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讀>800여 년 전의 인물인 칭기스칸(成吉思汗)의 흔적

-워싱턴포스트誌는
서기 1001년부터 2000년까지
1,000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했던 인물로
몽골의 장군이자
몽골제국(蒙古帝國)의 초대 황제였던
칭기스칸을 선정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The Washington post)는
1877년 12월 6일 워싱턴 D.C.에서
스틸슨 허친스(Stilson Hutchins)에 의해
창간되었는데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과 함께
미국 최고의 유력지로 꼽히는 신문입니다.
워싱턴포스트誌는
지난 1,000년 동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몽골의 칭기스칸(1162~1227) 이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칭기스칸의 이름은 테무진(鐵木眞)입니다.

몽골의 역사책에는
테무진의 출생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른손에
주사위 뼈만한 핏덩이를 쥐고 태어났다.
눈에는 불이 있고,
얼굴에는 빛이 있다"
테무진이 어렸을 때
그의 가정은
상당히 부유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예수게이가
테무진을 약혼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이웃 부족인
타타르족에게 독살당한 후
부족들로부터 버림받고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가 청년이 된 후에
어릴 적 약혼녀를
수소문해서 찾아오지만
그녀 또한 납치되어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었습니다.
분노와
복수심이 극에 이르렀지만
테무진은 이를 극복하고
27세에
드디어 부족장(칸)이 됩니다.
칭기스칸의 세력이 커지자
다른 칸들이 계략을 써서
칭기스칸을 죽이려 합니다.
그는 이런 사실을
사전에 눈치채고 피함으로써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지만
이 때
살아남은 부하들은
겨우 19명에 불과했습니다.

칭기스칸은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만일 내가 이 일을 잊는다면
흙탕물처럼 되게 하소서"라고 맹세하며
스스로
흙탕물을 먼저 마시자
모든 부하들이
함께 흙탕물을 마십니다.
그후 이들은
칭기스칸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몽골의 통일을 이루는
1급 참모들이 됩니다.
칭기스칸의 나이가 44세이던
1206년에
칭기스칸은 전 몽골을 통일하고
제 1대 칸에 추대되었습니다.

이후
서하를 정복하고
금나라를 복속시켰으며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호레즘 왕국을 멸망시킵니다.
호레즘 왕국은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서북부에 위치한
히바시 일대입니다.
칭기스칸의 영토를 살펴보면
동으로는 연해주에서
서쪽으로는 헝가리에 이르렀고,
남으로는
중국, 파키스탄, 사막인 아라비아 반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동지역,
그리고
북으로는
시베리아 전역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에서
유럽 대륙의 광활한 영토를 정복했습니다.
그가 차지한 영토는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
히틀러가
점령했던 영토를 다 합친
면적보다도 더 넓었으니
그 크기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칭기스칸이 기세를 떨치던
당시 몽골의 인구는
100~200만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되고
군대의 숫자는
15만 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칭기스칸은
"성(城)을 쌓는 자는 망할 것이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움직이는 자는 살아남는다"라는
유목민족(遊牧民族)의 철학을 실천했습니다.
그가 이토록
위대한 일을 이루어낸 리더십의 핵심은
"돌격 앞으로" 보다는
"나를 따르라"로 대변되는
"솔선수범(率先垂範)" 이었습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를 정도로
무식했던
칭기스칸이었지만
이런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었기에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옛 속담에도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거나
"고인 물은 썩는다"처럼
젊은이들에게 교훈이 될만한
경구(警句)들이 있습니다.
유목민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몽골 사람들은
성(城)을 쌓거나
거대한 궁궐을 짓지 않았습니다.
정착할 곳을 의미하는
성(城)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인데
그들은
가축을 몰고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굳이 성이
필요치 않았을 수도 있었을 터였지만
역설적으로
성(城)을 쌓지 않음으로써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사람은
지혜나 지식이 부족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꿈이 없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금방 포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한번도 실패하지 않았다"고
자랑하곤 하는데
그것은
창조적인 일에
한번도 도전해보지 않았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칭기스칸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한 사람의 꿈은 꿈으로 남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
칭기스칸은
자신이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부하들과 함께
꿈꾸었던 모든 것을 이루고
1227년 65세를 일기로 천수(天壽)를 마칩니다.
세계적인 권위지 워싱턴포스트가
밀레니엄 특집으로
지난 1,000년 동안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칭기스칸을 꼽은 이유를
이제서야 알게 됩니다.
by/오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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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칭키스칸의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고난을 겪지 않고 꿈이 없으면 결코 성공 못한다는 교훈 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