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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장 1~17절/참 스승이신 예수그리스도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가 대통령으로부터 장관직을 제의받았습니다. "당신의 탁월한 경영 능력을 발휘해 체신부 장관직을 맡아주시오" 워너메이커는 한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나는 교회학교 교사라는 일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만약 장관을 맡아서 내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이것은 정말 큰 일입니다." 대통령은 교회학교 교사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장관직을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 어린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한번은 기자들이 워너메이커에게 장관직이 교회학교 교사직만도 못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교회학교 교사직은 내가 평생동안 해야 할 본업입니다. 그러나 장관직은 1~2년 하다가 그만두어야 할 부업의 일입니다.” 명성을 얻으려고 달려가는 사람은 그것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소신과 사명감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부와 명성을 얻을 기회가 자연스럽게 주어집니다.
1. 선생님으로 우리에게 질리를 가르치신 그리스도
오늘은 스승의 주일입니다. 교회 절기는 아니고, 교권을 존중하고 선생님을 공경하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1963년 충남 지역 청소년적십자 단체에서 먼저 시작하여 온 나라로 퍼져 국가에서도 ‘스승의 날’로 지정하고 기념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오늘 스승의 주일을 맞이하여 참 스승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오늘에 말씀 13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하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선생으로, 주님으로 오셨음을 밝히 말씀합니다, 여기 13절의 ‘선생’을 헬라어 성경은 ‘호 디다스칼로스’라고 했는데 바로 ‘그 선생’이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바로 그 선생이다!’ 하실 때는 구약의 모세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바로 그 선생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에 보면 모세가 자신이 떠나 뒤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은 한 선지자를 보내주실 것을 예언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명백히 가르쳐 줄 선지자를 기다렸는데 예수님께서 모세가 예언한 바로 그 선지자, 그 선생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18장 15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사실 모세는 예수님과 비교할 수 없는 선지자, 선생입니다. 모세는 사람이고, 예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첫 부분에서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전하는데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고,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며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계신 분이며 우리가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을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믿음의 분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요1;4) 하지만 사람들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세계를 안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지식이나 명예나 권세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빛이 내 안에 비추어짐으로 내 속에서 어둠이 떠나고 밝은 빛이 비추어질 때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잠언 8장은 전체가 지혜를 의인화하여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하면 잠언 8장 32~36절에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훈계를 듣고 자신에 잘못된 것을 고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훈계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훈계를 들음으로 인하여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훈계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합니다. 즉 영원한 생명을 사랑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현실에 눈이 어두운 사람은 결국 사망을 가져옴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신 자요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며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여 주신 분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 믿음의 삶을 살아냄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은 자가 예수 안에서 생명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는 어떤 스승이신가?
복음서 전체에서 예수님은 어떤 선생님인지를 간략하게 찾아보고 오늘 본문에서 우리의 스승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어떤 모범을 보이셨고, 무엇을 명하셨는지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호칭한 “διδασκαλος(디다스칼로스)”는 우리 성경에는 ‘선생’으로 번역되었는데 존경을 표하는 말입니다. 한편 예수님을 랍비(Rabbi)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말도 존경을 표하는 호칭으로, 이스라엘에서는 율법사 혹은 학식 많은 교사를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랍비는 ‘크신 분’이란 뜻을 가진 ‘라브’(rab)에 나온 말로 ‘나의 주’, ‘나의 크신 분’이란 뜻입니다. 마가복음 9장 5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랍비’라고 부른 기록이 있는데 그렇게 불러도 되는 호칭입니다.
