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유학자 김제 출신 백석 유집의 문집 ‘백석유고’ 국역본 출간
17세기 조선의 긴박한 상황과 이에 따른 지식인들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 출간됐다.
김제 수곡(현 갈공동) 출신으로 임진왜란과 호란의 난세를 겼으며 청빈한 삶을 살았던
백석 유집(1584-1651)의 문집 ‘백석유고’가 상·하권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사)김제향토사연구회(회장 김병학)는 2020년 김제시의 지원을 받아 국역사업을 완료하고, 2021년 교정을 거쳐 국역본을 출간했다.
국역은 원문표점, 국역, 각주의 체계로 이뤄져 있으며, 원전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 문장의 묘미를 느낄 수 있게 하도록 힘썼다. 난해한 어구와 용례는 총 1,971개의 각주로 상세히 설명했다.
백석은 어릴 적에 사계 김장생의 제자인 석계 최명용(1567-1621)에게 수학하고, 후에 사계 선생을 배알하고 ‘심경’과 ‘근사록’ 등을 수학했다.
1616년 생원시에 합격해 잠시 관직에 나갔으나 정국이 혼란스러워 사직했다.
정묘·병자호란 때 양호호소사인 사계의 휘하에서 격문을 발하여 의병을 모으고,
이들을 이끌고 출정해 충의를 몸소 실천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청국과 강화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회향한 뒤로 출입을 삼가고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이후 의금부도사, 세자시강원자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백석이 출사를 꺼리고 은거한 데에는 세도(世道)가 쇠퇴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청빈을 지주로 삼아 생활하며, 우국과 상시의 울분이 일어나면 시로 읊어대곤 했다. 백
석의 문집에는 149수의 시와 기와 설이 각각 4편, 편지 30여 편, 약간의 제문과 상소문,
그리고 후에 수습된 전책(殿策)과 집책(執策) 33편이 전부다.
당시 학자들에 비하면 매우 소략한 편이지만, 혼란한 정국에서 스스로 입언(立言)하려는 뜻이 없었고,
사후 문집 간행으로 인해 당하게 될 가난을 염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출처 : 전북도민일보(http://www.domin.co.kr)
白石 柳楫의 奉和瓊韻情□(백석 유즙의 봉화경운정)
(주옥같은 시에 삼가 화답하니 정으로 웃어주게)
<국역 남간집 원문>p234
久客因多病(구객인다병)/오랜 객지 생활 병도 많아
歸期負一春(귀기부일춘)/돌아갈 기약이 한 봄을 저버렸다.
華牋忽相問(화전홀상문)/아름다운 편지로 문득 물어주니
知有意中人(지유의중인)/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음을 알았도다.
甛成三種採(첨성삼종채)/삼 종의 뜯어 온 물건 단 맛이 있고
香帶百花春(향대백화춘)/온갖 꽃은 봄날에 향기를 띄었다.
寄與書窓畔(기여서창반)/이것들을 서창 가에 있는 나에게 보내 줘
要沃活病人(요옥활병인)/병든 몸 살려 주려고 하는 건가.
<재벌번역> 문학박사:나천수
- 제1수 -
久客因多病(구객인다병)/오랜 객지 생활로 인해 병도 많아졌고
歸期負一春(귀기부일춘)/돌아갈 기약이 한 봄을 넘겨버렸다.
華牋忽相問(화전홀상문)/아름다운 편지로 홀연 안부 물어주니
知有意中人(지유의중인)/뜻을 가진 사람이 있음을 알았도다.
- 제2수 -
甛成三種採(첨성삼종채)/세 가지 종류의 나물로 만든 맛있는 것과
香帶百花春(향대백화춘)/백화 봄꽃으로 향기 띠를 만들어
寄與書窓畔(기여서창반)/나의 글 읽는 창가에 보내주니
要沃活病人(요옥활병인)/병든 몸 생기 있게 하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