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이 도로 밤이 되는 것은 아닌지 싶을 정도로 시컴컴해져 가는 하늘이다 싶더니 드디어 우뢰소리와 함께 퍼 붓는 굵은 빗줄기.
그 후의 밤은 안개와 음습한 아카시아 향과 어우러진 밤꽃 내음과 약간의 옛생각이 범벅된,
아,
그러고 보니 까마득한 날 언젠가에 보고 맡았던 그 밤인 것 같다.
망각은 이렇듯 늘 부활을 꿈꾸는 이집트의 여왕들의 미이라 같은 것이다.
하여,
꽈리를 틀고 앉았다.
한시간 동안 시간 여행을 비롯한 잡종지까지 다 분할하여 골고루 섭렵하다 돌아 오니 도로 제자리.
어둠이란 눈을 뜨면 전체이지만,눈을 감으면 부분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지..
하지만 가느다랗게 실눈으로 뜬 틈 하나로 무명 옷감 찢어지듯 쫘악 찢어져 나가는 어둠은 차라리 날품팔이로 그날 그날 온 식구를 먹여 살리는 어느 소녀의 치마자락처럼 가엾다.
가부좌를 튼 지 한참,
얼음찜질 한 것처럼 거무티티하게 탱탱 얼어 붙은 발바닥은 손가락만 대도 동상 걸린 위에 바늘을 얹는 것 같아 찌르르하다.그러면서 문득,엊그제 시인이 전화로 안부고 뭐고 다 생략한 채 다짜고짜로 들이 밀던 길고 날카로운 문창(問槍)이 생각났다.
"무소의 뿔이 무슨 뜻이냐?"
선재동자처럼 묻던 시인의 덜컥 질문에 뭐라고 씨부렁 거리긴 한 것 같은데 뭐라고 했는지 잘 정리가 안되어 아무래도 문자로 챙겨 놔야 나중에(혹,내가 건망증이나 아니면 치매에 걸렸을 때)라도 안심이 될 것 같다.그 때에도 그것이 이것인지 알아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무소의 뿔」은 그 뒤에 항상 「..처럼 혼자서 가라」 와 동행 할 때에만 한 문장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두 가지로 나뉘어 진다.
하나는,「무소의 뿔」은 「토끼의 뿔」이란 말과 대비 된다.
토끼의 뿔은 허상과 언어를 짝 지어 말할 때 곧잘 비유되는 말이다,
토끼에게 뿔이란 애당초 없지만, 「토끼의 뿔」이란 말 자체는 아무런 장애 없이 존재 하는 것 처럼, 열반이란 애당초 없지만 열반이란 말이 있음으로 인하여 열반은 있는 것이다.열반이 있음으로 깨달음이 있고 깨달음이 있으므로 눈귀코입몸뜻이 있고,눈귀코입몸뜻이 있으므로 세계가 있고 세계가 있으므로 중생이 있고 중생이 있으므로 자비희사가 있고 자비희사가 있으므로 육바라밀이 있고 육바라밀이 있으므로 보살이 있고 보살이 있으므로 부처가 있다 .(뭔지 모르겠으면 흘려 버리심.이것을 붙잡고 이야기 하자면 한이 없다). 그는 결국 허상에 끌려가 사막 한가운데서 비스듬히 쓰러지면서 까지 ‘저기 오아시스가…’ 하고 끽하고 고꾸라진다.
둘은 , 그런데 「무소의 뿔」은 실상을 말한다.
그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있다고 보아지는 그대의 모든 견해는 다 이 「무소의 뿔」에 해당한다.
선과 악,천당과 지옥,신과 귀신,깨끗함과 더러움,태어남과 죽음,커피와 향,가려움과 끈적임,오르가즘과 불감증,빨강과 파랑,몸과 영혼, ,,, 이러한 모든 것들을 있다고 보는 사람은 다 이 「무소의 뿔」을 가진 사람이다.그는 이 뿔을 들이밀면서 온 들판을 향하여 오지게 행진한다. 거기에 넉넉히 하나 뿐인 자기 목숨을 건다.그는 결국 이 뿔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여 죽고 말 것이다. 이것은 실상의 독을 맞은 것을 말한다.
혼자가야 하는 무소의 뿔은 물론 이런 뜻이 아니다.
무소는 코뿔소를 말한다.늘 혼자 다니고,지독한 근시라고 한다.
바로 자기 코 끝 밖에 보지 못할 정도라니까 왜 안 그렇겠는가?
수행자를 빗대서 하는 말이다.
이러한 근시가 선과 악을 실상으로 볼 (수 있을)리가 없을 것이다.
