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살
우리는 어릴 적 창호지 문에 침을 묻혀 구멍을 내고 그 안의 은밀한(?) 행동들을 훔쳐보는 재미에 한 번씩 빠져 본 경험들이 있다.
그것은 신나게 타 오르는 불구경과, 오랜 장마 뒤에 냇가 제방을 무너뜨릴 기세로 흐르는 황토색 물위 둥둥 떠내려 오는 새끼 돼지를 내려다보는 것과, 남들이 박 터지게 치고 박는 싸움을 실감나게 구경하는 그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것은 남의 비밀을 은밀하게 훔쳐본다는 것에 짜릿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내 생활 평소에 그런 것이 아니라 심술을 가득 담아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뜻이니 혹여 오해 없길 바란다!
옛날, 우리 동네 처음으로 반닫이만한 텔레비전이 들어 왔을 때부터 연속극의 전개를 보자면 거의가 우연히 엿듣게 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것으로 매듭지어지곤 했다. 물론 창호지에 침을 묻혀 구멍을 내고 엿듣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 이었지만, 그것이 요즘에는 찻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가다 방문 앞에서 우연히 엿듣게 되는 것으로 변해 버렸긴 해도 엿듣는 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고 은밀하며, 짜릿한 희열을 느끼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간혹 답사 길에 만난 문살을 보면 가끔씩 어릴 적 추억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음을 짓곤 한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 뚫어 놓은 구멍이 보이면 나는 여지없이 그 구멍에 눈을 맞추고 안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 그 안의 모습들을 이미 다 알고 있다 해도 말이다.
그러나, 문이란 바람을 막아주며, 방안의 따스한 온기를 찬 기운으로 보호하며, 사람이 들락거리는 것만이 그 역할이 전부가 아니다.
문살의 모양에 따라 쓰임이 다르며, 바라보는 시선을 안정되게 보이기 위해 가는 홈 두 줄이 넓은 면이나 좁은 문살에도 세심하게 파여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
그것은 옛날 궁궐의 회랑의 네모진 기둥가운데 난 홈과 같은 이치이며, 위에서 내려오는 직선의 시선을 안정시키기 위한 보이지 않은 미적 감각의 발로였다.
그러나 벽사의 의미가 강하게 접목된 것이 바로 문살이다.
마을 입구에 나무를 심어 잡귀나 역신이 모르고 그냥 지나치게 만드는 비보림(裨保林)이 있고, 그것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지났다면 마을 초입에 무서운 얼굴을 한 암수 장승이 양 옆으로 서 있어 부부가 합동으로 달려들어 또 한 번 사투를 벌려야 하며, 장승에게 어찌어찌 살아 남았다 해도 이미 힘이 얼마간 빠져 찍어놓은 집으로 막 들어서는데 큰 대문 고리에 도깨비가 수문장처럼 지키있어 다시 한번 맞붙어야 한다.
용기있게 그것도 넘어섰다면 간혹 덩치가 크고 귀신까지 본다는 삽살개가 집으로 들어오는 귀신과 맞짱 뜰려고 으르릉 거리고 있다. 이미 기진맥진 해버린 상태에서 억시기 힘 좋은 삽살개 까지 물리친 잡귀나 역귀가 있다면, 용기있게 방문을 열고 들어 올려는 순간 마지막으로 막아서는 것이 바로 문살이다.
그 문살에는 중국 고대의 8진법이 펼쳐 있는가 하면 오도 가도 못하고 그 속에 갇혀버리기도 하며, 방으로 들어갈려는 입구를 찾아 뱅글뱅글 돌기만 하다가 그렇지 않아도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만 탈진해 버린 역신을 그냥 돌아서게 만드는 경우가 바로 문살에 있다.
그러고도 벽사제액(壁邪除厄)이라 하여 귀신을 물리치며 모질고 사나운 운수를 미리 액땜하는 고사까지 지내기까지 하였으니, 그 속에 우리 민족의 심성에 다산(多産)과 풍요와 발복(發福)신앙이 겹쳐져 생활 구석구석에 스며있음이다.
그런 문살의 종류도 다양하다.
모양이 매우간단하며 깔끔한 기본적인 무늬로 단촐한 짜임새의, 날살문이 있다. 이것은 주로 수도승의 선방에 어울리며 바라지창으로 쓰이는 문살이며, 날살문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사치를 배격하고, 검소함이 우러나오는 띠살문이 있으며, 날살과 띠살을 서로 같은 칸으로 짜아 살칸이 많게 촘촘하게 짜아 아주 튼실한 우물살문이 있다.
또한 두 살을 서로 어긋나게 짜나가 마름모무늬의 우물살을 모로 뉘어 약간의 멋을 부린 빗살문이 있으며, 씨날살과 모든 빗살에 다양한 무늬를 연출하여 사방팔방 무늬로 도드라지게 만들어 규칙적이며 화려한 소슬살문이 있다.
