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미술









신들이 건설한 이집트를 모르고는 서구 문명을 이해할 수 없다.
“많은 역사가들은 아테네, 로마, 예루살렘을
유럽문명의 위대한 ‘세 어머니’라고 한다.
사실 이 ‘세 어머니들’은 이집트 멤피스와 테베의 후예일 뿐이다”
고대 이집트를 바라보는 미지의 시선
고대 이집트는 대중들의 상상 속에 특별한 곳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이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이집트 문명이 번성했던 시기 이래, 사람들은 기원전 5세기에 이집트에 대해 경탄하며 기술했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만큼 매혹된 시선으로 이집트를 보았고, 때로는 당혹스러워하기도 했다. 헤로도토스가 기술한 이집트의 모습은 근 200년간 서구가 기억하는 동아시아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집트에서는 여자들이 시장에 가서 장사를 하고, 남자는 집안에 들어앉아 길쌈을 한다.
소변도 여자는 서서 보고 남자는 앉아서 본다.”
여기서 문명의 나라 이집트는 또 다른 문명의 발상지 그리스의 시선에서는 한낱 ‘미지의 나라’일 뿐이다. 이 시선이 19세기 제국주의의 시선이 아닌 기원전 5세기의 시선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매혹의 이집트, 미신의 나라로 전락하다.
50년 전 비비안 리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클레오파트라 속에 살아 숨쉬던 아름다운 이집트는 우리에게 이제 가상현실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매혹도, 스핑크스의 잔혹한 퀴즈도 서구의 일방적인 시선의 영향권 안에있는 우리들에게는 무너진 소련을 대체한, 아랍과는 또 다른 유형의 악당일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악당의 유형이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귀신’이라는 데 있다. 이집트는 여전히 ‘귀신이 지배하는 미신의 나라’이다.
아직도 이집트가 미지의 나라, 미신의 나라인 것은 접근 방법의 모호성 때문이다. 모호성은 학문이 완벽하게 정립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집트와 그 미술 연구하는 데 있어서 최초의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으로 인한 샹폴리옹의 로제타석 연구(1822)부터이니, 이집트 미술을 발굴하고 정리한 후 논의까지 연결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이집트는 우리가 동남아시아나 이슬람의 역사에 접근하는 것보다 더 낯설다. 어설프나마 영화나 신화로 눈에 익은 그리스 문명, 동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태어난 덕에 가장 익숙한 문명으로 접한 중국의 황하문명, 그리고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접한 이슬람 문명까지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운 4대 문명의 절반 이상을 지금까지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그렇다면 남은 이집트 문명은 어떤 사건이 터져야 관심을 받게 될까?
모든 문명의 어머니, 이집트
바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그리스와 이슬람의 문명은 샹폴리옹의 말대로 신들이 건설한 이집트를 모르고는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시리스의 부활을 기원하는 이시스는 성모 마리아와 닮았고, 이집트의 부정고백은 모세의 십계명만큼이나 감명을 주고 시대적으로도 앞선다. 생명을 상징하는 ‘앙크’는 기독교에 유입되어 십자가의 원형이 되었으며, 그리스·로마 사상의 원천도 이집트가 제공한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 역시 그가 이집트를 여행하던 중 ‘카(ka, 영혼을 의미하며, 육체의 영적 복제인 카는 심장에 담겨있다) 사상’에서 받은 지적 충격을 「대화편」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파라오의 땅이 경험한 위대한 시간을 예술과 사상이라는 매개체를 빌려 안내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고대 이집트가 고색창연하지도, 케케묵어 시대에 뒤떨어지지도 않는, 신과의 은밀한 교감에서 비롯되는 평온함, 그리고 건축의 열정으로 솟아나는 기쁨으로 가득 찼던 세계였음을 느끼게 해 준다.
또한 고대 이집트 미술의 모든 작품에는 상당히 어려운 암시와 상징으로 이루어진 다면적인 사유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현대인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
이에 저자는 ‘나일강’이라는 달콤하고도 강력한 마력의 초콜릿을 건네며 차근차근 독자들을 설득해 나간다.
