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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정성으로 빚어낸 우리 술. 우리 술에 깃든 고아한 멋 / 한국의 美
ysoo 추천 0 조회 104 18.08.15 21: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살아가고 사랑하고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에 낙관과 사랑이 생겨나게 하는 것은 열렬함과 치열함이 아니라,

한낮의 햇볕과 한 줌의 바람 그리고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구름일 수도 있다는 것.


- 최갑수의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중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햇볕과 바람, 흘러가는 구름 같은
아주 소소한 것들입니다.


지금 느껴지는 모든 것이
오늘을 살아가고 또 사랑하게 합니다.


에디터 방은주

포토그래퍼 김재이



contents  SEPTEMBER 2017




정성으로 빚어낸 우리 술


기름진 우리 땅에서 수확한 건강한 곡물에 맑은 물과 정성, 그리고 인고의 시간을 더해 빚은 우리 술. 전통주에는 우리 문화와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와인, 체코의 맥주, 러시아의 보드카, 일본의 사케, 중국의 마오타이….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어떤 술과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는 깊은 맛과 향취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고유의 명절 추석을 앞둔 9월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집집마다 햅쌀로 차례 지낼 때 쓸 술을 담그느라 어머니의 손길이 분주해지고는 했는데요.
술 담그는 풍습은 사라졌지만, 우리 전통주의 풍미는 여전합니다.
정성으로 빚은 우리 술, 한잔 술에 깃든 멋과 맛을 음미하러 떠납니다.


에디터 방은주 캘리그래퍼 강병인 포토그래퍼 이승헌 어시스턴트 노상욱
요리 및 스타일링 김상영, 이빛나리, 장연지(noda+ 쿠킹스튜디오)


한국의 美_ESSAY


40년 주당의 아쉬움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참 많이도 마셨다.

20대 초반, 고향과 서울을 오가는 중앙선 열차 안에서 이미 저 끝없는 ‘국민 사랑’, ‘소맥’을 마셔댔으니. 삶의 부침에 따라 막걸리에서 꽤 좋다는 술까지 두루 마시기도 했다. 때로는 값싼 중국산 얼궈더우주(이과두주, 二鍋斗酒)의 독한 알코올에 필름이 끊기기도 했고, 북한산 대동강맥주에, 선망의 30년산 위스키도 몇 병쯤 맛보았으니 주선(酒仙)의 경지는 못 되어도 주당(酒黨)에는 들 것이다.

그렇게 한 40년쯤 술과 벗했으니 술맛에 대한 평가도 나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내 결론은 ‘한국인에게 술은 역시 소주’다. 그저 개인적 취향으로만 간주하지 마시라. 독일에서 간 박사로 저명한 팔순의 노의사가 쓴 글에도 ‘삼겹살과 소주’는 의학적으로 지극히 우려되는 조합임에도 한국인이 생생한 것은 생래적·문화적 특질이라는 말씀이 있으니. 그런데 주당 40년에 언제나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으니 질펀한 소주판에서 찾을 수 없는 품격, 혹은 문화적 전통을 당당히 말할 수 없음이었다.


전통주 ‘안동소주’에 홀딱 빠진 때가 있었다.

유래(由來)의 명확함, 변함없이 지켜온 전통, 대를 이은 전승자의 자긍심, 가족의 학문적 연구…. 향과 맛에서도 전통주로서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더하여 우아한 백자 호리병이 술상 위에 오르면 왠지 허리를 곧추세우게 되고, 함부로 흐트러지지 않으려 긴장하기까지 했다. 불편한 술자리였을 것 같다고? 절대 아니었다.

점잖게, 품위에 신경 쓰며 마신 술자리의 끝은 오히려 산뜻하고 아침에 눈을 떠도 숙취 따위는 없었다. 객기가 발동해 맥주와 섞어 폭탄주로 마셔도 여느 혼합주와는 다른 품격이 느껴졌고. 다른 전통주도 두루 마셔봤다.


