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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감독에게 박지성은 여전히 중요한 선수다 |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에게 다시 기회를 준 건 이번에도 챔피언스리그였다. 홈에서 치러진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에서 박지성은 오른쪽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다. 함께 나선 선수들 중에는 왼쪽 미드필더로 나선 나니, 중앙 수비수로 출전한 조니 에반스, 오른쪽 수비수로 출전한 게리 네빌,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대런 플레처 등 각 포지션에서 팀내 입지가 확고하지 않은 선수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이날 맨유 벤치에는 부상에서 복귀한 호날두를 포함해 비디치, 브라운, 긱스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캐릭과 베르바토프는 부상으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퍼거슨 감독에게 이 경기는 리버풀 전과 첼시 전을 잇는 징검다리였던 셈이다.
맨유의 성공 만든 퍼거슨의 냉혹한 결단력
징검다리 경기였다고 해서 ‘비겨도 된다’는 식으로 안일하게 선발 명단을 구축했을 리는 없다. 왜냐하면, 맨유의 감독은 퍼거슨이기 때문이다. 이제 예순이 넘은 이 ‘할아버지 감독’은 절대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 단지, 사안의 경중을 파악하고 어떻게 힘을 배분하느냐에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을 뿐이다. 퍼거슨이 그리는 현대 축구에서 ‘붙박이 주전’의 의미는 대단하지 않다. 그에게 축구는 더 이상 ‘11명’의 스포츠가 아니다. 과거에 비하면 무척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고 A매치 차출과 부상 등 갖가지 변수가 산재하는 현대 축구에서 11명에 초점을 맞춰 팀을 운영하는 건 리그 중하위권 팀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다. 박지성이 퍼거슨의 ‘PERFECT 11’ 안에 들어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박지성의 입지를 ‘후보’로 폄하하는 것도 온당한 것은 아니다. 6~7명의 베스트 멤버를 기준으로 그 외 포지션에 지속적인 경쟁(혹은 보조) 체제를 구축해 한 시즌을 운영하는 퍼거슨의 정책에서 박지성이나 플레처, 오셰이, 나니 같은 ‘스쿼드 플레이어’의 존재는 지극히 중요하다. 그리고, 맨유가 팀 내에서 별다른 불평이 나오지 않게 하면서 이 정책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퍼거슨이라는 명장의 냉혹한 혹은 단호한 결단력 덕분이다.
30년간 성공가도를 달려온 냉혹한 감독 퍼거슨 |
바로 이 냉혹함이야말로 퍼거슨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한 클럽에서 22년간 감독직을 수행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퍼거슨 감독은 맨유에 오기 전 감독을 맡았던 스코틀랜드 리그 애버딘 시절(1978~1986)에도 최고의 자리를 지켰던 인물이다. (에버딘은 팀 역사 105년 동안 단 네 차례 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 중 세 번이 퍼거슨 시대였고 유이한 유럽 대회 우승 역시 퍼거슨 감독 때였다.) 그가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유럽 정상의 감독으로 보낼 수 있었던 데에는 평범한 지도자들에게서는 흔히 발견할 수 없는 냉혹함, 혹은 단호함이 크게 작용했다.
퍼거슨의 취사선택(取捨選擇)
- 비야레알 전에 에반스가 출전한 까닭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퍼거슨식 ‘취사선택’은 그 정점이다. 이를테면, 리버풀 원정-비야레알 홈-첼시 원정으로 이어지는 ‘고난의 1주일 투어’에서 그는 리버풀과 첼시 경기를 택하는 대신 비야레알 전을 버렸다. (물론, 여기서 버린다는 의미가 ‘승리를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충분히 납득할만한 선택이지만 쉬운 결단은 아니다. 비야레알과의 홈 경기가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통과라는 1차 목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 정도지만, 우승 경쟁자인 리버풀과 첼시를 연달아 상대하는 리그 일정은 그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첼시 원정에서 패할 경우 맨유가 입게 될 내상은 무척 크다. 리그 초반에 승점차가 크게 벌어지면 나중에 따라잡기가 매우 힘들게 된다. 따라서 퍼거슨 감독은 첼시 전을 최우선 과제로 둔 뒤 비야레알 전에 임했다. 주전 수비수 비디치를 벤치에 앉혀두고 에반스를 선발로 낸 것은 그 증거다. 지난 주말 리버풀 전 퇴장으로 첼시 전에 나오지 못하게 된 비디치는 챔피언스 리그 출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첼시 전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비디치의 대안이라할 에반스를 내보내 실전 무대에서 과감한 검증을 시도했다. 베르바토프의 완전 배제나 박지성-나니의 선발 출격도 연장 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주전급 선수들의 체력 안배와 호날두의 시험 가동이라는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선수들을 내칠 때에도 매우 냉혹하다. 야프 스탐, 데이비드 베컴, 뤼트 판 니스텔로이 모두 전성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내쳤다. 감독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고 팀웍에 저해가 된다는 판단이 서면 아무리 아끼던 선수라도 내치는 퍼거슨의 냉혹함은 결과적으로 팀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그리고, 이런 그의 캐릭터는 역설적으로 그가 ‘성공’을 최우선 가치로 둘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냉혹한 자에게 성공이 없다면 그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테니.)
