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언제까지나 대련성당 막내로 기억되고 싶은 이창수 바오롭니다...
지금 대련성당에 절 기억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시는진 모르겠지만 대련 성당이 정말 그립습니다...
늦은 나이로 올해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취업준비를 시작해서
얼마전에 중견의류업체 중국 내수시장 전략팀에 합격했습니다...
지금은 서울 본사에서 교육중이고 조만간 중국 주재원으로 청도에서 일을 하게될 것 같습니다...
늦은 나이와 중국에서 대학 졸업이 사실 취업하는데 조금 걸림돌이 됐습니다...
대기업은 서류전형 통과 조차 힘들더라구여...
그런데 다행히 지금 회사와 좋은 인연이 돼서 취업이 됐습니다...
취업하고 얼마후에 인사부장님과 신입사원들과의 회식자리가 있었습니다...
회식자리에서 인사부장님께서 제가 합결할 수 있었던 이유를 가르쳐주셨는데
제 자기소개서가 굉장히 인상깊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일반 대기업에선 이력서만 보고 필터링 당하다가(걸러지다가)
제 자기소개서를 읽어 보셨다는 말씀에 굉장히 고맙고 감동받았습니다...
그런데 제 자기소개서 내용은 주로 대련성당 청년회 활동 경험이었습니다...
인사부장님께서 제 자기소개서가 인상깊었다는 말씀을 듣고
대련성당과의 인연을 주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초기 대련성당 식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그래서 제 자기 소개서 내용을 여기서 살짝 공개해 드릴까 합니다...
- 본인의 사회경험 -
<창의적 리더가 되어 중국을 배우다>
저는 한중 친선협회 부회장을 맡고 계신 아버지의 조언과 가르침을 통해 어린 학창시절부터 일찍이 중국에 관심을 갖고 중국 유학을 결심하였습니다. 유학시절 저는 보다 빠른 현지 적응을 위해 먼저 한인 성당을 찾았습니다. 한국인이 적은 대련 성당에서 유일한 한국 유학생이었던 저는 대련의 대학교를 직접 찾아다니며 한국 유학생들에게 성당 홍보를 하고 한국 유학생들을 모았습니다. 저는 대련 성당 청년회 초대회장이 되어 중국 현지에 맞는 청년회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현지 생활에 유용한 청년회 활동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유학생들의 대련생활 적응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한국과 차별화된 청년회를 운영하였습니다. 그 결과 당시 대련 한인회 간부님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고 현지 기업인들과의 교류 등 각종 중요한 행사의 준비 및 진행을 맡아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종교, 지위를 초월한 대련의 한인 봉사단체인 ‘친구집’을 통해 대련맹농학교 학생들과의 교류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했습니다. 2003년 ‘사스’ 발생 당시에는 심양 한국영사관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현지 실상을 파악하고 각종 이동제한 및 학교 내 감금 등 중국 정부의 사스 전염 예방을 위한 과도한 정책에 따른 한국 유학생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2005년에는 ‘OTIS-LG’에서 3개월간 인턴십을 통해 채권관리 업무에 참여했으며 2006년에는 아버지의 추천으로 한국, 북한, 중국 3국 정부 대표단과 함께 ‘안중근의사 유해발굴사업’에 통역 보조로서 직접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중국 현지 경험을 통해 저는 보다 효과적으로 중국을 이해하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 본인이 좋은 성과를 냈던 사례 -
<강한 책임감과 열정의 결과 – 대련맹농학교 학생들과 함께>
중국 유학시절 대련의 한국사람들로 구성된 봉사단체인 ‘친구집’에서의 봉사활동은 제 유학생활의 활력소였습니다. ‘친구집’의 주요활동은 대련맹농학교 학생들과의 교류였습니다. 2003년 10월, 저는 중국 맹농학교 학생들과 한국 사람들이 함께 손잡고 대련의 남쪽 해안도로 걷기 대회 행사를 맡아 준비했습니다. 저는 먼저 대련의 각 대학교를 돌며 한국 유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한국 단체를 직접 방문하여 현지 기업인들의 참여와 후원을 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단체활동에 인색한 중국 공안의 허가를 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당시 서툰 중국어 실력과 학생 신분이었지만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함으로써 결국 공안의 허가를 받았고 이백여 명의 행사 참가자들은 공안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안전하게 행사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공적인 행사 개최를 통해 대련 한인사회로부터 특유의 도전정신과 강한 책임감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 자기소개서의 일부 입니다...
