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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낙양대협(洛陽大俠)-1
하남성 낙하(洛河)에 위치한 낙양(洛陽)은 중국의 칠대고도
(七大古都)중에 하나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였다. 특
히 동주(東周), 동한(東漢), 조위(曹魏), 서진(西晉), 북위(北
魏), 수(隧), 당(唐), 후량(後粱), 후당(後唐)의 아홉 왕조가 도
읍지로 삼았기에 구조고도(九朝古都)로 불리는 낙양은 중국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고도라 할 수 있었다. 이 낙양에 운문
상회의 상선이 돛을 내리게 된 것은 예정에 없던 일로 이 모
든 일은 소명왕부의 금지옥엽인 유영군주가 몰래 상선에 탔
기 때문이었다. 자은 선생과 척신명을 비롯한 상선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갑작스런 예정의 변동에 짜증이 났지만
단 한 사람만은 기쁨을 금하지 못했다. 그는 바로 배 멀미
로 생고생을 하던 석진이었다. 석진은 배가 선착장에 도착
하자마자 가장 먼저 땅을 밟기 위해 달려나갔다. 그만큼
석진은 선상 생활이 악몽이나 다름 없었다. 자은 선생이
유영군주를 모시고 낙양지부에 가자 석진은 목을 풀어야겠다
는 생각이 들어 조 집사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조 집사를
발견한 석진의 눈은 분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조 집사가
자신을 빼고 악삼과 대작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돈형. 이럴 수가 있는가?"
"석진... 무사님..."
"세상에 술을 마시는데 나만 쏙 빼고 둘이서 마셔!"
"그게 아니고..."
"뭐가 그게 아닌가!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 그리고 악 아우,
자네를 그렇게 안 봤는데 이럴 줄은 몰랐네."
석진은 두 사람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섭섭함을 내
비쳤다. 조 집사와 악삼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석진이 자신
들을 현장에서 체포한 범인 보듯 하자 어이가 없었다.
"후우~, 석진 무사님을 안 부른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흥, 그래 어디 한번 말해 보게나."
"배 멀미로 녹초가 되어 환자가 된 사람에게 어떻게 술을 마
시자고 합니까? 그리고 제가 악 소협과 술을 마시게 된 것은
내 목숨이 지옥에 갔다 다시 되돌아 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
서 연 것입니다."
"그건 무슨 소리인가? 그리고 내가 언제 환자였나?"
석진은 언제 자신이 환자였냐며 가슴을 쭉 내밀며 내 건강이
어때서 그러는 것이냐는 듯이 오리발을 내밀었다. 조 집사
는 석진이 당당히 내뱉자 어이가 없어 고개를 흔들었다.
"어제만 해도 배 멀미 때문에 선상에서 데굴데굴 구르신 분
이 누구였습니까?"
"난 그런 사람 본 적이 없는데."
"없다고요. 허..."
"그렇지. 하지만 자네들은 나를 빼고 오붓하게 술 마시는 현
장을 나에게 들켰네."
"허...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당연히 나도 끼워 줘야지."
"그럼 오셔서 드시면 되지 않습니까?"
"흐흐흐, 내가 이런 초라한 술판에 앉을 수 있는가?"
석진과 악삼이 마시는 술은 그래도 좋은 술로 불리는 산서의
분주였고 안주는 잘 구운 오리였다. 그리 나쁜 안주는 절대
로 아니었다.
"도대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 배는 지겨우니 밖에 나가서 마시자는 것이네. 어떻게
되었든 낙양에 도착했지 않았는가. 그럼 낙양에서 가장 잘 나
가는 주가(酒家)에서 마셔야지."
"배가 언제 떠날지 모르는데 무슨 말씀입니까?"
"흐흐흐, 미안한 일이지만 최소한 열흘은 낙양에서 기다려야
하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석진 선배."