 일단 막걸리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리 싼 편은 아니니 향과 맛에 격이 있고 함부로 질펀해질 수도 없다. 아쉬운 점은 그저 비싼 가격 때문에 대중화가 어렵다는 게 아니라 굳이 가‘ 성비’를 말할 수 없는 딱 떨어지는 매력 부재와 대부분 엇비슷한 향과 맛이었다.


독일은 흔히 맥주의 나라로 생각한다. 하지만 북유럽이나 서유럽 많은 나라에서도 맥주를 생산하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남유럽이 와인의 나라라 하지만, 독일은 화이트 와인과 아이스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놀라운 것은 독일에는 발효주, 혹은 약술도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여러 약초는 물론, 생선까지 발효주로 만들어 전통 건강주로 명맥을 잇고 세계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심지어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 시절 들여온 중국 마오타이주(茅臺酒) 기술로 오크통에서 발효한 독일판 마오타이주를 생산해 역수출을 시도하고 있다.


뒤늦게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 소설을 쓰며, 말로는 반만년 역사와 전통 운운하는데, 딱히 내세울 전통문화는 지극히 한정되어 글에 녹일 ‘거리’가 없는 한계에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다.

천년 왕국 신라 말고도 고구려, 백제, 가야, 고려, 조선이 모두 500년 왕조 아닌가. 규모와 상관없이 500년 세월을 지킨 권력이라면…. 그 장구한 권력의 정점 왕실을 위한 음식, 술이 어찌 다양하고 품격 높지 않았을까.


유적을 발굴하고 유물을 찾아 우리 역사를 빛내는 일도 중요하다. 더불어 소홀히 했던 생활 속 사소한 전통을 찾아내 지키는 것 또한 이제는 제대로 돌아볼 때다. 아니, 그 작은 생활문화가 빚어낼 다양함은 우리 삶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고, 윤택함까지 가져다줄지 모른다.


예전에도 여러 종류의 술을 담갔다는 기록은 있다. 요즘처럼 들입다 소주나 부어 담그지는 않았을 테니 포도를
발효시킨 와인처럼 산야의 여러 풀과 꽃으로 빚는 나름의 비법이 있었을 터이다.

곡물과 누룩으로 빚는 전통주도 다양한 변신이 필요하다. 전통은 새로운 창조의 발판도 될 수 있음이니 말이다. 한때 술‘ 장인’으로 인생 변신을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역사를 쓰고자 10년도 넘게 타국을 떠돌며 공부하고 탕진한 본전 때문에 포기했다. 그래도 누군가 새 술을 빚어 술맛을 봐달라면 기꺼이 달려갈 용의는 있다.


글 김정현(소설가) 포토그래퍼 김재이


한국의 美_STORY


우리 술에 깃든 고아한 멋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전국 각지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로 술을 만들어 마셨다.

좋은 재료로 만든 술은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문화였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자연과 더불어 인생을 즐기는 데 최고의 명약이었을 터.


우리 술에 깃든 고아한 멋과 삶의 지혜를 엿본다.


세시 풍속과 어우러지는 절기주


우리 선조는 계절별로 다른 종류의 술을 나눠 마시며 공동체 생활을 이어갔다.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인 설에는 ‘세주(歲酒)’를 만들어 차례상에 올렸다. 세주는 새해를 맞는 설렘과 복을 기원하며 정성과 신성한 마음으로 빚은 술이다. 아이가 마셔도 될 정도로 순하게 빚어 세주로 자녀에게 술 예절을 가르치기도 했다.

귀밝이술인 이‘ 명주(耳明酒)’는 정월에 마시던 절기주로, 보름에 찬술 한 잔을 마시면 귓병이 나지 않고 귀가 밝아진다고 믿었다. 정월이 지나고 봄이 오면 산야가 온통 꽃으로 뒤덮인다.

3월 초사흘 삼짇날이 되면, 동네 아낙들은 소쿠리를 하나씩 들고 산에 올라 진달래를 땄다. 연분홍 진달래로 화전을 만들기도 했지만 두견주(杜鵑酒)도 빚었다. 청주에 진달래를 넣어 담그는 두견주는 달콤한 맛과 은은한 꽃향기가 일품이다.


