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의 조세 무링요 감독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
-첼시 예상을 깨고 피터캐년 C.E.O의 추천으로 강력한 후보였던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에릭손이 아닌 대한민국 출신의 레알 마드리드 수석코치 조현 내정-
2003년 여름 첼시 빌리지의 새로운 회장으로 등극한, 세계 36위의 부호이자 세계에서 가장 젊은 재력가이자 러시아에서 두번째로 돈이 많은 재벌이며, 경제성 가치가 매우 뛰어난 시베리아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독점하고 있고, 세계3위급 초대형 메이저 정유회사인 시브네프티사의 회장 겸 첼시 빌리지 회장인 로만 아브라모비치(37) 회장이 이례적으로 오늘 첼시 빌리지 프레스룸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2005년 6월 24일자로 1년동안 첼시의 지휘봉을 잡았던 조세 무링요(41) 감독이 은퇴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아브라모비치 회장은
“무링요의 은퇴이유는 최근 종합검진을 받아본 결과 과도한 스트레스와 뇌출혈 증세로 앞으로 감독직을 계속 맡기엔 너무 위험하다는 주치의 의 의견을 받아들인것으로 보인다. 그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고향인 포르투갈에서 편안히 요양을 하고 싶다고 말했고 우린 그를 위해서 어쩔수없이 놓아줘야만 했다. 그는 첼시를 위해 다른팀 감독직은 맡지 않을것이라 말했으며, 짧았지만 1년동안 우리 첼시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해줬다. 그런 그가 사퇴하여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 무링요가 예전처럼 건강해지길 기원하겠다. 최근에 언론에 떠들고 있는 나와 무링요 와의 불화설이 그의 은퇴 사유가 아니다.”
“나를 그를 존경하고 있다. 부임한지 첫시즌만에 50년만의 감격적인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칼링컵 우승까지..쉽지않은 일을 그는 해내지 않았는가? 이런 무링요의 후임감독을 물색할려고 할 때 상당히 힘들거라 생각했지만 다행히 피터캐년 사장과 과 기술디렉터 프랭크 아르네센의 추천으로 조현을 알았고 그와 첼시가 잘 맞는지 고민을 했지만 결국은 첼시의 감독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는 조현 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그를 신임 감독으로 임명한 것이다.". 그는 감독 경험이 다소 떨어진다는게 걱정이기는 하나 정말 뛰어난 매니저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미 올 여름 우리팀은 미셸 에시앙,션 라잇 필립스,아시에르 델오르노,라사나 디아라등을 상당히 재능있는 선수들을 영입해 작년 못지않은 전력보강을 해왔다. 머 조현 감독이 원한다면 몇몇의 선수를 더 영입할수 있다. 돈은 얼마든지 쓸수있다. 올시즌 우리팀의 목표는 챔피언스리그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것이다. “
첼시 인수후 노출을 자제해온 아브라모비치 회장의 이례적인 기자회견과 구단 내의 정황을 볼 때 조세 무링요 감독이 성적부진의 이유나 아브라모비치 회장과의 불화로 해고된 것은 아닌 듯 하다. 또 그의 주치의가 그의 건강검진 결과를 언론에 배포해 구단과의 불화로 인한 은퇴설이 최근 잠잠해져가고 있다. 아브라모비치 회장의 말대로 새로운 변화를 위해, 혹은 첼시가 50년만의 리그 우승으로 인해 드디어 이룰건 다이뤄 버려 결국 미쳐버렸거나(?).. 아무튼 이유야 어찌됐든 첼시의 신임감독에 조현 이 결정된 것은 상당히 파격적이고 세계적인 이슈로 될만했다.
