다시 마르크스의 노동개념과 비교해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르크스는 노동과정에서 생산자가 스스로 생산과정의 주체이며 생산물을 소유할 수 있고, 생산활동을 통해 자기실현을 해 나가는 것을 노동의 참모습으로 설정하였다. 노동의 진정한 성격을 이렇게 규정했기에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임금노동을 소외된 노동으로 규정할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버마스는 의사소통행위가 독자적인 합리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비로소 그것의 왜곡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하버마스가 이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의사소통행위론의 과제 : 마르크스와의 비교
의사소통행위란 언어적 상호이해를 통한 합의가 그 수행의 조건이 되는 행위를 말한다. 이때 주의할 사항은 의사소통행위가 합의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의사소통행위란 곧 토의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 토의를 거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심부름의 예를 들어보자. 나의 아이에게 음료수를 사다 달라는 부탁을 했을 때 아이는 오늘 급한 숙제가 있어 곤란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평소에 아이에게 사소한 심부름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심부름보다 숙제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아이의 말에 동의하고 부탁을 철회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나는 아이와의 합의 하에 심부름 부탁을 철회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의사소통행위란 서로 행위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 쪽 혹은 다른 쪽에 의해 제시된 주장의 타당성을 승인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버마스가 의사소통행위에 대립시키는 사회적 행위유형은 전략적 행위이다. 전략적 행위는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이 의도하는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행위양식을 말한다. 전략적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가 나의 기대에 맞는 행위를 하도록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인데, 가령 권력과 화폐는 그런 수단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전략적 행위에서도 많은 경우 언어가 사용되지만, 이때 문제되는 것은 제시된 주장의 타당성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영향력이다.
의사소통적 합리성
의사소통행위에서 문제가 되는 타당성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진리성, 즉 제시된 주장이 사실에 맞는지 여부이다. 가령 한 농가의 아낙이 남편에게 곧 비가 올 것 같으니 마당에서 건조 중인 곡식을 거두어들이자는 제안을 하였을 때, 아내는 자신의 예측이 사실에 맞을 것이라는 근거로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이다. 둘째는 규범적 정당성이다. 가령 앞서 든 심부름의 예에서 나는 아이에게 보통의 경우 작은 일을 시키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진실성이다. 진실성 주장이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흥이나 정서를 타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였을 때 그것이 적절한 표현방식이라고 여기는 것이며 경우에 따라 그것의 적절성을 상대에게 정당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의사소통행위에 내재한 합리성은 바로 의사소통행위가 자유로운 토의를 통해 서로의 주장의 타당성에 대해 도달된 합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의사소통행위의 기능
하버마스는 의사소통행위를 인간의 사회적 삶의 형성에서 노동과 함께 가장 근본적인 행위양식이라고 여긴다. 그에 따르면 특히 한 사람을 사회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규범을 익히게 하여 사회성원으로 길러내는 일(사회화), 사회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며 사회 규칙을 준수하게 하는 일(사회통합), 지적 축적물을 전달하고 계승하는 일(문화의 전승)에서 의사소통행위는 필수적이다. 그는 이런 의사소통행위를 마르크스처럼 노동에 병합시키는 것에 반대한다. 노동은 행위자들 간의 합의에 바탕하여 수행될 경우에는 의사소통행위의 일종이긴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자연을 유용하게 변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에서 중요한 것은 많은 경우 타인과의 합의가 아니라 계획의 성공 여부이다. 그래서 하버마스는 의사소통행위가 아닌 것으로서의 노동을 일종의 도구적 행위라고 이해한다. 노동은 분명 물질적 재생산을 위해서 중요하지만 사회의 상징적 재생산, 즉 앞서 말한 사회화, 사회통합, 문화적 전승을 위해서는 의사소통행위가 필수적이다.
이원적 사회파악 : 체계와 생활세계
사회적 행위를 의사소통행위와 전략적 행위로 분류한 것에 상응하여 하버마스는 사회를 이원적으로 파악한다. 그는 언어적 의사소통행위에 의해 사회화, 사회통합, 문화적 전승이 이루어지는 사회영역을 '생활세계'로, 화폐나 권력에 의해 행위조정이 이루어지는 경제와 행정의 영역 등을 '체계'로 규정한다. 그에 의하면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사회의 대부분의 행위가 언어적 의사소통에 의해 조정된 반면 근대사회에서는 화폐와 권력에 의해 행위가 조정되는 사회영역이 뚜렷이 독자화 되었다. 이렇게 그는 근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을 체계와 생활세계의 분리에서 찾고 있다.
근현대사회의 문제와 대응방안
하버마스는 이원적 사회파악을 근거로 마르크스가 '소외'로, 베버가 '자유상실' 및 '의미상실'로, 그리고 루카치가 '물화'로 파악했던 근대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좀더 정확하게 진단해 내고자 한다. 그에 의하면 '소외'나 '물화'등은 체계의 논리가 생활세계로 침범하여, 이곳에 적합한 행위조정방식인 언어적 합의가 화폐나 권력에 의해 대치되는 현상이다. 전자가 화폐의 영향력이 과대한 자본주의 경우라면 후자의 경우는 권력의 영향력이 과대한 사회주의의 경우이다. 하버마스는 체계와 생활세계의 분리 자체는 사회합리화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그에 의하면 문제는 분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세계에 대한 체계의 월권에 있다. 그러면 체계의 월권을 방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버마스는 체계의 독자성 자체를 파괴하여 생활세계의 논리에 병합시키는 것은 사회합리화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반대한다. 하버마스가 제안하는 대안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하여 제정된 법을 바탕으로 체계를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체계가 독자적인 논리에 따라 경제와 행정의 효율성을 추구하도록 허용하되 오직 자유로운 언어적 의사소통에 의해 확립된 개인적, 사회적 삶의 형태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5.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인간의 유한성에 입각한 새로운 철학시도 - 해설 : 박찬국 (호서대학교 교수)
"장미는 이유 없이 존재한다. 그것은 피기 때문에 필 뿐이다. 장미는 그 자신에도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지도 묻지 않는다."(Die Rose ist ohn warum; sie bluehet, weil sie bluehet, Sie acht nicht ihrer selbst, fragt nicht, ob man sie siehet.)
이 시는 하이데거가 <근거율>이란 강의에서 인용하고 있는 기독교 신비주의지 안겔루스 실레지우스(Angelus Silesius)의 시이다. 장미는 이유없이 핀다. 그러나 소위 과학기술시대를 사는 우리는 항상 사물의 근거를 따져 묻는다. 장미는 왜 피는지, 어떻게 하면 장미를 더 아름답게 꽃피게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렇게 근거를 파악하는 것에 의해서 우리는 장미를 우리의 통제 하에 두고자 한다. 그러나 근거에 대한 추구를 통해서 우리는 정작 장미 자체는 보지 못한다. 사람들이 보든 어떻든 호젓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장미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소위 장미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만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다.
