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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 내편(內編) - 응제왕편(應帝王篇)
자연 속에서 일하며 살아 가는 백성들은 결코 어리석은 존재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제도나 법령으로 그들을 억압해선 아니된다는게 장자의 지론이다.그에 의하면 이상적인 군주란 도를 터득하고 자기의 마음을 비운채, 모든 일을 자연의 질서에 맡기는 사람이다. 이렇게 그는 무위자연의 다스림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기질상 소국과민(小國寡民)의 노자보다도 더욱 기성질서나 정치에 대한 불만이랄까,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이 그를 무정부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리라.
1. <얽매이지도 않고 아무것도 모른다>
齧缺問於王倪(설결문어왕예) 四問而四不知(사문이사부지)
설결은 왕에에게 네 번을 물었으나, 거듭 모른다는 대답을 들었다.
齧缺因躍而大喜(설결인요이대희) 行以告蒲衣子(행이고포의자)
설결이 뛸 듯이 기뻐하며 포의자에게 달려가 이를 알렸다.
蒲衣子曰(포의자왈) 而乃今知之乎(이내금지지호)
포의자가 말했다. "자넨 이제야 깨달았는가.
有虞氏不及泰氏(유우씨불급태씨)
성천자인 순(舜)임금도 옛 제왕인 태씨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有虞氏(유우씨) 其猶藏仁以要人(기유장인이요인)
순은 비록 인의로써 사람들을 감화시켰으나,
亦得人矣(역득인의) 而未始出於非人(이미시출어비인)
이는 여전히 시비를 따지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泰氏其臥徐徐(태씨기와서서) 其覺于于(기각우우)
그런데 태씨는 누워 잠잘 때는 펀안하였고, 깨어 있을 때에는 느긋하였다.
一以己爲馬(일이기위마) 一以己爲牛(일이기의우)
그러기에 남들이 자기를 말로 여기든, 혹은 소로 여기든 전혀 마음을 쓰지 않았다.
其知情信(기지정신) 其德甚眞(기덕심진)
그 슬기는 참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이었고, 그 덕은 진실로 순수하였다.
而未始入於非人(이미시입어비인)
그리하여 애당초 시비의 영역에는 빠져들지 않았던 것이다.
2. <세상은 강압에 의해 다스려지지 않는다>
肩吾見狂接輿(견오견광접여) 狂接輿曰(광접여왈)
일중시의 제자인 견오가 광접여를 만났다. 광접여가 물었다.
日中始(일중시) 何以語女(하이어여) 肩吾曰(견오왈)
"일중시는 네게 무슨 말을 하던가?" 견오가 대답했다.
告我君人者(고아군인자) 以己出經式義度(이기출경식의도)
"군주는 자기 소신대로 법령과 제도를 만들어 공포해야 한다.
人孰敢不聽而化諸(인숙감불청이화저)
그러면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느냐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狂接輿曰(광접여)
광접여가 말했다.
是欺德也(시기덕야) 其於治天下也(기어치천하야)
"그것은 덕을 속일 뿐이다. 세상을 그렇게 다스리려 함은
猶涉海鑿河(유섭해착하)
마치 바다를 걸어서 건너고 강바닥을 손으로 파헤치며,
而使蚊負山也(이사문부산야)
모기에게 산을 지게 하려는 것과 같다.
夫聖人之治也(부성인지치야) 治外乎(치외호)
성인은 외면적인 제도나 법령을 손질하기에 앞서,
正而後行(정이후행)
사람의 성품을 올바르게 키우고,
確乎能其事者而已矣(확호능기사자이이의)
그들에게 저마다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해내게 한다.
且鳥高飛以避矰弋之害(차조고비이피증익지해)
새는 높이 날아 주살의 위험을 멀리 하고,
鼷鼠深穴乎神丘之下(혜서심혈호신구지하)
생쥐는 신단밑에 집을 지어,
以避熏鑿之患(이피훈착지환)
연기에 그슬리거나 파헤쳐지는 재앙을 피한다.
而曾二蟲之無如(이증이충지무여)
그런데 너는 저 짐승들이 어리석은 줄로만 알고 있느냐"
* 저 자연의 품속에서 무심히 살아가는 새나 생쥐 들도 모두 자기 나름의 지혜는 갖추고 있다. 하물며 인간에 있어서랴. 따라서
위정자가 백성들을 어리석은 존재로 여기고 각종 규제나 법령으로 억압한다면 이는 큰 잘못이다. 그러기에 성인은 사람의 성품을 바르게 키우며, 그
적성과 분수에 맞는 삶을 영위토록 하는 것이다.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방안으로 장자는 시종일관 자유 방임론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그의
자연에 대한 믿음 때문으로 여겨 진다.
