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경항운하(京杭運河)-2
조 집사는 선상 난간을 잡고 있는 석진을 한심하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석진이 난간을 붙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가 운하에 머리를 내밀고는 괴상한 소리
를 지르며 토악질을 했기 때문이다.
"우웩..."
석진이 누런 이물질을 흐르는 강물에 토해내자 조 집사는 고
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조 집사는 석진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습니까? 석 무사님."
"죽을 맛이네... 우웍..."
"술 좀 작작 드십시오."
"술이라니... 이보게 돈형, 자네 설마 내가 술 때문에 이런다
고 생각하는가?"
"아닙니까?"
"당연히 아니지. 천하의 이 석진이 술을 이기지 못해 이런 꼴
을 보인다면 황하에 몸을 던지고 말지."
"그럼 뭡니까?"
"그게... 우웩..."
출렁대는 물결에 배가 흔들리자 석진은 말을 하다가 바로 난
간에 달려가서는 또다시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조 집사
는 석진의 행동을 보고는 원인을 알아챘다.
"설마... 배 멀미!"
조 집사는 석진의 등을 어이가 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석진은 한바탕 고역을 치르고는 파김치가 되어
조 집사에게 흐물흐물 거리는 걸음으로 걸어왔다. 조 집사
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석진에게 질문했다. 자신이 생각한
원인이 아니기를 빌면서...
"석 무사님."
"뭔가? 돈형."
"배 멀미입니까?"
석진은 조 집사의 질문에 흠칫거리더니 시선을 회피했다.
"정말 배 멀미입니까?"
살덩이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던 조 집사의 두 눈이 동전처럼
동그래지며 얼굴 전면에 부상했다.
"어험... 그게 말인즉슨..."
"아니 상단의 호위무사가 배 멀미라니!"
"이보게 돈형, 그게 아니네."
"그게 아니면 무엇입니까?"
"사실 나는 육지 전용이네."
"육지 전용!"
"그렇지. 내가 말을 잘 타네. 그래서 육상에서..."
"말을 돌리지 마십시오. 지금은 배를 타고 있지 않습니까!"
"어험, 그것이 아니네. 내 이래봐도 강북 6성을 좁다고 돌아
다니네. 그러니 운문상회에서 나를 신임하는 것이 아닌가."
"장사를 강북에서만 합니까? 강남에서도 해야 지요. 그러니
배를 타는 것은 기본이 아닙니까?"
"어허... 그게 아니고... 우웩!"
운문상회가 운용하는 상선과 버금가는 크기를 가진 여객선이
교차하며 지나가자 운하의 물결에 깊은 파랑이 생기며 일렁
거렸다. 당연히 상선은 출렁거렸고 석진은 하던 변명을 끝
내지도 못하고 난간으로 달려가 토악질을 해댔다. 조 집
사는 그 광경을 보고는 어이가 없었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
다. 그러나 항상 선교장에 올 때마다 술판을 벌여 일거리를
만들어 자신을 고단하게 만들던 석진이 배 멀미로 곤욕을 치
르는 모습을 보자 조 집사의 마음에는 상쾌한 희열이 떠올랐
다. 그야말로 깨소금맛이라고 할까. 석진이 난간을 잡고
하소연하는 광경을 보는 조 집사의 마음은 기쁘기 한량없어
두툼한 입술이 실룩거렸다.
