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얼굴 없는 기부자였던 권오록 前 서울 은평구청장
"나눔의 기쁨, 만인과
나누고파"
"푼돈 말고 큰돈을 기부하고 싶다. 사무실 위치와 계좌 번호를 좀 알려달라." 2016년 12월 29일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국에 이런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남성은 "나도 '사랑의 열매' 캠페인에 힘을 보태고 싶어 전화를 했다"고 했다. 며칠 뒤, 양복
차림의 80대 노인이 사무국에 찾아왔다. 손목엔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적힌 20년
묵은 청와대 시계를 차고 있었다. 노인은 직원에게 1억원짜리
수표를 들이밀었다. 직원이 "고액 기부자이신 만큼, 좋은 뜻을 기려 널리 알리고 싶다"고 하자 노인은 단호하게 "내세울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곤 뒤돌아 사라졌다. 기부자 명단엔 기부 금액과 함께 '신원 비공개 요구'라고 적혔다.
노인은 이때부터 올해 4월까지 3년여
동안 모교(母校)인 대동세무고를 비롯해 푸르메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 복지 단체에 총 10억원을 기부했다. 그때마다 "절대 보도 자료를 쓰거나 얼굴·이름을 밖으로 알리지 말아달라"는 조건을 걸었다.
거금을 기부하고도 복지재단 임원진 등과 식사 한번 하지 않았다.
그 '얼굴 없는 기부자'의
신원이 밝혀졌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34년을 일하다 1996년 6월 은평구청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 권오록(85)씨였다.
(중략)
권씨의 기부 내역을 들여다보면 패턴이 있다. 우선 1억원을 보내 놓고, 시간이 흐른 뒤 다시 1억원을 기부한다. 예컨대 2017년 2월 대한적십자사에 1억원을 기부한 뒤, 2018년 9월 다시 1억원을
내놨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도 2017년 5월과 2018년 10월
각각 1억원을 보냈다. 그는 "후원받는 어린아이와 그 가족들의 진심 어린 손 편지가 나를 '기부
중독자'의 길로 이끌고 있다"고 했다. 후원을 받은 해외 난민이나 국내 불우 아동들의 감사 편지를 받으면, 더
도와주지 않고 견디기 어려웠다는 설명이었다.
올해 2월과 4월에도 권씨는
서울 종로구 푸르메재단에 각각 1억원씩을 내놓았다. 그의
기부금은 발달장애인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자립을 돕는 '스마트 팜'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오선영 푸르메재단 팀장은 "재단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계좌에 1억원을 송금해놓고 잘
부탁한다는 전화가 왔다. 두 달 뒤 시설을 둘러보고는 다시 '잘하고
있다'며 집으로 돌아가 1억원을 내놓으셨다"고 했다.
권씨가 졸업한 서울 종로구 계동 대동세무고에는 2017년 '권오록 장학금'이 생겼다. 권씨가 2016년 12월과 이듬해 5월
각각 기부한 1억원이 모태가 됐다.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성실한 학생 10명이 매년 장학금을 50만원씩 받아간다. 유광재 행정실장은 "권 선생님은 매번 '기금을 잘 운용해 후배 한 명이라도 더 장학금을 줘라. 돈을 불리려다
원금 손실이 나면 내가 채워주겠다'고 하신다"고
전했다.
권씨는 "내 기부 인생에 가장 큰 영감을 준 인물은 아버지"라고 했다. 권씨의 고향은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으로, 1934년 한 부농(富農) 집안의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권씨
부친은 겨울마다 곳간을 열어 마을 주민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고, 2개짜리 교실이 딸린 강습소를 만들어
글자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교육했다고 한다. 부친은 6·25전쟁
발발 후 평택으로 피란을 와 남은 재산이 만년필과 은반지 하나뿐이었을 때도 주변을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권씨는 "아버지가 단 한 번도 훈계조로 어떻게 하라고 시킨
적은 없었지만, 그때 봤던 모습들이 지금의 나를 이끄는 것 같다"고
했다.
권씨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대부분은 강남에 사둔 땅값이 오르면서 만들어졌다.
본격적인 강남 개발을 앞두고 있던 1960년대 강남 압구정동 부근에 100평짜리 땅을 평당 2만원에 구입했다. 권씨는 "내가 땀을 흘려 번 돈이라면 기부를 망설였을 텐데, 운이 좋아 생긴 돈인 만큼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순리(順理)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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