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천성산 용주사
 
 
 
 

친구 카페

 
등록된 친구카페가 없습니다
 
카페 게시글
현림의 소리 스크랩 남해 금산 부소암과 부소 이야기
현림 추천 0 조회 28 18.12.23 20: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남해 금산 부소암과 부소 이야기



우리나라 3대 해조관음도량의 하나로 알려진 남해 금산 보리암의 단군성전에서

 탐방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거대한 바위를 만나게 된다.

 마치 인간의 뇌() 모양을 닮은 이 바위가

진시황의 아들 부소(扶蘇)가 유배되어 머물렀다고 하는 부소암(扶蘇岩)이다.

부소암(扶蘇岩)은 부소대(扶蘇臺)라고도 부르는 데,

()을 대()로 부르는 것은 거대한 바위가 마치 누각처럼 솟아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 부소대 뒤편에 있는 암자는 부소암(扶蘇庵)이라 부른다.

(본방 남해 금산(2/2) 부소암에서 쌍홍문으로참조)



부소는 누구인가.

아버지 시황제의 성이 영()씨임으로 영부소(嬴扶蘇,? - 기원전 210)불리는 부소는

진시황제(秦始皇帝)의 장남이며, 진나라 2세 황제 호해의 형이다.

어렸을 때는 총명하여 아버지나 많은 중신으로부터 장래를 촉망받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부소는 부황(父皇)인 시황제의 악행 중 하나인

 분서갱유(焚書坑儒)에 간언했기 때문에 분노를 사,

북방의 기마민족·흉노에 대한 국경 경비의 감독을 명령받아

 장군 몽염(蒙恬)과 함께 벽지로 쫓겨나게 된다.



진시황은 재임기간 동안 5차례나 순행을 했는데

BC 210년 마지막 순행 중에 시황제가 급사하자,

시황제의 상()을 주관하던 환관 조고(趙高)와 승상 이사(李斯)

불필요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시황제의 죽음을 비밀에 부쳤다.


<진시황 본기>에 의하면 진시황제는 함양에 270개의 궁전을 짓고

 6국에서 뽑아 올린 미녀 10,000명을 후궁으로 두고 26명의 자식을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황후도, 태자도 책봉하지 않아, 서열상 장차 등국이 예상되는 부소와는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환관 조고와 승상인 이사는 앞일이 두려워 시황제가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꾸며

 자기들이 쉽게 요리할 수 있는 시황제의 26번째인 막내아들 호해(胡亥)를 옹립해

황제로 받들 것을 결의하고 부소에게는 자결을 권하는 거짓 성지(聖旨)를 내렸다.

 장군 몽염은 그것이 거짓 성지인 것을 간파하고 곧바로 부소에게 진언했지만,

부소는 "의심하는 것 자체가 도리(道理)에 반()한다"고 말하고

성지 내용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모의 명령 곧 황제의 칙령이라 이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도리에 반()한다고 해서 그것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자살한 부소.

그가 생각한 도리(道理)는 무엇인가? 오로지 황제의 칙령이라는 것이 전부였을까.

도리(道理)의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부소가 택한 그 길이 유일한 바른 길이였던가?

아버지의 유산을 빨리 물려받기 위해서, 병든 부모를 봉양하기 싫어서, 방기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서슴치 않는 작금에 회자하는 실태는 잠시 덮어두고,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리자면 알고 저지르는 잘못보다 모르고 저지르는 잘못이 더 크다라고 했다.

부소는 자기에게 내린 칙령이 거짓임을 몰라서 자결한 어리석은 사람이었던가?



황제의 칙령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당시 상황을 조금만 추고(推考)해 살펴보았다면

설령 항명(抗命)했더라도 그것이 그릇된 길이였을까?

역사는 그릇된 도리를 생산해 우매한 중생을 억울하게 현혹시킨 일이 비일비재 하지 않은가?




위대한 신을 모독하고 청년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진 소크라테스에게

주변 사람들이 도망치라는 권유에

'악법도 법이다'며 독배를 마신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오늘날 실정법에서는 아무리 불합리한 법이라도 법체계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통하고 있다.

이 말은 고대 로마의 법률 격언인 법은 엄하지만 그래도 법’(라틴어: Dura lex, sed lex)에서 왔다.

그러나 2세기경 로마 법률가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는

이것은 진실로 지나치게 심하다. 그러나 그게 바로 기록된 법이다.

(quod quidem perquam durum est, sed ita lex scripta est.)”라고 참 모호한 말을 남겼다.


일본의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가 출판한 그의 책법철학(法哲學)에서

실정법주의를 주장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한다고 썼다.

이후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와전되었다.



그러나 실제 소크라테스는 사망 당시에 한 말은

"어이,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 신에게 내가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두었다가 갚아주게"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파이돈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의 장남으로 당연히 2세 황제로 등극해야 할 부소,

그러나 간신과 환관들의 농락으로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 부소의 진짜 속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 왜 항명할 기회를 잡지 못했을까?

오늘날에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평생 옥살이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항소로서 무죄 방면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지 않은가.




만약 부처님이 부소와 같은 억울한 이런 경우를 당했다면 어찌했을까?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 시대 순다리라는 여인이 있었다. 순다리는 부처님이 생존한 그 당시 미인의 대명사로 통했던 이름이다.

그런데 부처님을 시기한 외도들이 순다리를 꼬드겨 부처님을 자주 찾아가도록 만들고는

 청부업자를 시켜 순다리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부처님이 머무는 기원정사 쪽에 묻어 놓았다.

그리고는 부처님이 순다리와 음행을 하고 소문이 날까 봐 살해하고 시체를 몰래 묻었다고 소문을 냈다.