존재 상실된 공허한 현대
사물의 조건과 근거를 따져 묻는 사유방식을 우리는 '과학적 사유'라고 부른다. 과학적 사유란 사물의 조건과 근거에 대한 파악을 통해서 그 사물을 지배하고자 하는 사유이다. 예를 들어서 병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 때 우리는 그 병을 다스릴 수 있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서구의 역사는 이렇게 근거를 따져 묻는 사유가 다른 종류의 사유를 몰아 내고 자신의 배타적인 우위를 확보해 가는 과정이다. 현대의 과학기술문명에서 이러한 과정은 정점에 달한다. 현대는 정보화 시대라고 불린다. 정보란 사물들의 조건과 근거에 대한 정보이며, 우리에게 그러한 사물들의 지배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시대를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를 소유하고 있는 시대라고 찬양하지만, 하이데거는 이 시대를 공허한 시대, 니힐리즘의 시대라고 단정하고 있다. 현대는 날카롭기 만한 과학적 사유와 그것에 기초한 기술의 지배하에서 사물들이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상실하고 자신들의 조건들로 해체되어 버린 시대라는 것이다.
현존재(Da-sein) -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장
하이데거는 정보언어 대신에 시어(詩語)를 내세운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정보 없이 안간답게 사는 것은 가능하지만, 시 없이 인간답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정보언어가 사물의 조건을 따져 들어가는 것에 의해서 사물을 지배하려는 의지에 의해서 관철되고 있는 반면에, 시어는 사물로 하여금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돕고자 한다. 과학적 사유에서는 사물들을 그것을 구성하는 조건들로 해부해 들어가는 예리함이 찬양되는 반면에, 진정한 시어에서는 사물로 하여금 자신의 본질을 꽃피우도록 돕는 부드러움이 지배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사물이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드러내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Da-sein)라고 부른다. 인간은 사물들의 고유한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장(場)이라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분석과 그것에 입각한 철학의 새로운 건립을 목표로 한 책이다. 인간은 유한한(endlich)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단순히 한정된 시간을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동물도 식물도 제한된 시간을 사나 하이데거는 그것들을 유한한 존재라고 부르지 않는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은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결국은 죽음으로 끝나는 자신의 삶의 무상함과 무의미함에 고뇌할 줄 아는 존재이다. 동물의 삶도 죽음으로 끝나나, 동물에게는 자신의 삶의 무상함과 무의미함에 대한 자각이 결여되어 있다. 이러한 무상함과 무의미함에 대한 자각을 통하여 인간은 절망에 빠질 수도 있으나 그러한 자각은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삶이 영원한 것처럼 일상의 일들에 분주하다. 인간은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서 바쁘거나, 호기심이나 잡담 속에서 항상 새로운 관심거리를 찾아 나서고, 과학과 기술의 개발을 통해서 사물들을 자신의 뜻대로 지배하기에 바쁘다.
시간성(Zeitlichkeit) - 유한성에 대한 철저한 자각
인간이 자신이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철저하게 의식할 때, 인간은 일상의 분주함과 사물들을 지배하는 것에 의해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의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갓 수단적인 의미밖에 갖지 못했던 사물들의 존재가 전혀 낯설게 인간에게 나타나고, 인간은 그러한 존재자들의 고유한 존재 앞에 붙들리게 된다. 즉 그 전의 인간이 사물들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자신 앞에 두고 사물들을 이리저리 관찰하고 조작했던 반면에, 이제 인간은 사물들의 고유한 존재에 의해서 오히려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현존재'로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인간은 이렇게 자신이 무한한 존재가 아니라 죽음을 앞에 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을 통해서 존재자들의 고유한 존재 앞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철학이 존재자들의 존재 내지 본질을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한다고 할 경우, 진정한 철학은 유한성에 대한 철저한 자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철저하게 자각하면서 사는 것을 하이데거는 시간성(Zeitlichkeit)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진정한 철학의 건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시간성에 입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한편, 그 자신 인간의 시간성에 입각하여 새로운 철학을 건립하려는 시도이다.
필자는 필자에게 주어진 극히 제한된 지면 안에서, 난해하기로 정평이 난 <존재와 시간>의 핵심사상에 대해서 말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러한 시도가 극히 무모한 시도이지만 <존재와 시간>이란 저서에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6.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쿤 [Thomas Kuhn, 1922.7.18~1996.6.17]
미국의 과학사학자 겸 철학자.
활동분야 과학철학
출생지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주요저서 《과학혁명의 구조》(1962)
1922년 7월 18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1943년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과학연구 및 개발연구소(OSRD)에서 2년 동안 일한 뒤 모교 대학원으로 되돌아가 1949년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하버드대학교 총장인 제임스 코넌트(James Conant)의 권유로 학부생들에게 자연과학개론을 강의하면서 과학의 역사적 측면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관심이 과학사상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면서 철학·사회학·언어학·심리학을 두루 섭렵한 새로운 과학혁명의 이론적 체계를 세우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업적으로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아 1956년 버클리대학교로 옮겨 과학사 과정을 강의했으며, 1958년 스탠퍼드대학교의 행동과학 고등연구센터(Center for Advanced Study in the Behavioral Sciences)에서 사회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활동을 한 것을 계기로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해냈다.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법칙·지식 및 사회적 믿음이나 관습 등을 통틀어 일컫는 개념으로서, 그는 이 패러다임이 한 시대의 세계관과 과학적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과학의 발전은 개별적 발견이나 발명의 축적에 의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교체에 의해 혁명적으로 이루어지며, 그는 이러한 변화를 '과학혁명'이라고 불렀다. 이 새로운 과학관은 1962년에 발간한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로 발표되어 과학철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분야를 포함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발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프린스턴대학교(1964~1979)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1979~1991) 등에서 과학사 강의와 연구활동을 하던 중 1996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사학자 겸 과학철학자로 평가되며 저서에 화제작 《과학혁명의 구조》를 비롯해 과학혁명의 예를 다룬 《코페르니쿠스 혁명 The Copernican Revolution》(1957), 과학철학적 주제를 모은 논문집 《주요한 긴장 The Essential Tension》(1977), 《흑체이론과 양자불연속성》(1978) 등이 있다.