고대 이집트는 나일강이 만들었다.
나일강은 두 개의 관념을 이집트인의 머릿 속에 넣어 주었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이다.
바로 이중성과 주기적인 자연현상에 대한 관심이 그것이다.
두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동시에 상충되는 이중성은 철학적으로 특이한 전제이다. 모든 사물은 부정되지만, 그럼으로써 완성에 이르게 되고 존재하며 대응된다는 것이다.
이중성에 대한 관념은 바로 나일 강의 수위 때문에 생겨났는데, 풍족한 나일 강의 범람이 이집트의 여러 지역을 거대한 호수로 바꾸어놓는 것과 그 나머지 시간 동안 나일 강의 수위가 낮게 유지되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반듯하게 경작된 들판과 역사 초기의 무질서한 습지가 공존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이집트 문명의 특징이라고 한다.
즉 남부의 좁다란 나일 계곡의 황량한 사막(상이집트)과 북부의 넓게 퍼진 삼각주 지역(하이집트)이 그것이다.
이런 이중성은 바로 파라오의 즉위식에서 얻게 되는 칭호에도 관련이 있으며(사초류와 벌의 일원,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왕), 남부 이집트를 상징하는 흰색 왕관과 북부 이집트를 의미하는 붉은색 왕관처럼 두 왕관의 존재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런 대립되는 관념을 시각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것은 미술가들에게 커다란 기회를 제공했고, 이런 도상학적인 특징의 반복은 고대 이집트 미술에는 변화가 없다는 편견을 낳았지만 실제로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속적이며 규칙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을 제공해줌으로써 응집력이라는 장점을 더했다는 것이 저자가 이집트를 바라보는 시선 중 하나이다.
이집트의 예술가들은 창조성이 떨어진다?
또 하나는 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람은 어떤 자연현상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했으며 죽음과 부활이라는 종교적인 관념이 이집트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고대 이집트의 미술 대부분이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을 표현하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과 많은 작품이 무덤에서 발견되는 사실은 이집트인이 죽음에 몰두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야로미르 말레크의 이집트 미술 이야기가 힘을 얻는다.
목차를 보면 마네토(프톨레마이오스 1세 때 이집트 통치자들을 30개 왕조로 분리한 이집트의 성직자)의 왕조체계에 따라 이집트 미술을 정리하는 데에 그치는 것 같으면서도 이집트를 향한 일반인의 편견을 조용하게 질책하기도 한다.
주기적인 자연 현상을 목격한 이집트인들은 삶과 죽음을 나일강의 범람처럼 재생과 부활로 이해하였고, 그들이 정말 죽음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사후세계라는 또 다른 세계의 미술을 덤덤하게 만들어나갔을 뿐이라고 한다.
그는 또 다른 편견 중 하나인 이집트 미술의 비창조성에 대한 설명도 덧붙인다.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와 달리 추상적인 사후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극도로 절제된 실용주의가 필요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수용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 미술에 대한 설명은 물론이고 현대 미술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는 마지막으로 어떤 편견도 없이 이집트 미술을 바라보고 접근할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국내 유일의‘이집트 미술’서적
지은이 야로미르 말레크는 세계적인 이집트학 권위자로 고대 이집트 유물이 많기로 유명한 애슈몰린 박물관 부설 그리피스 연구소 고문서 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이집트 전역의 많은 유적지 발굴 작업에 참여한 성과를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지난 연구 성과부터 최근의 성과까지 포괄하기로 유명한 영국 미술전문 출판사 파이돈사의 아트앤아이디어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이집트 미술 관련 서적 중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옮긴이 원형준
미주리 주립대 미술사·고고학과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홍익대, 수원대 대학원 등에 출강했으며, 『월간미술』 수석기사, 일민미술관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현재 도서출판 루비박스의 대표로 있으며 한양대 강사로 활동 중이다. 논문으로 『고야의 블랙페인팅, 도상학적 연구』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한길아트에서 나온 『회화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 전파』 『구스타프 클림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