조현은 1973년 생으로, 올해 33살의 젊은 감독으로써 정식 경기는 커녕 1군 무대 또한 제대로 밟지못한 철저한 무명출신 이였다. 그는 결국 코치의 길로 가기로 결심 19살때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FA에서 주관하는 코치시험에 통과하여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연소로 합격, 1992-1993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스팀 감독인 에릭 해리슨의 보조코치로 스카우트 되면서 그의 인생은 뒤바뀌기 시작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스팀 보조코치로 있으면서 베컴,긱스,스콜스,버트,네빌형제등과 함께 훈련하며 동거동락하면서 그들의 능력을 누구보다 빨리 꽤 뚫어보았고 과감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보스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이들을 추천했다. 퍼거슨도 처음엔 반신반의 했지만 대성공을 거두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제2의 황금시대를 열수 있었던 것도 그의 뛰어난 안목과 퍼거슨 감독의 과감한 판단이 절묘한 짬뽕이 되면서 이루어진것으로 볼수있다.
결국 그의 능력을 높이산 퍼거슨 감독은 그를 1998-1999시즌에 1군 코치로 임명하여 그해 트리플크라운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거액의 재계약 조건을 제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중히 거절, 대륙식축구와 영국식축구를 접목시키기 위해 99-00시즌에는 이탈리아 세리에A의 라치오의 코치로 또 2000-2001시즌에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그의 레알 마드리드의 코치로 일하면서 지도력을 쌓았다. 2000-2001시즌이 끝난후 일본J리그 역사상 최고의 계약금과 연봉을 받으며 시미즈 S펄스의 감독이 되어 J리그 전기,후기,천황배를 싹쓸히 우승하여 J리그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크켰다.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 직전 수석코치 부재로 고심하던 레알 마드리드의 빈센테 델보스케 감독이 2002-2003시즌을 앞두고 2002년 5월 첫 영입을 선수가 아닌 그를 수석코치로 영입하여 다시 레알 마드리드로 컴백하였다. 마찬가지로 수석코치 부재로 2001-2002시즌 고전을 면치 못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 또한 영입을 시도했으나 조현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를 선택하였다. 그는 그동안 잉글랜드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리그에서 얻은 다양한 지도자 생활을 통해 배운 대륙식 전술인 4-2-3-1 전술을 레알 마드리드에 잘 접목시켜 프리메라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이라는 비교적 만족할만한 성적을 거두었고 2003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타 데이빗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했을때 입단식에서 조현 코치와 다시 일하게 되어 흥분된다. 라고 할정도로 감독을 잘 보좌하고 선수들에게도 신망 받는 등 비록 언론에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실력이 있는 스탭으로 평가를 받아왔었다…………...”
나는 읽고 있던 신문을 한 쪽으로 치우고 TV를 켰다. 온통 나에 관한 이야기?영국 전역이 뜰끓고 있었다. 11월달에 둘째를 출산할 예정인 나의 사랑스런 부인이 저녁먹으로 나가자고 이야기 한다. 입덧이 심해 요즘 나름 힘들게하지만 언제나 나에게 큰 버팀목이 되주는 사람이다.
갑자기 시차적응이 안되서 그런지 머리가 아팠다. 그 때문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아닐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아스날,리버풀등과 함께 잉글랜드 최고의 클럽중 하나인 첼시의 감독이 되었다는 중압감과 책임감이 나를 더욱 더 짖눌렀다.
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밝고 착한 아내의 부탁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우린 런던 중심가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비록 라이벌팀 서포터이지만 어느 마음씨 따뜻한 아스날 골수팬이 운영하는 바(Bar)에서 환상적인 저녁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런던에서의 두번째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실 난 한국의 유수의 재벌중 하나인 대한항공 그룹의 조철호 회장의 외동아들이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는 날에도 대한항공그룹의 모그룹이였던 한진그룹의 창업주인 할아버지 이기도 하신 고 조중훈 회장님과 함께 한진그룹의 성장을 위해 열심히 일하셧고 결국 내가 태어난것도 못보셧다. 그때문일까? 난 아버지 와 어려서부터 항상 갈등이 존재 했었고 결국 아버지에 대한 반항의 표출로 축구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외동 아들인 나를 아버지처럼 대한항공 그룹의 차기 경영자로 성장하기를 원했지만 난 아버지 처럼 살기 싫었다.