근대과학의 본질 깊이있는 이해에 공헌 - 해설 : 이중원(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토마스 쿤은 하버드대학에서 물리학부를 졸업한 후 물리학자가 되기 위해 대학원을 다니던 중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매료되어 삶의 진로를 바꾼, 흔치 않은 경력을 지닌 과학사가이자 과학철학자이다. 학자로서의 출발을 과학에서 시작한 까닭에, 과학사를 해석하는 그의 독특한 시각이나 과학의 본성에 관한 철학적 분석 모두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한 과학의 사례들에 대한 방대하면서도 포괄적인 분석에 기반하고 있다. 그가 40살이 되던 해인 1962년에 출판된 그의 대표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는 그의 이러한 편력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학문전반에 영향을 준 사상
이 책에서 그는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경제학 등의 분야에서 오늘날 매우 유용한 분석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패러다임론을 제시함으로써, 과학과 관련된 20세기 사상의 흐름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공하였다고 평할 수 있다. 20세기의 모든 학문적 연구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때, 과학을 보는 쿤의 새로운 시각은 학문 전반에 걸쳐 영향을 가할 수 있는 매우 위력적인 것임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쿤에게서 패러다임이란 매우 복합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과학에서의 이론적 탐구와 실천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일종의 모태적 토양과 같은 것으로서 학문 내적인 요소들, 가령 개념적, 도구적, 방법론적 요소들만이 아니라 학문외적인 요소들, 가령 교육, 문화 사회적인 전통이라든가, 세계에 대한 개개인의 암묵적인 믿음과 직관들, 그리고 가치관이나 형이상학적 믿음 모두를 포함하는 총체적인 개념이다. 이 패러다임은 어떠한 과학지식이 형성되고 그것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다.
예를 들어 근대 이전의 천문학이 천동설에 기초한 신(神)중심적인 패러다임 안에서 형성·발전했다면, 근대 천문학은 지동설을 포함하는 이성 중심적인 패러다임 안에서 형성·발전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쿤은 과학이 패러다임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과학의 한 분야 또는 한 집단에서 약간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형태로 사용하고 있는 개념들, 법칙들, 이론들, 규칙들 등은 그 분야에 종사하는 여러 과학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특정 패러다임의 산물로 간주한다.
매우 복합적인 개념, 패러다임
이렇듯 패러다임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의 활동을 그는 정상과학이라 부르며,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안에서 정상과학은 연속적이고 점진적이며 축적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쿤에게 있어 패러다임 자체의 형성은 다분히 우연적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에로의 전이는 사회혁명처럼 매우 급격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전 패러다임 안에서 이루어지던 정상과학의 활동이 계속해서 심각한 변칙 사례들에 직면함으로써, 이의 모태가 된 기존의 패러다임 자체가 심각한 위협을 받게될 때 그것의 대안으로 등장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에로의 전이(쿤은 이를 과학혁명이라 부름)는 어떤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의해 연속적이고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개종처럼 어느 순간 급격하게 일어난다. 그 만큼 하나의 패러다임 안에 '갇혀' 정상과학 활동을 수행하는 과학자들의 경우, 기존의 패러다임을 여간해선 떨쳐 버리지 못하다가 일정한 조건이 성숙되면 어느 순간 게슈탈트적인 심리변화처럼 갑작스럽게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혁명의 대표적인 사례로 쿤은 천동설의 천문학에서 지동설의 천문학으로의 전이, 결정론적 고전물리학에서 비결정론적 양자물리학으로의 전이, 플론지스톤에 의한 연소이론에서 산소에 의거한 연소이론에로의 전이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쿤의 주장은 과학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이해나 과학의 발전에 관한 역사적 해석 모두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먼저 과학의 본성을 살펴보면, 쿤 이전의 논리실증주의에서 정립된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과학은 엄격한 수리 논리적인 기반 위에 형성된 실증적으로 검증 가능한 지식이다. 즉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경험과 엄격한 논리에 의존할 뿐, 쿤이 생각하는 그러한 패러다임에 무관한 패러다임-초월적인 지식으로 받아들였다.
그 만큼 과학은 인간 혹은 과학자 사회의 집단적 사고에 좌우되지 않는 자연과의 순수한 대화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쿤의 주장처럼 과학활동 전반이 패러다임에 의존한다면, 직접적인 경험·관찰에서부터 추상적인 이론적 사고에 이르기까지 패러다임에 종속된 암묵적인 사고와 판단의 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과학은 더 이상 객관적·절대적이기보다는 상호주관적·상대적인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연속과 불연속의 조화로운 반복
한편 과학의 발전과 관련해서, 전통적인 견해는 과학지식이 연속적이고 축적적인 방식으로 발전하며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계속 수렴해 간다고 본다. 그러나 쿤은 연속적인 축적에 의한 단선적인 발전 개념 대신, 불연속적이고 비축적적인 발전 개념을 주장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안정된 패러다임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의 발전은 정상과학의 발전으로서 연속적이고 축적적으로 이루어지지만, 패러다임이 대체되는 과학혁명의 시기에 과학의 발전은 불연속적이고 비축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과학사를 연속과 불연속의 조화로운 반복 혹은 축적과 비축적의 조화로운 반복으로 보는 것이다.
쿤의 새로운 관점이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이래로, 이에 동조하는 많은 주장들이 과학사·과학철학·과학사회학 학계에 널리 형성되었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매우 광범위하고 심도 있게 이루어졌다. 아직도 논쟁적인 그 비판의 요점들을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과학이 전적으로 패러다임에 의존적이고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과 공약적인 부분이 없을 정도로 상호 이질적이라면, 과학의 객관성 또는 과학의 보편성(한마디로 과학의 합리성)이 과연 주장될 수 있는가?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이과정이 종교적 개종처럼 지극히 우연적이라면, 하나의 과학이론이 새로운 과학이론으로 대체되는 과정 역시 어떤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에 의거하지 않고 어떤 상대적인 요인들에 의해 임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등등
흔히 합리주의 대 상대주의 논쟁으로 일컬어지는 과학철학에서의 이 논쟁은 쿤의 주장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에서 촉발되었지만, 쿤의 입장이 진정 무엇인가와 별도로 근대 과학의 본질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바로 이점이 20세기 과학철학의 흐름에서 쿤을 주목받는 과학철학자로 보게 하고, 그의 과학철학을 하나의 큰 전환점으로 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7.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
비트겐슈타인 [Wittgenstein, Ludwig Josef Johann, 1889.4.26~1951.4.29]
오스트리아 출생의 영국 철학자.
국적 영국
활동분야 철학
출생지 오스트리아 빈
주요저서 《논리철학론》 《철학적 탐구》(1953)
오스트리아 빈 출생. 1920년대에는 오스트리아학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무렵의 사상은 논리적 원자론(原子論)에 속하는 것이었으며, B.러셀과의 상호 영향에 따라 형성된 것이었다. 그후 점차 인공언어(人工言語)에 의한 철학적 분석방법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으며, 1939년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일상언어(日常言語) 분석에서 철학의 의의를 발견하게 되었다.
