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끼리 만나면 있는 돈 없는 돈 자식에게 다 퍼주면 안 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런 이야기를 서로 나눈다는 것은 이미 다 퍼줬다는 것이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국밥에 소주 한 잔 하는 것도 은근히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청춘을 다 바쳐 열심히 살았던 나의 현재는 그 때 기대했던 미래와는 많이 다르다. 자식들의 현재도 녹녹치 않으니 나이 들어 힘 빠진 부모를 책임져 달라고 말할 수도 없다. 지들 밥걱정이나 안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아비이면서 여전히 자식인 나는 하루 종일 아들만 바라보고 있는 병든 노모를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은 백발이 성성한 임플란트 투성인 나이든 아들뿐인 것이다.
‘노노(老老)봉양’은 아무 대책 없이 평균수명만 길어진 우리사회에 닥친 재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은 시절, 쉬지 않고 일하다가 60세 전후로 퇴직을 했지만 특별히 노후대책을 세우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는 경로우대증을 받아도 실질적으로 경제상황이 힘들어지니 선뜻 집밖으로 나가게 되지도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노환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고 계신 부모님은 온전히 그 자식의 책임인 것이다.
10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자식의 도리나 부모의 책임 등으로 떠넘기기에는 ‘가족간병’ 특히 ‘노노(老老)간병’은 이제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노인질환 중 많은 경우가 치매나 파킨슨(진행 중 치매발명)인데 이 병은 오랜 병치레 기간의 경제적 문제도 힘들지만 간병하는 가족구성원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받는 고통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루 종일 앉혔다 일으켰다하고 씻기고 먹이며 시중을 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일이다. 게다가 점점 흐려지는 정신은 간병인의 정신까지 흔들어놓기가 일쑤이다.
나는 어머니를 간병하는 10년 동안 이가 10개나 빠져 틀니와 임플란트를 했고 지난해에는 결국 쓰러져 삼일동안 혼수상태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몸이 힘든 것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자존감이 무너지는 우울감이었다. 아주 심한 날에는 차라리 어머니와 같이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밤마다 난리를 치는 어머니에게 그만 그 강을 건너가시라고 소리를 질러대기도 했다. 어머니를 직접 간병하면서 가시는 날까지 따듯하게 해 드리겠다고 생각했던 처음의 마음이 시간이 갈수록 흔들렸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쓰려져 보름이상을 입원해 있는 동안 동생들이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셨다.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온 후,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집에서 하루 종일 자다 깨다하며 먹고 싶을 때 먹고 읽고 싶었던 책도 실컷 읽고 음악도 듣고 했다. 내 어머니 간병하다가 내가 병이라도 깊이 나면 내 자식들이 고생할 것 같은 생각에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100세 시대라고 하니 앞으로 30년은 더 살 텐데, 늦었지만 지금부터 건강관리도 하고 앞으로 먹고 살 계획도 좀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가 식사도 제대로 안하시고 매일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편하질 않다. 치매노모 10년간 간병한다고 책도 내고 방송도 타더니 힘드니까 이제 포기한 거냐는 소리들을 하는 것 같아 자꾸 신경이 쓰인다. 무엇보다 ‘내가 빨리 죽어야지 니가 힘들지 않을 텐데...’하시던 어머니가 세상 끈을 놓으시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불안하기도 하다.
결국 나는 다시 매일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뵈러 간다. 지난 10여 년 간은 하루도 빠짐없이 삼시세끼 식사를 준비해 어머니와 밥을 먹고 대소변빨래와 집안청소를 하며 어머니 간병을 했다. 지금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죽과 국을 끓여 매일 요양원으로 간다. 돌아서 나올 때 마다 “우리 똥깡이 내일 또 와~”라는 어머니의 힘없는 인사가 가슴으로 들어와 뜨거워졌다 차갑게 식었다 요동을 친다. 그래 나는 내일 또 와야겠지. 어머니 가시는 날까지 와야겠지. 그런데 온전히 어머니에 대한 사랑만으로 채워지지 않은 내 솔직한 심정을 어디다 털어놓을 수가 없다. 나는 불안하다. 나의 미래도 불안하고 이렇게 불안한 부모를 또 내 자식들이 떠안게 될까봐 불안하다. 그렇지만 멈출 수는 없다. 이 불안을 잠재울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