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4.8.25) 말씀/ 누가복음 19:16-17 남는 것이 있는 인생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섬머셋 몸의 달과 6펜스를 읽어보면 35세의 중년의 가장으로 중권 브로커 일을 하던 사람이 감자기 모든 일을 때려치우고 아내와 자식과 가정을 버리고 사라집니다. 도전히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혹시 바람을 피운것인 아닌가 상상도하고, 수소문해서 그를 찾습니다. 하지만 그가 발견된 곳은 파리의 어느 누추한 뒷골목의 허름한 방이었고, 거기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여자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해야할 이유가 있을까?.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못배기겠단 말이요" 그러다가 후에는 남 태평양의 작은 섬 타히티에 들어가 오두막집을 짓고 문명사회와 떨어져 그림에만 전념합니다. 거기서 문둥병이 걸리고 장님까지 됩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그림에 대한 열정도 멈추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죽음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병과 죽음 역시 삶의 일부일뿐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 이었습니다. 장님이 되고, 문둥병이 걸렸지만 그는 오히려 낙원의 비죤을 꿈꾸며 최고의 아름다운 벽화 그림을 그리고 완성합니다. 누군가가 알아지기를 바라지도 않고, 작품에 미련을 두지 않고, 후대에 이름 석자 남기려하지 않습니다. 육체가 병들어 죽어가면서 집과 함께 그림을 불사르라고 유언을 합니다. 사람들은 천제의 작품을 아까워하며 말리기도 하였지만 그의 아내는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지릅니다. 순식간에 재가 됩니다. 죽는 순간까지 그가 한 것은 최선을 다해서 그림에 정열을 다 쏟아붓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쏟아붓고 죽었는데 죽은 후에 그의 이름은 불멸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아름다움과 예술에 온 열정을 다 쏟고 간 고갱의 삶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렇게 살았고 죽었지만 고갱은 죽지 않고 남았고, 여기저기 그의 남겨진 그림들고 엄청난 가격으로 거래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생전 싸게 거래되었던 그림을 한점이라도 더 사두었을 것을 후회를 합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무엇인가 해보고자 하지만 어느새 떠날 시간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무엇을 남기던지 남기고 떠납니다. 막대한 재물을 남기든지 이름 석자를 남기든지, 아니면 불멸의 작품응ㄹ 남기든지 그렇지 않은 아픔과 상처를 남기든지 ... 매일 매일 한 주일도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1년도 잠시 잠간 금방인데 이 세상에서 뭣 좀 한다고 잠깐 한눈 팔다 세상을 떠나다면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영국의 극작가이며 소설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에 쓰여 있는 글처럼 말입니다. “우물쭈물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 우리도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할 것입니다. 달과 육펜스를 통해서 제가 배운 것은 열정을 다 쏟아 자신의 삶을 산화시키는 것이 최고의 가치를 남기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쓰지 않은 것은 다 없어집니다. 그리고 후회만 남게 됩니다. 이렇게는 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달과 육펜스의 이 세상에서는 불멸의 명작을 남긴다 할지라도 이름 석자를 남긴다 할지라도 단지 이 세상이 존재하는 동안 뿐입니다. 육펜스의 세상에서는 무엇을 남기나 남기지 못하나 그게 그겁니다. 불멸은 없습니다. 우리는 순간의 삶을 살지만 영원한 것을 남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대단한 존재는 되지 못해도 지혜로운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그 지혜를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0:17-20절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한다고 보고하자 주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너희들이 한 큰 일들보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이름을 날려도 천국의 생명책에 이름일 기록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반면 세상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살았어도 천국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름 석자 남기려면 이 땅에 아니라 천국 생명책이 남기는 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 왜 축복입니까? 계시록 20장도 보면 하나님의 심판 자리에 생명책이 있어서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은 불 못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15)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단 한가지라면 생명책에 이름 남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새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다 불못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생명책에 기록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됩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행 16:31) 이것이 가장 우선 과제입니다. 아무리 삶이 바빠도 이 과제만큼은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나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있다고 확신합니까? 아멘! 이것이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가 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는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칭찬과 상급의 문제입니다. 