악삼은 자신에게 배정된 방에서 좌정을 한 채 심상수련(心想
修練)을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달인의 경지에 든 악삼은
육체를 움직이며 수련을 하는 것보다 심상수련이 더 효과적
이었다. 악삼은 지하미로를 통과할 때 얻은 뇌운십팔타와
귀영종의 수련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급한 마음
에 일부분을 사용했지만 그 오의(奧義)를 깨달은 것은 아니었
기에 악삼은 두 가지 무예를 수련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었
다. 악삼은 뇌운십팔타와 귀영종을 쫓기는 시간 속에 쓸만
한 것만 찾아내 사용하거나 익히기는 했지만 그 위력이나 효
과를 잊지 않았다. 운문상회의 상단과 함께 경항운하를 타
고 가는 동안에 생긴 시간을 이용해 두 가지 무예를 완벽하
게 소화하기 위해 악삼은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한편 악삼이 무예에 미쳐 선실에서 나오지 않는 동안 갈운영
과 갈운지는 선상을 거닐며 대운하의 장대함에 감탄하며 경
치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좋은 경치도 한순간이듯이 몇
날 몇 일을 배에서만 생활하다보니 지루함이 생기기 시작했
다. 일반 여객선이나 화물선은 각 지방을 지나가다가 선착
장을 들르기라도 했지만 운문상단과 자은 선생의 목적지는
북경이었기에 중간에 식량과 식수를 보충하기 전까지는 멈추
지 않고 운행을 했다. 당연히 갈씨 자매는 선상 생활이 지
루하다 못해 지겨워졌다. 그런데 갈씨 자매가 지겨움을 이
기지 못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배의 후미에 자리를 깔고
차를 끓이는 등 부산을 떨고 있는 척금방의 두 시비를 발견
했다. 갈운지는 두 시비에게 쪼르르 달려가더니 그들 앞
에 섰다.
두 시비는 자신 앞에 서 있는 갈운지를 보자 하던 일을 멈추
고 바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운지 아가씨."
"그래. 너희들도 괜찮니."
"네, 아가씨."
"그런데 지금 무엇을 준비하는 거니?"
"금방 아가씨께서 세분 아가씨가 지금쯤이면 지루해 하실 거
라며 선상에서 다연(茶宴)을 열어 마음을 풀게 해 드리고 싶
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희들에게 다연을 준비하라고 시키셨
어요."
"그래..."
"네 아가씨. 이왕 오셨으니 다른 곳에 가지 마시고 이리 앉으
세요."
"그러지 뭐."
갈운지는 두 시비가 마련한 양탄자에 앉았다. 그녀는 양탄
자를 쓰다듬더니 시비에게 말했다.
"이거 굉장하네."
"네, 저희 상단에서 비단무역을 하는 대상에게 부탁해 서역
대식국에서 특별히 주문해서 사 온 것으로 아가씨께서 좋아
하시는 것이에요."
"흠... 문양도 아름답고 트임새 없이 꽉 짜진 거 하며 최상품
이구나."
"네, 아가씨."
"그런데 얼마나 기다려야해."
"제 동생이 금방 아가씨에게 같으니 곧 오실 겁니다."
시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척금방이 시비를 대동하고 나타
났다. 척금방은 양탄자에 앉아있는 갈운지를 보자마자 부
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운지 언니."
"어서 와. 금방 동생."
"아직 준비가 안 되었기에 연락을 미루었는데 벌써 와 계시
는 것을 보면 언니도 참 대단하시구려."
"뭐가 대단해! 그리고 아무리 큰배라고 해봐야 넓은 세상에
비하면 작은 울타리에 불과한 법이지. 그런데 이 좁은 곳에서
차를 끓이고 양탄자를 깔면서 부산을 떠는데 모른다면 오히
려 그것이 잘못된 거지."
"호호호, 그렇게 생각하면 언니 말도 일리는 있네요."
"당연하지. 난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하지."
"훗!"
갈운지의 호언장담을 들은 갈운영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
자 갈운지는 지은 죄과가 기억나는지 갈운영의 시선을 피해
주변을 둘러보는 척 했다. 갈운영은 갈운지가 난처한 상황
을 모면하려고 시선을 돌리자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갈운
지는 언니의 미소를 보자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기분을
느끼며 다급한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황보영이
시비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자 갈운지는 속으로 쾌재를 부
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영 언니."
"운지 동생..."
"언니 몸이 안 좋아요?"
"응, 배를 처음 타서 이런 것 같아. 특별히 아픈 곳은 없고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는 것뿐이니까 걱정하지마."
"이런... 어쩌면 좋아요."
"걱정해줘서 고마워."
"당연한 행동이에요. 뭐 그런 것 가지고 고마워 할 필요는 없
어요."
갈운지가 황보영에게 쪼르르 달려가 몸이 괜찮니 마니 말하
며 위기에서 빠져 나가자 갈운영은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고
말았다. 황보영이 갈운지와 시비의 부축을 받고 겨우 양탄
자에 자리를 잡자 척금방은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언니가 이렇게 몸이 안 좋은 것도 모르고 오시라해서 미안
해요."
