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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ver ending story - 1. 카산드라 (1)
책 너머의 이세계(異世界) 에일리오스는 이제 막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쌓여있는 눈틈으로 한 소년이 쓰러져있었다. 소년은 이 곳 사람들과는 이계적으로 검은 머리카락에,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특이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어깨까지 오는 짧은 단발은 약간 헝크러져 소년의 뺨에 흩어져 있었고, 이 전의 세계에 존재하던 데미아니오스 왕립 학원의 검은 교복이 흰색의 눈으로부터 소년의 위치를 가늠해 주었다. 그러나 아무도 소년에게 다가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건 이 세계의 하나의 관습.
아무도 믿지 못하는 이들이 외지인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안이 비칠 정도로 창백해진 소년의 얼굴은 이제 추위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한눈에 척 봐도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할 뿐이었다. 연민이나 동정은 커녕, 혐오스러운 듯 소년을 보며 얼굴을 찡그리기까지 했다.
오직 한명의 소녀를 제외하고는.
“이봐요, 정신 차려요! 내 말 들려요?”
얼얼한 피부에 닿는 부드러운 촉감이 다시금 소년의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체온이 이렇게 따뜻하던가. 힘겹게 뜬 눈으로 가장 처음 본 것은 자신 또래의 조그만 소녀였다. 바랜 금발이 어깨를 덮고 등까지 흩어졌으며, 붉은 리본을 꽂고 있던 소녀는 클로니클이 서서히 눈을 뜨자 기쁜 기색을 내보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그저 그들에게 혀를 찼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소녀는 그에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일어설 수 있어요?”
희미한 의식을 유지하며 소년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소녀는 안도하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소년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이 근처에 우리 집이 있어요. 거기 가서 몸을 좀 녹이도록 하세요.”
낯선 타지(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다른 차원이지만)에서 길을 잃고 쓰러진 사람에게 이보다 고마운 말이 과연 있을까? 납치라도 당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솔직한 그의 심정이었다. 희미한 시야로 보이는 소녀의 얼굴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주변 공기가 따뜻함을 느낀 나는 잠에서 깨듯 침대 위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소녀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눈부신 빛 때문에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옆의 소녀는 그걸 잘못 이해했는지 걱정스러워하며 물었다.
“저기, 어디가 불편한가요?”
“아,”
그때서야 나는 아차싶어 그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따뜻함. 눈을 흘기며 나를 쓰레기 취급하던 거리의 사람들과 정녕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보고 웃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
화끈-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보다.
“혹시, 어디 열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아직도 걱정이 가시지 않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핫, 괜찮습니다. 덕분에 괜찮아졌어요. ……감사합니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에 걱정하는 모습이 가시고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때서야 아직 이름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내 이름을 밝혔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제 이름은… 내 이름이 뭐지?”
아뿔싸!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사람처럼 아무런 기억도 없었다.
심지어 지금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도.
내 얼굴이 급속도로 창백해지며 미간을 찌푸리자 이름모를 소녀도 다시 울상을 지었다.
“설마, 기억상실증인가요? 괜찮아요? 정신좀 차려요!”
“으으… 여기가 어디죠?”
별안간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그리고 기억 속에 단편적인 것들이 흘러왔다.
금색 태그로 둘러쳐진 검은 공책두께의 책, 그리고…… 한 사람.
“…눈좀 떠봐요! 괜찮아요?”
주르륵.
식은땀이 목을 타고 흘렀다. 시야가 희미하지만 그래도 머리의 통증이 가셨다. 나는 다시 목을 가다듬고 그녀에게 물었다.
“헉,헉…. 괜찮아요, 그보다 여기가 어디죠?”
“여긴 슬레이 제국 변방에 있는 프레이시아에요. 영원히 녹지 않는 얼음으로 뒤덮인, 만년설을 보존한 마을이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녀는 내게 이 곳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뿐이었다. 이들과의 벽이 있는 것처럼 그녀의 설명도 심지어 그녀도 또 내가 누워있는 침대도 이질적이라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안색이 많이 안좋으세요. 조금만 더 누워계실래요? 제가 죽이라도 끓여 드릴게요.”
그렇게 안식을 찾아갈 즈음 그녀는 나에게 놀라운 사실을 말했다.
나는 죽을 먹다말고 숟가락을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고요?”
“네, 두 분 다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이 마을에 온기를 전하는 용광로에서 일하셨거든요. 하지만 불길에 휩싸여 두 분 다…….”