3. <사람은 편안히 생활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天根(천근) 遊於殷陽(유어은양) 至蓼水之上(지요수지상)
천근이 은양에서 놀 때 요수가에 이르러,
適遭無名人(적조무명인) 而問焉曰(이문언왈)
마침 무명인을 만났다. 천근이 무명인에게 물었다.
請問爲天下(청문위천하)
"천하를 다스리는 방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無名人曰(무명인왈) 去(거) 汝鄙人也(여비인야)
무명인이 대답했다. "물러 가라, 이 야비한 사람아,
何問之不豫也(하문지불예야) 予方將與造物者爲人(여방장여조물자위인)
얼마나 시시한 질문이냐. 나는 지금 조물자와 벗이 되어 노니는 사람이다.
厭則(염즉) 又乘夫莽眇之鳥(우승부망묘지조)
하지만 싫증이 나면 다시 저 멀리 나는 새를 타고,
以出六極之外(이출육극지외) 而遊無何有之鄕(이유무하유지향)
우주 밖으로 나가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노닐며,
以處壙埌之野(이처광랑지야) 汝又何帠以治天下(여우하예이치천하)
끝없는 들에서 쉴까 한다. 너는 어찌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일로써,
感予之心爲(감여지심위)
내 마음을 흔들려 하느냐"
又復問(우복문) 無名氏曰(무명인왈)
그래도 천근이 거듭 묻자, 무명인이 대답했다.
汝遊心於淡(여유심어담) 合氣於漠(합기어막)
"마음을 담박한 경지에 두고, 기운을 고요한 곳에 몰입시키며,
順物自然(순물자연) 而無容私焉(이무용사언)
자연을 좇아 사사로움을 버리도록 하라.
而天下治矣(이천하치의)
그러면 천하는 제대로 다스려지리라"
4. <세상은 저절로 다스려지게 해야 한다>
陽子居見(양자거견) 老聃曰(노담왈)
양자거가 노담을 만나 말했다.
有人於此(유인어차) 嚮疾强梁(향질강량) 物徹疏明(물철소명)
"여기 한 사람이 있어 재빠르고 굳세며, 사물의 이치에 밝고,
學道不勌학도불권) 如是者(여시자)
도를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可比明王乎(가비명왕호)
가히 옛날의 성천자에 견줄 수 있을 까요?"
老聃曰(노담왈)
노담이 말했다.
是於聖人也(시어성인야) 胥易技係(서이기계)
"그런 사람을 성인은 말단관리가 자기 맡은 일을 처리하며 잔재주에 사로잡혀,
勞形怵心者也(노형출심자야)
몸과 마음을 고달프게 하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네.
且也(차야) 虎豹之文來田(호표지문내전)
에컨대 호랑이와 표범의 모피는 사냥꾼을 부르고,
猨狙之便(원저지편) 執[未+夂+厂+來]之狗來藉(집리지구래자)
원숭이와 사냥개의 날쌤은 쇠사슬에 매이는 원인이 된다.
如是者(여시자) 可比明王乎(가비명왕호)
그러므로 그런자를 어찌 선천자에 견줄 수 있겠는가"
陽子居蹴然曰(양자거축연왈)
양자거가 다시 물었다.
敢問明王之治(감문명왕지치)
"감히 성천자의 다스림에 대해 알고자 합니다"
老聃曰(노담왈)
노담이 대답했다.
明王之治(명왕지치) 功蓋天下(공개천하)
"성천자의 다스림은 온 세상을 덮을만 하여도,
而似不自己(이사부자기)
그와는 관련이 없는 것 처럼 보이며,
化貸萬物(화대만물) 而民弗恃(이민불시)
그 교화가 만물에 미쳐도 백성들은 깨닫지 못한다.
有莫擧名(유막거명) 使物自喜(사물자희)
실적이 있어도 뭐라고 이름붙일 수없고, 만물로 하여금 스스로 만족케 하며,
立乎不測(입호불측) 而遊於無有者也(이유어무유자야)
자신은 인간의 슬기로는 헤아릴 수 없는 허무의 세계에서 노니는 것이다"
* 호랑이와 표범은 그 모피의 화려함 때문에 사냥꾼의 표적이 되고, 원숭이와 사냥개는 그 민첩함으로 인해 사슬에 매이게 된다.
