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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무더워졌다. 유난히 행사가 많은 오월이지만 도시에서 펼쳐지는 행사장을 찾다보면 더위와 꽉 막힌 교통 등으로 인해 오히려 짜증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때는 교외로 나가고 싶은게 사람들의 마음이다.
전주에서 남원쪽으로 나들이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완주군 상관에서 시작되는 서남권국도대체우회도로에 들어서면 답답하게 막힌 속이 확 트인다. 복잡한 도시생활이 모두 잊혀지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뿐이다. 또다시 장벽에 부딪친다. 불과 8㎞ 남짓 달리면 구이에서 도로가 끊기기 때문이다.
△지지부진한 서남권국도대체우회도로
서남권 국도대체우회도로는 완주군 상관에서 구이와 이서, 용정을 지나 익산시 춘포로 연결되는 총연장 33.4㎞의 도로이다. 지난 1998년 공사가 시작된 이후 만 10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개통된 구간은 상관-구이간 8.3㎞ 뿐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상관에서 구이, 이서를 지나 용정까지 이어지는 25.8㎞ 구간이 지난해 연말까지 모두 개통됐어야 했다. 하지만 2005년 4월 상관-구이 구간이 개통된지 만 2년이 넘도록 나머지 구간은 아직도 ‘공사중’이다.
이에따라 사업시행자인 익산국토관리청은 당초 계획을 변경해 구이-이서-용정간 17.5㎞ 구간을 2008년말까지 개통시킨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같은 약속이 지켜질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다. 토지보상이 아직 끝나지 않은데다 문화재도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다.
△빚만 쌓여가는 전주시
서남권국도대체우회도로 33.4㎞ 구간중 전주시 지역을 지나는 곳은 13.4㎞이다. 사업은 국비로 시행되지만 이 구간에 대한 토지보상은 전주시가 맡아야 한다. 이를위해 전주시가 부담해야 할 돈은 모두 308억원. 그러나 현재까지 투자한 예산은 240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79%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도 240억원중 187억원은 빚을 내서 충당한 것이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35억원 정도를 확보해야 하지만 전주시의 재정형편상 쉽지 않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2003년부터 오는 2011년까지 추진되는 북부권 국도대체우회도로 공사가 기다리고 있다. 조촌동 용정에서 아중역을 거쳐 동서학동 색장리까지 18.6㎞를 연결하는 이 사업중 전주시 구간은 11.77㎞. 이 구간의 토지보상을 위해서는 250억원을 전주시가 투입해야 한다. 전주시의 입장에서는 도로공사를 위해 또다시 빚을 져야 하는 실정이다.
그렇다고해서 이 사업을 포기할 수도 없다. 이들 2개의 국도대체우회도로가 개통되면 전주시 도심의 교통흐름이 크게 개선되기 때문이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차량들이 굳이 전주시내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고 도심 교통난도 그만큼 덜어진다. 시민들의 생활편익이 커지는 것이다.
△잘못된 제도
도내 14개 시군중 국도대체우회도로 공사가 없는 곳은 없다. 그러나 유독 전주시만이 재정적인 어려움에 부딪쳐 있다. 전주시가 다른 시군에 비해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도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현재의 도로법은 국도대체우회도로의 관리주체를 2원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市) 관할구역내 동(洞) 지역은 해당 자치단체장이 관리하고 군(郡) 지역과 도농 복합의 읍·면 지역은 건교부장관이 관리하도록 되어 있다. 관리주체가 다르다는 것은 도로개설때 보상비를 부담해야 할 주체가 다르다는 뜻이다. 이에따라 전주시는 서남권국도대체우회도로와 북부권 국도대체우회도로 2개 도로의 개설을 위해 무려 558억원을 부담하고 있다.
△제도개선 노력
그러나 국도대체우회도로는 시내의 교통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국도의 간선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지방도로라기 보다는 일반 국도의 성격이 훨씬 크다. 이에따라 이원화된 도로법 규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있었고, 실제로 시도되기도 했다. 지난 2003년 8월에는 열린우리당 이창복 의원 등이 도로법개정안을 입법발의했으나 2004년 5월까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해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또 2005년 5월에는 민주당 최인기의원 등이 ‘도농 복합형태의 시(市)에 있어서 동(洞)지역의 일반국도의 경우, 건교부장관이 도로관리청이 된다’는 내용이 포함된 개정안을 입법발의, 건교위에 회부됐으나 처리되지 못했다.(그러나 최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도농 복합형태 도시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입법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전주시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
전주시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등을 통해 도로법 개정안을 꾸준히 건의했고 이광철의원은 2006년 10월 장열달, 채수찬, 한병도, 최규성, 조배숙, 김춘진 의원 등 17명과 함께 ‘도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현재 이원화되어 있는 국도대체우회도로의 관리청은 건교부장관으로 일원화해 토지보상을 정부가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앞으로의 전망
이같은 도로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국도대체우회도로 건설에 따른 공사비가 워낙 많이 들기 때문에 보상비까지 모두 지급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72곳에서 국도대체우회도로 공사가 펼쳐지고 있으며 총사업비는 10조8504억원으로 예상된다. 도로관리청을 건교부장관으로 일원화하여 보상금을 모두 국비로 지원할 경우 6295억원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올해 도로법을 개정하지 못하면 앞으로 갈수록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17대 국회의 임기가 폐쇄되기 전에 도로법 개정을 위해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도로법 개정안이 17대 국회에서 통과되느냐여부에 따라 전주시는 앞으로 수백억원을 부담해야 할 수도 있고, 부담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