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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 | 황소 (1950년대, 부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상설전>,
<한국 근현대미술 I> 展의 3부를
포스팅합니다.
3부는 제6전시실의 마지막 섹션,
대향(大鄕) 이중섭(1916-1956) 작가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6월 26일부터는
<한국 근현대미술 II>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2층에서 시작됩니다.
2-3층의 전시를 모두 관람할 계획이라면,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듯합니다.
• 전시 포스터
■ 전시 서문
MMCA 과천 상설전 <한국 근현대미술 I>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20세기 전반에
제작된 작품 140여 점을 소개한다.
이 시기는 대한제국을 거쳐, 일제 강점기,
광복, 한국전쟁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시기에 걸쳐있다.
1800년대 후반부터 조선에는
일본과 청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서양의 문물,
특히 과학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청나라의 '중체서용(中體用)'처럼 조선에서도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기술을 접목시키자는
'동도서기(東道西器)' 사상이 개화파 지식인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이에 반해 외세의 침략 속에서
민족의 문화와 전통이 위협받는 것에 대한
경계심도 대두되었다.
지금까지 지켜온 전통과 새로운 문물,
정신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 사이에서 어디로
나아갈지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술과 사실적인 서양식 원근법
표현의 등장으로 인한 시각적 충격에 매혹되면서
동시에 당혹감을 느꼈고, 금녀의 영역이던
서화와 미술교육의 문이 열리면서 여성도
예술가의 꿈을 꾸게 되었다.
왕립으로 운영되던 미술교육기관인
도화서가 사라져 서화를 배우고 가르치기 위한
기관과 교재가 필요해졌다.
새로운 '미술'이라는 것을 배워왔으나
주변의 이해는 부족했으며, 어색하고 불편해
다시 동양화를 돌아보는 방황도 해야 했다.
<한국 근현대미술 ㅣ>은
새로운 변화 앞에서 적극적이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 시기 예술가들의 질문에 주목했다.
오늘날에도 다른 양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질문을 짚어보고,
당대의 미술가들이 어떻게 그 고민의 답을
찾아나갔는지 작품 속에서 찾아보려 한다.
고난의 시기, 예술이 어떤 힘으로 그들을
지켜주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 MMCA 과천 상설전 <한국 근현대미술 I> 展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경
• 제 5-6전시실 구성 (3F)
이중섭 (Lee Jungseop, 1916-1956)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이산의 경험, 생활고로
가족과 함께 편안한 일상을 영위하지 못하는 고통,
예술가라는 개인적 이상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생활인의 책임은 예술가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대향(大鄕)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은
광복 직후 일본에 아내와 두 아들을 보낸 상태에서
그리움을 담은 편지와 엽서화, 유화를
집중적으로 남겼다.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
<춤추는 가족> (1950년대), 서로 마주 보며
하나의 원을 그리는 두 마리 새를 표현한 <부부>
(1953), 나른한 표정으로 쉬고 있는 인물들을
그린 <세 사람> (1943-1945) 등 이중섭의 작품은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 가족을 다시 만나
기쁨을 나눌 날에 대한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이중섭은 인물화 외에도 신화 속의
반인반우, 황소 등 소를 즐겨 그렸다.
중학 시절부터 소를 즐겨 그렸다고 하며,
<흰 소> (1950년대)는 소가 걸음을 옮기는
순간의 모습을 포착한 작품이다.
1956년, 이중섭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1970년대 중반 소설, 영화 등을 통해
그의 비극적 생애가 알려지면서 요절한 천재
예술가로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의 소묘, 펜화, 유화 등을 골고루
소개함으로써 비극적 신화 뒤에 가려진
이중섭의 작품 세계를 대면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 이중섭 (1916-1956)
닭과 병아리, 1950년대
종이에 유채
30.5 x 51 cm
• (Wide)
• 이중섭 (1916-1956)
소년, 1943-1945
종이에 연필
26.2 x 18.3 cm
• 이중섭 (1916-1956)
세 사람, 1943-1945
종이에 연필
18.3 x 27.7 cm
이중섭(1916~1956)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문에서 태어나, 정주 오산학교에서
임용련으로부터 미술지도를 받았고, 도쿄
데이고쿠미술학교와 분카학원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화가 활동을 시작했고,
함경남도 원산으로 돌아온 후 해방을 맞았다.
<세 사람> (1943-1945)은 1943년 이중섭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조선으로 귀국하여
원산에 머무를 때 제작된 것이다.
19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서울에서 열린
해방기념미술전에 <소년>이라는 작품과 함께
출품하려 했지만,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전시는 불발되었다고 전해진다.
대신 이 작품은 같은 해 인천에서 전시하게 되어,
이후 남한에 남게 되어 현존하는 유일한
이중섭의 원산 시기 작품으로 전해진다.
세 인물이 엎드리고, 쪼그리고, 드러누운
각기 다른 자세를 한 채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세 명의 인물들인지, 아니면
한 인물의 세 가지 다른 자세를 동시에
한 화면에 담은 것인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두 매우 우울한 표정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제작 시기(1943-1945년)를 감안할 때,
일제 말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으로 보인다.
청년들은 꿈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두꺼운 종이 바닥에 그리고 또 그린 무수한 연필
자국들은 허무한 현실과 좌절감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드러누운 소년의 힘찬 왼손과
오른발의 강렬한 선에서, 암담한 현실을 뚫고 나올
강인한 의지를 짐작할 수 있다.
• (Wide)
• 이중섭 (1916-1956)
흰 소, 1950년대
종이에 유채ㆍ색연필
30.5 x 41.5 cm
소의 말
이중섭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 이중섭 (1916-1956)
황소, 1950년대
종이에 유채
26.5 x 36.7 cm
• 이중섭 (1916-1956)
사계, 1950년대 전반
종이에 유채
26.5 x 35.5 cm
• 이중섭 (1916-1956)
정릉 풍경, 1956
종이에 연필ㆍ크레용ㆍ유채
43.5 x 29.3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