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첫째주 메시지 삶이 뒷받침 되는 예배가 참예배다
요한복음 4장 강해 4부 삶이 뒷받침 되는 예배가 참예배다
말씀 요한복음 4장 19-26
요절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참된 예배는 주님이 받으시는 예배고 주님이 임재하시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잘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시고 임재하십니다. 그러나 주일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고 임재하시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중요합니다. 삶의 예배가 뒷받침 되어야 주일예배를 받으십니다. 그래서 제목을 ‘삶이 뒷받침 되는 예배가 참예배다’ 라고 정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면서 주일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임재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삶이 뒷받침 되는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1)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예수님이 여인의 죄를 깨닫게 하자 여자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고백하였습니다. 선지자는 우리의 죄를 깨우치는 분이십니다. 여인은 죄 문제를 깨달은 후에 갑자기 예수님께 어떤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예배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남자가 참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예배가 참예배인지 몰랐습니다. 여자는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하는지 예배의 장소를 물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은 그리심산에서 예배하고 유대인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였는데 어디서 드리는 예배가 옳은가 물었습니다. 여자는 예배의 장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먼저 ‘나를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신뢰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에게서 오시는 구원자이므로 여인에게 참된 예배를 가르쳐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예배하느냐 예배의 대상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편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느냐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의 대상으로 삼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남편이 아닌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의 진정한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시공의 제한을 받습니다. 눈에 보이는 그것이 없으면 불안하고 허전해집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430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가 그들을 인도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모세가 40일 시내산에 올라가서 보이지 않자 그들은 불안해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를 송아지로 대체하였습니다. 그들은 송아지가 자신을 인도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나 송아지를 예배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으면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사라지면 우리 마음도 불안하고 허전해집니다. 눈에 보이는 돈도 사람도 나 자신도 우리의 진정한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예배의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십니다. 어디에나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 참 만족과 기쁨을 주십니다.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십니다. 우리는 육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을 예배하지 말고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2) 영과 진리로 예배 드려야 합니다.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은 예배의 대상을 말씀하시고 예배 드리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심으로 영과 진리로 예배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 드리라는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영은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사람은 육과 혼과 영이 있는데 가장 중심에 있는 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때 우리는 영으로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진리는 진실함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진리의 말씀에 기초할 때 우리는 진실함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주일날 구별하여 영과 진리로 예배 드려야 합니다. 다른 모든 일을 제쳐놓고 경외심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십계명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이스라엘을 지켰다는 말도 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주일예배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한 주일에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이 주일예배를 안식일을 지키듯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절대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우리교회도 초창기에 주일예배를 절대적으로 지켰습니다. 예배에 빠진 사람들은 연자맷돌을 메고 물에 들어가야 한다고 돌을 목에 걸고 예배를 드린 적도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한 사라 선교사는 주일날 오빠 결혼식이 있는데 가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많은 박해를 받았지만 그를 통해서 가정 복음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로 이런 현장예배의 절대성이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한시적인 상활입니다. 물론 지금도 어쩔 수 없는 경우는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장 예배에 오지 못할 때는 현장 예배를 이전처럼 절대적으로 사모해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두 세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십니다. 교회의 예배에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예배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일하십니다.
다음으로 삶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주일날 예배 드리는 것으로 예배를 다 드렸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예배의 시작이고 예배의 대표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를 뒷받침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산 제사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산 제사는 우리의 삶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주일날만 예배 드리고 삶이 엉망이면 하나님은 주일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시고 아벨과 그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가인의 삶이 엉망이고 아벨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서에서 보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자주 모여서 제물을 드리고 많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삶에서 살인하고 간음하고 술먹고 부동산 투기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의 삶을 보십니다. 미가서에 보면 하나님은 천천의 제물보다 공의와 인애와 겸손을 행하는 삶을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대한 예수교 통합측 총회장은 6000명되는 대형교회 목회자입니다. 그런데 여권사님과 습관적으로 모텔을 출입하였습니다. 그는 말씀을 아주 은혜롭게 잘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삶이 영과 진리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심으로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는 아무도 보지 않는 그곳에서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당을 떠난 가정과 직장에서도 참된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삶이 예배가 될까요? 가장 큰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와 같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순종하지 못했을 때는 하나님께 회개를 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고자 투쟁해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면서 주일 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주일날 경외심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의 주일 예배를 받으시고 주일 예배에 임재하여 주십니다.
(3) 그리스도는 참된 예배를 드리도록 도우십니다.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우리가 주일날 구별하여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구별하여 예배 드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육신은 연약합니다. 우리의 육신에는 죄의 소원이 있습니다. 세상은 악합니다. 그리스도는 이런 우리에게 참된 예배를 가르치시고 참된 예배를 드리도록 도우십니다.
첫째, 예수님은 성령으로 오셔서 구별하여 주일날 예배를 드리게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기쁨으로 주일예배를 사모하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도우십니다. 우리는 육신이 연약하지만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을 때 넉넉히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십자기의 피로 죄를 극복하게 도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예배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고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삶을 살아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다시 성령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예배를 드리게 도우십니다. 우리로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도우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하게 도우십니다.
결론) 주일날 드리는 예배를 사모하자
참 예배는 첫째, 주일날 교회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그 예배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구별하여 드러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함으로 드려야 합니다. 둘째, 그와 함께 우리의 삶이 뒷받침 되도록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기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는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경외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도우십니다. 주일날 경외심으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도우십니다. 죄를 지었을 때는 회개하게 도우시고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거룩하게 살게 하십니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여 일주일 거룩한 삶을 살고 주일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요한복음 4장 강해 4부 삶이 뒷받침 되는 예배가 참 예배다
말씀 요한복음 4장 19-26
요절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장 강해 4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