생존 중에 출판된 저작은 1921년에 간행된 《논리철학론(論理哲學論)》뿐이지만, 구두논의(口頭論議)로 영국의 분석 철학계(分析哲學界)에 끼친 영향이 크다. 최근에 《철학적 탐구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1953) 등 많은 유고(遺稿)가 출판되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하라. - 해설 : 김선희(서강대 강사)
비트겐슈타인은 금세기 철학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와 영향력을 갖는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철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그를 영미 철학계의 최대의 철학자로 간주해 왔으며, 이제 그 사상적 영향력은 영미권을 넘어 세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1881년 빈에서 태어나 1951년 캠브리지에서 사망했다. 그의 철학 작업은 전후기를 거쳐 두 권의 책에 집약되어 있다. 하나는 1920년대의 <논리철학 논고 (이하, <논고>) Tractatus>로서 전기 사상을 대표하고, 다른 하나는 1953년 사후에 발간된 <철학적 탐구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이하, <탐구>)>로서 그의 후기 사상을 대표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을 오늘날 가장 독창적이며 설득력 있는 철학자로 만든 것은 <탐구>에 담겨있는 사상이라고 여겨지므로, 여기서는 이 책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을 조명하기로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작업이 단순히 철학의 연속적 발전에 기여했다기 보다는 전혀 새로운 주제와 시각을 도입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단지 철학하는 방법에 머무르지 않고 철학의 전통적인 물음의 성격마저도 바꾸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기 사상과 후기 사상의 차이를 반영해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전기 사상을 대표하는 <논고>에서 제기되었던 철학적 문제가 <탐구>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물음으로 전환되어 제기된다는 것을 주목할 수 있다. <논고>의 주된 문제는 '언어란 어떻게 가능한가?' 즉 '언어가 세계에 대하여 진술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하는 문제였으며, 전기의 주된 작업은 이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체계적인 답변을 제시하는 언어이론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언어가 유일한 본질적 기능을 갖는다는 것과 그 기능이란 사실을 묘사하거나 그림 그리는 것이라는 가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반면에 <탐구>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에 대한 본질을 추구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는 동시에 언어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여기서의 주된 작업은 언어 의미의 본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관찰하는 일이다. 이제 <탐구>의 중심문제는 다음과 같이 바뀐다. 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 이 단어를 어떻게 배우는가? 그들이 이 단어를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런데 우리가 그들에게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그 단어의 용법을 가르치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즉 언어에 있어서 한 단어의 의미는 그것의 용법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단어의 의미는 그것의 용법이라고 말할 때, 그는 단어들이 가지는 기능의 다양성을 강조한다. 언어란 특정한 본질적 기능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도구나 게임과 비교하여 설명한다.
언어의 단어들의 기능은 망치, 뺀치, 톱, 자, 아교, 나사, 못 등의 도구들의 기능만큼이나 다양하다. 또한 우리가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들(장기 게임, 카드 게임, 구기 게임, 가위바위보 게임, 올림픽 게임 등등)을 주목해 볼 때, 그것들이 모두 갖고 있는 어떤 공통점이란 없으며 그것들 사이에 단지 유사성이나 연관성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수많은 게임들 간에 비슷한 점들이 부분적으로 중복되고 교차되는 복잡한 관련성만을 보게 된다. 이런 비슷한 점들을 비트겐슈타인은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로 표현하였다. 가족 구성원들의 유사성은 똑같이 어떤 점이 닮았다기 보다는 구성원들 상호간에 어떤 점들을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언어를 구성하는 다양하고 잡다한 관행들에 공통적인 본질은 없다. 언어는 많은 관행들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복합적 관행이다. 이 모든 것에서 공통된 성질을 발견할 수 없으며 서로 비슷한 점들이 중복되고 교차되는 연관성을 갖고 있을 뿐이다. 즉 언어게임은 한 가족을 형성한다. 모든 언어들은 가족 유사적이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를 게임과 비유할 때, 언어의 공동체적 특성 혹은 사회적 성격을 강조한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언어는 규칙을 따르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언어란 단어나 문장들의 다양한 용법을 규제하는 규칙들에 의해서 정의되는 일련의 활동 혹은 관행이다. 규칙을 따르는 사회 공동체가 있기에 가능하다. 규칙을 따르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 관행이다. 따라서 하나의 규칙을 사적으로 따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경우 규칙을 따랐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규칙을 따르는 것과 같은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 경우 규칙 따르기란 무의미해진다. 규칙은 공적인 것이며, 규칙에 의해 규정된 관행이 성립하려면 어떻게 관행이나 규칙을 따르는지를 배우는 공적인 방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규칙들을 어떻게 따를지 배우는 것은 하나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언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한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의 기술을 습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한 단어를 이해하는 것은 그 언어 공동체에서 그 단어가 사용되는 규칙을 파악하고 습득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비트겐슈타인이 <탐구>의 대부분을 언어에 관해 말하고 있을지라도, 그의 지속적인 관심은 무엇보다도 '철학의 본성'에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철학은 이론 구성이 아니라 하나의 활동이다. 철학의 목적은 여태껏 많은 철학자들이 추구해온 것처럼 어떤 문제를 설명하거나 일반화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언어철학적 관심이나 목적은 치유활동에 있다. 즉 철학의 소임은, 어떤 상황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 게임의 규칙을 명백히 드러내 주고 나아가 언어가 실제로 다양하게 사용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잘못된 유추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고통(고통을 느낀다.)'이나 '안다'라는 말의 사용방식을 올바로 관찰하고 다른 언어게임과 혼용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는가'하는 타인의 마음 문제 및 회의주의 문제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이 때 전통적인 회의주의 문제는 더 이상 제기되지 않으며 그리하여 비로소 우리는 철학적 질병과 곤경으로부터 치유된다.
언어와 철학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 철학의 성격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철학하는 방법 혹은 활동에서 언어가 갖는 비중을 잘 부각시켜 주었다. 철학사의 맥락에서 현대의 핵심적 특성을 '언어적 전회'로 규정할 만큼, 오늘날처럼 언어와 기호의 역할이 강조된 적이 없었으며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철학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이러한 언어적 전회의 기점에는 비트겐슈타인이 우뚝 서 있으며, 그는 올바른 언어 이해를 통하여 철학적 곤경을 치유하거나 철학적 문제에 새로운 조명을 줄 수 있다는 현대적 사고의 전환을 가져 온 대표적인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참조 용어
■ 지식사회학(知識社會學 sociology of knowledge)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의 관계. 사회 생활에서의 이데올로기의 역할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의 견해에 대응하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적 이론, 지식 사회학은 또 부르주아 경험 사회학 및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의 진출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창시자이자 주요 대표자로는 칼 만하임(Karl Mannheim)이 있으며 선구자로는 막스 셀러(Max Scheler)와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이 있다.
■ 과학론(科學論 theory of science)
사회 경제적으로 결정되는 특수한 종류의 사회적 활동인 과학에 관한 사회 과학적 이론으로서, 과학적 인식의 생산과 재생산 및 전달과 적용에 주목한다. 과학론의 문제들에 대한 연구, 특히 과학적 인식과 방법의 구조, 발전에 관한 연구의 초보 형태는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과학론의 각 분야별 문제에 대한 진전된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베이컨,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달랑베르, 디드로, 칸트, 피히테, 헤겔, 볼치아노와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서이다. 이들은 대체로 과학을 과학적 인식의 체계로 이해하였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과학론은 인식론 및 방법론과 밀접히 연결된다.