내가 들어갔던 학교의 축구부들은 전력이 매우 약해서 항상 지역 예선에서 매번 탈락을 거듭, 결국 축구로 대학을 가겠다는 내꿈은 산산조각 났고 그나마 기대했던 프로팀과의 계약은 커녕 연습생 시험에서도 어이없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선수수급이 원할하지 못한 실업팀으로 진로를 바꿔 입단했으나 선후배 관계가 너무나 엄격해 수동적인 한국 프로 스포츠 세계에 실망하여 몇일 안되 그만두었다. 그리고 난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축구종가 영국으로 떠났다. 이대로 축구에 대한 내꿈을 버릴순 없었다.
영국으로 무작정 온 난 고민끝에 코치로의 길을 선택하여 열심히 공부하였다. 매번 탈락과 실망만 안겨주었던 하늘이 이번엔 내가 불쌍해보였는지 코치시험에 내가 최연소로 합격하는 기적을 안겨다었다. 잉글랜드에서 처음시작한 나의 경력은 이탈리아,스페인 클럽의 코치로 일하다가 드디어 내 평생의 꿈이였던 감독이 되었다. 비록 어렸을때부터 너무나도 꿈꿔왔던 세계적인 축구스타가 되진 못했지만......항상 모든것에 만족하며 항상 감사했다. J리그의 명문 시미즈 S펄스 감독이 된지 얼마 안되 우리는 시즌을 준비 하기 위해 전지훈련차 미국에 갔는데 그곳에서 어떤 여자가 내눈에 띄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박시연. 정말 눈이 부실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였다. 나와는 6살차이인 어린 그녀였지만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차분하고 예의바르고 몸과 마음이 모두 아름다운 여자였다. 거기다 그녀는 2000년 미스코리아 서울 미 출신이였다! 나는 개방적인 성격으로 그동안 연애경력은 상당히 많았으나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한 연애가 대부분이였다.
하지만 시연이는 틀렸다. 처음 만나자 마자 우린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고 난 이런 시연이를 놓칠수 없어 나이 차이가 6살이나 났지만 만난지 6개월만에 청혼했고 그녀 또한 이런 나의 청혼을 매우 기쁘게 받아줘 우린 2002년2월달에 결혼했다. 고속 결혼이였지만 서로 잘 통했고 난 그녀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이제야 밝히는 거지만 알렉스 산토스,가즈유키 토다 등 내가 지도 했던 S펄스 선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 부부는 결혼하는데 상당하 시간이 걸렸을것으로 추측한다.
지금은 서로 각자 다른팀에 있지만 항상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결혼을 하고 타히티로 신혼여행을 갔다오고 태평양이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시즈오카현 외곽에서 단둘이서 알콩달콩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면서 난 처음 느끼는 행복에 너무나 행복했다. 또 그녀의 밝은 성격에 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진 나와 아버지와의 갈등도 조금씩 해빙무드를 타기시작했다. 여기서 그치치 않고 아내가 2003년 2월 말쯤에 임신을 하여 그해 연말 첫째 성민이가 무사히 건강하게 태어났다. 이제 나도 아빠가 된것이다.
2002-2003시즌 레알 마드리드 에서 수석코치로 첫시즌을 비교적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고 의욕적으로 2003-2004시즌을 맞이했으나 전반기에 잘나가던 팀이 윈터브레이크 이후로 페이스가 떨어지더니 결국 스페인 국왕컵은 레알 사라고사 에게 프리메라리그 우승은 발렌시아에게 그리고 믿었던 챔피언스리그는 8강전 AS모나코에게 드라마와 같은 이변의 희생양이 되는 불운을 맛보기도 했다. 그해 전반기에 보여준 위력적인 모습을 위안삼아 다음 2004-2005시즌은 2003-2004시즌의 문제점을 보안하고 더욱 철저히 준비 해 보았지만 몇 년전부터 계속 지적된 팀의 전력 불균형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충격적인 무관에 그치게 되었다. 몇 년전부터 대내외적으로 계속 승승장구 하던 나 또한 주춤하게 되었다.
