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문학 29집에 실린, “의성 고운사” 수필 - ♣15.12.30
금번 칼럼은 의성문협에서 출판한 의성문학 29집에 실린,
내 수필(의성 고운사)을 그대로 옮겨 적음으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의성 고운사"
우보 박태원
연세대학교 3박4일 목회자 세미나 때 숙소로 제공된 무학학사에서 경북 의성군 점곡
면 사람(김상영)을 만나니 반가워서, 그에게 머릿속에 새겨진 한 절 이름을 토설했다.
“점곡이면 고운사 절을 잘 알겠군요.”
“그럼요. 점곡 가까이에 있어서 자주 소풍도 갔어요.”
“그렇겠군요. 나도 우보초등학교 5학년 때 우보역에서 운산역까지 왕복 기차를 타고,
운산역에서 왕복 걸어서 고운사에 소풍을 다녀왔어요.”
“운산역에서 고운사까지 걸어서 말입니까? 에이, 그건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 말을 듣고 보니, 그 먼 길을 걸었다는 것과 52년 전 일이라 혹시 잘못 알고 있었나
싶어서 더 이상 확신 있게 대꾸를 하지 못했다. 분명한 사실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어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어물어물하면 듣는 자가 신뢰하지 못한다. 결혼 전 군인 때
강원도 부대에서 밤기차를 타고 고향에 가다가 우연히 한 아가씨를 만나 정이 들었고,
깊이 사랑하였지만 작은 오해로 헤어졌다. 그 후 줄곧 첫 사랑의 경험을 잊지 못하면서
도 정작 고마운 그녀는 그려지지가 않아, 꿈에서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면 싶었다.
분명한 사실이지만, 주인공 모습이 희미하니 혼자 마음속에 갈무리해 두었다.
추억은 식물과 같아서 싱싱할 때 심어야 뿌리를 잘 박는데, 당시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 없으니 안타깝다. 천만다행인 것은 혹시나 하며 찾았던 고운사 소풍을 적은
일기장(1963년 4월 27일 토 갬)이 발견되어, 사진보다 더 확실했다.
의성군 금성면 산운 외가에서 태어나, 의성군과 인접한 군위군 우보면 산골에서 자
랐다. 산 넘어 중앙선 우보역과 탑리역 사이를 오가는 기차 소리가 늘 마음을 설레
게 했고, 기찻길 옆 오막살이집 아이같이 시나브로 친구 되었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이
성장했지만 종종 우보역에 가서, 정차 발차하는 기차를 볼 수 있었다. 그래도 기차를
탄다는 것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폐쇄된 산골마을에서 면소재지 초등
학교를 오가는 길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던 때라, 이웃마을 심부름을 가도 설레고
소풍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소풍을 가는 날은 걸어서 가고 왔지만 몹시 흥분되었다.
그런데 천우신조로 기차를 타고 먼 의성 고운사까지 소풍을 가게된 것이다. 해외여행
을 가는 것 같은 들뜬 기분으로 고운사 소풍을 다녀왔다. 오랜 세월 속에 다른 경험
들로 인해, 감격했던 그때 기억은 무의식 속으로 잠재되었다. 한 노인이 TV에서 사진
두 장을 보여주었다. 신혼여행 때 찍은 부부사진과 결혼 50주년이 되어 신혼여행 갔
던 그곳에서 당시 자세를 재현해서 찍은 부부사진이었다. 나도 52년 전 고운사 소풍
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선생님과 동창생들은 뿔뿔이 흩어져 만날
수 없고, 승하차했던 우보역과 운산역은 여객취급이 중단되어 기차가 서지 않는다.
한편 재개발과 수몰로 추억의 흔적들이 없어지고, 정년퇴직 당한 회사에서 평소 월급
의 반을 주며 출근하라는 것이 오히려 고맙게 여겨지는 서글픈 현실을 생각하면, 반
세기 세월이 흘렀는데도 중앙선 철로, 우보역, 운산역 모습은 남았으니 감지덕지였다.
다행히 우보역 옆 탑리역에서는 여객기차를 탈 수 있었다. 집에서 승용차를 운전해
서, 산골 촌뜨기의 가슴을 설레게 했고, 주야장천 만남과 작별의 정한이 꼬리 물고
교차했던 우보역으로 갔다. 국제공항 같던 역이 지금은 폐쇄되어 쓸쓸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의성 고운사로 소풍 가던 날, 새벽 일찍 역에 나와서 즐거워하던 모습이
그려졌다. 우보역에서 중앙선 철로와 병행된 도로를 따라 승용차로 20분을 달려 탑리
역에 도착했다. 그 역에 주차를 하고, 10시 37분에 도착한 청량리 행 기차를 탔다.
달리는 기차에서 창밖을 보니, 52년 전 국제비행기를 탄 것 같은 들뜬 기분이 되살아
났다. 운산역이 의성과 안동 사이에 있어서 의성역에 내리려다가, 운산역을 경유
하고 싶고, 그 역이 행정상 안동시 일직면이니 시내버스가 더 많을 것 같아서 안동역
에 내리니 11시 17분이었다. 안동에서 고운사까지 바로 가는 버스도 있었지만, 운산
역에서 고운사까지 걷고 싶어서 다른 버스로 일직면 운산으로 왔다. 운산역에서 2km
쯤 걸으니 “고운사 8km”란 이정표가 보였다. 결국 운산역에서 고운사까지 10km
이고, 왕복 20km, 50리 이었다. 초등학생에게 그 길이 멀지만 당시는 걷는 것이
다반사였고, 25리 넘는 외갓집에도 당연히 걸어서 다녔으니 충분히 걸을 수 있었다.
