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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그레고리오)씨가 서문시장 화재현장을 가리키며 당시 참담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최씨의 가게는 안쪽에 자리잡고 있고, 붕괴 위험이 있어 접근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 | 일터는 ‘잿더미’ 가슴은 ‘숯덩이’ 피해액만 1천억 넘어
건평 1500여평의 3층짜리 건물은 화마(火魔)로 인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해 버렸다. 가운데 부분은 폭삭 내려앉았고, 가장 자리는 시멘트가 떨어져 나간 채 철골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건물 안이 다 보였다.
12월 29일 밤 발생한 대구 서문시장 화재 현장의 모습이다. 불은 화재 발생 사흘째인 31일 오후 3시쯤이 돼서야 완전히 진화가 됐으며 피해액이 1천억원이 넘을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
이번 화재로 인해 신자들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계산본당의 김경찬(요셉)씨 등 6명을 비롯해 남산·내당·윤일·대안·성바울로·대명본당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20여명의 신자들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피해현황은 시장 인근본당을 중심으로 잠정 집계한 것이어서 실제로 피해를 본 신자들은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수십년 가까이 서문시장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상인들. 한달 남짓 남은 설 대목을 기대하며 상품을 평상시보다 2배 이상 들여 놓은 상태였다. 오랜 경기 침체와 대형 할인점의 공세에도 꿋꿋이 버텨오던 상인들이었지만 치솟는 불길 앞에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2지구에서 그릇점을 운영하는 최정호(그레고리오.남산본당)씨는 레지오 회합 중 화재 소식을 듣고서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나왔다. 화재가 진압될 때까지 사흘내내 현장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는 최씨는 “자신의 점포로 불이 옮겨 붙었지만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며 긴 탄식을 토해냈다. 최씨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아이들을 위해 매달린 동아줄이 끊어지는 심정”이라며 “없이 사는 사람의 전 재산이 한줌 재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마음이 어떻겠느냐”며 탄식했다.
면직물 원단 도매상을 운영하는 신정훈(요셉.58.대명본당)씨는 “점포가 없으니 앞으로는 직접 발로 뛰며 고객을 찾아다녀야 한다”면서 “믿음이 있기에 그리 걱정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세상인들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발판을 우선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로 신씨는 1억5천여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온 가족이 피해를 입은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아들, 딸과 함께 포목점을 운영해온 편수연(실비아.69.성바울로본당)씨는 30년동안 장사하며 생계를 이어온 곳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며 실신하기도 했다. 세들어 장사했던 편씨는 “연말이고, 설 대목을 앞두고 원단을 천장까지 쌓아놓았는데… 앞으로 대책도 없고, 막막해 기도만 할 뿐”이라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이처럼 피해 규모는 엄청난데도 불구하고 피해 상인들에 대한 보상은 막막한 실정이다. 입주 상인의 70~80%가 세입자여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데다 대부분 보험에 가입돼있지 않아 막대한 피해에 대한 보상은 전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현재로선 건물 자체를 새로 지어야 할 형편이어서 공사 기간 동안 장사를 하지 못하는 상인들이 입을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돼 신자들의 많은 기도와 도움이 요청된다.
한편 대구대교구 총대리 최영수 주교는 1월 2일 서문시장상가연합회 사무실을 방문, 윤종식 상가연합회장 등을 만나 성금 1천만원을 전달하고 피해상인들을 위로했다. 최주교는 “불의의 재난으로 상인들이 큰 피해를 입어 가슴이 아프다”며 “시민들과 함께 따뜻한 이웃 사랑으로 재난을 슬기롭게 극복하자”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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