의욕적으로 준비한 시즌이 결국 충격적인 무관으로 그치자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나는 잠시 모든걸 잊어볼 겸 휴가차 아내랑 신혼여행으로 갔던 타히티로 휴가를 갈려했으나 어머니가 아내가 보고 싶다고 성화를 하셔서 내키지 않았지만 한국으로 휴가를 왔다.
정말 오랜만에.....오랜만에 와본 내방을 보니 정말 내가 오랫동안 집을 비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와서 K리그도 관전하고 난생 처음으로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아버지와의 사이도 아내 덕분에 많이 낳아졌지만 아직도 어색한건 어쩔수 없었지만 오랜만에 한국에 온 나와 아내 그리고 아들 성민이 까지 우리모두 어린애 모양 들떠있었다.
이렇게 행복한 나날을 지내던 나에게 일생의 잔환전이 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나는 그 날이 6월 3일 오후 10시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몇 달전에 유벤투스에게 챔피언스리그 8강 티켓을 넘겨준 그날 경기를 아내가 녹화를 해줘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날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졌는지..어디가 문제가 있었는지..시간이 꽤 지났지만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유심히 경기를 보고 있었던중 갑자기 전화한 통이 걸려왔다.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누군지 의아해하며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당신이 조현 씨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이 늦은 시각에? 무슨 일이세요?'
'하, 오랜만입니다. 조~ 첼시C.E.O피터캐년 입니다.'
'안녕하세요..피터..첼시로 자리를 옮긴거 들었어요..늦었지만 축하해요.. 이젠 적인가요?(웃음)'
'(웃음)적이라니요..이젠 같이 일할껀데요..몰..(웃음)'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피터 당신은 첼시로 갔잖아요..전 첼시의 세계재패의 잠재적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의 수석코치이구요..(웃음)'
'(웃음) 맞아요 조..그러니 지금부터 제가하는 이야기 잘들어 보세요 제가 이렇게 조 당신에게 이렇게 늦은 시각에 전화를 건 이유는.. 현재 우리 첼시 구단은 그동안 조세 무링요 감독이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인해 은퇴를 결정하게 되어 그를 대신할 후임 감독 물색회의를 거듭하고 있었어요. 언론에선 머...첼시의 새로운 감독에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인 에릭손이 확정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전 당신이 그동안 보여줬던 능력을 보고 예전부터 높히 평가하고 있었고 우리팀의 기술디렉터 프랭크 아르네센씨도 당신을 추천했어요. 전 회의때 당신을 아브라모비치 회장에게 추천했습니다. 결국 운영진들과 심사숙고 끝에 우리는 조현 당신을 첼시의 새로운 감독으로 결정했고 이렇게 제가 급하게 전화를 드린겁니다. 부디 저희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말아주십쇼.'
'예? 저보고 첼시의 감독직을 맡아보라구요? 지금 농담하십니까???'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우리 구단은 조세 무링요 감독의 후임자를 놓고 적격자를조사하던 중, 지난 93년부터 99년까지 쭉 저와 같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해서 일했고, 또 라치오와 레알 마드리드의 코치로 일하면서 당신이 보여준 능력을 보고 우린 당신을 눈여겨 봤습니다. 아직 감독으로서는 젊고 경험이 적다는 단점이 있으나, 당신의 뛰어난 전술운용과 조직력 강화. 그리고 선수들을 팀에 잘 융합시키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쉽에 주목했습니다. 첼시가 원하는 감독이 바로 조현 당신같은 감독입니다.'
'.............'