석진과 조 집사의 대화를 조용히 경청만 하고 있던 악삼이
중간에 끼어 들었다. 갑자기 열흘이나 낙양에 있어야 한다
는 석진의 말이 신경에 거슬렸던 것이다.
"자네 모르고 있었나?"
"무슨 말씀입니까?"
"돈형, 악 아우는 아직 모르고 있는가?"
"네, 악 소협은 선실에만 있었기 때문에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네랑 술을 마시고 있었지 않았는가?"
"자세한 사정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 목이 갔다가 다
시 되돌아 왔으니 술좀 마시자고 한 것이었죠."
"악 아우, 자네는 돈형의 이야기를 듣고 궁금하지도 않았는
가?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전모를 알려고
안달을 하는데 말이야."
"남자는 말할 때가 되면 하고 못할 이야기면 가슴속에 묻는
법이 아닙니까. 그런 것을 일부로 알아내려 한다면 오히려 문
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허! 대단해. 정말 놀랍구먼."
석진은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세우며 악삼이 가진 나이를
초월한 배려하는 마음에 감탄했다.
"악 소협에게 감탄하는 것은 그만하시고 열흘이 넘게 낙양에
있어야 하는 이유나 말해 주시지요."
"그거야 당연히 유영군주님 덕분이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유영군주님이 왜 나오는 것입니까?"
석진이 유영군주를 논하자 조 집사와 악삼은 동시에 되물었
다.
"일단 악 아우에게 저간에 일어난 일부터 설명하는 것이 옳
겠군."
"그렇군요."
조 집사는 석진의 말에 수긍을 했다. 악삼에게 조 집사는
자신이 가출한 유영군주가 자신들이 탄 배에 밀항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또한 자신이 유영군주에게 저지른 무
례에 대해서도 말했다. 악삼은 조 집사의 설명이 끝나자 고
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조 집사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신 것이군
요."
"그렇습니다. 악 소협. 감히 황실의 군주를 능멸하고도 제가
살아 남았으니 그야말로 하늘이 주신 행운인 셈입니다."
"당연히 천운이지. 키득키득, 잘하면 네 거리에 돼지 머리가
매달릴 뻔한 사건이었지."
"석진 무사님!"
"하이고, 화는 내지 말게. 대신 술은 내가 사겠네. 자네들은
마시기만 하면 되네."
"그것보다 어떻게 된 일이기에 열흘이나 정박해야 한다는 것
입니까?"
"그것은 주가에서 술을 마시며 말하지. 어서들 일어나게나."
악삼과 조 집사는 석진에게 이끌려 선실에서 나왔다. 그들
은 상선에서 내려 선착장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선착장에
는 꽃같이 아름다운 네 여인이 모여 있었다. 그 네 여인은
황보영과 척금방, 갈운영, 갈운지였다. 조 집사는 황보영을
발견하자 앞으로 달려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셨습니까. 아가씨."
"나는 괜찮아요. 역시 땅을 밟으니까 살만하네요."
"아무래도 이런 장기여행이 처음이라 그러실 겁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조 집사."
"네, 말씀하십시오."
"아까부터 조 집사를 찾고 있었는데 어디에 있었어요?"
"제가 그만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 집사는 자신이 그만 자기 본분을 잊고 대낮부터 술을 마
신 일에 그만 부끄러움을 느꼈다. 집사로 일을 시작하고 나
서 처음 하는 실수였지만 조 집사는 자책을 느껴 안색이 굳
어졌다. 황보영은 조 집사가 실수한 것을 처음 보았을 뿐
아니라 자기 실수에 대해 심한 자책을 느끼고 있는 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웃음을
보이면 조 집사의 마음이 더욱 부끄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
어 입으로 겨우 가리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책무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아니니 걱정 말아요. 그런데 어
디에 있었나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아서 그런 것이에
요."
"악 소협과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소인을 찾으
셨습니까?"
"악 소협과 같이 있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소인이 심난해서 악 소협과 술을 마시고 있
었습니다."
