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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는 무얼 팔았니? 돈은 얼마를 받았니? 얼마를 거슬러 주었니? 네가 돈상자를 만지는걸 그 사람이 보았니? 담배를 산 군인은 바로 갔니? 바로가지 않았으면 무얼 했니?
이야기인즉슨 지금이야 초등학교라고 하지만 국민학교 1학년 꼭 이맘때쯤이니까 지금부터 정확히 한 50년전의 얘기가 되겠네. 장마통이었다. 행길옆 도랑에 풀포기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비가 잠시 그친 사이 오후 한 3시쯤 되었을까 장마뒤에 오는 하늘은 쨍그랑 소리가 날 것 만 같이 맑고 투명해 쨍쨍 내려 쬐며 달려드는 해가 이그이글 거리는데 엄마는 조 위 행길건너 한 이백미터나 되는 채마밭에 김장배추 얼갈이와 열무를 솎으러 가셨다.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라고 하시면서 집을 잘 보라고 했다.내게.
나는 알았어 엄마 큰소리로 씩식하게 외치고는 방학 숙제를 한다고 방학 책을 방바닥에 펴놓고 온돌이 시원하니 배를 쭉 깔고 엎드렸다가 공부를 몇자나 했는지 안했는지 팔을 베고 몰려오는 졸음과 씨름을 하고 있는데 자동차 소리가 나 얼른 고개를 드니 집앞에 찦차 한 대가 선다.
차를 마당전 행길가에 세우더니 운전을 하던 사병 군인아저씨가 앞마당을 가로질러 들어온다. 우리집은 47번 국도인 행길과 마당이 붙어 있었다. 행길에서 한 스무나므 발짝만 들어오면 가게방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었고 전방을 오가는 군인 수송차량들이 쉬어가는 길목이기도 했고 조그맣게 가게를 하고 있어 퇴계원에서 부터 서파 봉수리를 지나 일동. 이동. 신수리. 와수리.철원까지 5사단 6사단 7사단 8사단 11사단 전방을 오가는 군용차량들이 이따금씩 쉬어가곤 했다. 물도 마시고 졸음도 쫓고 휴식을 잠깐식 취하고 가는 휴게소인 셈이었다.
그러니 군인은 우리집의 손님이기도 했고 머물러 가는 길손이기도 했다. 비록 조끄만 아이였지만 군인이라고 해서 내가 그들을 무서워하거나 피하지는 않았다. 그때 집안으로 들어선 운전병이 몰던 찦차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빈차를 두고 내린 운전병 혼자 들어와 꼬마야 담배 있냐고 묻기에 네 대답을 하니 담배 한갑을 달라고 한다. 무슨 담배였는지 이름을 기억할 수 없지만 담배 한곽(갑)을 내어주고 받은 담배값이 커서 선번위 이불 옆에 있던 상자에서 돈을 꺼내 잔돈을 거슬러 주었다.
그때 이 아저씨가 물을 한그릇 달란다. 방에서 부엌으로 바로 나가게끔 창호 여닫이 문이 나 있는 문지방을 냉큼 넘어 부엌에 나가 물을 뜨려니 꼭 송사리가 보록뽀록 숨쉬듯이 아주 작은 기포들이 뽀글뽀글 양은 빠께스(양동이) 안쪽에 달라붙어 있는게 물이 미지근해 보였다. 난 양재기(양은 그릇)에 물을 뜨다 말고 , 그릇을 들고 나가 뒤꼍에 있는 우물에 가서 한 두레박 물을 퍼올려 물을 떠가지고 와 군인 아저씨에게 내밀어 주었다. 잘 먹었다고 인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군인 운전병은 차를 몰고 갔고 한참을 심심해 하던 나는 쪼르르 달려나가 엄마가 밭을 매고 있는 곳으로 뛰어가서는 엄마 내가 담배 팔았다고 자랑스레 말했고, 그랬느냐고 엄마는 별스럽지 않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김을 매는 엄마 옆에서 질적질적한 빝고랑에 발자국을 내고 흙장난을 하다 그것도 싫증이나 밭둑에 오도마니 올라 앉아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살을 목덜미에 두르고 엄마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자고 징징거리고 치대니 엄마도 귀찮았는지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잔다. 나는 땅강아지 같이 흙범벅이 된 손과 발을 도랑물에 씻었고 엄마는 호미까지 깨끗이 씻어 휑구어 가지고 집엘 왔다.