"아니야, 금방 동생."
"하지만 언니의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선실에만 있다보면 더 몸이 안 좋아질 거야. 오히려 이런 자
리를 마련해준 동생이 고마운 걸."
"그래요. 시원한 바람을 쐬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몸이 좋아
질 것이에요."
"그래요. 운영 언니 말이 일리가 있어요. 게다가 차를 즐기며
수다를 떨다보면 배 멀미 따위는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게 없
어질 것이에요."
"호호호, 동생들의 말만 들어도 벌써 안정이 되고 있어."
네 여인들이 담소를 나누기 시작하자 두 시비는 준비한 차와
다기를 양탄자에 내려놓았다. 척금방은 다기에 차를 부은 후
에 황보영과 갈씨 자매에게 권했다. 네 여인은 담소를 멈추
고 차를 음미했다. 그런데 차 맛을 음미하던 황보영이 감탄
한 안색을 짓더니 찻잔을 내려놓았다.
"금방 동생, 이 차는 무엇이지?"
"역시 언니답군요."
"정말 표현하기가 어려운 느낌을 주는 차야. 그런데 이차는
아무리 생각해도 금시초문인데, 혹시 서역에서 구한 것이야?"
"호호호, 언니 서역의 오랑캐들이 차를 마시기나 하겠어요.
왜 그런 생각을 하신 것이에요."
"그거야 이 자리를 빛내고 있는 것이 서역에서 온 양탄자이
니까."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농담이란다. 이 차가 무엇인 지나 알려주렴."
"오로차에요."
"오로차!"
처음 들어보는 차 이름에 황보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
보영이 생소한 차 이름에 난감해하자 척금방은 미소를 지으
며 말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차이지요. 나중에 언니에게 보내 드리
지요."
"그래 고맙구나. 그런데 이 다연을 연 이유를 말해보렴."
"과연 언니는 저를 너무나 잘 아세요. 사실 오늘 다연을 연
이유는 며칠 동안에 걸친 선상 여행에 지친 마음을 달래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만 부차적으로 축하할 일이 있기 때문이
에요."
"그것이 무엇이냐? 참으로 궁금하구나."
"특별한 것은 아니에요. 단지 자축할 의미가 있기에 겸사겸사
다연을 열었죠."
"답답하구나. 그만 뜸을 들이고 이야기해주렴."
"알았어요, 언니. 지금 저희들이 대운하를 거슬러 올라가는
대역사를 만들고 있잖아요."
"그런데?"
"조금 있으면 우리가 대운하의 중하단에서 시작한 뱃길이 중
상단에 들어서게 돼요."
"그럼 회하에 도달했단 말이냐?"
"네."
며칠이나 지난 뱃길이 아직도 중간조차 가지 못했다는 사실
이 황보영을 쓰러지게 만들 정도로 충격이었다. 그러나 방
실거리며 좋아하는 척금방의 얼굴을 보고 겨우 참은 황보영
은 아무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말았다. 황보영은 대가집의
규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황보영과 달리 갈운지는 희희낙락
한 표정이었다. 이거야말로 그녀가 원하던 여행이었던 것이
다. 운남에서 태호로, 그리고 소주로 갔다가 대운하를 타고
중원의 남북을 가르는 여행은 그녀가 평소에 꿈꾸어 오던 여
행경로였다. 그녀는 중원의 동서남북을 종횡하는 이번 여행
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척금방은 두 사람의 대조적인 표정
이 재미있었는지 고개를 돌리고는 입가의 미소를 손으로 가
렸다. 황보영이 피곤해 했지만 북경까지 가는 길은 아직도
아득하게 남아 있었기에 척금방은 세 여인이 지루함을 느끼
지 못하게 할까 골몰했다. 그만큼 대운하는 길었다. 크게
상단, 중단, 하단으로 분류하는 대운하의 길이는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였고 인간이 만들어낸 몇 안 되는 대역사중에 하나
였다. 수양제때 만들어진 남단은 장강 남부에서 진강(鎭江)
을 경유해 항주까지 연결된 것이고 역시 수양제때 시공한 북
단은 낙양의 낙수를 황하까지 연결한 것이다. 그리고 중단은
상, 하로 분류하여 중상단은 낙양에서 강소성 북부의 회하와
연결된 것이고 오나라의 부차가 만든 중하단은 회하와 양주
를 연결한 것이다. 운문상단의 상선은 강소성 북부를 가로
지르는 회하에 도착했다.