약간의 허위와 과장이 있긴한데 당시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부분 사실입니다...^^
읽어보신바와 같이 대련성당 청년회 활동 내용이 거의 전부입니다...
저는 지금도 항상 대련성당에서의 추억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젊은시절의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비록 다시 대련으로 돌아가지는 못하지만 청도에서 생활을 하게더라도
대련성당에서의 생활을 추억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초기 대련성당 공소시절 막내 창수 바오로가 어느덧 서른살이 됐습니다...
지금 대련성당에 저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계실런진 모르겠지만
빠른 시일내에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사실 제가 자기소개서 쓰면서 종교를 너무 부각시킨건 아닌가 많이 걱정했었어여... 그치만 사실이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라 생각하고 천주교 신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썼지여...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희 회사 회장님은 한 번에 1억원 이상 기부하시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시더라구여...^^ 사실 인터넷 기사보구 혹시나 떨어질까봐 살짝 쫄았었거든여...^^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_ _)(^.^)
막내 바오로 장아가다 아줌마야 그일이 엊구제 같은데 반모임에 초대햇던일과 그동안 많이 많이 노력했던일들 그모든일에 함께하신 그분께 늘 감사를 ... 창수 바오로의 발걸음을 함께하신 바오로사도의 길을 ...넘 축하해 화이팅
와!!! 아가다 아줌마!!!^^ 정말 반가워여~~~ 베드로 형제님도 안녕하시져??? 로사도 이제 어엿한 숙녀가 됐겠네여...^^ 정말 보구싶어여...
오 축하하네 ㅋㅋㅋ 나도 열심히 살면 다 되더라 험난한 서울생활 대련생활보다 힘든거 같아 ~ㅋㅋ
열 일하고 수고하게나
홍식이형 정말 올만이네..^^ 지금 서울에 있는거??? 기회있음 함 보자구여~~~^^
빡빡이 엄마 스테파니아를 아실런지
당연히 기억하지여!!!^^ 이제 학부모가 되셨겠네여...^^ 지금도 중국에 계시나봐여... 상해에 계신다구여??? 저희회사 상해 출장이 꽤 잦은 것 같은데 꼭 함 뵙고 쉽네여... 형님께도 대신 안부 전해주세여... 오랜만에 반가운분들 소식 들으니깐 넘 좋아여...^^
구리빛 얼굴에 터벅머리의 사나이!!! 창수바오로 오랜만일세... 취업 축하하네. 글구 조오기 위에 신 스테파노네 상해 사신다고.. 반갑습니다. 전번이라도 남기시면 모처럼 통화나 한 번 하고 싶습니다.
신부님??? 글찮아도 중국가기전에 조만간 전화드리고 찾아뵐려고 했는데... 기다리십쇼!!!^^
옙 요셉신부님 잘 지내시지요 연락두 못드리고...죄송...훈 요셉이가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네요. 범이 요한이는 중학생이구여...짜 빠르지요 글구 저희 상해에 있습니다.
저희 빡빡이
세월 진
오실 일이 있음 한번 뵈어요... 신 스테파노 1360-1811-202 스테파니아 1367-1847-106 입니다요...
건강하십쑈
바오로, 축하합니다. 도서관에 열심히 다닌다는 소식만 나누고 그 뒤가 궁금했었는데 참 잘되었습니다.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길 빕니다. 함께 했던 대련생활이 생생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위에서 언급한 활동 모두 오회장님께서 지원해주신 덕분이었습니다... 취업전에 꼭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전화만드리고 기회가 닿지 못했습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