엄마와 나는 마당가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 그늘 밑에 넓적하고 편편한 돌맹이를 하나씩 깔고 앉아서 솎아온 배추와 열무를 양은 다라이에서 쏟아 다듬고, 나며지는 몽당 수수빗자루로 쓸어서 부삽에 담아 돌담불에 버리는걸 끝으로 뒷정리를 마치고 들어와 엄마가 물었다. "담배 팔았다더니 돈은 어디다 뒀니?" "엄마 거기 돈상자에 있잖아?" 대답을 하고 돌아서니 엄마가 돈이 하나도 없으니 어찌된 일이냐는데 난 분명히 담뱃값을 받고 잔돈을 거슬러 주기까지 했으니 어린 맘에도 어처구니가 없고 어안이 벙벙할 밖에...
벌떡 일어나 아까 분명히 거기다 뒀는데 라며, 돈이라고는 아까받은 담배값이며 먼저 있던 돈들까지 하나도 없는 빈상자를 받아들고 맴을 돌고, 우리 엄마는 얘가 혹시 돈을 이불밑에 넣은게 아닌가 싶어 그러시는지 이불 켜켜를 다 뒤지고 계셨다. 예전엔 웬만해선 종이돈 지폐는 대게 이불밑에 넣어두곤 했으니까.
난 아닌데 아닌데 하며 멍하니 서서 돈상자라야 Y셔츠 상자곽을 뚜껑에 포개어 논 것이어서 더 볼 것도 없고, 그렇다고 내려놓지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데 엄마는 뭔가 이상하다 싶으셨는지 방바닥을 살피기 시작하셨다. 방 이라고 해봐야 가겟방과 장지문을 사이에 둔 안방 두칸이니 살피고 자시고 할 것도 없긴하지만 엄마는 방바닥에 난 군화 발자국 몇개를 금방 찾아냈다. 그리고는 날보고 집보랬드니 어딜 갔었냐고 하신다 . 난 아무데도 간적이 없고 엄마한테 간것 뿐이라고 했고 그때부터 우리 엄마의 단호하고 날 선 추리가 시작 되었다.
그럼 담배는 무얼 팔았느냐? 돈은 얼마짜리를 받았느냐? 얼마를 거슬러 주었느냐? 네가 돈상자를 만지는걸 그 군인이 보았느냐? 담배를 산 군인은 바로 갔느냐? 바로가지 않았으면 무얼 했느냐?
지금생각해 보면 무슨담배인지 정확히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당시엔 풍년초라고 잎담배 썰어 놓은걸 長竹이나 곰방 담뱃대에 담아 성냥이나 라이터로 불을 붙여 피우거나 했는데 그 당시에도 우리 엄마의 6촌 오라버니 되시는 덕구 오빠네 아저씨(동환) 는 담배 쌈지에서 담배를 덜어내 곰방대에 담아서는 꼭 부싯돌을 사용해 불을 붙이시곤 했다. 얘길 하다보니 엊그제 같은데 꼭 반세기의 세월이 훌쩍 가버렸군.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이 되어버리고 말았네 그래.
그렇게 종이에 말아 피울수 있게 누런 봉투에 담아 논 게 있었고 궐련 담배가 있었는데 그 중에 금관이라고 해서 하얀 포장에 사회책에 나오던 옛날 왕들의 금관이 그려진 담배가 있었고 아리랑이라고 태극문양을 바람개비 모양으로 형상화한 빨강 파랑색이 선명한 포장의 아리랑 담배도 있었다. 또 다보탑같이 그려진 석탑이 포장이었던 담배가 있었는데 이름이 파고다였다. 이름이 파고다인걸 보면 아마 파고다 공원안에 있는 석탑이었겠지 싶다. 지금이야 다 잊었지만 풍년초는 당근 아닐것이고, 궐련인데...
어떤 담배를 주고 얼마를 받고 얼마를 내 주었다. 내가 돈을 넣고 꺼내는거야 봤는지 어쨌는지 잘은 몰라도 담배를 줬드니 물을 달라고 해서 물을 떠다 주었다. 물을 떠 주는 사이에 그럼 군인이 도둑질을 해갔다는 얘긴데 너는 부억에서 뭘 얼마나 오래 있었길래 돈을 훔쳐가도 몰랐느냐고 엄마가 다시 물었다. 나는 그때 부엌에서가 아니고 우물에서 물을 떠다 주었다고 대답했다. 이제는 추리고 뭐고 아주 자명한 노릇..
엄마는 부엌으로 나가시더니 아니 여기 빠께스에 물이 있는데 왜 우물까지 갔느냐고 하셨다. 난 빠께스에 있는 물이 미지근해서 우물에서 찬물을 떠다 주었다고 있는대로 말했다. 빠께스 안쪽면에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오는건 물이 시원하지 않다는 증거고 빠께스 바깥면에 땀이 줄줄 흐르고 뽀얗게 김이 서리는건 물이 시원하다는 증거였다. 한여름이니 퍼다 논 물이 금방 뜨듯해지고 엄마나 나나 그런 물은 웬만하면 먹지 않고 꼭 우물에서 새물을 떠다 먹었다. 그러니 지나가던 사람이이라고 해서 미지근한 물은 어린 맘에도 줄수가 없었던 거다. 내가 먹듯이 금방 뜬 시원한 냉수을 주는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내겐..