어릴 적 소 먹이러 부지런히 다니던 고향 산길이 그리워서, 수년전 그곳에 갔다가
산길들이 없어져서 놀랐고, 결국 산속을 헤매며 무서워했던 일이 생각났다. 즐겨 다니
던 선명한 길도 오래 다니지 않으면 늙어지고 사라짐을 알았다. 그런데 고운사 절로
가는 길은 변하지 않았고 옛 모습 그대로 이었다. 의성군 지역부터는 고운사길로
명명되어 있어서 뚜벅뚜벅 걷는 발걸음을 헛되지 않게 했다. 고운사 가는 길옆에 시냇
물이 흘러서 덤으로 만난 기쁨이 되었다. 52년 전 즐겨 불렀을 동요가 흥얼거려졌다.
“졸졸졸 시냇물아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운산역에서 두 시간 남짓 걸어서, 등운산 깊은 골에 자리 잡은 오매불망하던 고운사
에 도착했다. 외갓집에 온 것 같이 평안하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아내도 늙고,
나도 늙고, 고향마을도 늙고, 우보역 운산역도 늙었는데, 고운사는 52년 전 모습 그
대로 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절 이름 고운(孤雲)의 의미를 묵상하며 맑은 하늘에 외
롭게 떠다니는 구름을 봤다. 외로운 중에 내 자신을 새삼 발견하게 되고 진주를 만들
게 된다. 1334년의 세월을 안고 깊은 산속에 변함없이 있는 고운사 삼매경에 잠겼다.
절 뒤쪽에서 아무도 봐주지 않지만 사명을 다해 곱게 피어있는 야생화를 보았다. 매너
리즘에 빠진 현재생활에 큰 교훈과 자극이 되었고, 늘그막에 또 다른 소풍이 되었다.
52년 전 고운사 소풍의 감격을 되새겼다. 그때는 무엇이든 맛있었고 특히 멀리 왔으니
더 맛있었을 도시락을 상상하며 타임머신을 타고 그날로 거슬러 올라가, 아내가 준비
해 준 빵과 우유로 함께 점심을 먹었다. 52년 전 나와 지금의 내가 세월을 초월해서
친구 되었다. 내 이름을 액면대로 불러주던 초등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그리웠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마냥 행복했던 그때 마음을 생각하며, 걸핏하면 볼멘소리를 하는
오늘의 나를 부끄러워했다. 의성 고운사는 52년 전 즐거운 소풍이 되었고, 오늘도 소
중한 소풍이 되었다. 귀가할 때도 운산역까지 걷고 싶었지만 그때 정신이 아니었고,
오후에는 안동발 탑리행 기차도 없었다. 그래서 고운사에서 오후 2시 50분 버스를
타고 단촌면 의성읍을 경유해서 탑리(의성군 금성면)까지 달렸다. 탑리역에 주차해
둔 승용차를 타고, 중앙선 철로와 나란히 난 도로를 따라 다시 우보역에 왔다. 역
광장에 서있으니, 의성 고운사 소풍을 마치고 펄쩍펄쩍 뜀질을 하며 호롱불이 켜진
산골 집으로 달려가던 52년 전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그때보다 더 좋은 환경이건만
그때처럼 즐겁지 않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소홀히 해서 일 것이다. 개발된 지역의
땅은 비싸지만 사실은 죽었고 사람 살 곳이 못된다. 행복은 환경의 개발이 아니라
마음의 욕심을 버림에 있다. 대처로만 떠다녔던 흘러간 반세기 세월을 생각하니 억
울하고 안타까웠다. 오후 늦게 구름이 뭉치더니 귀가 길에 비가 내렸다. 비(雨)가
비(悲)되었다. 더디게 와서 서둘러 간 하루였다. 뜬구름을 따라 방황하다가 인생 끝
물에 허한 가슴을 안고 지냈는데, 오늘 고운사 소풍 재현이 보람을 듬뿍 채워주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羊)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마태복음.10:16)
◆.사진- ①.②.③.④.⑤- 내 수필 글과 함께, 의성문학 29집이 출판되었고,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의성.궁전예식장, 2015.12.17)
⑥.2014년, 당시 의성문협회 회장님의 시집 출판기념회에서 참석하다.
⑦.청와대 박근혜 대통령님이 내게 2016년 연하장(年賀狀)을 보내왔다.
첫댓글 Happy New Year .
2016년에서 영적인 능력. 수필의 능력... 늘 넘치소서 ~ ~ ^^*
서정석목사님!! 새해 덕담~, 감사하고 영광스럽습니다.
서목사님도 2016년 새해에 좋은 일들이 가득하길 기원드립니다.
수필 둘째 줄에 나오는 의성 점곡면 사람(김상영)은, 본 칼럼 781호 글(*2013.7.3. *7째 사진)과 본
칼럼 783호(*2013.7.17, *5째 사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김상영님은 당시 남해 이동교회 목사님
이셨고, 지금은 진주큰터교회 목사님입니다. 의성문협 회장(김상영)님이 의성문학 29집을 김상영
목사님한테 부쳤고, 그저께 김상영목사님이 "의성 고운사" 글을 잘 읽었다고 전화 해 주셨습니다.
★.박태원목사 "개인 카페"로 스크랩 해서 옮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