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빈 나뭇가지 위로 가을을 품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다르네요.
이런 가을날,
책 읽자 어쩌고 하는 말이 뜬금 없어진지도 오랩
니다만 그래도 한마디 더할까요, 바둑두기 딱 좋
은 날입니다.
지난 4월에,
열렸던 페어바둑대회 반상유희(盤上遊戱)가 〈반상유희(盤上遊戱)
-9월에〉란 이름을 달고 지난 토요일(22.9.3) 서울 응암동 ‘바둑과
사람’ 회관에서 열렸다.
선수 두 사람의 나이가 125살 이상이어야 참가할 수 있는 ‘반상
유희’는 양덕주 사범과 또 한 번 짝을 맞췄다.
선착순 16개 팀 선수들은 일부 몇 개 팀 만 빼놓고 지난번에 출전
했던 선수 그대로다.
아니,
필자가 35년 전, 관철동 한국기원 5층에 처음 부딪혀 배워보겠노
라고 전국대회에 나갔을 때, 그 강자 사범님들 그대로다.
다만,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인 반백과 페어진 주름살만 늘었을
뿐이지.
당혹케 만드는 것은,
바둑을 아끼고 사랑하는 열정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
다는 사실이다.
오전 10시가 되자,
‘바둑과 사람’ 홍시범 대표의 인사말에 이어 1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첫 상대는,
90년대 아마 국수를 2번이나 오르고 지난달 치악산배 시니어부
우승에 이어, 대통령배 장년부까지 우승한 이용만 사범과 90년대
학초배를 2연패 하고 얼마 전 대통령배 노년부에서 우승한 서부길
사범 팀.
왼쪽, 양덕주, 필자팀 對 서부길. 이용만 팀
이름값으로 치면 상대하기가 어려우지니 반전무인 자세로 그저
최선을 다할 뿐.
수읽기에 한창인데 난데없이 종이 울린다.
각 팀 4분씩 교대로 주어지는 작전타임 시간이다.
양덕주 사범과 필자의 작전타임
배구 농구도 아니고 웬 작전타임이냐고 궁금해하시겠지만, ‘바둑
과 사람’회관에서만이 있는 독특한 룰이다.
홍시범 대표의 평소 철학이 평범을 거부하는 까닭이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 는
필자의 철학과 어쩜 일맥상통 할까.
2라운드가 끝나는 선수들은 주최 측에서 내준
밥값 만원을 들고 제각기 식당으로 흩어졌다.
점심을 들면서도 온통 아까 둔 바둑 이야기뿐
인 것은, 두고 난 대국은 항상 아쉽기 때문이다.
대망의 결승전은,
지난 대회 우승한 김희중. 심우섭 사범님 對 새로
조합을 이룬 임동균. 이철주 사범님.
바둑판은 늪이다.
한 쪽은 승자가 되고 다른 쪽은 패자가 된다.
늪을 건너고 또 건너는 팀만이 살아남는다.
페어바둑에서 배려란, 상대를 위한 받침이 되어 주는 것이다.
자신의 장점을 강화하되, 단점을 잘 보완한 페어팀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리라.
우승 임동균. 이철주
준우승 김희중. 심우섭
3위 박휘재. 주준유 정인규. 박정윤
우승 이철주. 임동균
추석이다.
둥글고 큰 달이 떠올라야 될 텐데.
가을이면,
일조량 감소에 따른 신체 호르몬 변화 탓인지 알 수 없지만, 계
절을 타는 사람이 적지 않다.
눈부시도록 고운 가을날, 즐기시기 바랍니다.
추석에 용돈이라도 챙기라고 ‘반상유희’를 후원해 주신 분께 고
마움을 전한다.
나누려는 마음이 아름다워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