이처럼 장점과 특기가 당사자를 구속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정치도 지나치게 능률 위주로 행해 진다면 도리어 낭패를 불러 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천자는 선정을 베풀어도 백성이 그것을 의식치 못하게 하고, 교화가 만물에 미쳐도 백성이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조물자가 고기에게 물의 존재를 잊게 하며, 뭇 짐승에게 공기의 고마움을 알지 못하게 함과 같은 이치이다.
5. <운명은 있으나 볼 수는 없다>
鄭(정) 有神巫曰(유신무왈) 季咸(계함)
정나라에 계함이라는 신통한 무당이 있었다.
知人之死生存亡(지인지사생존망) 禍福壽夭(화복수요)
그는 사람들의 禍福壽夭(화복수요)에 대해,
期以歲月旬日若神(기이세월순일)
그 날짜까지 정확히 알아맞혔다.
鄭人見之(정인견지) 皆棄而走(개기이주)
정나라 사람들은 그를 보면 모두 피해 달아 났다.
列子(열자) 見之而心醉(견지이심취) 歸以告壺子曰(귀이고호자왈)
열자가 그 무당을 만나 보고는 홀딱 반하고 돌아와 호자에게 말했다.
始吾以夫子之道(시오이부자지도) 爲至矣(위지의)
"저는 지금까지는 선생님의 도를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則又有至焉者矣(즉우유지언자의)
하지만 그보다 더한 게 있음을 알았습니다"
壺子曰(호자왈)
호자가 말했다.
吾與汝旣其文(오여여기기문) 未旣其實(미기기실)
"나는 너를 위해 도의 형식은 가르쳤지만 아직 그 알맹이는 보여 주지 못했다.
而固得道與(이고득도여)
그런데 네가 어찌 도를 터득했다고 하겠느냐.
衆雌而无雄(중자이무웅) 而又奚卵焉(이우해란언)
암컷이 많아도 수컷이 없으면 생명이 있는 알을 낳지는 못한다.
而以道與世亢(이이도여세항) 必信夫(필신부)
너는 도에 대한 피상적 지식을 내세워 남들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故使人得而相汝(고사인득이상여) 嘗試與來(상시여래)
그러니 무당이 너의 속셈을 꿰뚫어 보고, 관상을 쉽사리 알아 맞히는 것이다.
以予示之(이여시지)
시험삼아 그를 데리고 와서 내 관상을 보도록 하라"
6. <심적 현상은 관상으로 알 수 없다>
明日(명일) 列子與之見壺子(열자여지견호자)
다음 날 열자가 무당을 데리고 와 호구자의 관상을 보게 하였다.
出而謂列子曰(출이위열자왈) 嘻(희)
무당은 관상을 다 보고 나서 밖으로 나와 열자에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子之先生死矣(자지선생사의) 弗活矣(불활의)
"당신의 스승은 곧 죽게 될 것입니다. 도저히 살 가망이 없습니다.
不可以旬數矣(불가이순수의)
앞으로 열흘도 못살고 돌아가시게 될 것입니다.
吾見怪焉(오견괴언)
나는 당신의 스승에게서 이상한 상을 보았습니다.
見濕灰焉(견습회언)
기상이 마치 물에 젖은 재의 빛이었습니다"
列子入(열자입) 涕泣沾襟以告壺子(체읍점금이고호자)
열자는 그 말을 듣고 방으로 들어가서 눈물을 흘리며 호구자에게 그 말을 전했다.
壺子曰(호자왈)
그러나 호구자는 태연히 열자에게 말했다.
向吾示之以地文(향오시지이지문)
"나는 무당에게 흙덩어리와 같은 기상을 보여 주었다.
罪乎不誫不止(죄호부진부지)
나의 마음은 움직이지도 않고 정지하지도 않은 상태로 있었다.
是殆見吾杜德幾也(시태견오두덕기야)
이것은 나의 마음속에 잠재한 덕의 기상을 막고 있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嘗又與來(상우여래) 明日(명일)
다시 한 번 무당을 데리고 와 보거라" 다음 날 열자는,
又與之見壺子(우여지견호자)
다시 무당을 데리고 와 호구자의 관상을 보게 하였다.
出而謂列子曰(출이위열자왈)
무당이 관상을 보고 나와 열자에게 말했다.