봄이 한창 무르익을 즈음, 하루 차이로 청명과 한식일이 찾아온다. 이때는 찹쌀로 만든 청명주(淸明酒)와 함께 조상의 묘를 찾았다. 봄기운이 절정에 달하는 단오에는 창포주(菖蒲酒)를 즐겼다.

창포주는 포은 정몽주가 좋아했던 술로, 과거 지조 있는 선비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전해진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가 아름답고 술은 알맞게 먹어야 즐거운 것’ 이라는 말처럼 당시 선비는 창포주를 적당히 즐기며 안분지족(安分知足)함을 아름다운 풍류로 여겼다.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하는 음력 6월 15일은 유둣날로 시원한 계곡에서 목욕하고, 그해 여름 큰 탈이 나지 않기를 바라며 계곡에 모여 탁주(濁酒)를 즐겼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물러설 즈음에는 농경 사회의 최대 명절인 한가위가 돌아온다. 이때는 조상에게 바칠 술과 떡을 햅쌀로 만들었는데, 이때 빚은 술을 ‘신도주(新稻酒)’ 또는 ‘햅쌀술’이라고 했다.

가을이 깊어지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는 야생 황국을 넣어 만든 국화주(菊花酒)를 마셨다. 지천에 널린 들국화는 향기가 진하고 약효가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늦겨울에 마시던 전통주의 주인공은 엄동설한에도 고고한 자태로 피어나는 매화다.
매화는 향기가 진해 천 리까지 전해지고, 자태는 고상해 선비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고의 재료였다.


김홍도 풍속화첩 - 주막



금주령에서도 허용한 탁주와 약주로 둔갑한 소주


전통주를 대표하는 탁주와 청주(淸酒) 중에서 서민의 사랑을 받은 것은 당연히 탁주라고 할 수 있다. 제조
과정에서 많은 곡식이 소모되는 청주가 특권층만 즐길 수 있는 고급주였다면, 탁주는 거르거나 짜는 과정
을 거치지 않아 비교적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었다.

탁주인 막걸리라는 이름은 ‘막(마구) 걸렀다’ 또는 ‘함부로 걸렀다’는 의미로, 빛깔이 쌀뜨물처럼 희고 탁하다는 뜻에서 탁배기, 집에서 담그는 술이라는 의미의 가주(家酒), 빛깔이 우유처럼 희다고 해 백주(白酒)라고도 했다. 탁주는 지역마다 개성 있는 비법과 특산물을 이용해 그 맛과 향이 무척 다양하다.


조선 영조 때 부족한 식량을 조절하고 곡물의 낭비를 막기 위해 금주령을 시행했다. 그 당시 금주령을 어긴 이는 사형에 처할 정도로 중형으로 다스렸는데, 군사 훈련을 마친 군인과 농부가 마시는 탁주만큼은 금주령에서 제외했다고 전한다. 농부의 고단한 일과를 격려하고 농사의 흥을 돋우기 위해 절기마다 만들어 마시던 농주 대부분이 막걸리였다고 할 수 있다.


소주는 곡류를 발효한 술을 증류해 만드는 것으로 일종의 증류주다. 증류 과정에서 한 방울씩 이슬처럼 받아 내는 술이라는 의미로 노주(露酒)라 하고, 화주(火酒), 기주(氣酒)라고도 한다.

소주의 유래는 원나라가 일본을 정복하기 위해 고려 각지에 병참 기지를 세우면서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안동, 제주, 개성이 주 병참 기지였는데, 이때 몽골군에 의해 소주 증류 기술이 퍼졌다는 것이다. 그 당시 안동 사대부들이 몽골인에게 전수한 제조 비법을 가문마다 계승하고 유지해 오늘날 소주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조선 시대 지나친 식량 낭비로 금주령이 내려졌을 당시 사대부가에서는 병을 고친다는 핑
계로 약술(藥酒)을 만들어 마셨다.

