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엘리자베스 테일러(Dame Elizabeth Taylor, 1932년~2011년)
세기의 미녀이자 미국 영화 협회(AFI) 선정 가장 위대한 여배우 7위.
출연하는 영화마다 대히트를 치며 30년 가까이 명성과 인기를 한몸에 받은 톱스타
영국에서 태어난 미국의 전설적인 영화배우. 런던 햄스티드에서 미국인인 프랜시스 렌 테일러와 역시 미국인인 세라 비올라 웜브롯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형제자매는 오빠 하워드 테일러가 있다.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은 할머니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애칭인 '리즈(Liz)'로 자주 불렸다. 영국에서 미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났기 때문에 출생 때부터 미국과 영국의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가족이 미국 LA으로 귀국하였다. 어릴때부터 예쁜 외모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1942년 10세 때 배우로 데뷔했으며 인기를 얻은 것은 <녹원의 천사>라는 영화에 아역배우로 출연했을 때부터였다. 이후 2001년까지 50편의 영화 - 드라마나 미니시리즈, 성우로 출연한 것까지 합치면 80여 편 - 를 찍으며 세계 최고의 미녀로 뽑히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클레오파트라>,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버터필드 8> 등이 있다. 단순히 외모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받았으며 골든 글로브 4회, 영국 아카데미 2회 수상자이기도 했다. 특히 리처드 버튼과 함께 출연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 외모를 잊게하는 리얼한 막장 부부 연기를 보여준걸로 유명한데 리처드 버튼, 조지 시걸, 그리고 샌디 데니스까지 네명의 남녀 주조연들이 전부 아카데미의 해당 분야에 노미네이트 된 정도로 모든 출연자들의 연기 앙상블이 뛰어나다. 이 중 아카데미에서 수상한건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샌디 데니스.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그저 미녀 배우로만 알고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8번의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도 유명하며, 2011년 3월 23일 울혈성 심부전증 투병 중 향년 7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실상 그녀의 사망으로 20세기 할리우드의 여신이라 불리었던 여인들(비비안 리,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캐서린 헵번) 대부분이 이제는 모두 역사 속으로만 남게 되었다.
말 그대로 미녀의 대명사. 키는 약 160cm였다는데, 그녀의 전성기 시절엔 그녀의 키 역시 미인의 기준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1963년 개봉한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인 리처드 버턴과 열연한 주인공 클레오파트라 7세 역은 그녀가 아니면 소화하지 못했다고 할 정도
보라색 눈으로 유명하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 본인이 생전 이 사실을 부정하였다. 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자신의 눈은 사실 짙은 파란색으로 사진과 조명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실제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사진 대부분이 짙은 벽안으로 보인다. 실제로 켈트족 사이에서 보라색 비슷한 짙은 벽안이 아주 드물게 나온다고 한다. '리즈의 눈, 먼로의 입술' 이라는 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지금도 역대 최고의 아름다운 눈을 가진 배우로 평가 받는다. 또한 속눈썹이 두 겹으로 나서 더 예뻐 보인다.
인간관계
리즈 테일러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결혼과 이혼인데, 힐튼 호텔의 후계자 콘래드 힐튼 주니어와 결혼한 것을 시작으로 무려 8번의 결혼과 이혼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상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그녀의 이미지는 세기의 미인 여배우라기보다는 결혼과 이혼을 밥먹듯 하는 돈많은 성형중독 아줌마(...) 결국 이덕분에 롤스로이스 팬텀 구매를 거부당했다. 결혼까지는 안 갔다 하더라도 그 외에도 수많은 남자 배우들과의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말년에는 콜린 파렐과 친해졌는데 그는 리즈의 8번 째 남편이 되길 원했다. 그녀와 결혼한 남자들의 목록을 살펴보자면······.
• 콘래드 니키 힐튼 주니어 (Conrad Hilton Jr.) (1950-1951) - 힐튼 호텔의 경영자의 아들. 테일러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다. 이혼 사유는 남편의 폭력.
• 마이클 윌딩 (Michael Wilding) (1952-1957) - 영국 출신의 영화배우. 이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들 두 명을 출산했다.