幸矣(열의) 子之先生遇我也有瘳矣(자지선생우아야유료의)
"천만 다행입니다. 당신의 스승은 나를 만나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灰然有生矣(회연유생의) 吾見杜權矣(오견두권의)
생기가 돌고 있습니다. 당신의 스승에게서 생의 잠재력의 움직임을 보았습니다"
列子入告壺子(열자입고호자) 壺子曰(호자왈)
열자가 호구자에게 들어가 그 말을 전하자, 호구자가 열자에게 말했다.
向吾示之以天壤(향오시지이천양)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하늘과 땅 사이에서 움직이는 나의 기상을 보여 주었다.
名實不入(명실불입)
사물과 사물의 명칭이 나의 마음에 들어 오지 않았다.
而機發於踵(이기발어종)
그리고 나는 발뒤꿈치로 숨을 쉬었다.
此爲杜權(차위두권) 是殆見吾善者幾也(시태견오선자기야)
이것은 그가 나의 생의 잠재력이 움직이는 것만 본 것이다.
嘗又也來(상우야래)
다시 한 번 그를 데리고 와 보거라"
明日(명일) 又與之見壺子(우여지견호자)
다음 날 열자는 다시 무당을 데리고 와 호구자의 관상을 보게 하였다.
出而謂列子曰(출이위열자왈)
무당이 밖으로 나와 열자에게 말했다.
子之先生(자지선생) 坐不齋(좌부재)
"당신의 스승은 정지되어 있지 않아 상을 볼 수가 없습니다.
吾無得而相焉(오무득이상언) 試齋(시재) 將且復相之(장차부상지)
만일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상을 제대로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列子入告壺子(열자입고호자) 壺子曰(호자왈)
열자가 안으로 들어가 호구자에게 무당의 말을 전하자, 호구자가 말했다.
向吾示之以太衝莫朕(향오시지이태충막탈)
"이번에는 그에게 마음이 맑고 깨끗한 상을 보여 주었다.
是殆見吾衡氣幾也(시태견오충기기야)
그래서 그는 나의 수평선 같이 평온한 관상을 보게 된 것이다.
鯢旋之潘爲淵(예선지반위연)
예를 들면 마음의 움직임이 어떤 때는 물이 소용돌이 치는 것과 같고,
止水之潘爲淵(지수지반위연)
또 어떤 때는 물이 잔잔히 머무는연못과도 같다.
流水之潘爲淵(유수지반위연)
어떤 때는 샘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연못과 같고,
濫水之潘爲淵(남수지반위연)
어떤 때는 넘쳐 흐르는 연못과도 같다.
沃水之潘爲淵(옥수지반위연)
어떤 때는 기름진 물이 흐르는 연못과 같고
氿水之潘爲淵(궤수지반위연)
어떤 때는 샘물과도 같이 흐르는 연못과 같고
雍水之潘爲淵(옹수지반위연)
어떤 때는 조화롭게 흐르는 연못과 같고
汧水之潘爲淵(견수지반위연)
어떤 때는 늪처럼 흐르는 연못과 같고
肥水之潘爲淵(비수지반위연)
어떤 때는 기름진 물처럼 흐르는 연못과 같다.
是爲九淵焉(시위구연언)
이것을 아홉 가지 마음의 연못이라 한다.
嘗又與來(상우여래)
어찌 되었든 다시 한 번 데리고 와 보거라"
7. <달인은 운명마저 초월한다>
明日(명일) 又與之見(우여지견)
다음 날 다시 열자가 무당을 데리고 와 호구자의 관상을 보게 하였다.
壺子(호자) 立未定(입미정)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관상을 보던 무당이 안절부절 못하다가
自失而走(자실이주)
그만 넋이 빠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달아났다.
壺子曰(호자왈) 追之(추지)
호구자가 열자에게 말했다. "그의 뒤를 쫓아 가 보아라"
列子追之而不及(열자추지이불급)
열자가 무당의 뒤를 따라 갔으나 끝내 따라 잡지 못하고
反以報壺子(반이보호자) 曰(왈)
돌아와 호구자에게 말했다.
已滅矣(이멸의) 已失矣(이실의)
"무당을 놓쳐 버렸습니다.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吾不及也(오불급야) 壺子曰(호자왈)
따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호구자가 열자에게 말했다.
向吾示之以未始出吾宗(향오시지이미시출오종)
"아까는 그에게 나의 도가 아직 밖으로 나타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吾與之虛而猗移(오여지허이의이)
나는 그와같이 허무의 상태로 돌아가서 자연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였을 따름이다.
不知其誰何(부지기수하)
그래서 그는 결국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었다.