누가복음 본문을 보겠습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19:11) 그렇게 므나를 맡긴 후에 귀인은 돌아와 은화 준 종들이 어떻게 장사하였는지 묻습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일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장사를 잘 해서 이윤을 남기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었으니 이제는 생명 장사를 해서 이윤으 남기라는 것입니다. 그 첫째 종이 나아와 말했습니다.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합니다. 그 둘째도 와서 말합니다.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15-19절) 합니다. 장사를 하여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고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룁니다.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20-21절). 이 종은 주인을 심지 않는 곳에서 거두는 악한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아에 장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 므나를 땅에 묻어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앞에 두 종은 남긴 것이 있는데 마지막 종은 남긴 것이 없습니다. 주인이 말합니다.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는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였습니다.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었지만 주인이 주인의 말을 듣고 충성한 자아게 더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22-27절). 본문에서 주인이 앞에 앞에 두 종을 칭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기었기 때문입니다. 남기는 것은 처음부터 주인의 뜻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마음을 알고 열심히 수고해서 남김으로 주인이 칭찬을 받고 더 큰 일을 맡았습니다. 한 므나를 가져온 종을 책망한 이유는 장사를 하지 않고 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마음이 굳은 사람, 불의 한 사람이라고 그는 주인을 불신하였습니다.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왕 됨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을 위해서 아무런 수고도 남기지도 못했습니다. 그 종은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기고 결국 끌어내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주인은 한 므나를 땅에 묻어둔 종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은행에라도 맡겨서 작은 이자라도 발생하게 하지 않았느냐?” 요즘 같으면 은행 이자 얼마나 됩니까? 그런데 그 작은 이자라도 남기기를 바라는 것이 주인의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나만 잘 먹고 잘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큰 사랑을 받고, 고귀한 생명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그냥 왔다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무엇을 하던지 어떤 일을 하던지 왕 되시고 주인 되신 주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생명, 은사, 물질, 재능등 잘 쓰고 베푸러서 남는 인생을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남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김성권 샘은 유통업 컨설팅을 하셨기 때문에 남기는 장사에 대해서 민감하시고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 입니다. 남는 장사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기본 세가지 원칙을 지키면 반드시 남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첫째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 우선 공부에 전념한다고 합니다. 또 우선 사업에 전념해서 자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 합니다. 반드시 후에 성공해서 주님을 위해 남기는 삶을 살겠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처음부터 믿음으로 살지 않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고 성공해도 나중에 남는 것이 없게 됩니다. 막상 성공하고 출세해도 후에 보면 그렇게 바라는대로 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심을 때도 믿음으로, 가꿀 때도 믿음으로, 거둘 때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믿음의 기초 위에 모든 일을 할 때 주님을 위한 좋은 열매를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17절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처음도 끝도 믿음,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많이 드리고 남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욕심 때문에 그게 안 됩니다. 오히려 차라리 믿음으로 사는 가난한 자가 적게 가졌어도 힘써 드림으로 많은 것을 남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연보하는 것을 보시고 가난한 과부가 부자보다 더 많이 헌금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그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 남기는 첫째 법칙은 처음부터 믿음으로, 먹던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던지 처음부터 주님 영광을 위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법칙은 주님과 소자들을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에 한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비싼 향유 한 옥합을 부은 사건이 나옵니다. 그 가격이 2000만원 호가 하는 비싼 향유라서 제자들은 허비했다고 책망을 하였지만 예수님은 여인이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 오히려 그녀 편에 역성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여인의 일도 전하여 알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신 것은 향유의 가격이 아니었습니다. 