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14장 22-33절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을 가지고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한 장정만 해도 오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사람들을 배가 불러 만족할 만큼 먹었고 남은 것은 바구니에 담았는데 열두 바구니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무리를 집으로 돌려보내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재촉하시면서 자신도 뒤따라 갈 테니 먼저 가서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그렇게 서두르시는지 알 수 없었던 제자들은 에수님이 하라는 대로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 마을을 향해 출발했고 그 사이 예수님은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큰일을 행하신 후에 예수님이 하신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속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시고 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한 일을 자기가 했다고 생각하면 자기의 업적으로 내보이고 자랑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내가 이만큼 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명하신 일이었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관계에서 모든 영광을 돌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산에 올라가셔서 홀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계실 때 배는 이미 육지를 수 리나 떠나서 갈릴리 바다 한 복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어두운 바다에 거센 바람이 불면서 제자들이 가려고 하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배에 탄 사람들은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밤 사경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것을 본 제자들은 좋아해야 했지만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실 능력이 있으실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겁을 하면서 유령이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유령이 자기들을 죽이기 위해 찾아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간혹 생명을 살리러 오신 예수님을 생명을 죽이러 오신 분으로 오해하는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에게 순종했는데 일이 극도로 어렵게 되었을 때 갖게 되는 마음들입니다. 그런 때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조차 복인지 저주인지 알아채기가 어렵습니다. 제자들 역시도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밤 사경에 찾아오신 예수님이 유령인지 주님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셨기 때문에 유령인줄 알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간단합니다. 27절 말씀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이때 베드로는 목소리로 예수님이신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주님이면 이 풍랑이는 물 위에서 살겠지만 만약 주님이 아니라면 자신은 물에 빠져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목소리가 틀림없었기에 베드로는 그런 부탁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선뜻 “오라”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배에서 물로 뛰어내려 예수님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굉장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향해 물 위로 걷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바람이 세차게 불자 베드로는 갑자기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어어? 이제는 죽었구나” 그와 동시에 베드로는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갑작스럽게 자기를 향해 일어나는 바닷물을 본 베드로는 지금까지 자신을 힘들게 했던 바닷물의 무서움보다 더 큰 무서움이 마음 속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베드로의 전신을 휘어감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바닷물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믿음이 극상승했던 사람이 믿음을 잃으면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베드로는 다급해서 소리쳤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베드로의 손을 잡으려고 물 위로 끌어 올리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을 하였느냐?” 믿음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이 작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베드로의 믿음은 다른 사람들보다 모험적이고 뛰어 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작은 믿음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을 하였느냐”하고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셨을 때 곧바로 풍랑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그쳤습니다. 그제서야 배에 탔던 많은 제자들과 뱃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큰 절을 하면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하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단순히 선지자인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권세의 영역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확신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사랑하시는 아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 권세를 예수님은 아무 때나 기분내키는 대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또 생명을 구원하시는 일과 연관지어서 사용하십니다. 제자들도 역시 이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자신들 안에 계신 성령님과 더불어 하늘의 권세를 사용할 때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대로, 그리고 자신들 안에서 행하시는 방식대로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의 구원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권세를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사용하기를 거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도 물위를 걸으신 표적도,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들이 모두 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구원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인 사람들의 구원, 그리고 나사로의 가정과 문상을 온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권세를 사용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서 이 사실을 배웠습니다. 베드로도 역시 물에 빠져 들어가는 가운데 구원받아서 표적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여러분 역시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후에 베드로는 사도중의 사도로써 많은 표적들을 행했고 사람들에게 성령을 받게 하였고, 또 죽은 자를 살리는 일에도 쓰임받았습니다. 그런 많은 일에 쓰임을 받으면서도 그는 그 표적들을 자신의 육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드러내는 증거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교회에는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교회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권세를 활용할 때 예수님이 권세를 사용하셨던 마음과 방식을 잘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표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랑을 드러내는데 사용되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써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만물위에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드러낼 수 있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여러분이 섬기시는 예수님이 얼마나 크게 느껴지십니까?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셔서 그 분의 크심과 더불어 겸손하심을 배우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예수님이 전지전능하신 여러분의 주인이심을 드러내시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던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고, 이로인하여 구원의 역사도 역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제석교회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