요한복음 3장 1~2절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인식하여 낮이 아닌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행하신 표적을 보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듭남의 비밀을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자신이 유대인의 관원이지만 거듭남의 비밀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의 관원은 육으로 난 것은 알았지만 영으로 난 것을 알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이 거듭남의 비빌을 풀어주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5절에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이 말씀은 예수님과 같이 변화산에 오른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초막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다시 변화산에서 내려가기를 원하셨습니다. 변화산에서의 경험은 베드로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알지 못하면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알면 자꾸만 보고 싶어하고 소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변화산에서의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마치면 우리도 영화의 몸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가게 됨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선생님이셨는가 하면
첫째,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가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생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대해 들어도 되고, 듣고 불순종해도 되는 말씀으로 여기면 큰일 납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10장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스라엘 각 고을로 보내 복음을 전하게 했을 때 제자들을 통해 전한 복음을 거절한 동네를 향하여 심판의 말씀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4~16절에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둘째, 예수님은 『능력이 있는 선생님』이십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고향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너무 잘 아니까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나는 능력은 인정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능력을 보고도 믿지 않은 것은 우리가 예수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누구이고 어머니가 누구이고 형제들이 누구인지 안다. 그의 형제들이 누구인지 우리가 잘 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육신적으로는 맞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육신의 형상을 입고 오셨다는 사실은 믿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나는 능력의 혜택도 받아 누리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53~58절에 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셋째, 예수님은 『권위가 있는 선생님』이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기록을 보면 예수님을 붙잡아 오도록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자신의 종들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아 오려고 예수님께로 갔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의 권위에 눌려 그냥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아 오라고 명령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그냥 돌아온 하속들을 책망합니다. 그때 이들은 말합니다.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습니다.“(요7;46) 바리새인들이 말합니다,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요7;48) 이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을 붙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속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권위있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위험이 닥칠 줄 알면서도 명령을 거역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귀신들도 예수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요한복음 7장 45~46절에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마가복음 1장 27절에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넷째, 예수님은 『겸손하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겸손하신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섬김의 모범을 보이면서 제자들에게 서로 섬길 것을 명하신 기록입니다. 스승이나 주인이 자신에 제자들이나 종의 발을 씻기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선생이여 주인으로서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김으로 겸손의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세워짐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세우는 일로 쓰임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3. 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나?
예수께서 오늘의 교훈을 내리신 시기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며칠 전입니다. 1절에서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제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떠나가시면 남겨진 제자들이 교회를 이루어 교회 시대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왜 이 시점에서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가? 종들이 하였던 일, 종들 가운데에서도 서열이 낮은 종들이 했던 남의 발을 씻기는 일을 몸소 행하셨는가? 하면 너희들은 서로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교회에서는 이런 일이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2절에 보시면, 예수님은 12명이나 되는 제자들의 발을 하나하나 씻기신 후 옷을 입으신 후 다시 스승의 자리에 앉으셔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을 씻기실 때 제자들은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복음서 기록을 보면 그즈음에 제자들은 서로 높아지려고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높아지기를 소망하던 제자들에게 낮은 자가 되라는 것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는 자
꾸만 말로 이런저런 말을 합니다. 하지만 실천함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4. 교회는 서로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14~15절에 보면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여 세워지는 신약시대 모든 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야 한다고 이해한다면, 모든 교회는 모일 때마다 서로 발을 씻겨 주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와 선생이신데 가장 낮은 종이 하는 일을 하심으로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교회는, 교회 구성원은 서로에게 봉사하고 섬길 의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으니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교회에서 봉사하지 않고 섬기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말씀이 됩니다. 우리는 서로를 잘 섬길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15절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되었음이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서로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교회 안에서는 일방적인 섬김이 아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서로 섬기며 봉사하는 것이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그렇게 할 때 교회도 건강해지고 자신도 건강해집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과 10절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참 과부로 등록하기 위한 사람을 말할 때 바울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 사람의 참된 행실,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네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자녀를 잘 양육하였는가? 둘째, 나그네를 대접하였는가? 셋째, 성도들의 발을 씻어 주었는가? 넷째, 환난을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선한 일을 행하였는가?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주신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4장 15~16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5. 이 이치를 알고 행하면 복이 있습니다.
16~17절 말씀에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각자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6절 첫 문장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아멘 아멘 레고 휘민)”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신적 권위를 가지고 어떤 중요한 내용을 선포하실 때 사용하시는 관용어입니다. 사실이다. 진실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진실로 그렇다는 말씀입니까? 우리 중에 예수님보다 큰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중에 예수님보다 존귀한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나는 예수님보다 사람들에게 존중받아야 해” “예수님보다 편하게 살아야 해”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16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라” 하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까? 주인이신 예수님은 그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기도에 힘을 쓰셨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왜 “전도하라” 하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까? 전도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고, 전도하다가 무시나, 무안을 당할까 봐 안 하지요?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신데 전도하시러 사람까지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는 것 얼마나 자신을 낮추시고 희생하는 일입니까? 주님이 전도하셨고, 전도하라 하셨으면 종인 우리는 해야 합니다.
17절에,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하십니다. 이 세상의 일들 가운데 간혹 스승보다 훌륭한 학자,스승보다 훌륭한 예술가, 스승보다 높은 신분의 사람, 스승보다 존귀한 사람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보다 큰 성도, 존귀한 성도는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모범을 보이시고 ‘하라’고 명하신 일은 힘들다고, 체면이 깎인다고 하지 않으려 한다든지? “내가 왜? 그런 일까지?” 하면서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도 행하신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이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종입니다. 이 관계가 우리와 예수님 사이의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되는 본질적인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바로 아는 성도는 결코 마음을 높이거나 자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것과 같은 섬김의 일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