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겨울의 끝자락이다. 울타리용으로 심겨져 있는 홍색으로 변한 남천 잎도 연두빛으로 돋아나는 사잇길 양 옆에 흑장미, 백장미에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결한 기품을 품고 있는 盤松은 더욱 푸르고, 그 나무 그늘 밑 한 켠에 연산홍에 꽃망울이 맺힌다. 이파리만 보아도 가을이 느껴지는 단풍나무
에도 새순이 돋아나 봄을 재촉하고 있다.
나는 현관 앞 벤치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며 이 나무들에서 내가 이 학교 다닐 때 있었던 흔적들을 찾아본다.
직사각형인 넓은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는 육상 트랙이 곧게 뻗어 있는 안쪽에는 곱게 깔린 잔디에 축구장이 놓여있다.
그 당시 운동장 끄트머리에 있는 연식 정구장 옆에 몇 백 년이나 된 것 같은 고목 아래에 목조 건물이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내가 3년 동안 이곳에 가 본 때는 배가 몹시 아파 양호실에 갔으나 문이 잠겨있어 드러누워 있을 곳을 찾은 것이 장수풍뎅이가 기어다니는
그 고목나무 그늘이었다. 이곳이 지금 중앙여자고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으니 동래중학교 부지가 어마어마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동래중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는 컨테이너 하우스를 보고
지역 행사나 체육대회가 개최되는 모양이라 여겼다.
그런데 한 두 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내어 운동장을 가보니
그 넓은 운동장을 컨테이너가 서로 맞닥트리며 채워져 있었다.
그제야 임시 난민 수용소가 생겼나 싶어 정문으로 가서 정문 옆 벽면에 붙어있는 공사 현황판을 보니 校舍를 개축한다는 내용이다.
그 무렵 명륜초등학교도 교사를 개축하고 있어 2011년 5월 부터 2013년 4월 신축될 때까지 그 학교에 다녔던 학생들은 假校室에서
공부해야 했다.
그중 상당수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래중학교로 진학하여 좋아 했는데 1960년에 지은 건물이라 노후하고 교실이 부족해 2013년 12월부터 개축 공사를 시작해서 2015년 10월 교사가 완공될 때까지 컨테이너 교실에서 공부해야 하는 고난을 겪었다.
명륜초등학교 새 건물 벽면에 " 백년의 전통, 천년의 명륜초등학교"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명륜동에 1392년(태조 1 ) 국가의 교육 진흥책에 따라 儒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배향하며 지방민을 교육하려고
세워진 동래 향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설립된 명륜초교이니
600년 전에 세워진 영국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 Eton College에 비견
할 만한 하다.
어느 해 이튼 스쿨 卒業式送別辭에서 어떤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학교는 자신이 出世를 하거나 자신만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원하지 않습니다.
周邊을 위하고 사회나 나라가 어려울 때 제일 먼저 달려가 先頭에 설 줄 아는 사람을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벽면에 새겨진 문구는 명륜초교가 Eton School 같은 학교를 지향
한다는 뜻일 것이다.
명륜초등학교 후문 앞에 '특수학교인 부산 동암 학교 스쿨버스'가 정차하는 데 나는 이곳으로 학생들을 마중하러 갔을 때에 간혹 이 학교 운동장에 들어가 벤치에 앉아 校舍 정면에 있는 느티나무를 바라본다.
내가 이 학교에 전학 왔을 때에 이 느티나무는 그 자리에 있었고
가을 운동회 때에는 엄마가 보따리에 싸온 삶은 고구마를 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먹었던 즐거운 추억이 있는 곳이다.
곧고 단단한 한 아름도 넘는 언제라도 나를 푸근하게 감싸 안을 듯 너른 품을 갖춘 그 느티나무가 뿜어내는 수더분한 향기에서 영혜의 숨결을 느꼈다. 이 때가 나에겐 큰 기쁨이었고 살아 갈 힘이 생겼다.
비 오는 어느 날 그 느티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려고 학교 운동장으로
뛰어들었으나 옛 교단도 느티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나무를 찾으려고 운동장 주변을 학교 지킴이 선생의 눈치를 봐가며 여러 번 어디로 옮겼는지 살펴보았지만 보이지 않아 허전하고
씁쓸한 마음에 흐르는 구름만 바라보았다.
학교 옆으로 나있는 산길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었고 , 양지바른 산 밑 자락은 늙은이가 혼자서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골목길과 판잣집들이 따닥따닥 들어서 있는 감출 것도 벽을 쌓을필요가
없는 가난한 동네였지만 낯선사람이 들어와도 따뜻하게 맞이하는 사람
들이 사는 그런 동네였다.
이 동네를 통채로 들어내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때 아파트 주민의 조망을 위해 베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깊은 의구심을 가졌다.
세상이 안 살고 싶어질 때 그 나무에서 마누라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며 위로를 받고 버티어 왔는데 이제 그마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백 년이 넘은 느티나무고, 校木이 느티나무인데 이 나무에 얽힌 추억을
어찌 나만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며, 어찌 나만이 위로받고 있었을까
아무리 세상이 급하게 돌아가도 보존할 것은 보존해야 되는데 보존할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보존할 가치가 없었던 것일까 .
그렇다고 어떻다는 것이 아니다. 내 마누라가 활짝 웃는 모습은 내 가슴
속에서 고이 간직되어 있으니까.
명륜 초등학교 신축 건물은 벽면을 노란색 , 파란색, 빨간색 등으로 밝게 처리했고 우중충했던 블록으로 된 담장이 은색 스테인리스 개방 담장
으로 바뀌어 명륜 사거리를 원하게 밝히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이 거리를 한밤중에 지나올 때 나를 비추는 보름달
빛에 흔들거리는 내 그림자에 내가 놀랄 정도로 상당히 밝았다는 사실마저도 가로등을 비롯한 수많은 인공조명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기억에 가물가물하다. 장자가 목표로 하는 삶인 逍遙遊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없었기에 좋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하며,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이곳에서 자란 어린이는 이 환경에 적응해 생존하고 번영하는 게 자연의 이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 비 떨어지는 소리 요란한 천막
교실에서 몽당연필로 공부한 시절이 그리워지고 그렇게 힘들게 견뎌낸 세월의 추억들이 오히려 이 힘든 세상을 견뎌낼 힘을 주고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