조 집사는 석진이 배 멀미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통
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더러운 것이 정이라고 걱정이 들기 시
작했다. 석진의 배 멀미는 그 정도가 심했기에 조 집사는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석진에게 먹일 부드러운 죽을
부탁하기 위해 주방에 들어간 조 집사는 5명의 요리사들이
주방장에게 기합을 받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오?"
"아... 조 집사님 오셨군요."
"무슨 잘못된 일이라도 있소?"
"저... 그게 말입니다."
"말해 보시오."
"자은 선생님께 드릴 식사를 준비했는데 만들어 놓은 음식이
사라져서 그렇습니다."
"음식이 사라졌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누가 손을 댄 것인가를 물었더니 다
들 모른다고 해서 정신을 차리라고 기합을 주고 있었습니다."
"장주님이 드실 음식이 사라졌다... 느낌이 안 좋군."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아래 사람들을 잘못 다루어 이런 일
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직접 주방에 오신 겁
니까?"
"부탁할게 있어서 왔소."
"무엇입니까?"
"석 무사님이 배 멀미로 고생이 심하시오."
"아! 부드러운 죽을 부탁하시려고 오신 겁니까?"
"그렇소."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시오."
조 집사는 주방장에게 부탁을 하고는 주방을 나갔다. 그런
데 이상하게도 조 집사의 뇌리에 주방에서 음식이 사라졌다
는 주방장의 이야기가 떠나지 않았다. 조 집사는 무언가 잘
못된 부분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방 안에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들어가지 않는 장소였고 요리사들이 음식
을 건들일 수는 없었다. 조 집사의 뇌리에 기묘한 경보음이
울리자 바로 창고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창고 안에는 자은
선생이 북경에 가는 원인이 되는 물건이 실려 있었다. 그
물건의 가치가 조 집사마저 선교장을 지키지 못하고 운문상
회가 운용하는 상선에 몸을 싣게 만들었던 것이다. 조 집
사는 그 육중한 몸무게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일 보를 내밀 때마다 무려 일 장씩 이동하는 조
집사의 신법은 경이적이었다. 특히 육중한 몸을 날리는 데
비하여 전혀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조 집사의
경공이 뛰어난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짐작해 주었다.
조 집사는 창고 문을 열고 들어와 그 물건부터 찾았다. 다
행히 그 물건은 아무 이상없이 숨겨져 있어 조 집사는 안도
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미약한 숨소리가 조 집사의 귀
에 들려왔다.
"누구냐!"
조 집사의 육중한 몸이 한 순간에 앞뒤가 교차되었다. 번
개같은 회전을 한 조 집사는 숨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한
순간에 이동해 버렸다. 도저히 그 몸집으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한의 빠름이었다. 조 집사는 무려 4장이나 되는 거
리를 일수유(一須臾)에 갈라 버렸다. 수많은 짐들이 쌓여
있음에도 단 하나 건들이지 않고 먼지조차 내지 않고 마치
공간이동이라도 한 듯이 거리를 압축한 조 집사의 신법은 경
이로웠다.
"컥!"
조 집사의 손은 숨소리가 들려오는 구속으로 들어갔다가 나
왔다. 그런데 그 손엔 13, 4세 정도로 보이는 한 소년의 목
을 잡아채서 끌고 나왔다. 황의를 입은 소년은 조 집사의
손에 숨통이 잡혀 허공에서 대롱거리며 격한 숨소리를 냈다.
조 집사는 황의를 입은 소년의 목을 잡고는 자신의 얼굴과
마주치게 끌어올리고는 말했다.
"너는 누구냐?"
"컥! 컥!"
소년은 아무런 말도 못했다. 조 집사의 손바닥 안에 목이 통
째로 잡혀 말은 고사하고 숨조차 쉬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
런데 소년의 얼굴을 자세히 보던 조 집사의 안색이 이상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조 집사는 소년의 정체를 알아채자 혼
비백산해버렸다. 소년은 이 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
고 자신이 감히 범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조 집사
의 안색은 사색이 돼 버렸다.
