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케어에서 생활케어로!
“의사나 간호사는 급성기의 ‘안정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 대한 접근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케어에서 필요한 것은 오히려 ‘안정하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다.
물리치료사나 작업요법사는 마비된 손발을 치료하는 방법, 굳은 관절을 펴는 방법은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비되어 굳은 관절로 ‘어떻게 생활하느냐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부득이 우리 케어 담당자들은 기존 전문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인 방법을 찾기로 했다. - 중략 -
케어 현장은 ‘환자’라는 수동적인 치료 대상 대신에 ‘생활의 주체’라는 새로운 인간상이 형성되는 곳이다. - 중략 -
의사와 간호사는 주체가 되고 환자는 수동적인 대상일 수밖에 없는 상황생명과 관련될 때는 그것만으로도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질병이 아니라 노화나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하는 케어는 다르다. 환자에서 생활인으로, 의료케어에서 생활케어로! 노화나 장애를 현실로 받아들여서 각자의 상태에 맞게 ‘생활’하게 하자. - 중략 -
T 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6년 동안 침대에 누워 생활했다. 그러나 매일 기능훈련은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 왕성한 훈련의욕을 생활의욕으로 바꾸기로 했다. 먼저 외출이라는 이름으로 꽃놀이, 1박 여행, 음주 등을 시작했다. 그러자 훈련으로 고통스러웠던 얼굴 표정이 생기 있게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손발이 마비되어도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마음뿐만 아니라 행동 범위도 넓어지면서 신체기능도 좋아졌다.”
「새로운 케어 기술」 오타 히토시와 미요시 하루키, 김영주 옮김, 그린홈, 2005년
환자로 보고 치료하거나 훈련시키거나 안정시키려 들기보다, 사람으로 보고 ‘생활’하게 했다는 말입니다.
「노인복지혁명」에서 일본과 유럽의 케어가 이렇게 달라 보였습니다.
일본은 “가만히 계세요. 우리가 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안정’시켜 드렸습니다. 복지사업 대상자로 연명시킨 겁니다.
유럽은 “가만히 계시지 마세요. 우리가 거들어 드릴 테니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 이렇게 ‘생활’하시게 도왔습니다. 당신의 삶을 사시게 한 겁니다.
이 글을 사회사업에 그대로 옮겨 읽어도 좋겠습니다.
전문가라 하는 어떤 사람들은 복지사업으로 치료 교육 보호하려 합니다. 사회사업가는 당사자가 ‘자기 삶으로 생활’하게 도우려 합니다.
사회사업 현장은 후원 봉사 대상자, 보호 대상자, 교육 훈련 대상자, 치료 대상자, 생활지도 대상자, 사례관리 대상자… 대상자를 늘려 가는 곳이 아니라 자기 삶과 사람살이의 주체로 세워 가는 곳입니다.
보호 대상자에서 자기 삶의 주체로, 프로그램 복지에서 생활 복지로, 당사자의 욕구와 역량에 맞게 ‘생활’하게 도우면 좋겠습니다.
“Surviving is not relevant. Living is. We want to live.” 출처 : Automata
Even a robot says it wants to live,
so how can we settle for offering our human clients nothing more than care or protection that merely keeps them 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