곧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여인은 그 장사를 위해서 그 향유를 썼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필요 적시에 쓰는 것보다 더 큰 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비용 산출에 보면 가성비라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값이라도 최대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외국에서 싸게 물건을 사왔는데 여기서는 구할 수 없는 아주 귀한 물건임이 입증될 때 그 값은 백배 천배로 띌 수 있습니다. 목마른 예수님이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은 기름 10드롬 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배고파서 죽어가는 자에게 떡 한 덩어리는 금 한덩이 보다 가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또한 믿음의 가정들에게 잘하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하는 것은 곧 주님께 하는 것이며 생명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영으로 깨어있는 자에게 기런 기회가 오는 것이지 물질적 여유가 생겼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이런 기회가 왔을 때 그런 호기를 놓치지 말고 적시에 투자하려면 평상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6:9절 에서는 불의한 세상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세상 재물을 쓰는 것보다 더 확실한 투자느 없는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즉 주와 주님의 소자를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 목요일 목포대학 하기 졸업식과 학위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푸른초장교회 세명의 박사학위자가 나왔습니다. 염단단 동방해 우즈알. 염단단은 학창시절부터 거의 12년, 동방해는 3년? 우주알 7년? 가족들을 떠나 외국에 와서 힘들게 공부하고 인내의 결과 그래도 박사학위가 남았으니 얼마나 보람되고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수고 많았습니다. 교회적으로는 10여년 물주며 기른 영혼의 열매입니다. 주님이 영광받으실 일입니다. 주님께 영광의 박수 그리고 두 분께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분들이 여기까지 오기까지 10년 이상 매학기 장학금을 줄 수 있도록 김재중 집사님 주영정공의 헌신과 진심을 모르면 안 됩니다. 칭찬받기 위해서 한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되니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 모릅니다. 어제는 교회에 와서 이번에 학위받고 졸업한 염단단, 동방혜 우즈알 무안 데리고 가서 낙지 염포탕 사주고, 아비의 마음으로 롯데 아우레렛에 데리고 가서 신과 옷도 사주었습니다. 사람이 수고하고 헌신해도 열매가 없다면 그것처럼 힘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는 것이 있으면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분을 생명의 열매로 남겨주시 것입니다. 앞으로 외국 학생 사역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김재중 집사님 주영정공이 우주적으로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진심과 헌신을 계속해서 쏟아 더 많은 생명의 열매를 남기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도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 분의 앞으로 장래의 길도 주님이 섬세히 인도하시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값을 것이 없는 자를 위해서 베푸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금전이나 무엇인가를 투자 할 때 아주 실리적입니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 또는 그렇게 할 때 나에게도 잘 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합니다. 그것은 남는 장사가 아니고 본전치기입니다. 그렇게 섬기는 일은 은근히 기대를 하게 되고,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설령 기대하는 대로 다시 값음을 받으면 주님께 상 받을 일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4:13-14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그래서 이왕 대접하려면 값을 것이 없는 자들 가난한 자들은 없고, 맹인 저는 자들을 대접하라고 합니다. 꼭 장애인들만 대접하라는 뜻은 아니지만 늘 주님의 마음으로 차별 없이 해야 나중에 주님이 값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값아주셔야 진짜 남는 장사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나도 섬김과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받는 것보다 베풀고 나누고 주는 삶을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삶입니다. 이 땅에서는 주고 베풀고 섬기고 손해보는 것이 남는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는 것이 있는 인생이 가장 행복하고 보람된 삶을 사는 비결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우리는 주님께 많은 것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위해 살고, 영혼의 생명을 위해서 살며 남기는 것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먹는 것이 남는 것이다 하고 열심히 먹고 마시고, 또 여행을 가면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고 열심히 찍지만 이런 것들은 영원히 남지 않습니다. 땅도 집도 재능도 단지 자기를 위해 쌓아두는 것은 다 썩고 쇠하고, 좀 먹고 도적질 하고 나중에는 다 사라집니다. 톨스토이는 준 것만이 자기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베풀곳 쓴 것만이 남습니다. 저나 여러분들이나 짧은 인생을 살지만 생명책에 이름뿐 아니라 주를 위해 많은 것을 남기는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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