이 소문은 온 성내에 퍼져 비난과 욕설이 부처님에게 쏟아졌다.

마침내 파세나디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조사를 해보니

순다리가 매일 부처님 처소를 드나들었다는 것을 본 증인이 한 둘이 아니었기에

 순다리란 여인을 찾아보게 했다.

그런데 소문처럼 순다리의 시체가 부처님이 머무는 곳 가까이서 발견되었다.

이 소문이 퍼지자 부처님에 대한 비난과 욕설이 난무하여

부처님의 제자들조차 걸식을 나갈 수가 없었다.

참다못한 제자들이 부처님에게 이를 아뢰자 부처님이 이르시길

거짓말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세간의 비난과 욕설은

7일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부처님의 말씀이라 어쩔 수 없이 제자들은 7일 동안 기다리며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7일이 되는 날 부처님 말씀처럼 그 진실이 밝혀졌다.

 

외도로부터 돈을 받고 순다리를 살해한 청부업자가 술에 취해서 자기들끼리 싸움이 붙자,

병사들이 이를 말리러 갔다가 그 청부업자들이 취중에

무의식적으로 순다리를 살해한 이야기까지 떠벌리는 바람에 들통이 난 것이다.

이로 인해 인욕(忍辱)의 마음으로 모든 비방을 참아낸 부처님과 스님들에 대한 명성은 더욱 커졌고

교단에 귀의하는 신도들도 크게 늘어났다.

진실의 승리이자 인욕의 승리였다고 경전은 기술하고 있다.  



부소도 만약 이와같이 인욕(忍辱)의 시간을 가지고

시황제의 장례가 끝날 때 까지만이라도 잠시 몸을 피했더라면

중국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수양산에도 들어가 고사리를 꺾어 먹고 살았다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이야기처럼

왜 반만이라고 그렇게라도 흉내 내지 못했을까?

황제의 칙령(勅令)과 항명(抗命), 억울함에 대한 분노와 해원(解冤),

이 두 가지 배선의 이음매를 이어주는 시냅스(Synapse)는 부소의 뇌리에 왜 없었을까?




의학에서는 아기가 처음으로 태어났을 때는 누구나 140억 개의 뇌세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뇌세포들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작용도 하지 않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여 급속하게 폭발적으로 왕성한 성장을 시작한다.


뇌세포는 불가사리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한가운데 핵이 있고

자극을 받음으로써 이 핵에서 돌기가 생겨나,

자극을 받으면 이 돌기는 점점 자라서 인접한 핵에서 나온 돌기의 가지들과 서로 연결되며,

그 연결된 밀도에 따라서 뇌의 회로가 더욱 정밀하고 섬세하게 이루어져 간다고 한다.

아기가 동일한 경험을 되풀이하면 배선이 견고하게 굵어지고,

새로운 경험을 쌓으면 별도의 배선이 생기게 된다.

이 배선의 이음매를 시냅스(Synapse)라고 하는데, 이것은 컴퓨터의 기억소자에 해당된다.




새로운 경험을 쌓아서 정보가 많아질수록 배선은 증가하고, 따라서 시냅스도 증가한다.

 뛰어난 1개의 뇌세포로부터 약 8천 개의 시냅스가 만들어진다.

뇌세포는 평균 140억 개이므로 이것의 약 8천 배인 1255천억 개에 해당하는 기억 소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컴퓨터로 환산하면 1대의 슈퍼컴퓨터에는 2,500억 개의 소자가 있다고 하니까,

아기의 두뇌는 무려 5만 대의 슈퍼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셈이 된다.





부소의 뇌리에 칙령(勅令)과 항명(抗命)에 대한 번뇌,

생존과 자살에 대한 번뇌를 풀어 줄 시냅스는 없었던 것일까.

불교에서는 번뇌(煩惱)(진로(塵勞()’ 등이라고도 한다.

중생은 사물을 대할 때 그것을 욕심내어 소유하려 하고,

본능으로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음을 애태우게 되며,

경쟁하고 싸움하고 심지어는 살생까지 하게 된다.

이와 같은 복잡한 과정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지 못하여 생겨나는 정신적인 모순 모두를 번뇌라고 한다.




그러나 번뇌의 정체를 확실히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크고 작은 것을 물을 것 없이,

큰 문제는 큰 번뇌를 일으키고 작은 문제는 작은 번뇌를 일으켜서 인생 전체를 번뇌 속으로 빠뜨린다.

따라서, 삶이 곧 번뇌요 번뇌가 곧 삶이라는 논리까지 전개되었다.

따라서, 번뇌의 깊은 뿌리를 근원적으로 파악하여 해결한다는 것은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참다운 길이며, 그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불교의 모든 법문은 이 번뇌를 다스리는 교훈이며,

번뇌가 다 할 때 거기에는 해탈이 있다고 본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번뇌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말에 수면(隨眠)’이 있다.

번뇌는 주로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마음속에 사악한 성격과 성벽(性癖)으로 잠재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표면화되기 때문에

마음을 뒤따르며 잠자고 있다는 뜻으로 수면(隨眠)’이라 한다.

또한, 잠재적인 경우와 구별하여 표면에 나타나는 번뇌를 전()이라 하였다.



남해 금산 보리암에 올라 바다를 응시하는 해조관음을 대하면

삶의 한줄기 그 어떤 희망의 빛을 느꼈다가도,

부소암을 바라보면 마치 고뇌하는 부소의 뇌를 보는 듯한 환상에 젖게 된다.

부처님 말씀과 같이 중생의 삶이란 오음성고(五陰盛苦) 인가.

다시 말해 오온(五蘊) 그 자체가 운명적으로 그대로 고()인가?

부소암을 바라보면서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옛 선사의 말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