• 마이크 토드 (Mike Todd) (1957-1958)- 영화 제작자. 매우 재능있는 사람이었지만 '테일러 남편'으로 더 알려졌다. 비행기 사고로 사망. 딸 한명을 출산.
• 에디 피셔 (Eddie Fisher) (1959-1964) - 프랭크 시나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팝 가수. 이 시기부터 테일러의 막장행보가 시작되는데, 에디 피셔는 유부남인데다 마이크 토드의 친구였고 그의 부인인 영화배우 데비 레이놀즈는 테일러의 친구였다. 즉 남편의 친구이자 친구의 남편과 바람을 피운 것. 막장 드라마가 부럽지 않다. 이 때, 아들과 참석한 파티에서 에디 피셔가 그의 아들에게 리즈 테일러를 가리키며 '저 여자 죽이지 않냐'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교황청에서도 이 불륜에 대해 비난했다. 그러나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 출연 중에 상대 배우인 리처드 버튼이랑 눈이 맞아서서 이혼했다.
사실 에디 피셔도 엄청난 바람둥이였다. 심지어 여기저기 사생아를 만들다보니 헐리우드 파티에 참석한 에디 피셔의 아들이 이상하게도 유난히 끌리는 여자가 있기에 작업을 걸었는데 그 여자가 '우리 이복남매사이예요.울 아빠도 에디 피셔'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사람의 딸이 유명한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역을 맡은 캐리 피셔. 참고로 캐리 피셔는 테일러의 딸은 아니다. 상술한 데비 레이놀즈의 딸. 테일러와 이혼한 에디 피셔는 슬럼프에 빠져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데비 레이놀즈는 테일러가 죽기 직전 병문안을 가서 화해를 했다고 한다.
• 리처드 버튼 (Richard Burton) (1964-1975, 1975-1976) - 당대 최고의 터프가이로 유명한 웨일즈 출신의 배우.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역을 맡아 테일러와 함께 영화를 찍으며 사랑에 빠졌다. 버튼은 다혈질적인 성격에다가 알코올 중독까지 있어서 테일러와 엄청나게 싸웠지만 테일러가 가장 사랑한 남자였고 테일러는 죽은 후에 이 사람과 함께 묻히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둘의 결혼식은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불리웠으며, 이 때 버튼이 테일러에게 선물한 33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가 유명했다. 딸 머리아 버튼이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남.
• 존 윌리엄 워너 (John William Warner) (1976-1982) - 정치인. 테일러와 결혼한 이후 그 후광으로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이후 5선까지 당선. 해군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 래리 포튼스키 (Larry Fortensky) (1991-1996) - 20살 연하(!)의 건설 노동자이자 트럭 운전기사. 마이클 잭슨의 농장인 네버랜드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버턴과 이혼하고 워너를 만나기전, 주미 이란 대사인 아르데시 자헤디와도 염문을 뿌렸지만, 당시 이란 국왕 레자 팔레비의 압력으로 헤어졌다.
한때 할리우드 최고의 바람둥이이던 워런 비티와도 교제했다. 하지만 같은 바람둥이인데도 '사랑하면 결혼해야한다.'는 테일러와 '사랑해도 결혼은 최대한 미루자'는 워렌 비티의 결합은 곧 깨어진다.
마이클 잭슨과 절친한 친구 사이여서 잭슨이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을때 그의 편을 들었으며 잭슨 또한 그녀를 위해 곡을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잭슨의 자녀 3명의 대모가 되었다.(대부는 맥컬리 컬킨)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어서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원래는 취임식때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암투병 때문에 방문이 무산되어 마이클 잭슨이 대신 그 친서를 전달해주었다고.
아직 에이즈가 더러운 게이병, 창녀나 마약중독자나 걸릴 병이라 매도되던 80년대 시절, 오랜 친구인 록 허드슨이 에이즈 투병을 고백했을 때, 편견없이 이전과 똑같이 대해준 몇 안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 외
• 상당히 지병이 많이 있었다. 위에 언급한 <녹원의 천사>에서 승마하는 연기를 하다가 척추를 다쳤다. 이후 이 고질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고 말년에 휠체어 신세를 지기도 했다. 또한 뇌종양에 걸려 고생했고, 결국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AIDS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는데, 1992년에는 이를 주제로 한 영화로 상을 받기도 했고 사망 후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에이즈 협회'라는 단체가 생기기도 했다.