그녀는 끝내 말을 맺지 못했다. 그저 굵은 눈물방울을 이불에 쏟고 있을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되는 말을…….”
“아니에요. 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 그러고보니 제 이름도 얘기한 적이 없네요. 제 이름은 카산드라, 카산드라 세리아 에요.”
“카산드라…… 외모나 성격이랑은 안 어울리는 이름이군요. 하하!”
이상하게도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기본적인 지식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 이름에 대해 어렴풋이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직감했다.
“훗, 주위에서도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하지만 이건 부모님이 주신 이름, 절대 바꾸거나 버릴 생각은 없어요.”
“앗, 저는 그런 뜻으로 말씀드릴 생각이 아니었는데…….”
“후훗, 재미있으신 분이군요. 아, 죽이 식었네요. 다시 데워 드릴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괜찮아요, 거기 둬요. 너무 신세지지나 않은지 싶네요. 저기…… 카사… 라고 불러도 될까요?”
이내 그녀는 나를 보며 싱긋 미소지었다. 또다시 얼굴에서 열이 난다. 어쩌면 난 진짜로 감기라도 걸렸는지 모르겠다.
“그런 애칭은 처음이에요. 고마워요.”
그렇게 얼굴에 홍조를 띄우는 카사를 난 묵묵히 바라봤다.
“크로울리….”
“네?”
“크로울리로 하죠! 기억을 되찾을때까지의 제 이름말이에요! 음… 크로울리 프레이지아 어때요?”
“푸훗. 그래요, 크로울리씨. 하지만 프레이지아는 안돼요. 그냥 프레이는 어때요?”
“크로울리 프레이……라. 정말 감사해요.”
그렇게 나는 그녀 집에서 일주일 정도를 머물렀다.
그녀는 그 동안 나에게 이 세계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과 정보를 전해주었고 아직 많이 삐걱거리는 몸의 감각을 되찾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녀 덕분에 나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갔고 이내 집을 떠날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녀가 손수 만들어준 수수한 여행복을 걸치고 떠나는 날이 되었을 때, 그녀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실 수는 없나요?”
“그럴 수 없다는 거, 카사 씨가 더 잘 알잖아요. 이해해 줘요. 나도 당신과 계속 이 곳에 머물고 싶어요. 하지만 기억을 찾으면 그땐 다시 돌아올 게요. 그래서 얼어붙은 이 마을과, 사람들의 감정까지도 녹여 줄게요. 그때까지…… 당신만큼은 감정을 잃지 않도록 지금처럼 있어줘요.”
그리고 마을을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쾅-
그렇게 평생을 녹지 않는다는 눈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마을을 나가는 관문에 멈춰선 나는 급히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한 마리의 나비처럼, 거대한 불길이 눈을 휩싸고 있었다. 내가 방금전 떠나온 방향에서부터 천천히 불이 번져나갔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너무 놀란 나머지 내 입에선 나도 깜짝 놀랄 정도의 고함이 터져나왔다. 아니,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불길의 중심이 되는 곳에 그녀가 쓰러져 있었다. 그녀가 손수 짜준 여행복이 불타는 줄도 모르고, 나는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피부가 타고 있었지만 신경 쓸 겨를 따윈 없었다.
“카사 씨! 정신 차려요! 이런 데서 자고 있으면 어떡해요! 카사 씨! 카사 씨……!”
눈에 눈물이 고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희미한 시야 속에서 그녀는 미소짓고 있었다.
애써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는 듯, 고통스러운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어라, 다시 돌아왔네요. 벌써 찾은 거에요? ……기억. 그런데 …콜록… 왜 울어요……? 콜록… 기억을 찾았는데… 왜 …콜록… 울고 있어요?”
“말하지 마세요…. 아무 말 말고 가만히 있어요. 지금 당장 의사에게 데리고 갈께요. 그러니까… 제발… 죽지 말아요. 제발…….”
“…괜찮아요. 콜록 콜록… 저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프레이… 씨가 다시 돌아와서… 다 나았어요. 정말이에요….”
“제발…, 제발 말하지 마요! 내가 어떻게든 살려줄게요. 제발…….”
뜨거운 눈물줄기가 볼을 타고 흘렀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나는 카사 씨를 안고 병원을 내달리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내 발은 저절로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병원을 향했다.
덜컥-
“어…… 어떤가요? 괜찮나요? 그녀는…….”
“염려말게. 일단 기본적인 지혈과 치료마법이 끝났으니 곧 안정을 취할 걸세. 하지만, 그녀의 상처는 화상보다는 별개의 것이었네.”