"유영군주님 때문에 매우 놀랐나 보군요."
"알고 있어요. 방금 전에 낙양 지부의 하인이 아버님의 연락
을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인편으로 온 연락이 열흘 이상 낙
양에서 머물러야 한다는군요."
"알겠습니다."
"나와 척 동생, 갈씨 두 동생은 유영군주님께서 낙양지부에서
같이 지내자는 연락이 와서 지금 떠나게 됐어요. 그러니 조
집사가 두 시비와 하인들을 돌보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보영 아가씨."
황보영은 지부에서 보낸 사두마차가 도착하자 고개를 끄덕이
더니 척금방과 갈씨 자매에게 말했다.
"동생들, 마차가 왔으니 어서 가도록 하자구나."
"알았어요. 언니."
황보영이 마차에 오르자 바로 척금방이 그 뒤를 따라가는 동
안에 갈운지는 악삼에게 다가왔다.
"악가가, 그럼 저는 언니들을 따라 갈게요."
"알았다."
"그동안 푹 쉬고 계시고요 제가 연락하면 바로 와주세요."
"그래. 어서 마차에 오르거라. 언니들이 기다린다."
"알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갈운지는 악삼에게 막내 여동생처럼 굴었다.
그런데 악삼은 갈운지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의 첫인
상을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과 대비를 이루어 악삼
에게 어이없는 웃음을 주었다. 악삼은 차갑지만 독한 모습
의 갈운지가 어디로 갔는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기도 했다.
물론 그 모습이 갈운영의 흉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
리 생각해도 느껴지는 이질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
악삼은 갈운지보다 차가운 눈동자를 번뜩이며 아무런 말이
없는 갈운영이 심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
런데 마차가 떠나자 석진은 바로 조 집사와 악삼의 손을 잡
고 낙양 시내로 돌진하려고 했다. 그러자 조 집사는 억지로
손을 빼면서 석진에게 말했다.
"석진 무사님 안되겠습니다."
"흐흐흐, 선교장의 시비랑 하인들 때문이라면 걱정 말게나.
자네가 없어도 그들을 챙길 사람이 있다네."
"무슨 뜻입니까?"
"선교장의 시비들은 금방 아가씨 시비들과 함께 낙양에 있는
객잔에서 머물도록 준비해 두었네. 그리고 하인들 역시 낙양
에 있는 운문상회의 지점에서 숙식을 하니 걱정하지 말게나."
"그렇지만..."
"됐네. 이 사람아. 선교장 권속들을 챙기는 것은 척금방 아가
씨가 직접 명을 내렸네."
석진은 조 집사와 악삼을 마구잡이로 끌고 낙양 시내로 처
들어 갔다. 석진은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낙양에서 이름 높
은 주가를 찾아 나섰다. 얼마 후에 사람들에게 들은 양천
주가(陽泉酒家)를 찾은 석진은 두 사람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
다. 석진은 양천주가에 들어서자 2층으로 올라가 전망을 즐
길 수 있는 한적한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악삼과 조 집사
도 석진이 자리에 앉자 고개를 흔들고는 마주 앉았다. 그런
데 석진과 악삼, 조 집사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점소이 한 명
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와 애걸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나리 다른 자리로 옮기시면 안되겠습니까요."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이냐?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안되겠습니까. 2층은 모두 예약이 되어
있는 뎁쇼."
"뭐야! 먼저 앉는 놈이 주인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구나. 더 이상 시끄럽게 굴지 말고 술 한 통하고 괜찮은
안주나 가지고 오너라."
"아이고 안 됩니다. 그러다간 소인이 맞아 죽습니다. 제발 소
인을 살려주는 셈치고 자리를 옮겨 주십시오."
"어허! 이놈이..."
석진은 울고 짜는 점소이의 행동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악삼은 석진의 얼굴이 점차 붉어지자 이제 열다섯에서 열 여
섯으로 보이는 점소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점소이는 석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무시무시하게 변하자 눈물을 짜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설명을 하거라. 그래야 우리가
자리를 옮기든 말든 할 것이 아니냐."