우리집 구조는 이랬다. 한 칸짜리방 2개와 ㄱ자 구조로 붙은 부엌이 1칸 그야말로 세칸짜리 초가 삼칸이었는데 방하나는 가겟방 하나는 살림방이자 안방이었다. 서향인 부엌문을 나와 부엌 뒤곁을 돌아야만 되는 곳에 우물이 있었다.
집은 신작로를 향해서 앉은 서남향 이었고. 가게방 문은 판장문으로 4개를 이어달게 되어 있었다. 판장문 안엔 창호미닫이가 두짝으로 앞뒤로만 밀어 열고 닫을수 있고. 한여름이니 판지문운 3짝을 떼어서 앞벽에다 세워 놓고 창호 미닫이도 통상 열어놓고 살았다. 저녁이 되면 판자문 두짝을 밀어넣고 있다가 밤에 잠을 잘때면 한장을 마져 닫고 안에서 문고리를 잠그게 되어 있었는데 이런 집구조상 우물에 돌아가서 물 떠다 바친 딸내미가 죄인이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상황이니 엄마는 나를 더 이상 혼내킬 계재도 아니었다. 도둑놈인지도 모르고 시원한 물 대접한다고 우물까지 가서 냉수를 떠다 멕였드니 아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도둑질까지 해갈줄이야, 그걸 누가 말리랴. 우리 엄마가 뿔이 나기 시작했다. 고얀놈, 천하에 고얀놈! 저 시원한 물 멕이겠다고 어린게 우물까지 가서 냉수 떠오는새 도둑질하고 염치좋게 떠다 준 물 한 대접 다 들이켜고 갔으니 천하에 고얀놈도 그런 고얀놈이 없었다, 그놈이. 그래도 여기까지는 봐줄만 했으니 더 큰 일은,
여름 해는 길어서 어지간해선 어둡기전에 저녁밥을 먹게 되어 있었다. 저녁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엄마가 앉을뱅이 책상위에 있는 호야에 성냥을 그어 대 불을 붙이시더니 아니 시계가 어디로 간거야? 했다 책상 위에 탁상시계가 있었고 그 탁상 시계엔 붓 두개를 형상화한 긴 막대가 붙어 있었는데 엄마가 어디 외출할때 빼고는, 그 막대에 엄마의 손목시계를 매달아 놓았었다.
근데 그 금시계가 없단다.지금. 연욱아 니가 시계 치웠니 하고 물으신다 아니 엄마 난 시계 안 만졌는데... 이제 정말 올것이 오고야 말았다. 낮에 돈만 훔쳐간게 아니었다. 울 엄마의 손목시계 까지 가져갔다.그놈이.
그 시계야말로 우리엄마가 내가 얼굴도 본 일이 없는 우리 아버지와의 추억 그리고 삶이 몽땅 담긴 하나 남은 유일한 물건이었다. 줄이 노오란 시계였다.그시계가 정말 금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몰라도 나는 금시계라고 불렀다. 엄마는 어이쿠 하시더니 풀썩 주저 앉았고 나는 더이상 온전한 정신으로 앉아 있을수가 없었다. 그시계를 엄마가 얼마나 애지중지하는 물건인지를 아는 까닭에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당시로써는 값비싼 시계임엔 틀림이 없을것 같다. 왜냐면 울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영국군과 터키군이 함께 주둔해 있던 부대에 근무를 하셨고 생필품을 모두 영내 PX에서 사다 썼다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9년째 이곳으로 이사를 온지는 3년 되었으니까.) 그밤을 어떻게 지샜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음날 아침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엄마의 당질조카인 찬구오빠와 식구들 언니 아주머니가 다녀갔고 소문은 금시 퍼져 연욱 엄마 도둑맞았다메요? 아니 거 뭔 일이래.. 어지간한 동네 사람은 다 모여 들었다. 물꼬를 보고 오던 은자 아버지 해석 아버지는 삽과 괭이를 멘채. 흥구오빠네 아저씨 아주머니 태식이 엄마 명숙이 할머니, 저 움말 윤숙엄마 운영이 오빠네 엄마 아버지까지. 말의 말은 꼬리를 물었고 그런 고얀놈은 혼구녕이 나야 한다는 이구동성이 쏟아지더니 급기야 여기저기서 비방이 터지기 시작했다. 누구의 의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중에 이런 하나가 채택이 되었다.