“……그게 무슨?”
“그녀는 고질병을 앓고 있었네. 아마 자네가 오기 한참 전부터 였을걸세. 그리고… 자네에게 이걸 전해주라더군.”
그 의사가 꺼낸 것은 내가 눈속에 쓰러져 있던 그날, 그녀가 하고 있던 붉은 리본이었다.
“만약, 자신이 죽으면 이것만큼은 자네에게 주라더군. 일단 급한 화상은 치료했지만, 그녀가 앓고 있는 병이 내가 아는 것이 확실하다면 이제 치료할 방도가 없네. 오늘 내일 하는 목숨이지. 짧으면 3개월, 길어봐야 1년이나 갈까 싶네.”
“……그런! 병명이 대체?”
“지속성 체내 발열증세이라네. 이름 그대로,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일세. 체온이 늘어나고 줄어들지는 않지. 아마 이 소녀의 몸은 거의 한계야. 이걸 치료할 수 있는 한 가지 약초가 있지만, 어디 그게 한 두 푼해야 말이지.”
“그런! 대체 어디 가면 구할 수 있죠? 말해주세요, 제발!”
“그게…….”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이던 그는 이내 큰 결정이라도 한 사람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부여잡았다.
“잘 듣게. 그건 드래곤의 레어에나 있을 만큼 귀한 걸세. 하지만 이 마을, 프레이지아가 생겨날 때부터 있었던 한 동굴이 있네. 그 곳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낫게 한다는 약초가 숨겨져 있다네. 하지만 들어간 자는 모두 나오질 못하니, 어디 그게 사실인지 누가 확인해 볼 수나 있겠는가? 소문만 무성할 뿐이지만 그래도 방법은 이 것 뿐일세. 어때, 해볼텐가?”
기다릴 필요도, 주저할 필요도 없었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나는 그에게 물었다.
“뭐든지.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라도 해내겠어요.”
“흠, 뭐 그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좋네. 날 따라오게.”
그를 따라간 곳은 지하 깊은 곳이었다.
원형 계단인지라 슬슬 머리가 어지러워오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엄습해온 빛 때문에 나는 바로 앞도 분별하지 못했다.
“자, 다 왔네.”
문이 열리는 순간 내가 본 것은 거대한 또 하나의 문이었다.
“차원 이동의 문. 이걸 또 쓰게 될 줄은 몰랐는걸.”
그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깔며 분위기를 낮췄다.
“지금의 자네는 너무 약하네. 위독하다고는 해도 3개월 정도는 시간이 남아있으니 그동안 자네의 훈련을 봐주도록 하겠네. 말해두지만 결코 간단한 훈련은 아닐세. 다 자네 마음먹기에 달렸지. 그녀를 위하는 마음이 얼마나 대단한지, 일단 테스트를 해보도록 하지.”
“……?”
끼익-
오랫동안 쓰지 않은 것인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자 그 틈새로 입으로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 새어나왔다. 그건, 어둠이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한치 앞도 없는.
“이 문을 통과해서…… 돌아 와보게. 살아 돌아온다면 자네를 도와준다고 맹세하지.”
시험기간이 드디어 끝났네요! 모두 대박 기원바라며 오랜만에 짬을 내 소설을 썼습니다.
약 5쪽 분량이에요. 이걸 쓰느라 몇 번이나 플롯을 재구성했는지…… 그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손이 얼얼할 정도에요. 일단 읽어주시고 좋은 태클 기대하겠습니다! -Demo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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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억상실증이라. 으흐흐 +_+ 재밌게 읽었습니다.
으흐흐 +_+ 감사합니다
엥? 말머리는 winterer인데... 근데 의사가 너무 무언가 있는 거 아닌감..? 주인공의 수련을 도와주는 게 마을 의사라... 게다가 차원이동의 문이라니... 당신 대체 의사하기 전에는 뭘한 거야..!!
훗;; 상당히 날카로우시네요. 과연 의사에서만 그칠 인물일지, 아니면 뭔가 스토리에 상관이 있을지……. ㅋㅋ 맞춰보세요~ 아 그리고 아이디 바꿨어요~ winterer 에서 Demonic으로
시작이 특이하네요. 건필하세요.
프롤로그도 한참이나 묻혔지만 있으니까 읽어보세요~
저 의사 사실은 이모탈이라던가... 건필하시어요!
ㅋㅋ 앞으로도 많은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