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 때 이야기다.
체격도 작고 키도 작아서 항상 앞 번호를 받는 친구가 있었다.
물론 여자 친구였다. 졸업 후에도 붙어 다니다가 그 친구가
먼저 결혼을 하고 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 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서 연락을 하던 중
자신의 집으로 놀러 오라고 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나로서는
제약을 받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성격은 같은 듯 달랐지만
친구는 친구라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그 후 내가 결혼 후 연락이 뜸했다. 여자들이 결혼을 하면 학교 친구와는
연락이 끊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때였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친정에 놀러 왔다가 들렸다며 찾아왔다. 반갑기도 하고
마침 혼자 있던 터라 친구의 방문은 기분을 들뜨게 했다.
그런데 방문한 이유는 금전적인 이유였다. 돈을 빌려 가기 위해 온 것이었다.
한 번도 금전적으로 엮인 적이 없는 친구여서 의심의 여지없이
돈을 빌려주었다.
그 친구는 단순한 친구 이상을 넘어 금전적으로도 신뢰할 수 있었다.
언제든 갚을 것을 믿고 빌려주었기 때문에, 그것도 남편이 주는 생활비가 아닌
내가 직장 생활하면서 갖고 있던 돈이어서 급하게 받아야 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던 것이 실수였다. 당장 받아오라며
채근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준 돈도 아니었고 당상 생활비로 써야 할 돈도
아니었음에도 내 친구에게 빌려주었다는 것만으로 받아오라고 다그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날마다. 자신의 친구에게 빌려 준 것은 받지 못해도
내 친구에게 빌려준 돈은 믿지 못하겠다며 어떻게든 받아내야겠다는 식이었다.
그것도 하루만에. 그런 날이 며칠 동안 이어지면서 결국 그 친구에게
빨리 갚으라고 전화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전화 통화를 하다가 친구의
친정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난 남편에게 시달리면서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하필 친구의 가족이 받았다. 친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그 친구하고 연락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친구의 친정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지만 함께 사는 남편의 시달림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편 뒤에는 시어머니가 있었다. 어떻게든 생활비를 주지 않으려고
버티는 그들 사이에게 견디는 것조차 지옥이었다. 그 친구는 나의 그런 사정을
알 리 없었다.
친구의 남편이나 대부분 여자들의 남편은 생활비를 핑계로 자신의
아내를 괴롭히지 않는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나는 상황이 달랐다.
남편이 아닌 빚쟁이에 가까웠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친구는 며칠 후에 돈을
갖고 오기는 했지만 다시는 그 친구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아직도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와 다시 연락을 하려고 가족을 찾았지만
일부러 번호도 틀리게 알려주었던 친구의 동생이 떠오른다. 3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친구의 가족들도 그때의 분노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돈으로 인해 친구 관계가 끊긴 것은 그게 처음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집을 오가며 놀던 친구였다.
반면
다른 사람이 빌려달라고 한 후에 당연히 갚지 않아도 된다며 가져가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내가 인심이 좋아서가 아니라 친구였기 때문에 빌려준 것이고
친구는 당연히 갚을 마음이 있어서 연락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내 글을 읽고서 당연히 자신들에게도 빌려주겠지, 남편만 가만히
있으면 갚으라고 채근하지도 않겠지 했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친구도
아니고 내가 아무리 내 형편을 이야기했어도 갚지 않을 마음에 계속
빌려가려고만 했다. 친구와 그 여자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나에게 돈을 빌렸고
친구는 갚았지만 그 여자는 거저 받았다고 했다가 갚으라고 하니 기분 상했다며
던지듯이 주고 갔다. 남편만 아니면 나에게는 갚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것이다.
남편이 거실에서 이불 쓰고 누워있을 때였는데 속회가 끝난 다음에 보였던
행동하고는 전혀 달랐다. 그 여자가 김밥을 만들어주고 가서였을까?
그 여자가 한 짓에는 개의치 않고 오로지 그 여자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으니.
참고로 그 여자도 교인이었다. 교회에서 쓰는 돈을 나에게서 받아내려 했지만
남편은 그 말은 듣지도 않았다. 내가 주기로 한 것이라는 거짓에만 귀가 솔짓해
전부 내 탓으로만 돌리고 있었던 터였다.
돈에 집착하는 남편으로 인해 좋았던 친구관계가 끊기고
남편만 가만히 있으면 나에게는 돈을 빌려도 갚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여자로 인해
동네에서 온갖 구설수에 올라야 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아직도 예전의 내 글을 읽었던 사람들은 내 글에서 내 약점을 캐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면 살림을 못하다고 소문이 나자 내가 여전히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거라며 살림 못하는 것을 약점삼아 자신들이 가르치겠다며 어떻게든
들어와 시어머니 저리 가라는 구박을 해대며 괴롭힌 것이다.
그런 자들도 있으니 누구든 우리집을 들어오겠다고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선뜻 문을 열어줄 수 없게 된 일은 일상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그들 스스로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