무소의 뿔은 바로 수행자가 바로 자기 앞 코끝을 주시하면서 다른 것(선과 악,생과사,깨끗함과 더러움,이것과 저것 등등)은 쳐다보지도 않는 주의 깊은 적정함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수행은 혼자 가는 것이다. 가장 가까이 간다고 하는 도반조차도 여기에서 만큼은 철저한 타물(他物)일 뿐이다.
이른바 독각(獨覺:깨달음의 원형元形)이라하는 것이다.
그가 만일 코끝 쳐다보기를 멈추면 바로 동서남북(선악)의 들판이 보인다.보이면 그것을 좆아간다. 그는 아무리 혼자 간다 하여도 홀로 가는 무소가 아니다.왜냐하면 보이는 것과 보는 것 이 두 가지를 가지고 가니까.
혼자 가는 이는 보이는 것과 보는 것 이 두 가지를 겸하여 가지지 않는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홀로감이다.
홀홀단신 외로운 산중에 쳐 박혀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주렁주렁 달려 있는 처자식을 두고 떠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처자식 일가친척 하나 없는 천애고아라 할지라도 그를 두고 홀로 가는 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근시의 눈을 가지고 다만 코끝만을 바라보며 무서움 없이(코끝만 보는 사람이 무어 두려움이 있겠는가?) 사실은 오갈 데 다 오가면서 드넓은 들판을 횡행한다.
코끝 쳐다보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마음을 한가지에만 오롯하게 깨어있게 두는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일러 옛사람들은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 하는데,바로 이러한 까닭에 코뿔소는 뿔이 두 개가 아닌 하나를 내보이는 것이다.
다른 모든 동물들이 다 마음 하나에 생각은 둘을 가진다.
그래서 뿔이 두 개다.
마음은 항상 색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드러난 바 색(곱고 미움,단정하고 헤픔,깨끗하고 더러움 등등의 모습)은 항상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무엇이 둘인가?
암컷과 숫컷이 둘이요,
생과 사가 둘이요,
몸과 마음이 둘이요,
나와 남이 둘이요,
사랑과 미움이 둘이요,
이 세상과 저 세상이 둘이요,
업과 보가 둘이요,
세간과 줄세간이 둘이요,
번뇌와 열반이 둘이다.
그는 늘 이렇게 둘을 마음에 품으므로 두개의 뿔을 어쩌지 못한다.
하지만 무소를 보라!
하늘이 오로지 하나의 태양만을 품듯 오롯이 마음을 코끝 하나에만 걸고 있다는 증거로서의 무소의 뿔은 그대와 나를 얼마든지 고독 가운데 들어가게 하는 원천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하여,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한다. 남과 어우러져 지지 않으면 존재성에 심각한 우려할 만한 통제 할 수 없는 무질서가 예견되어진 명제이다.
그러나,
사실은 지독한 홀로 감에 대한 위안이 되어 주지는 못한다.
어우러짐은 어리석음이거나 아니면 깨달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런 「사회성」에 동조하지 않는다.(아직 깨닫지 못 함)
사회가 없으면 삶이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그 명제가 확실 하다면 왜 사회를 한꺼번에 말살시킬 대량살상무기개발에 그토록 많은 자본적 생산 노력을 국가마다(국가는 거대한 사회이다.)기울이는가?
명제는 구식 총포에서 발사된 구리탄환으로 빗나간 것이거나 아니면 서툰 토기공이 만든 조잡한 항아리 여서 깨어질 운명 같은 것이다.
사회에 기대지도 말고 둘이나 혹은 여럿에 의지하지도 말고 마침내는 어떠한가?
늙음과 병듦과 죽음은 나 혼자 나에게만 분명한 것이다.
두고 볼 일 이긴 하지만,이대로 간다면 그 드 넓은 벌판에 아무도 나를 벗하여 줄 수 없는 날이 올 것 이다. 그 때에 나는 무엇으로 나의 존재를 과시할 수 있다는 과묵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말이 오늘처럼 딱 들어 맞는 날이 없을 것이다.
모두들 잠자는 이 한 밤에 말이다.
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오늘도 좋은 인연 가득하시길... __()__
감사합니다.저도 요 며칠전부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의 진정한 뜻이 무엇일까 궁금해 했습니다.님 덕분에 좋은 공부하고 갑니다.근데 쫴끔 애렵네요.^^ 몇번 더 정독해야겠습니다.
잘보았습니다 한마음 관하고 관하여 어디에도 걸림없는 수행정진 열심히 하겠습니다.성불합시다 합장
감사합니다 열심히수행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