미꾸라지를 잡아다 눈을 바늘로 꿰어서 부엌 부뚜막 뒤 문설주에 매달아 놓으면 미꾸라지 눈이 멀 때쯤이면 도둑놈의 눈도 먼 대드라. 그럼 그게 좋겠다. 누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얘기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고 결론은 났다. 미꾸라지를 잡는걸로. 그리고는 얼마 안 있어 동네 개구쟁이들이 검정 고무신에 기름종개를 잡아 왔다. 엄마는 애 썼다고 과자를 주었는지 돈을 주었는지 했다. 미꾸라지는 원래 진흙이 있는 연못이나 진흙논에 사는데 나 살던 그동네 소학리 새말은 워낙 산이 높고 돌맹이 자갈 모래만 많아 미꾸라지는 아예 없었다.
개울엔 버들치, 피래미, 송사리 메기,개뚝지,달팽이(우리는 그렇게 불렀는데 요즘은 다슬기라고들 한다) 기름종개, 가재, 모래무지, 개구리 이런 물고기만 많이 살았다 그러니 꿩 대신 닭이라고 애들은 미꾸라지 대신 모래속에 사는 기름종개를 잡아온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하나도 급할게 없었고 바늘을 찾아와라, 뭘 어째라 저째라,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갈 만하다가 그래도 제자릴 잡고 누군가 나서서 그 무시무시한 의식이 치뤄지기 시작했다.
난 무서워 떨었고 두눈을 감았다. 그리고 혼자 속으로 빌기 시작했다. 제발, 미꾸라지 눈은 멀어도 그 군인 아저씨의 눈은 멀지 않게 해달라고. 누구에게 빌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빌었다. 무조건 빌었다. 최대 피해자인 나 인데도 불구하고 온동네 사람들 그리고 엄마의 바램과 비방의 본 뜻과 무관하게 나의 내면은 크게 상충하고 있었다.
세상살며 그렇게 비방을 한다고 해서 다 그대로 된다면 이 세상에 악이 창궐하고 난무할리도 없겠지만 난 그때 정말 무서웠다. 그 군인 아저씨가 정말 눈이 멀까봐. 그런일은 안 생겼을꺼라고 지금도 믿고 싶다. 경찰서, 지서가 10리 밖에 있긴 했지만 우리네와는 무관했고 관련이 있다한들 찾아 질 물건도 아니었고 난데 없는 도둑 이야기는 그 사건 자체만으로도 언제나 고요하고 조용하기만해 죽은듯 침체되어 있던 온 마을 사람들에게 이슈와 심심파적이 되기엔 충분요건 이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내 나이 8살때 여름의 일이었는데 지금도 이렇게 파노라마 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는걸 보면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 오마니도 그일을 나처럼 기억하고 계실려나 모르겠다.
50년 전 1962년도의 일이니 그때의 時代相으로 봐선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가난했고 돈도 귀했다. 군인들의 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았음이다. 그러니 見物生心이라고 돈을 보고 마음이 달라졌겠지. 그때 내가 물을 뜨러 우물까지 가지 않았다면, 그 군인도 그런 物慾과 盜心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가져간 놈 보다 잃아버린 놈이 죄가 더 크다는 말도 이래서 생겨난게 아니었을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본다.
그때나 이때나 나는 사람을 별로 타내지 않는고로 지금도 택배기사나 우체부 전도하러 다니는 사람들에게 여름이면 찬물 한 컵이라도 내어 주기를 서슴치 않지만 헤이 도둑씨 당신은 좀 너무 했던 거야, 어린 내 맘에 너무 여러가지로 상처를 많이 줬거든. 양심이란게 조금은 있었어야지.안그래요? 그래도 도둑씨! 당신도 눈은 멀지 않고 잘 살고 있기를 난 지금 까지도 바라고 있는데 그마음 아실랑가 모르실랑가 모르겄네 ... ㅎㅎ~!!
2012.8.28.화 연욱
Ryuichi Sugimoto - Pole Night Ex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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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런 개가튼놈!!!
왜 바꾸고 그랴 좋더만 C8노무시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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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슈,![~](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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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들 바람은 불고 맴은 맥없이 조급증이 드네그랴
가을은 가을인개벼
승임이랑 통화하고 모레 보자고 했넹
수필이라고 하기엔 담겨진 밥이 너무 많고..
소설이라고 하기엔 반찬이 다소 적은 것 같은 글이지만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다..
그래도 얼마나 착한 군인이냐? 포대기 채로 들고 가는 그 나이 또래의 인생도 있는 데 말이다. 아무래도 나주의 인심 보다는 포천이 나은게야. 아마 엄마도 기억하고 계실 테다. 기분 좋아 하시는 날 조신하게 여쭤봐라. 그리고 2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