현대철학의 유파들 중에서 과학론의 문제에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신실증주의'학파이다. 이들은 과학론을 과학 언어의 논리적 구조 분석을 과제로 삼는 이론, 즉 과학 논리로 완전히 환원시켰다. 과학론은 세가지 요소에 대해 연구한다. 첫째, 과학의 과정, 둘째, 과학적 작업 과정의 제반 물질적 관념적 전제인 과학적 잠재력. 셋째, 과학 활동의 산물인 과학적 인식의 체계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과학발전 전체에 걸친 수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과학론이 다루는 그러한 문제로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과학의 발전 법칙, 과학발전의 추동력, 구체적인 역사적 사회 조직에서의 과학의 위치와 기능, 과학 기술과 생산의 관계, 일반적으로 말해서 역사와 현대 속에서의 과학과 사회의 관계, 과학 기술혁명과 사회 진보와의 관계. 사회주의·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에 있어서 과학의 역할, 그리고 두 사회 체제 사이에 평화적 공존이 관철될 때의 과학의 역할 등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8.콰인의 <논리적 관점에서>
콰인 [Quine, Willard Van Orman, 1908.6.25~2000.12.25]
미국의 논리학자·철학자.
활동분야 철학, 논리학
주요저서 《논리학체계》(1934) 《수학적 논리학》(1940) 《말과 대상》(1960)
1908년 6월 25일 오하이오주 애크런에서 출생하였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다년간 동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논리주의(論理主義)의 입장에서 집합론(集合論)의 두 공리계(公理系:NF;ML)를 제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논리학의 성과를 철학에 응용하는 데 주력했으며, 한편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 분석철학계(分析哲學界)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고수하였다. 주요 저서로 《논리학체계 A System of Logic》(1934) 《수학적 논리학 Mathematical Logic》(1940) 《말과 대상 Word and Object》(1960) 등이 있다.
실용주의의 현대적 부활에 기여 - 해설 : 김선희 (서강대 강사)
현재 생존하는 영미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람을 들라면 그 후보로 콰인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햄프셔(S. Hampshire)는 콰인을 가리켜 현존하는 가장 탁월하고 체계적인 철학자라고 평한 바 있다. 콰인은 1908년에 태어났으며 현재 하버드 대학에서 아직도 활발한 철학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논문과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그 중 잘 알려진 것으로는 <논리적 관점에서 From a Logical Point of View(1953)>와 <말과 대상 Word and Object(1960)>이 대표적이다. 여기서는 그의 철학의 핵심을 잘 보여주는 전자의 책을 중심으로하여 그의 사상을 조명하기로 한다.
<논리적 관점에서>는 대부분 1940년에서 1950년대에 발표되었던 아홉편의 논문을 엮은 책이다.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은 존재하는 것, 경험주의, 의미의 문제, 동일성, 논리학, 보편자, 지칭과 양성 등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저자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이 책 전반을 통하여 흐르고 있는 중심 주제는 다음의 두가지이다.
하나의 의미의 문제로서 분석적 진술의 개념과 관련되어 있으며, 다른 하나는 존재론적 개입의 개념으로 보편자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논문들은 서로 유기적 연관성을 갖고 있으니 이 두 주제를 잘 드러내는 논문은 "존재하는 것에 관하여"와 "경험주의의 두 도그마" 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후자는 그가 전통적 경험론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험론을 정립해 나가는 단초가 된다. 그러면 이 두 논문을 통하여 콰인의 사상을 이해하고 현대사상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를 살펴보자.
"존재하는 것에 관하여"에서, 무엇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전통적 논의 방식은 서로 다른 존재론적 견해를 가진 자들의 입장을 규정하기도 전에 난관에 부딪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A는 요정이 있다고 주장하고 B는 요정이 없다고 주장할 때, 요정이 없다는 B의 말이 의미있으려면 그것이 언급하고 있는 요정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역설이 발생해 두 사람 사이에 무엇이 있고 없는지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혼란이나 난관을 벗어나기 위해 콰인은 의미론적 차원에서 논쟁의 공통근거를 마련해야 할 필요를 역설한다.
그 결과 어떤 주어진 견해가 무엇이 있다고 '말하는지'를 알기 위해서 콰인이 제안하는 정식은 "존재하는 것은 변항의 값이다"라는 명제로 요약된다. 이 말의 요지는, 존재하는 것은 한 이론체계가 상정하는 것들이며 이론체계를 떠나서 독립적으로 무엇이 존재하는지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이론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을 결정하며, 서로 다른 이론은 서로 다른 종류의 사물을 상정할 수 있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이론체계에 상대적인 것이 된다.
자연과학이 상정하는 존재들과 신화나 종교가 상정하는 존재들은 각기 다르며 그 존재들은 각각의 체계 안에서 존재한다. 그러면 경쟁적인 존재론들을 어떻게 판정하거나 평가해야 하는가? 즉 우리는 어떤 존재론을 선택해야 하는가? 콰인의 답변은, 과학이 어떤 이론보다도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며 우리에게 낯익은 이론이라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기준에 의해 우리는 과학이 상정하는 존재론을 받아들일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존재론적 상대성은 과학적 체계의 우위성을 통하여 약화된다. 비록 과학이 상정하는 존재들과 과학적 지식체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과학은 현재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가장 나은 최선의 정보라는 것이다. 콰인에게 있어서, 과학은 철학을 인도하며 두 영역은 엄격히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연속체이다.
"경험주의의 두 도그마"에서 콰인은 경험주의가 갖는 다음의 두가지 독단을 비판하는데, 하나는 분석적 진리와 종합적 진리-즉 의미에 근거하는 진리와 사실에 근거하는 진리-사이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믿음이며, 다른 하나는 환원주의이다. 분석적 진리는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이다'와 같이 사실의 문제와 상관없이 '총각'의 의미에 의해서 참이 되는 명제이며, 종합적 진리는 '지구는 둥글다'와 같이 사실에 근거하여 참이나 거짓이 되는 명제이다. 그런데 분석-종합의 구분은 '분석성'이라는 개념이 명확히 이해되고 해명될 수 있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콰인은 분석성을 해명하기 위해 도입되는 대안적 개념들, 즉 '의미'라든지, '정의','동의어' 등의 개념들은 분석성의 개념만큼이나 모호하고 순환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경험주의자들은 한 진술의 진리가 언어적 요소와 사실적 구성요소로 분석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어떤 진술은 사실적 구성요소가 전혀 없는 분석적 진술이라고 보지만, 콰인은 분석적 진술과 종합적 진술 간의 경계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며 그것들은 전체 그물체계 안에서 상호 연관성을 갖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세계에 대한 이론을 형성하는 문장들은 체계적인 구조를 이루며 각 문장들은 전체 체계와 관련해서만 평가될 수 있다는 총체론(holism)의 입장을 취한다. 또한 경험주의의 두 번째 도그마인 환원주의는 분석적 진리와 종합적 진리를 구분하는 독단과 동일한 근원을 갖는다. 콰인에 의하면 환원주의 역시 문장의 언어적 요소와 사실적 요소의 구분에 의거함으로써 진술들이 제각기 고립되어서 확증될 수 있다는 가정에 근거하는데, 외부세계에 대한 우리의 진술은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총체적으로만 평가될 수 있다. 경험적 의미의 단위는 체계 전체이다.