因以爲茅靡(인이위모미)
따라서 그는 나를 조화속에 숨어서
因以爲波流(인이위파류) 故逃也(고도야)
흐르는 물같이 흘러간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도망쳐 버린 것이다"
然後列子自以爲未始學而歸(연후열자자이위미시학이귀)
열자는 호구자의 말을 듣고 지금까지 배운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아
三年不出(삼년불출)
집으로 돌아가 삼년 동안 문밖에 나가지 않고
爲其妻爨(위기처촌)
아내를 대신하여 밥을 지으며 부엌일을 하였고,
食狶如食人(식희여식인)
돼지 먹이기를 사람 먹이듯 하였다.
於事無親(어사무친)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그리 애착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雕琢復朴(조탁부박)
그 때 까지 갈고 닦았던 것을 다 버리고 다시 순박한 생활로 돌아왔다.
塊然獨以其形立(괴연독이기형립)
목석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 가면서 외부의 사람과는 인연을 끊고,
忿然而封戎(분연이봉융) 壹以是終(일이시종)
다만 하나의 도와 더불어 인생을 마치려고 하였다.
* 무차별한 도의 경지에 들어선 이에게는 사생존망이나 길흉화복도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는 이미 주술과 점복 그리고
운명론마저 초월한 것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달인의 미래에 대해 점술사가 왈가왈부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8. <마음 쓰기를 거울과 같이 해야 한다>
无爲名尸(무위명시) 无爲謀府(무위모부)
명성의 주인공이 되지 말고, 모략의 주모자가 되지 말라.
无爲事任(무위사임) 无爲知主(무위지주)
일의 노예가 되지 말며, 슬기의 주인이 되지 말라.
體盡无窮(체진무궁) 而遊无朕(이유무짐)
무궁한 도와 하나가 되어 허무의 세계에서 노닐라.
盡其所受乎天(진기소수호천)
하늘에서 받은 바를 온전케 하며,
而无見得(이무견득) 亦虛而已(역허이이)
더 이상 얻으려 하지 말라. 다만 마음을 텅 비울 뿐이다.
至人之用心(지인지용심) 若鏡(약경)
지인의 마음은 거울과 같다.
不將不迎(부장불영) 應而不藏(응이부장)
보내지도 않고 맞지도 않으며, 받아 들이되 잡아 두지도 않는다.
故能勝物而不傷(고능승물이불상)
그러므로 사물에 대응하면서도 스스로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다.
9. <인위가 가해지면 자연은 죽는다>
南海之帝爲儵(남해지제위숙) 北海之帝爲忽(북해지제위홀)
남해(南海)의 임금을 숙(儵)이라 하고, 북해(北海)의 임금을 홀(忽)이라 하고,
中央之帝爲渾沌(중앙지제위혼돈)
중앙의 임금을 혼돈(渾沌)이라 불렀다.
儵與忽(숙여홀) 時相與遇於渾沌之地(시상여우어혼돈지지)
어느 날 숙과 홀 두 임금이 함께 혼돈이 있는 곳을 방문하였다.
渾沌待之甚善(혼돈대지심선)
혼돈은 그들을 반겨 정중히 대접했다.
儵與忽謀報渾沌之德(숙여홀모보혼돈지덕) 曰(왈)
숙과 홀은 혼돈의 호의에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지 상의를 하게 되었다.
人皆有七竅(인개유칠규)
"사람은 누구나 눈과 귀와 입과 코 모두 합쳐 일곱개의 구멍이 있고,
以視聽食息(이시청식식)
그 덕택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쉬고 할 수 있는 것인데,
此獨無有(차독무유) 嘗試鑿之(상시착지)
오직 혼돈에게는 그것이 없다. 우리가 고맙다는 표시로 구멍을 뚫어 줌세"
日鑿一竅(일착일규)
그래서 두 임금은 하루 한 구멍씩 뚫기 시작했는데,
七日而渾沌死(칠일이혼돈사)
일을 끝마쳤을 때는 혼돈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 여기서 혼돈은 자연을 가리키며 숙과 홀은 인간의 순발력과 지혜를 암시하고 있다.
자연은 인간에게 무한한 혜택을 주지만,
인간은 이에 순응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도전하는 마음으로 이를 개발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자연 파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다. 이 우화는 인위적인 개발이 안고 있는 위험성에 대한 경고이다.
첫댓글 고생하셨습니다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날씨가 많이 추워졌네요.
건강조심하시고
따뜻하고 행복한 밤 보내세요.^^*
@우물속의 달 고운밤 되세요 !
즐감
莊子 內編의 應帝王篇을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