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tR5zNp8zuU
예배영상
전 7:14,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주십니다. 24-10-13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입니다. 서울 경성부의 동소문 안의 일력거꾼 김첨지, 그의 아내는 병에 걸린 지 1달 가량이 지났습니다. 아내는 단 한 번도 약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약을 살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열흘 넘게 돈 구경을 못한 김첨지는 어느 날 평소와는 달리 많은 손님을 받아 큰 돈(2원 90전-안력거꾼의 1달 수입이 30원-당시 월세가 1원)을 벌었습니다. 집에 들어가기가 불편한 김첨지는 선술집에서 친구 치삼을 만나 술을 마십니다. 그리고 평소 설렁탕 국물을 먹고 싶어했던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 들고 집에 들어서는데 아내의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렇게도 운수 좋은 날, 아내는 사늘한 주검이 되어 있습니다. 김첨지는 아내의 주검 앞에서 절규합니다. "이런 오라질 년,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이 소설은 일제 시대의 서민 빈민층의 고뇌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서민의 삶 속에서 운수 좋은 날, 그렇게 아내가 죽음에 이르는 슬픈 날이 되게 하십니까? 전도자는 하나님 이 두 가지를 주셔서 사람이 되돌아보아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좋은 날이라 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는 그런 좋은 날은 오히려 교만과 죄가 될 뿐입니다. 운수 나쁜 날이라 할지라도, 그날을 되돌아보고 하나님을 깊이 묵상한다면 좋은 날을 주실 것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는 날마다 호위호식(좋은 옷과 음식) 하면서 살았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그 부자의 떨어진 빵부스러기라고 얻어먹으려고, 그의 곪아 터진 종기 상처를 개들이 핥아대는 것을 방관했습니다. 그런 거지 나사로를 사람들이 형편없이 취급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부자도 죽고, 거지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지옥 불 속에 떨어져 고통 속에 부르짖는 부자에게 아브라함이 천국에서 말합니다.
눅 16: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여러분,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는 것이 축복입니까? 아니면 고난을 받는 것이 축복입니까? 살아서 좋은 것은 죽어서 괴로움(지옥)을, 나쁜 것(고난)은 위로(천국)을 받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축복입니까?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예배하는 삶이 축복입니다.
첫째. 형통한 날에는 기뻐해야 합니다.
형통한 날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형통한 날 어떻게 해야 합니까?그 때 여러분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에배해야 합니다. 그 형통한 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안 사니까, 지혜자가 말하는 것입니다. 제발 기뻐하면서 감사하라고.
전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형통한’(토바), 선한 것, 친절, 행복, 좋은, 귀중한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형통한 날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내 노력 때문이라고, 현진건의 소설처럼 운이 대통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또 기뻐하지도 아니합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전 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여러분들에게 형통한 날을 주신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먹고 마시며 수고해서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통한 날만 막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곤고한 날도 곧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형통한 날이 있으면 바로 곤고한 날이 닥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형통한 날에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 형통한 날이 곤고한 날보다 더 크게 일어납니다. 그러니 감사하는 자, 예배하는 자에게는 형통한 날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둘째.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날(형통한 날)을 기대합니다. 그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곤고한 날’도 주십니다. 왜 사랑의 하나님께서 곤고한 날을 주십니까? 사람들에게 곤고한 날이 없으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교만이 엄습해 오기 때문입니다. 그 교만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전염병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형통한 날 가운데서도 곤고한 날을 신앙인들에게 주십니다. 그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니까, 신앙인들에게 곤고한 날을 주시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전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곤고한’(라차하), 악(해), 재앙, 피해나 파괴 또는 불행을 야기하는 것, 큰 손실과 불행으로 귀결되는 사건.
‘되돌아 보라’(루아), 이해하다. 생각하다. 주의 깊게 인식하다. 두려워하다(경외), 경외나 존경의 감정을 느끼다.
‘되돌아 보라’는 단어를 야고보 사도는 ‘기도하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의 존재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생각, 곧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약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셋째,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병행해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가까이에서 일어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통한 날(좋은 날)만 계속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곤고한 날(고난당하는 날)이 계속 일어나는 것도 있습니다. 고난 중에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고, 좋은 날에도 누군가에게는 말할 수도 없는 그런 슬픈 사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부자는 가난한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예배와 기쁨과 평안을 알 수가 없으며,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하는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이 누릴 수 있는 그런 향락이나 소비나 온갖 갑질 행위들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전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병행하게 하사’(에마)는 가까이, 옆에, 전면에라는 뜻입니다.
‘장래 일’(아하르)는 뒤에, 후에, 뒤쪽에,
‘알다’(므짜)는 찾다, 얻다, 발견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이 두 가지를 가까이에 일어나게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눈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가까이에서, 어쩌면 함께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신앙인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 형통할 날인지, 곤고한 날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장래 일을 일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묵상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자기 잘났다고 교만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좋을 때 더 겸손히 섬기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곤고한 날에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언약한 피조물인가를 돌아보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누구보다 의로웠던 욥이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고백합니다.
욥 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장래 형통한 날이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