유영군주가 실종된 소주 시내는 그야말로 살얼음판과 같았다.
불야성을 방불케 하는 소주의 환락가조차 광풍처럼 몰아치는
관헌들의 움직임에 허리를 바싹 굽혀 영업을 하지 않았다.
소주 시내는 살벌한 기운이 넘쳐흘러 그 어떤 강호 방파도
소주에서 활동을 멈추었다. 또한 오행도의 소문을 듣고 소주
에 몰려든 강호인들도 평소와 달리 조용하게 소주에 잠복해
버렸다. 그러나 겉으로 들어 난 모습과 달리 소주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개방과 환희궁은 무서울 정도로 활동을 하고 있
었다. 비록 겉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듯 해도 악삼을 추적하
는데 모든 정보망을 가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악삼의
소식은 어느 곳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구류방주가
자신에게 날아온 첩지 한 장을 읽고 난 후에 모용혜에게 달
려 간 후에 문제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용혜는 구류방주
연적심이 가져온 첩지를 보고는 장시간을 골몰하다가 결론을
내리고는 기묘한 미소를 짓고는 악중악과 등곡, 강천리를 불
렀다. 모두가 모이자 모용혜는 그들 앞에 첩지를 꺼내고는
말했다.
"악삼은 소주에 없습니다."
"뭐라고요!"
악중악과 등곡, 강천리의 안색은 삽시간에 변해 버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연 방주가 말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팔 당주님."
모용혜의 명령을 들은 연적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주에 있는 본 방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악삼과 쌍둥이
자매를 목격했다는 내용의 첩지를 보내 왔습니다."
"정말입니까? 연 방주."
"그렇습니다. 등 각주."
"첩지는 어디에 있습니까?"
"팔 당주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시선이 일제히 모용혜에게 집중되었다. 그 강렬한 시선은
불꽃마저 얼어붙을 정도였으나 모용혜의 안색은 태연하기만
했다. 모용혜가 아무런 말도 없이 부드럽게 미소만 짓자 세
사람의 마음은 새까만하게 타버렸다. 그런데 모용혜의 시선
이 탁자 한 가운데에 놓여진 첩지에 머물자 세 사람의 한 가
지 생각이 났다. 모용혜가 들어오자마자 탁자에 첩지를 놓
은 기억이 생각난 것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탁자에 내려
논 첩지에 일제히 집중됐다. 세 사람은 첩지를 펼쳐 보았
다.
[방주님 친전.
양주 지부를 맡고 있는 초금산입니다. 방주님께서 찾고 있
는 인물을 4일 전에 목격했습니다. 그들이 운문상회의 상선을
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운문상회의 상단의 최종
목적지는 북경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 낸 것은
나루터에서 일하는 본 방의 제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
습니다. 또한 운문상단에 운문상회의 주인인 척신명이 있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척신명과 그 딸인 척금방이 방주님이
찾는 자들과 같이 승선했고 그 외에 여러 명이 더 있었습니
다만 자세한 정보가 부족한 관계로 그 정체를 알아내지는 못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운하 주변에 있는 여러 형제들에
게 연락을 보냈으니 추후 정보는 다른 형제들에게 받으십시
오.
방주님께 영원한 충성을.]
첩지를 다 읽은 세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등곡은 안색이 참담하게 변해버리며 타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탁자를 내리쳤다.
[쾅.]
두께가 세 치나 되는 원목으로 만든 탁자가 등곡의 일 장에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나 버렸다.
"이럴수가 있나... 사람을 이토록 바보로 만들다니..."
"고정하십시오. 등 사형."
"하하하, 이런 줄도 모르고 무석에 수하들을 남겨두고 왔으니
내가 바보가 되었군."
"무석에 남긴 수하에게 악삼을 찾으라는 명령을 남기셨습니
까?"
"그러하네..."
"등 각주. 분노할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그들은 구류방의 눈
에 걸린 이상 더 이상 추적을 떼지 못할 것이에요."
"죄송합니다. 모용 선배님."