"훌쩍, 그게 다른 일이 아니오라 오늘 저녁에 낙양사공자께서
지부대인의 고명따님을 모시고 잔치를 연다고 했습니다. 그래
서 2층에 일체의 잡인을 금하라는 명령이 내려 왔습죠."
"낙양사공자?"
"아니 세 분은 그 유명한 낙양사공자를 모르십니까?"
"도대체 어떤 인물들이기에 그러는 것이냐?"
점소이는 악삼 일행이 낙양사공자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다며 그들에 대해 설명했다. 침을 튀기며 열렬하게
낙양사공자에 대해 설명을 한 점소이는 악삼 일행에게 그들
이 이 정도의 인물이니 알아서 기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
나 점소이의 기대는 너무나 어이없이 무너져 버렸다.
"잘 알았네. 이제 그만 가서 술과 안주를 가지고 오게."
악삼이 던진 말은 낙양사공자의 위용에 대한 열변을 토로한
점소이가 원하던 말이 아니었다. 점소이는 그야말로 자신
이 한순간에 바보가 됐음을 느꼈다. 자신의 능력으로 안
된다는 것을 그제 서야 알아챘는지 점소이는 아래층으로 내
려갔다. 점소이가 아래에 내려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몽둥
이를 든 건장한 사내 십여 명이 양천주가의 주인이 같이 올
라왔다. 양천주가의 주인은 악삼 일행을 지긋이 노려보았
다. 그리고 그는 악삼 일행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뭐냐! 겨우 땅딸보 한 명에 기생오라비 한 놈, 게다가 삼류
건달 한 놈을 처리 못해서 나를 부른 게냐."
"그게 아니오라..."
양천주가의 주인은 점소이를 닦달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몰랐다.
"기생오라비!"
"땅딸보..."
"나보고 삼류건달이라고!"
세 사람은 양천주가의 주인이 내뱉은 말을 되씹었다. 그리
고 세 사람은 그 날 누가 성격이 가장 급한지 알게 되었다.
[짝. 짝. 짝...]
"으악..."
"아이쿠..."
석진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을 때 벌써 조 집사는 몽둥이를
건장한 사내들의 뺨을 후려갈려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그
비대한 몸이 물찬 제비보다 빠르게 움직이며 현란하게 뺨을
후려칠 때마다 비명소리가 양천주가를 떠나갈 정도로 울렸다.
조 집사는 사내들의 모조리 바닥에 눕히고는 양천주가의 주
인 목을 움켜쥐고는 공중으로 끌어 올렸다.
"켁. 켁..."
"다시 한번 말해 보아라."
양천주가의 주인은 숨이 막히는 고통에 눈물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자신이 끌고 올라온 십 여명이 모두 이빨이 나간 채
바닥에서 구르고 있자 자신의 두 눈을 뽑고 싶었다. 이들은
동네의 건달 따위가 아니었다. 자신 같은 장사치들이 가장
두려워 마지않는 강호인들이었다. 양천주가의 주인은 숨이
막히는 고통을 참으며 살기 위해 어떻게든 말을 해서 애걸하
기로 했다.
"켁... 용서를... 켁.. 켁... 소인이... 무지해서..."
"흥!"
조 집사가 손을 풀자 양천주가의 주인은 바닥에 나동그라졌
다. 그러나 그는 바로 일어나 조 집사 앞에 무릎을 끓었다.
"소인이 무식해서 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더 이상 말하기 귀찮으니 술과 안주나 가지고 와라."