• 2000년, 영국 신년 서훈명단(2000 New Year Honours)에서 대영제국 훈장 여성 2등급(DBE)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대영제국 훈장의 2등급은 받으면 호칭(Sir/Dame)이 따라붙는 '작위급 훈장'이다. 남성의 기사작위(Knight Bachelor)와 동급인 특전인 것이다. 이에 따라, 리즈 테일러는 이때부터 '엘리자베스 테일러 여사(Dame Elizabeth Taylor, DBE)' 로 불렸다.
• 테일러는 크리스천 사이언스라는 듣보잡종교를 믿었다가 에디 피셔랑 결혼하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했다.
• 몇 편의 애니메이션에 성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심슨의 매기 심슨역을 맡기도 했는데, 매기가 했던 유일한 대사인 "Daddy"는 이 사람의 목소리이다. 또한 캡틴플래닛에서 앤드루스 부인 역으로 출연하기도.
• 2011년 12월에 테일러의 보석 컬렉션이 화제가 되었다. 낙찰 총액이 무려 115,932,000달러에 달했다고. 위에서 언급한 3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는 한국의 이랜드그룹에게 낙찰되어 대구의 테마파크 '우방타워랜드' '이월드'에서 전시될 예정. 이 외에도 테일러는 진귀한 보석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리처드 버턴이 사준 것이었다. 버턴은 성격이 기분파였고 보석을 고르는 안목이 매우 뛰어나 테일러에게 불쑥불쑥 보석을 많이 선물했다고 하는데, <타지마할>의 주인공인 무굴 제국의 왕비가 소유했던 하트 모양의 다이아몬드나, 윈저 공작부인이 소지하고 있던 보석, 펠리페 2세가 메리 1세에게 선물했던, 500년 전 파나마만에서 한 노예가 건져올렸던 '라 페레그리나 진주'가 달린 목걸이등이 있다.
• 생전 테일러가 에이즈 예방 홍보대사였고, 성 소수자 인권 운동에 호의적이었다는 이유로 웨스트보로 침례교회에서 "잘 죽었다" 팻말을 들고 테일러의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 교회는 동성애 반대 운동을 굳이 장례식장에서 하는 것과 고인드립으로 악명 높다. 한편 장례식은 비공개로 거행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정많은 의리 있는 성격에 성 소수자 인권운동에 힘쓰고 동물을 무척 사랑했던 스타로 유명하다고 한다.
어록
• 나는 항상 남편과 아이들을 원했지만, 가정주부로서의 내 삶은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내 자리는 관객들이 봐주는 영화속이다.
• 당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웨이트리스가 될 뿐이다. 당신은 절대로 존경받지 못할 것이다.
• 세월과 체중과 주름과 싸우는 것은 여배우의 숙명이다. 나는 언제나 아름답고자 노력할 것이다.
• 나는 평생 화려한 보석에 둘러싸여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정말 필요로 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과 사랑, 그것 뿐이었다.
• 너무나 사랑하기에 헤어진다. - 리처드 버턴과 이혼하면서..나중에 나훈아-김지미 커플도 이 말을 써먹는다
• 성공은 탈취제 같다. 과거의 향기를 다 앗아가 버리니까.
• 나는 많은 남편과 보석을 얻으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삶은 그저 발생했다.
• 나는 남편 이외의 남자와 잔적은 한 번도 없다.
• 당신이 스캔들에 휘말릴 때 진짜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 아름다움 - 아카데미 시상식 후 피로연에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꼽으라고 했을 때의 대답
• 내가 아는 이탈리아 단어는 오직 불가리(이탈리아 최고의 보석상, 리즈는 불가리의 뮤즈였다.)뿐.

첫댓글 카페를 운영하면서 어디를 가든 보고 들은 것을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더이상 머리는 믿을 수 없는 그 무엇이 되고 말았습니다. 본 자료는 세계영화음악대전집에서 아이템을 얻어 인터넷 나무위키 등의 자료를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