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맥주 마시러 가는 오후
이수명
흑맥주나 마시러 간다. 수영하는 법을 몰라
기도하는 법을 몰라 머리를 빗다 말고 나가는 오후
단숨에 마시다가
조금씩 홀짝거리러 간다. 구석에 남는 테이블이 있을 거다.
고양이를 데리러 나가면 고양이가 사라지고
인도 가득 뒤뚱거리는 비둘기들을 따라간다.
비둘기가 뒤뚱거렸던 곳에서 비슷하게 뒤뚱거리며
흑맥주나 마시러 간다
메뉴판을 살펴볼 필요도 없을 거다.
기네스가 병째로 나올 거고
귀찮지만 여기 잔이 필요하다고 말해야겠지
오늘은 내내 알 수 없는 나뭇잎들이 근거리에서 따라 오고 나뭇잎들이
모든 각도에서 말라비틀어진다. 오늘이 벌써 지나간 것처럼
실성한 사람을 본다. 모퉁이에 서 있는 사람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잣말을 하고 있다. 여긴 우리 동네가 아니야
우리 동네 다녀왔어요
그는 이상한 유니폼을 입고 있고 즐거운 것처럼 보이고
파란 유니폼을 입어서 즐거운 말을 안 할 수 없고
누구에겐지 또박또박 말하고 있다, 우리 동네는 오랜만에 아주 넓어
그를 지나칠 때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아서
금이 가지 않아서
또렷하게 들린다. 우리 동네에서 뭐 하니
그의 말에 박자를 맞춰 걷는다
그래 우리 동네 호프집에 가서 흑맥주를 마실 거다.
흑맥주를 마시기에 좋은 오후
아무 자리나 괜찮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성큼 걸어 들어가
혼자 커다란 홀에 앉아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