이상과 같이 존재론적 개입의 문제나 원자적 경험주의 비판에 대한 콰인의 논의를 볼 때, 형이상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명백한 경계선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그 구분은 더 이상 질적인 차이가 아니며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언어와 사실, 분석성과 종합성 등의 각종 이분법이 사라진다. 그리하여 어떤 진술도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확실하거나 수정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과거에 경험주의가 믿었던 확실한 진술들은 총체적 체계 안에서 상대적인 확실성의 정도를 가질 뿐이다. 콰인은 이것이 독단없는 새로운 경험주의라고 보았다. 이제 보다 나은 이론을 선택하는 문제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유용성, 경제적 효율성 등의 실용적 기준이다.
콰인은 분석-종합의 구분과 경계를 거부함으로써 (실용적 기준의 적용을 분석-종합의 경계선에서 멈추지 않고) 보다 철저하게 실용주의를 따른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하여 콰인은 현대 사상에서 과학주의 및 자연주의 철학의 진영을 형성하는 한편, 그것을 절대화하거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실용주의 정신에 입각한 철학을 전개해 나간다. 그 결과 콰인은 경험주의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시켰으며 오늘날 철학 사상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 실용주의의 현대적 부활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9.롤스의 <정의론>
롤스 [Rawls, John, 1921~2002.11.24]
미국의 철학자.
활동분야 철학
출생지 볼티모어
주요저서 《정의론(正義論)》(1971), 〈공정으로서의 정의〉(1958)
1921년 볼티모어에서 출생하여 프린스턴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2년 하버드대학교 교수로 취임하였으며, 저서 《정의론(正義論)》(1971)에서 공리주의(功利主義)를 대신할 실질적인 사회정의 원리를 ‘공정(公正)으로서의 정의론’으로 체계 있게 전개하여 규범적 정의론의 복권(復權)을 가져왔다. 평등한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는 권리의 우선이 강조되었으며, 가장 불리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정당화된다는 ‘격차원리(隔差原理)’가 제창된 데 이 정의원리의 내용적 특징이 있다.
‘원초상태(原初狀態)’라는 가설적 상황에서 자유·평등한 도덕적 인격자들이 전원일치로 합의한다는 데서 이러한 정의원리가 도출·정당화된다는 사회계약설적 구성이 채택되었으며, 이와 같은 방법론은 자율성과 정언명법(定言命法)에 관한 I.칸트의 사고방식을 절차적으로 해석한 ‘칸트적 구성주의’라고 불린다.
자유와 평등의 조화에서 찾은 정의 사회체제 기준 - 해설 : 주동률 (한림대학교 철학과 교수)
<정의론>에서 롤스가 도달한 입장의 내용을 알아보기 전에 그의 작업이 지닌 윤리학사적인 의의부터 살펴보자.
첫째로 윤리학의 탐구 벙법론의 측면에서 그의 작업은 20세기 전반부에 맹위를 떨친 언어분석인 논리적 실증주의의 윤리학을 탈피하여 보다 실질적이고 규범적인 윤리학적 논의의 가능성과 주제를 제시했다는 의의를 가진다. 논리적 실증주의의 윤리학적인 표명인 이모티비즘에 의하면 철학적 윤리학은 단지 윤리적 용어들의 의미와 판단의 논리적 분석에 국한되어야 한다. 이에 반해서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 체제의 기준들을 제시하는데 있어서도 철학자들이 나름의 합리적 논의를 통해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둘째로 롤스에 의하면 <정의론>당시까지 체계적인 사회이론은 공리주의가 그 주도적 형태이었지만, 그는 당대의 공리주의가 지닌 이론적 취약점들을 제시하면서 그것을 대체할 만한 (유일한)체계적 대안으로 자신의 정의론을 내세운다. 그의 입장은 로크와 루소, 그리고 칸트의 사회계약론적인 전통을 이어 받으면서, 그 전통을 보다 높은 추상의 단계로부터 구성하고 현대의 최선의 사회과학적 방법론들과 접목시킨 형태를 취한다.
공리주의의 대안으로 내세운 '정의론'
마지막으로 비록 롤스가, 60∼70년대를 살면서 그 격동적인 이념적 갈등의 시대를 자신들의 학문의 대주제와 안내자로 삼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던 유럽과 미국의 좌파 학자들과는 달리, 비교적 강단 윤리학의 논의에 국한된 저작으로 일관하였지만 <정의론>의 전반적 기조는 당대의 이념적인 현실에 대한 최선의 이론적인 대응을 시도하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민권운동과 반전 학생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들의 기본적 자유가 우선적으로 보호되면서도 합리적 개인들의 삶의 추구에서 갈등을 최소화하는 정의롭고도 안정적인 사회제도의 구조를 제공하려는 그의 노력은 자유주의가 처한 당대의 문제들에 대한 가장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내부적 대안 제시라고 평가된다. 특히 시민 불복종에 대한 그의 균형 잡힌 논의에서 이러한 점이 잘 나타나고 있다. 사회계약론적인 전통에 선 롤스로서 정의로운 사회 체제의 구조에 대한 논의는 자유롭고 평등하며 합리적인 개인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원리들의 탐구로부터 비롯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 자유의 우선성 강조
그 논의의 출발점으로 롤스가 제시하는 것은 기본적 정의의 원리들을 선택하는 개인들로 구성된 가상의 상황-'원초적 상황'(the original position)-이다. 이 상황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목전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들도 아니며, 무한히 이타적인 자들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장기적인 삶의 계획을 수립하고 합리적으로 변경할 수 있으며 그 계획의 실행을 위해 필요한 것을 궁구할 수 있는 타산적인 개인들이면서, 남들의 이익에는 무관심하지만 서로가 동의한 원리들을 이해하고 준수할만한 정의감을 소유한 개인들이다.
정의의 원리들이 선택되는 이 상황에서 또한 개인들은 자신들이 (현실에서) 가진 사회적 지위와 계급, 자연적 재능과 특정 삶의 목표들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무지의 베일'(the veil of ignorance)이 필요한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만이 특정 개인들이 가진(자신들이 스스로 벌지 않은)혜택과 (주관적으로 자신들만이 가진)기호에 의해 부당하게 기울어진 원리들이 배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들이 선택할 정의의 두 원리들로서 롤스가 제시한 것은 다음과 같다.
