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인권을 향한 쉼 없는 항해
- 대한민국 헌법의 우수성과 국민 의식 혁명
1. 수필 문학 속에 보이는 불평등의 시대
우리는 여성 수필가들의 작품 속에서 과거 시대의 아픔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아래 묘사된 임춘희 작가의 「나는 남자가 좋다」와 김귀선 작가의 「버들개애지 낭개」가 묘사하는 불평등의 삶은 인간의 천부인권이 전혀 보장받지 못한 시대의 기록입니다.
『방과 후엔 숙제할 틈도 주지 않았다. 어머니의 눈을 피해 공책이라도 펼칠라치면 야단을 쳤다. 부모님은 농사일에 매달려 있는지라 집안일은 내차지였다. 동생 돌보기와 집안 청소, 소죽 끓이기에다 저녁밥까지 지어야 하니 여남은 살짜리 아이가 하기엔 벅찬 일이었다. 그래도 군소리 한 번 못하고 해야 했다.
“쓰잘데기 없는 지집아가 공부해서 뭐 하노? 살림하는 것만 배워서 시집이나 가면 되제.” 여자가 아는 것이 많으면 팔자가 드세진다는 어머니의 편견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 (임춘희 <나는 남자가 좋다>)
『내가 딸 셋을 달아가 놓으까내 동네 안들도 다 날 무시하디레이. 웅굴에 물 뜨러 가머 저거끼리 쑥덕거리쌌다가도 내가 보이머 입을 쑥 다문까이내 내 숭한 거 아이겠나. 얼매나 심정이 상턴지. 남이야 그카기나 말기나 아이구 아이구 내 새끼 카믄서 끌어안아야 될 낀데 바보매로 그저 내 자식만 패잡아뿌랬으이까내. 너거 종조부 운동할배가 내한테는 시삼촌 아이가. 아들 몬 낳았다꼬 시삼촌까지도 업신여기더라아이가. 너거 셋째 씨이 놓고 아매 스무날 쯤 됐지 싶다. 너거 둘째 씨이가 말을 안 들어 야단을 쳤더니 그날따라 골모작에 퍼질고앉아 앵앵 아가리를 벌리고 울었싸았제. 그카다가 퍼떡 그쳤으머 뒷일이 없었을 낀데. 내가 정재서 술밥 솥에 불을 때는데, 그 시삼촌이 지나다아
“이 골모작에는 가시나만 버글거리노.”
카는 기라.
그 소리를 들으이까내 내 눈에 불이 확 일어나뿟제. 악에 바치가꼬 눈에 비는 게 없었는기라. 짚이는 대로 낭게를 쥐고는 코고무신이 삣끼지는 줄도 모리고 우두둑 뛰이가서는 삽쩍꺼리에 울고 있는 너거 씨이를 힘대로 휘갈겼디라. 그카이 얼라가 다리를 쫙 뻗으면서 오줌을 좔좔 싸드라카이. 엉치를 때리뿟는기라. 정신을 채리고 보이 내 손에 쥔 낭게가 회초리가 아이고 몽두이 맹키로 굵더라카이. 등신이 따로 없는 기라. 네 살짜리 얼라한테 그 어데 팰 데가 있다꼬.』(김귀선 <버들개애지 낭게>)
2.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보통선거의 의미
위에서 소개한 작품은 단순히 개인의 슬픔을 넘어, 자기 삶에 대한 자기 의사 결정권이 보장되지 못하던 춥고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대를 살아낸 인간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취약한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자기의 운명을 자기가 결정할 권리(정치적 자결권), 곧 투표권 보장의 역사를 통해서 대한민국 헌법 정신의 우수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흔히 미국을 민주주의의 선진국으로 여기지만, 투표권의 평등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의 역사는 그 어떤 나라보다 자랑스러운 출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미국의 투표권 확대 과정은 사실 매우 더디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들의 역사는 '평등한 권리'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차별과 투쟁을 통해 간신히 쟁취한 결과였습니다.