"자 우리끼리 이럴 때가 아니에요. 빨리 악삼을 추적하러 가
야죠."
"네, 맞습니다. 등 사형, 모용 선배님의 뜻이 옳습니다."
"그렇게 해야겠지. 악 사제 어서 준비하세."
"네, 알겠습니다."
모두들 악삼을 추적하기 위해 준비를 하자며 자리에서 일어
서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조용히
연적심에게 다가가 첩지를 전해주고는 나가버렸다. 모용혜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연적심의 손에 들린 첩지에 시선이 일
제히 집중되었다. 연적심은 첩지를 펼치더니 탁자에 내려놓
았다. 모두의 시선은 일제히 탁자에 놓여진 두 번째 첩지에
몰렸다.
[방주님 친전.
낙양 지부를 맡고 있는 관철동입니다. 방주님의 명령과 초
금산이 전해준 정보를 바탕으로 운문상단의 상선을 추적했습
니다. 얼마 안 돼 운문상단의 상선 2척을 발견했으나 접근은
하지 못했습니다. 운문상단의 상선이 움직이는 속도로 봤을
때 이 첩지가 방주님께 도착하고 나서 4일 정도면 낙양에 도
착합니다. 그들이 낙양에 머문다면 시간을 끌어 보겠습니
다. 그러나 현재까지 보여준 운문상단의 상선 움직임을 보았
을 땐 그냥 통과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들은 바로 대운하의
북단을 타고 황하로 올라갈 것으로 예측됩니다. 새로운 정보
가 생기면 바로 급전을 날리겠습니다.
방주님께 영원 충성을...]
첩지에서 시선을 뗀 등곡과 악중악, 강천리는 탄식을 했다.
악삼이 너무나 멀리 도망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모용혜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첩지에 있는 한 구절을 되새기고 있었다.
"황하... 황하라..."
"왜 그러십니까?"
악중악은 모용혜의 언사에 이상함을 느껴 물어 보았다. 그
러나 모용혜는 악중악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깊
은 생각에 빠져버렸다. 일각이 지나자 모용혜는 생각이 정
리되었는지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고는 천장을 향해 외쳤다.
"비영."
모용혜의 부름소리가 메아리가 치기도 전에 비영은 환상처럼
나타났다. 비영은 아무런 말없이 모용혜 면전에 부복해 있
었고 그 환상적인 신법에 악중악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탄
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자신들이 가진 오감으로는 비영을
찾아 내지 못하자 그들은 비영을 그저 그림자나 괴물 정도로
치부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그리고 모용혜는 비영을
차갑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취마(醉魔) 이 형(二 兄)에게 가서 장강수로연맹(長江水路聯
盟)의 힘을 빌려 운문상단의 상선을 막고 내가 그 상선과 조
우할 수 있게 압력을 넣어 달라고 말씀드려라."
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속에서 편지를 꺼내 모용혜에게
전해 주었다. 모용혜는 받은 편지를 펼쳐 보았다.
[막내에게 전한다.
네 부탁대로 잔영대를 이끌고 내가 직접 움직이고 있다. 그
런데 다섯 째와 여섯 째가 동행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만나
면 술이나 한 잔 거하게 사거라. 이만 줄이마.]
모용혜는 편지에 쓰여진 내용에 놀라 비영에게 물었다.
"곡마(哭魔) 오 형(五兄)과 소마(笑魔) 육 형(六兄)이 잔마 이
형과 동행하고 있단 말이냐!"
비영은 모용혜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혜는 재미난
장난감을 구한 아이처럼 즐거운 표정이 되었다.
"정말 재미있어. 이 형과 나 만 해도 만만치 않은데 오 형과
육 형까지 끼여들었다. 게다가 문제가 복잡해지면 장강수로연
맹과 황하수로칠십이채(黃河水路七十二寨)가 대운하에서 격돌
할 수가 있겠어. 호호호, 정말 재미난 일이 생길 것 같아."
모용혜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참지 못하고 교소를 터트렸
다. 악중악과 등곡, 강천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왠지 피바람
이 불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들이 모용혜에게
불길함을 느끼고 있는 동안 비영은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ㄳ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즐감하고 갑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이랍니다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