'어떻습니까? 일생일대의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아요. 물론 당신이 당황했을 거라 생각해요. 그 점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빨리 끝내게 제 스타일입니다. 미스터 조 우리 첼시의 감독이 되어 주시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음....... 며칠 여유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신중히 생각해 볼 수 있게요.'
'좋아요. 사흘의 기간을 주겠습니다. 그 안에 결정을 내리세요. 결정이 서면 연락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신인이나 다름없는 내게 잉글랜드 최고 클럽중 하나인 첼시의 감독이 되라는 제안이 들어오다니...갈등됐다. 친정이나 다름없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벌 감독이 되야하나..이 일생일대의 찬스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뿌리칠 것인가. 내 인생 최대의 갈림길에 선것이었다. 그때 절친한 선배중 하나인 미들스보로의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이 생각났다.
그 또한 퍼거슨의 뒤를 이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차기 감독감으로 꼽혔지만 퍼거슨 감독의 연장계약으로 결국 맥클라렌 자기 자신을 위해 더늦기 전에 도전하기 위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나와서 미들스보로의 감독이 되었다. 나도 맥클라렌 사정과 비슷해 보였다. 레알 마드리드의 수석코치로 일하던 2002-2003시즌 중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을 치루기 위해 방문한 맨체스터에서 우연히 그와 술을 함께 했는데 그가 말하길..
‘자신에게 기회가 오면 절때 놓치지 말아야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기회라도..도전해보고 정 안되면 그때가서 후회해도 늦지 않아..'
'그래..첼시의 감독이 되서 나도 나의 능력을 맥클라렌 처럼 첼시에서 마음껏 펼쳐보는거야......'
다음날 아침 가족들에게 저녁에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내일에 대해 무표정이 셧지만 날 자랑스러워 하는것 같았다. 어머니는 감독은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 힘든일 아니냐고 여전히 날위해 걱정해주셨고 아내는 조심스레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이런 나를 위해주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난 첼시에서 반드시 성공하고 싶었다.
결국 고민끝에 첼시 감독직을 수락하고 나와 아내가 런던으로 출국하는날..언제나 내가 하는일에 항상 못마땅해 하셧던 아버지 또한 아내의 설득으로 드디어 마음을 열고 어머니와 함께 인천국제공항에 배웅나오셧다. 짦지만 오랜만에 공항에서 부자간의 정을 나누었다. 또 아버지는 내가 런던까지 편하게 갈수 있게 아버지 회사인 대한항공의 1등석(First Class)팃켓을 내 손에 꼭 쥐여주셧다. 정말 너무나 감사했다.
항상 난 혼자라 생각했고 시연이 와 결혼한뒤 많이 바뀌었지만 부모님에 대한 불신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아버지에 대한 원망 가득찼다. 하지만 이날 그동안 내생각이 얼마나 한심스럽고 어리석은 행동이였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한국의 수많은 언론들도 나와 아내를 취재하러 왔다. 미스코리아 출신 아내 영향인지 연예정보 같은데서도 나와 우리부부를 취재하러 왔었다. 우리부부는 갑자기 몰려든 언론때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성실히 인터뷰에 임했다. 이렇게 나와 아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받으며 런던으로 출국했다.
이번 출국은 출국때 매번 느끼던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아내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님이 마음속 깊은곳에서 나를 열렬히 응원해주시기 때문이다.....
난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다짐했다.
“ 이세상에 나를 지켜봐주는 주의의 모든사람을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겠다고......”
P.S 이글은 FM2006을 배경으로 쓰여졌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조현감독의 아내로 나오는 박시연양은 얼마전에 마이걸에서도 나왔고 에릭의 여자친구로 유명하죠..^^;..-_- 글은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올라올 예정이구요 리플이 많거나 반응이 좋으면 더 빨리쓸수도 있겠죠? ^^ 아무튼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첫댓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 건필하세요 ^^
기대하겠습니다,.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건필하세요!ㅋㅋ
재밋네요 저도 출연(?) 햇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