미국 건국 후에도 초기의 투표권은 한동안 재산을 가진 백인 남성에게만 주어졌으며, 백인 남성 모두에게 확대되는 데만도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여성 참정권은 오랜 여성 참정권 운동(Suffragette Movement) 끝에 1920년 수정 헌법 제19조를 통해서야 인정되었습니다. 흑인에게 투표권이 이론적으로 주어진 것은 1870년이었으나, 남부 주들의 갖은 차별과 방해로 인해 실질적인 투표권이 보장된 것은 무려 1960년대 민권 운동과 투표권법 제정 이후였습니다. 미국은 이처럼 인종과 성별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200년 가까운 시간을 소요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혼란과 격동 속에서 나라를 세웠지만, 1948년 제헌 헌법을 통해 민주주의의 토대를 가장 이상적으로 다졌습니다.
대한민국은 건국 시점부터 성별, 재산, 신분, 교육 수준 등에 따른 아무런 제한 없이 모든 성인 남녀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보통선거 원칙을 채택했습니다. 제헌 헌법 제24조를 통해 "모든 국민은 공무원을 선거할 권리가 있다"고 명확히 선언했습니다.
현민 유진오(玄民 兪鎭午) 박사가 기초한 이 선언은 김귀선 작가가 묘사했던 버들개애지 같은 신분이나, 임춘희 작가가 느꼈던 여성으로 태어난 사회적 편견과 고통을 국가의 최고 규범으로 전면부정하고, 모든 국민을 동등한 주권자로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미국이 인종 문제로 긴 내전을 겪고 헌법을 수정해야 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 헌법은 출발하면서부터 제8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하다.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이 없다." 고 명시하며 차별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했습니다.(절대빈곤이라는 경제적환경, 오랜 사회적 관습 때문에 차별이 있었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은 차별이 없다고 원천적으로 천부 인권을 선언한 것이지요. 이건 정말 대단한 역사이고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3. 평등 정신은 홍익인간의 정신이고 대한민국의 긍지입니다
적어도 헌법에서만큼은 대한민국은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진보적이고 이상적인 출발점을 가졌던 국가입니다. 우리가 건국 초기부터 평등한 참정권을 천명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고 포용하고 실천했다는 증거이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건국 이념을 법적으로 구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선진적인 헌법 정신 덕분으로 오늘날의 놀라운 경제 발전과 문화적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호는 계속 이 길로 항해해 가는 중입니다. 항해 중에 파도도 치고 비바람이 불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이 위대한 헌법 정신을 계승하고, 모든 영역에서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진정한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서 계속 항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시적인 헌법 정신이 우리 일상의 미시적인 영역에서 실현되지 않는다면, 이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권위와 체면을 중시하는 구태의연한 서열 의식, 관존민비 의식, 능력보다는 권력자에 기대는 청탁의식, 성별이나 직위로 노동을 차별하는 관습에 젖어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속 신분제'를 타파하는 것이 바로 헌법이 요구하는 의식 혁명입니다. 나는 요즘 가정에서 내가 먹은 밥그릇은 내가 설거지하고, 회사에서도 내 주변은 내가 청소합니다. 직원들이 빗자루와 걸레를 빼앗다시피 하지만, 그들의 의식에 변화를 요구하며 내가 직접 합니다. 누군가의 노동을 천시하고 배제하는 문화는 결코 민주적 평등 정신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법이 바뀌고 의식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뀝니다. 위대한 헌법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우리의 자발적인 참여와 생활 속의 평등실천만이 진정한 천부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앞당길 것입니다. 그래서 수필가가 되어 국민의식을 변화시키려고 열심히 이런 글도 쓰고 있습니다. (2025. 12. 3)
(추서) 이러한 정신으로 대구수필가협회 회칙을 전면 개정했고 그 하부 규정을 아주 디테일하게 정했으며 작가들부터 민주적 의사결정과 참여정신에 대해 훈련을 쌓으라고 한 것입니다. 사무국장 맡으라고 하니 할 사람이 없고, 간사 맡으라고 하니 전부 형편이 여의찮아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전 회장이 사무국장 다시 하면 안 되겠냐고 하니 그건 또 더 문제다고 합니다. 작가부터 이런 정신으로 글을 쓴다면 이 땅에 실질적인 천부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이 언제 오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