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 식모, 행랑 어멈, 오모니, 드난살이, 남의집살이, 도시 빈민, 감정 노동, 돌봄 노동, 그림자 노동 - 어디든 있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녀들을 위한 명명식
오늘날 우리를 상당수가 하녀의 삶을 살고 있다고 표현해도 결코 언어적 과장이 아니다. 21세기 하녀라는 말을 두고,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지치지 않고 계속되는 '갑질 논란'이나 '특권 논란'도 따지자면 우리가 돈을 중심으로 재편된 사회를 살아가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하녀의 등장과 규정의 변화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검토하는 작업은 가능하며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 변화를 들여다보는 일은 불가능하며 불필요하기도 하다. 식민지 시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해방 전후, 한국전쟁기, 1960~1970년대 한국사회에서도 특별한 소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여성이 잠정적으로 '하녀'였으며, '하녀'가 될 위험에 아니 그럴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녀는 신분 해방이 이루어진 시대의 현대판 노예에 다름 아니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대개 '피할 수 없는 사회 환경' 때문에 '인간 이하의 생활'로 내몰렸다는 점이다.
해방과 전쟁 이후로도, 권정생의 소설 <몽실 언니>에서 공지역의 소설 <봉순이 언니>에 이르기까지 식모의 삶은 오랫동안 반복해서 복원되고 회상되었다. 남의집살이하는 여성들을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고 나름대로 변화를 거쳤지만, 거기에 어떤 진화가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삶에 대한 추적이 아니라 범죄, 빈민, 하층민을 가로지르는 계급과 젠더 그리고 근대 자체로 시야를 확대해온 것은 아키이브로서의 하녀 일기가 가닿고자 하는 이른바 진실(성)이 하녀를 재현하거나 재현된 하녀 이야기를 다시 쓰는 자리에서는 가시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