제 1 원리: 각 개인은 다른 모든 개인들에게 유사한 자유의 체계가 소유되는 것과 양립 가능한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동등한 기본적 자유들의 전체적 체계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제 2 원리: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불평등은, 그것이 최소 수혜자들에게 최대한의 혜택이 되고 직위와 직책들에 대한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한에서 허용될 수 있다.
이 두 원리들 중에서 기본적 자유들의 최대한의 평등을 규정하는 첫째 원리는 기타 사회적, 경제적 부와 힘의 불평등의 요건을 규정하는 둘째 원리-'차등의 원리'(the difference principle)보다 순차적으로 우선한다. 즉 기본적 자유들은 단지 경제적 부 혹은 효율성을 위해 희생되거나 축소될 수 없다.
이렇게 개인적 자유의 우선성이 강조되는 한편, (재능과 출신에 따른)우연적 혜택에 의한 이득의 산출이 모든 이들에게 보탬이 될 경우에만 허용된다는 점에서 롤스는 자신의 입장이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적인 요소들의 조화로운 결합을 성취한다고 본다. <정의론>에서 롤스는 윤리학의 모든 범주들의 도출과 근거를 논의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기본적 사회구조의 정의로움을 판단하는 기준을 논의한다. 더 나아가서 그는 모든 시대와 경제적 단계에서의 사회들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그는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고 민주주의의 전제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비교적 잘 정돈된 사회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한 사회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합리적 개인들이 상호 혜택을 위해 합의하고 제도적으로 적용할 원리들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논쟁유발
이러한 논의 주제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제한으로 인하여 정의론은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우선 그 방법론과 전제의 측면에서 두터운 무지의 베일이 드리워진 원초적 상황이 사회 정의의 원리들이 선택될 상황으로서 합당한가, 또(조금 변형된 상황에서라면)롤스의 원리들과는 다른 (예를 들면 공리주의적인)원리들이 도출될 가능성은 없는가라는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또한 롤스가 상정한 개인들이 남들과 유리된 채로 삶의 이상을 수립하는 자들이면서 개인적인 자유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개인들의 동일성과 삶의 이상의 형성을 인도하고 구속하는 공동체적 제약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에 의하여 소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의 논쟁이 유발되었다.
롤스의 정의의 원리들 자체의 문제들로서는 그것들이 자유주의의 근간이 기본적 자유와 권리들, 특히 소유권에 대한 침해를 포함한다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로부터의 비판과, 이와는 반대 방향에서 롤스가 상정한 사회가 계급들간의 갈등과 지배 구조를 무시한 비역사적, 비정치적 현실 인식에 의해 왜곡된 것이며, 차등의 원리가 허용하는 경제적 불평등의 기본적 자유의 불평등을 야기할 현실적 가능성과 최소 수혜자들에 대한 혜택을 위해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어야 하는 현실적 상황의 변혁 가능성이 간과되었다는 좌파로부터의 비판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정의론에서의 원리들이 과연 광범위한 이념들의 차이를 포함하고 있는 현실적 민주주의의 상황에서 안정적인 사회의 구현을 가능케 할 것인가도 비판의 초점이다. 롤스는 최근의 저작에서 이 마지막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다수의 상이한, 하지만 (다른 관점을 용인할 정도로) 합리적인 삶의 이상들, 종교적, 도덕적 체계들의 관점에서 (비록 각각 상이한 이유들 때문일지라도)모두 동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를 유도할 수 있는 원리들이 가능하며, 이 원리들은 단지 민주적인 정치적 문화의 기초적 직관들을 수용할 뿐 특정의 포괄적 도덕 이론을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덕 이론적 내용에 의존하지 않은)단지 정치적인 정의의 이념임을 역설하고 있다.
10.푸코의 <감시와 처벌-감옥의 탄생>
푸코 [Foucault, Michel Paul, 1926.10.15~1984.6.25]
프랑스의 철학자.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철학
주요저서 《광기와 비이성(非理性)》(1961) 《앎[知]의 고고학》(1969)
구조주의의 대표자로 파리대학교 반센 분교 철학교수를 거쳐 1970년 이래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지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정신의학에 흥미를 가지고 그 이론과 임상(臨床)을 연구하는 한편, 정신의학의 역사를 연구 《광기(狂氣)와 비이성(非理性)―고전시대에서의 광기의 역사》(1961)와 《임상의학의 탄생》(1963) 등을 저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각 시대의 앎[知]의 기저에는 무의식적 문화의 체계가 있다는 사상에 도달하였다.
거기에 바탕을 두고 《언어와 사물》(1966)과 《앎[知]의 고고학(考古學)》(1969)에서 무의식적인 심적 구조(心的構造)와 사회구조, 그리고 언어구조가 일체를 결정하며, 주체로서의 인간이라든가, 자아라고 하는 관념은 허망이라고 하는 반인간주의적(反人間主義的) 사상을 전개하였는데, 이것이 구조주의 유행의 계기가 되었다. 그 밖에 《광기와 문화》(1962) 등의 저서가 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사망하였다.
근대 서구 주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해설 : 양운덕 (고려대 강사)
실존주의 사상가 사르트르가 인간이 자유이며, 인간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세계를 기획하고 상황에 참여하는 주체라고 보고 역사 발전을 위해 자신을 미래로 던져야 한다고 보는데 반해, 푸코는 그러한 자유, 주체, 역사 발전 등이 형이상학적 허구일 뿐이라고 공격한다. 그는 주체가 세계를 만든다고 보지 않고 거꾸로 세계에 의해 주체가 만들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푸코는 사회적 '타자(정신병자, 환자, 죽음, 비행자, 성 등)'를 대상으로 삼아서 정상인들의 '자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분석한다. 그는 기존의 모든 자명함을 거부하고 '다르게 생각함'을 내세운다. 그는 기존 사유의 틀에 안이하게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그 경계를 문제삼으면서 기존의 지식과 권력이 감추고 있고, 정상인들에게 익숙해져서 편하게까지 느껴지는 사고, 행위의 틀을 깨뜨리려고 한다.
푸코는 새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서구의 근대 주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칸트는 자신의 비판철학의 과제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이런 문제를 세 영역으로 나누어, '나(인간)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를 묻는다. 푸코는 이와 달리 '서구적 주체는 어떻게 (지식, 권력, 윤리의)주체로 만들어지는가?'라고 질문한다. 그는 초역사적인 인간 본질 대신에 역사적 특정 단계에서 특정한 형식으로 구성되는 주체를 문제삼는다.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개인은 어떻게 앎의 주체가 되는가? 둘째, 개인은 어떻게 권력을 행하기도 하고 그것에 복종하기도 하는 주체가 되는가? 셋째, 개인은 어떻게 도덕적 주체가 되는가? 이것은 서구적 주체가 지식, 권력, 윤리적 실천에 의해 어떻게 주체로 되면서 동시에 예속화되는지를 밝히는 작업이다.