금주령에 ‘늙고 병들어 약으로 술을 마시는 것은 제외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약주를 핑계 삼아 금주령을 피한 것이다. 신윤복의 풍속 도첩인 '주사거배(酒肆擧盃)’에는 접대를 받다가 감찰에 걸린 별감의 당혹스러운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궁중 화원이던 신윤복은 술 한잔을 마시더라도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마시라는 의미로 ‘술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술 항아리 끌어안고 맑은 바람 대한다(擧盃邀晧月 抱甕對淸風)’는 재치 넘치는 제화시를 그림에 덧붙여놓았다.


酒肆擧盃 신윤복(申潤福)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국보 제 135호). <주사거배(酒肆擧盃)>


명인 안동소주 양조장                                            전통주갤러리



우리나라 지역별 전통주


고려 시대 여러 유생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한림별곡’에는 황금주, 백자주, 예주, 죽엽주 등 많은 종류의 술이 기록돼 있고, 이규보가 술을 의인화해서 지은 소설 <국선생전>에도 백주, 화주, 춘주 등 다양한 술이 등장한다. 예부터 얼마나 많은 술을 빚고 즐겼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는 계절별로 혹은 지역별로 개성 있는 방식과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 만든 다양한 전통주가 있다.

죽력고, 이강주, 감홍로는 조선 3대 명주로 불렸다.

죽력고는 대나무가 많이 나는 전라도 지방의 전통주로 사흘간 찐 푸른 대나무 기름인 죽력에 꿀과 생강 등을 넣어 만든 증류주다. 워낙 정성이 많이 들어가기에 죽력고를 마시면 ‘정성에 한 번 취하고 그윽한 맛에 두 번 취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강주는 주로 부유한 사대부가에서 약술로 마시던 소주로 배와 생강, 울금이 들어간다. 울금은 조선 시대 진상품으로 땅에서 나는 황금이라고 할 정도로 귀하게 쓰인 약재다. 울금의 주산지인 전주 지방의 대표 약술인 이강주는 울금의 약효를 그대로 술에 녹여 명약주로 불린다.

평양 지방에서는 ‘태양의 술’이라는 감홍로가 유명하다. 이 술은 조선 시대 농업 백과사전으로 통하는 <임원십육지>에 의하면 ‘소주를 세 번쯤 고아서 만드는데, 이슬 받는 항아리 밑바닥에 꿀을 바르고, 다시 여기에 지치를 넣어 만든다. 맛이 매우 달고 맹렬하며 빛깔이 연지와 같아 홍로주 가운데서도 으뜸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감홍로의 감(甘)은 단맛을, 홍(紅)은 붉은색을, 로(露)는 증류된 술이 항아리에 맑은 이슬처럼 맺힌다는 의미로 미각, 시각, 후각 모두를 만족시키는 흥미로운 명품주다.


우리나라의 대표 가양주로 쌀을 주재료로 사용해 증류 기법으로 만드는 안동소주,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과 솔잎으로 빚은 경남 함양의 솔송주, 논농사가 어려운 제주에서 좁쌀로 빚어 만든 고소리주 등 현재까지 이어지는 술이 무려 200여 종에 이른다. 전통주, 쉬이 잊히기에는 너무 아쉬운 우리 문화다. 고아한 멋을 지닌 우리 술이 와인이나 맥주 이상으로 사랑받고 널리 이름을 드높일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글 홍순채(자유기고가)

에디터 방은주 포토그래퍼 김재이, 이승헌 자료 협조 국립중앙박물관 참고 자료 <다시 쓰는 주방문>(박록담 지음,코리아쇼케이스 펴냄), ‘조선시대 선비들의 탁주(濁酒)이해와 음주문화’(김준혁 논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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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酒幕)에서 / 김용호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酒幕).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情)처럼 옮아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集散)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의(威儀)있는 송덕비(頌德碑) 위로

맵고도 쓴 시간(時間)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人生)을 안주하여

주막(酒幕)을 나서면,

노을 비낀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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