그 외 문짝을 통째로 조각하여 짠 꽃나무 살문이 있는가 하면, 만(卍)자살문(완자문)과, 아(亞)자살문, 귀(貴)살문, 거북모양의 귀갑무늬살문 등 다양하게 있다.
위 문살종류는 나의 지식이 아니라 어느 책에서 메모 해 놓은 것인데 그 책이 무엇인지 지금은 가물하여 알 수가 없다.
*김천 직지사 / 각황전(?)
실눈을 뜨고 보면 여러개의 도깨비 눈이 꽃을 빙자하여 노려보고 있다.
*양산 통도사 / 용화전
빗살문이지만 약간씩 각을 죽여서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양산 통도사 / 관음전
촘촘한 살이 보기에도 튼실해 보이지만
그 속에 들여 앉으면 편안해 지는 느낌일 것 같은데.......
*대전 동학사 / 대웅전
다녀온지 몇해가 되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이놈의 문살 사진이 도망가고 없다.
그래서 이너넷 디져 훔쳐온 장물이다.^^*
설명이 필요할까???
*순천 선암사 / 원통전
하나의 나무로 통째로 짠 꽃나무살문
갈때마다 문이 열려있어 자주 접하지 못했다가 어둑해지는 늦은 오후에 들려
담은 사진이라 상태가 좋지 못하다.
*여수 흥국사 / 대웅전
저 문고리를 잡으면 소원성취 한다던데 나는 소원성취 할게 없어 그냥 살짜기
손가락 하나로 옆으로 눌러 사진만 담아왔다.
*부안 내소사 / 대웅전
내가 처음 문살에 매력을 느끼게 해 준 국화꽃살문이다.
색을 입히지 않아 나무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어 바라보는 시선에 부담없이 좋다.
*지리산 연곡사 / 대적광전
빗살문에 가로로 하나 덧댄 문살이다. 무쟈게 튼실해 보이며
아무리 무서운 악귀라 해도 저곳에 빠지면 살아 나갈 수도 빠져 나갈 수도 없을 것 아닌가?
*해남 미황사 / 대웅보전
보얀 질감에 만지면 하얀 가루가 묻어 올 것만 같은 매력적인 문살이다.
하나의 문짝이 어느 예술품 못지 않은 매력이 담겨 있음이다.
주초에 새겨진 바닷동물 게와 거북이와 함께 여전히 저 문살이 그립다.
하나 띁어내어 집안에 액자하여 걸어두고 싶은 욕심은 지금도 여전하다^^*
*강진 백련사 / 대웅보전
백련사 전체 분위기와 잘 어울려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부실하지도 않다.
빗살문에 모양을 주어 둥근 원이 이어진 모습이다.
*양산 통도사 / 적멸보궁
이것은 그냥 쵸콜릿이다.
불쌍한 잡신을 맛있는 것으로 위로하진 않을까나?
* 대구 송림사 대웅전
봄 햇살에 전탑이 보고싶어 들렸다 담은 문살.
그날이 어느님 천도제를 지내는 날이라
시들어 가는 연꽃이 처연해 보이더라.
*합천 청량사 / 대웅전
찬바람에 귀가 얼얼해 져 올 즈음 만나 위로받은 문살이다.
너무나 화려해서 한참을 바라보며 놀았다.
*해남 대둔사 / 천불전
아침 일찍 찾았던 사찰이라, 햇살과 함께 아침을 여는 느낌이다.
*예천 용문사/ 어릴 적 그렇게 많이도 보아왔던 문살이지만
한 번도 관심가지고 본 적이 없었는데.....
내게 사진이 없다. 이것 또한 훔쳐온 장물이다.
*순천 송광사 / 대웅보전
화려한 꽃을 피워내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나무로 짠 꽃나무살문이다.
아마도 성철스님의 손때가 묻어 있을 지 모를 일이다.
검소함이 우러 나오는 띠살문.
모든 사물에도 소홀함이 없는 우리 민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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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마 이거 와이카노?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말이네요! ㅎㅎ젤 위에 사진은 옛날 우리집 문살과 똑같은데..지금은 시골도 문살도 없는 창문이 대부분이니...창호지문에 면경 끼어서 바깥동정 살피던 할머니 생각 나네요!
문도 가지가지..꽃도 가지가지...비는 마음도 가지가지...혹시 극락도 가지가지 아닐까여?
좋군 나도 문살 사진 마이 찍었었는데 찾기가 힘드네 그려
초시님~ 오랫만이예요..문이 저렇게 예쁠수가~~예술이네요..ㅎㅎ 근데~제목이 이상해요..우니나라..ㅎㅎ
문살 한번에 쫙 잘 감상했습니다.
그냥 보아오던 문살이 종류가 이렇게나 많았군요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글 진작에 읽었더라면 지난 여름 선암사랑 송광사 갔을때 좀더 유심히 살펴보았을것을요...배우고 익힙니다...^^*
좋은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