<감시와 처벌>은 형벌제도를 계보학적으로 기술한다. 푸코는 각 시대의 처벌을 개선, 진보/퇴보란 관점에서 보지 않고, 각 방식이 나름대로 효과적으로 개인을 처벌, 통제, 관리하려는 것으로 본다. 푸코는 18세기 후반에 감옥제도가 일반화되면서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규율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근대적 신체를 만드는 규율의 기술들
푸코는 다양한 영역들-작업장, 군대, 감옥, 병원, 학교 등-에서 규율이 개체들을 통제하고, 훈련시키며, 조직한다고 본다. 그는 규율의 테크놀로지가 개인의 신체에 작용한다고 보고, 그 작용방식과 절차에 주목한다. 이런 권력은 신체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특정한 목적에 맞도록 만들어 낸다. 이때 개체의 신체는 경제적으로는 노동력을 지닌 유용한 대상이자, 정치적으로는 복종할 수 있도록 훈련받는다.
푸코는 고전주의 시기(17∼18세기)의 다양한 담론들을 추적하여 규율적 기술들이 신체를 세부적으로 장악하는 새로운 '미시 물리학'을 통해 17세기부터 사회전반에 확산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런 규율의 작동 과정이 인간의 신체를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 삼아 미시적 기술들을 통해 근대인간을 만든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푸코의 분석틀은 '신체-길들이기'란 절차에 의해 제조된 인간-산물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적 일상 세계는 이런 주체-산물을 산출하는 공장과 같다. 이 공장은 유용한 지식을 갖춘 학생을 생산하는 학교, 환자를 건강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병원, 일정한 개인들을 전투력을 갖춘 군인으로 만드는 군대 등을 가리킨다.
그러면 규율이 신체를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전략은 어떤 것인가? 첫째, 규율은 공간과 시간을 분할하고 재배열하여 개인들의 신체를 가장 효과적으로 분할된 공간, 잘 조절된 시간 안에 배치한다. 둘째, 규율은 시간을 정교화하여 행위가 정교하게 구성된 프로그램에 따라 전개되도록 한다. 셋째, 규율은 신체를 단계적으로 형성하는 절차를 마련하여, 이런 단계에서 한 계단씩 올라가는 개인은 능력을 축적하고 발전, 진보한다. 넷째, 규율은 각 신체의 힘들을 한 요소, 톱니바퀴로 삼아서 다른 신체의 힘들과 조합(composition)하여 효과를 극대화한다. 신체들은 그 조합에서 위치, 간격, 위치 이동의 질서정연함, 질서 등에 따라 유기적으로 배치된다. 이렇게 보면, 규율 장치는 근대적 지식과 실천의 복합체로서, 근대적 주체를 일정하게 재단하고 조립하고 조직화하는 복합적인 그물망이다.
또한 푸코는 신체를 훈련시키는 장치들-'위계질서적 감시', '규격화하는 제재', 이것들을 결합한 '검사(l'examen)'-에 주목한다. 이와 관련하여 <감시와 처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전면감시장치(le panoptisme)를 살펴보자. 푸코는 영국 철학자 벤덤에 의해 1791년 제안된 유폐장치인 원형감옥(pan-opticom)에 주목한다. 이 감옥 내부에는 높은 중앙탑이 있고, 그 주변에는 원형으로 배치된 독방들이 있다. 중앙탑에서는 독방들을 지속적이고 전면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각각의 독방에 있는 개체(죄수)는 완벽하게 보이지만 죄수 자신이 감시하는 간수를 보지 못한다. 이것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권력, 어떠한 그늘도 남기지 않는 권력의 시선을 구체화한 것이다.
푸코는 이런 감시체계에서 그 목적과 의미보다는 기능적 측면을 살핀다. 이 장치는 '자동적'으로 기능한다. 감시 당하는 자는 감시탑에 '감시자가 없는'경우에도 그 시선이 항상 자기를 보고 있다고 여긴다. 개체들은 자기 안에 권력의 감시하는 '눈'을 갖고, 스스로를 관찰하고 감시한다. 이런 장치는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다. 그것은 죄수를 교화하고, 병자를 간호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광인을 가두고, 노동자를 감시하거나 태만한 자들을 일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전면 감시 장치 - 주체에 대한 지배
푸코는 전면감시장치가 권력을 자동적이고, 비주체적으로 만드는 점에 주목한다. 원리적으로 누구라도 이 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으며, 그 효과가 개별적 주체의 선택이나 결정과 무관한다. 또한 이 장치를 작동시키는 의도나 동기도 그 기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 의도가 경솔한 호기심이나 장난이건, 인간을 탐구하는 철학자의 지적 호기심이건, 몰래 살피는 데서 오는 기쁨이건 이 장치의 효과는 동일하다. 그런데 전면감시장치는 사회 전체의 역량을 강화시킨다. 이것은 "생산을 증대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키며, 교육기회를 넓히고, 공중도덕의 수준을 높이는 것으로 증가와 다양함"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효용성의 증대가 역설적으로 주체에 대한 지배를 산출할 수 있다.
우리가 미래전자사회의 통합카드를 소지하는 경우에, 우리는 자기의 모든 행위를 스스로 기록하여 그 정보를 이용할 누군가를 위해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 수 있다. 내가 어떤 구두를 샀는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빌렸는지, 누구와 어디에서 커피를 마시고, 휴일에는 어떤 놀이터에서 얼마의 돈을 썼는지를 기록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이는 끔찍한 세계, 모든 신비가 제거된(entmystifiziert)세계, 합리화된 세계이다. 그러면 이런 장치가 일반화된 사회에서 과연 이성의 빛을 피할 수 있을까? 이 장치는 가장 합리적으로 사회를 관리하고 효율성을 증대시킨다. 전면감시장치와 그 이용자는 나쁜 의도를 지닌 것도 아니고 나쁜 목표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효율성을 가로막을 가능성이나 명분이 있는가? 전자주민카드가 효율적인데 왜 그것에 반대하는가? 과연 보다 훌륭한 의도나 목표를 내세우거나, 보다 더 적은 효율을 추구하는 '인간적' 주장을 하면서 이런 '비인간적' 장치의 작용을 저지할 수 있는가?
권력 분석으로 근대의 경계를 위반
푸코가 볼 때 근대적 주체는 근대적 고안물이다. 그는 이 근대적 산물이 어떤 지식, 과정, 절차, 기술 등을 통해 만들어지는가에 주목한다. 근대적 규율장치는 근대적 주체-만들기에 참여하는 기술자와 같다. 그 기술자는 참된 인간이나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라 다만 유용한 자동인형들, 또는 권력장치의 수행자(agent)를 생산할 뿐이다. 푸코는 근대 합리성의 진전이 주체들을 자유롭게 만들리라는 기대가 지나치게 낙관적임을 보여준다. 그는 어떠한 '완전한' 이성도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구체적 사건들에서 특정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 전략을 제시하는 작은 진리들에 주목하고, 구체적 자유를 마련할 공간을 고안하려고 한다. 그의 권력 분석은 근대의 경계를 위반하려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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