"네, 네, 알겠습니다. 최고의 술과 안주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조 집사에게 풀려난 양천주가의 주인은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마자 자신의 무식한 안목을 탓하지는 않고 모든 죄를 점소이
에게 돌렸다. 점소이는 주인이 자신에게 화를 내자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도망가 버렸다. 주인의 두 눈에 핏발이 서
있어 잘못하다간 초상이라도 치를 것 같았으니 일단 급한 불
은 피하자는 식으로 도망을 간 것이었다. 그리고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양천주가의 2층에는 악삼과 석진, 조 집사 세
사람이 대낮부터 술을 마셔대게 시작했다. 한 통의 술이 삽
시간에 비어버리자 그들은 끝없이 술을 추가 주문했다. 석
진은 원래부터 술고래였으니 당연하게 술 한 동이로는 양에
차지 않았지만 조 집사가 오늘은 취하겠다고 작정하고 마셔
대니 그 양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였다. 악삼은 두 사
람이 마셔대는 주량에 고개를 흔들면서 천천히 술을 마시며
그 맛을 음미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낙양의 거리에 땅거
미가 지면서 어둠에 휩싸이기 시작하자 집집마다 등불이 켜
지기 시작했다. 양천주가의 1층에는 수많은 손님들이 등불
아래에 모여 저녁을 먹으며 술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악
삼 일행이 대낮부터 시작한 술판이 벌어진 2층에는 단 한 사
람도 올라오지 않았고 술 동아리와 안주를 나르기 위해 주인
혼자 왔다갔다하며 끙끙대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대낮
에 도망갔던 점소이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2층에는 누구도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은 팔자에도 없는 고
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고생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
다. 양천주가의 주인이 2층으로 올라갈 안주를 챙기기 위해
주방에 들어간 순간에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인물들이 2층으
로 올라간 것이었다. 그들은 낙양에서 권세와 부를 가지고
있는 집안의 자제들 네 명으로 흔히 낙양사공자라 불리는 인
물이었다.
이소는 낙양사공자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의 부친은 낙양에
서 가장 큰 표국(驃局)인 금도표국(金刀驃局)을 운영하고 있
었다. 하남성에서 물산이 모이는 낙양에서 표국업을 한다
는 것은 부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큰 부를 보장한다
는 것은 그 만큼 많은 경쟁자들을 불러모으는 것이다. 그러
므로 낙양에서 표국업을 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무공실력과
함께 큰 뒷배경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소의 부친인 이장
도는 막강한 뒷 배경과 그에 못 지 않은 무공을 겸비하고
있었다. 이장도의 뒷배경은 하남성은 물론 강호 전역에서
통하는 것이었고 그 지닌 무위도 일류고수에 도달해 강호 백
대고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한 이장도는 그 성격이 호탕
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데 발벗고 나섰기 때문에
낙양 사람들은 그를 낙양대협이라고 불렀다. 또는 이장도가
사용하는 병기인 금도(金刀)를 별호로 삼아 낙양금도(洛陽金
刀)라고도 불렀으니 이 모든 것이 낙양 사람들 대부분이 그
를 존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낙양대협의 단 하나뿐인
아들인 이소는 부친을 존경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표국업을
위해 천하 방방곡곡(坊坊曲曲)을 돌아다니느라 자신에게 신경
을 쓰지 않는 것에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커서는 남
들에겐 있는 재산 없는 재산 퍼주면서 자신에게 검약을 강조
하는 아버지의 뜻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소는
아버지의 뜻과 달리 낙양 저작거리를 돌아다니는 한량으로
살아갔고 자신과 뜻이 맞는 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
들은 하남성의 모든 상권을 한 손에 쥔 금양상회의 주인인
석중의 차남인 석종우와 낙양의 지부대인의 장남인 양진, 낙
양의 대유인 장학림의 사남인 장번이었고 이들 셋과 이소를
합해 낙양사공자라 불리고 있었다. 이소는 특히 양진의 여
동생인 양혜선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있는
양천주가에서의 모임에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낙양 지부에 특별한 손님이 와서 양혜선이 올 수 없다는 이
야기를 들은 이소의 기분은 그렇게 좋지가 못했다. 그래도
일단 예약된 모임이라 낙양사공자는 양천주가에 모여 음주를
즐기며 하루를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양천주가에 예약한
자리에서 도착한 그들을 반기는 것은 술에 취한 악삼 일행이
었다. 악삼 일행은 양혜선을 만나지 못해 기분이 나쁜 이소
의 가슴에 기름을 뿌린 것과 같았다. 이소는 가슴속에서 타
오르는 불길을 악삼 일행을 향해 퍼붓고 말았다.
