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적은 작품에 더 많은 애정을>>
외화번역가인 내가 가장 아끼는 영화는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인간에 대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과 애정이 깊게 스며있는 <제리 맥과이어>는 나의 외화번역 데뷔작인 <블루>만큼이나 내게 뜻깊은 작품이다.
'무슨 일이든 처음처럼 한결같이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알토란처럼 참으로 알찰 것이다.'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The Body>의 첫 문장 'The most important things are the hardest things to say'처럼 나는 이 글을 위해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겠다.
7년전 외화 수입업에 잠깐 몸담고 있을 무렵, 기성 번역가들이 꽤 있었지만 젊은 감각으로 직접 번역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얼떨결에 시작한 작품이 세 가지 색 연작, <블루><화이트><레드>였다. <블루>를 통해 내가 번역자 실명제를 주창한 탓인지, 아니면 작품성 높은 흥행작을 무리없게 번역한 때문인지 그 뒤 나에겐 번역의뢰가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일에 대한 과다한 욕심 때문에 처음처럼 한결같이 일하자던 마음자세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위 세 편의 번역이 적정선임에도 무려 일곱 편의 작품을 맡아 번역하는 일이 생겼다. 그 중 상당수가 번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작품이었지만 번역을 의뢰한 수입사의 입장에서 볼 때는 분명 성의없는 태도였으며, 결국 그 결과는 부끄럽게도 오역으로 이어졌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미국우주항공국으로 번역했다면 누가 과연 나를 외화번역가라고 생각하겠는가! 스스로 순간적인 판단착오였다고 자위하기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부랴부랴 정정한 자막을 입혀 상영하기는 했지만 그 일은 나에겐 두고두고 부끄러운 기억이 아닐 수 없다.
그 무렵 만난 작품이 나에게 올바른 직업관을 정립시켜 준 <제리 맥과이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식으로 과욕을 앞세워 약삭빠르게 성공에의 야망을 키워가던 제리 맥과이어는, 이른 새벽 불현듯 잠에서 깨어 사회 생활에 첫발을 내디딜 무렵 기라성 같은 인생의 선배들이 그에게 해주었던 충고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는 "더 적은 고객에게, 더 많은 애정을!"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써서 회사에 제출하며 인간주의 경영을 촉구한다.
일 욕심과 돈벌이에 대한 집착으로 과속을 밟던 나는 <제리 맥과이어>를 만난 뒤로 더 적은 작품에 더 많은 애정을 쏟으며 일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모든 관객들은 좋은 영화 번역을 만나야 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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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전문적인 번역가가 아닌, 번역에 꿈을 두고 공부중인 저에게 참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글입니다.
이미도님 글도. 이세욱님 글도.
번역의 매력에 푹 빠져 진심으로 번역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절대, 단지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여겨 그때그때 대충대충 짜맞춰 넘겨버리는 어설픈 작업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 두글을 읽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미도님이 말씀하신 "모든 관객(독자)들은 좋은 (영화) 번역을 만나야 할 권리".
그 권리를 존중하고 제공하는 것이 저희 번역인들의 의무라고 생각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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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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