퍼거슨, 로테이션 시스템, 그리고 박지성
이러한 ‘로테이션 시스템’을 신봉하는 퍼거슨 감독에게는 벤치 멤버 7명도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된다. 선발 11명은 물론 벤치 7명도 허투루 정하지 않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경기 당일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예측과 결단이다. 오직 승리를 위해 18명을 고르는 그에게 사사로운 감정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30년 동안 유럽 최고의 감독으로 군림해 온 퍼거슨 감독은 그래서 여전히, 혹은 갈수록 점점 냉혹한 승부사가 되었다. 우리에게 가장 와 닿는 사례는 뭐니뭐니해도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다. 8강과 4강에서 훌륭한 플레이를 펼친 박지성을 아예 벤치에도 앉히지 않은 그의 선택은 나를 비롯한 국내 축구팬들을 무척 허탈하게 만들었다. 물론, 박지성 본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에게는 그 한 번의 경기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운용할 스쿼드가 필요했고 아쉽게도 그 계획에 박지성은 없었다. 아마 퍼거슨에게도 매우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가 최근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결정”이라며 시인했던 박지성 배제는 퍼거슨이 유럽 무대 최고의 명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유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18일 비야레알 전에서 호날두와 교체되는 박지성 |
각 경기의 비중을 냉철하게 구분하고 장기전을 염두에 둔 로테이션 시스템을 철저히 적용하는 퍼거슨 감독의 단호함은 맨유가 최근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주위에서 그들을 크게 우려하지 않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로테이션 시스템을 가동하는 팀의 감독들은 일상적으로 주위의 우려와 비판을 받기 마련이고 팀 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만 퍼거슨의 맨유에서만큼은 그런 일이 없었다. 그의 카리스마와 단호한 결단이 아마도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지난 시즌 리버풀의 베니테스 감독이 토레스를 로테이션 시스템으로 돌릴 때 주위에서 받았던 공격적 비판을 떠올려보자. 한 팀에서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온 퍼거슨의 단호함이 결코 쉬운 소득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베르바토프 외에는 별다른 선수 영입을 하지 않은 맨유의 선택 또한 퍼거슨이 있기에 누구도 쉽게 비판하지 못한다. 한 시즌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선수의 숫자를 이미 확보하고 있는 퍼거슨 감독은 그 계획 안에서만 변화를 추구할 뿐이다. 지난 시즌 유럽 제패로 확인된 최강의 스쿼드를 크게 손보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올 시즌 박지성의 전망하는 데에는 퍼거슨 감독의 계획성과 냉혹한 결단력이 가장 큰 키워드가 된다. 퍼거슨의 머릿 속에서 박지성은 여전히 스쿼드 플레이어일 것이다. 따라서 박지성은 본인과 동료의 컨디션에 따라 출전 경기를 배정받게 될 것이고 부상이 없다면 출전 경기 수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20대 중반을 넘어선 선수들에게서 갑작스런 발전과 스타일의 변화를 기대하는 감독은 거의 없다. 그 선수가 가진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미세한 단점을 개선하는 데 주력이야 하겠지만 그것이 팀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확장시킬 정도로 크게 변하는 건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현재 맨유에서는 골키퍼와 포백 수비를 제외하면 웨인 루니와 호날두 정도가 이른바 ‘붙박이’ 멤버다. 그 외의 선수들은 퍼거슨이 냉철하게 판단한 경기 비중에 따라, 혹은 자신들의 컨디션 여하에 따라 선발과 벤치에 이름을 올릴 뿐이다. 퍼거슨 감독이 ‘우리가 뒤져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루니-호날두-테베스-베르바토프, 이 네 명을 동시에 기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그가 품고 있는 ‘로테이션 정책’을 재확인한 것이며 따라서 스쿼드 플레이어들의 역할 역시 여전히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사사로운 정에 흔들리지 않는 명장 |
첫댓글 듀어든과 함께 기사가 알차보이는 분..
서형욱 역시 냉철한 분석.. 하지만 그속에 숨겨져있는 박지성에 대한 안으로굽는 팔 -_ㅠ 에혀 ㅠㅠ
형욱이형은 퍼기 별로 안좋아하는걸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박지성을 주전,서브 명단에서 제외 했을 때의 감독님을 별로 안좋아하시죠ㅋㅋ
박지성도 셔츠를 밖으로 꺼내서 입었음 좋겠당.
축약하면. "믿어보자." 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