"아니 뭐냐! 술 취한 멧돼지와 주정뱅이 삼류 건달에 기생오
라비가 감히 우리가 예약한 자리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다니!"
이소의 망언에 낙양의 세 공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
덕이며 악삼 일행을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악삼과
석진, 조 집사는 이소의 망언이 떨어지자마자 마시던 술잔을
멈추고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조 집사는 바람처럼
움직였다.
"짝. 짝. 짝. 짝."
"으악!"
"커억!"
숙호충비(宿虎衝鼻)라는 말이 있다. 한 마디로 잠자는 호랑
이 코털은 건들이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이소는 그 말이
지닌 뜻을 몰랐기에 어금니가 뭉텅 빠지고 코피를 흘린 채
바닥에 엎어지게 된 것이었다. 특히 술에 취한 조 집사는
양천주가에서 부른 건달패에게 힘을 쓸 때완 다르게 힘을 조
절하지 못했다. 낙양사공자는 모두 조 집사에게 뺨을 한
대식 맞고는 기절해 버린 것이다. 악삼 일행은 낙양사공자
가 뻣어 있음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아침해가 떠오를 때
까지 술을 마시고는 운문상회가 마련한 객잔으로 유유히 사
라졌다. 낙양사공자가 깨어 난 것은 악삼 일행이 사라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올라온 양천주가의 주인이 자신
들을 깨워서야 일어날 수가 있었다. 그들은 조 집사의 일
격으로 뭉개져 버린 자신들의 얼굴을 보고는 창피함에 몸을
떨다가 그 분노를 애꿏은 양천주가의 주인에게 화살을 돌렸
다. 양천주가의 주인은 저녁부터 시작해 그 다음 날 새벽
까지 일어난 악몽만 해도 이가 갈릴 지경인데 낙양사공자에
게 아침부터 시달리자 세상이 한탄스러울 정도였다. 낙양사
공자가 사람들 눈을 피해 양천주가에서 떠나자 주인은 솟구
치는 심화를 이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뻣어 버렸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일의 원흉인 악삼 일행을 저주하기 보다 도망간
점소이에게 이를 갈았다. 그런데 점소이는 양천주가의 주인
이 자신을 향해 이를 갈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점소이는 양천주가에서 도망을 나오자
마자 바로 근처에 있는 포목점으로 달려갔었다. 그 포목점
은 지하에 밀실이 있었고 점소이가 달려나간 이유도 그곳에
가기 위해서였다. 밀실에는 단 한사람이 정신없이 비둘기
를 날리거나 각종 수편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관철동이었고 구류방의 낙양지부를 관리하고 있었다. 관철
동은 점소이에게 악삼 일행이 양천주가에 나타났다는 보고를
듣자 바로 문서를 만들어 비둘기 발목에 채워 연적심에게 날
렸다. 그리고는 점소이에게 악삼 일행을 비밀리에 미행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점소이는 구류방의 방도였던 것이
다. 그런데 관철동은 중요한 명령을 받았다고 좋아하며 나
가는 점소이의 등을 보며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관철동은
방주가 직접 챙기는 사건을 자신의 관할지역에서 생기자 출
세는 보장됐다는 생각이 들어 그 어떤 희생을 치르는 한이
있어서 이 기회를 잡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나간 점소
이뿐 아니라 누구든지 제물로 삼아서라도 절호의 기회를 놓
칠 수가 없다고 그는 다짐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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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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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이랍니다
즐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