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누가 후기를 쓸 것인가에 대해 얘기가 없었던 관계로 막내인 제가 자진납세를 하는게 도리인 듯하야 주저리 주저리 해 봅니다.
1. 졸린 눈을 비비며
정말 꼭두새벽이다. 3시 50분에 기상, 신문을 보면서 볼일 보고 머리만 감는다. 조금 터프해 보일까 생각해서 오늘 면도는 생략한다. 서울 가까이에 산도 많은데 매번 먼데로만 가냐는 잠꼬대 같은 와이프의 말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선다. 영등포 경찰서 앞에서 멍게형이 운전하는 파리투형의 자주색 세단에 올라 마포로 가서 회장님을 모시고 강변역으로 출발!
강변역에서 컴불 형님, 그냥 형님, 알대장님과 합류하여 자주색 세단을 버리고(?) 2대의 차로 강원도로 향한다. 홍천 만남의 광장에서 coffee break을 갖고 신남을 거쳐 인제로 가는 길이 시원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곳저곳 공사 중이었는데 모두 개통되니 도로 컨디션이 매우 좋다. 인제에서 현리로 가는 길은 작년 수해의 피해 복구가 진행되고 있는 탓인지 이곳저곳 공사판에다 어지럽다. 현리에서 간단하게 장을 보고 계속 진행하는데 왼쪽으로 작년 6월쯤인가 왕눈이형, 포포브와 낚시하러 와서 1박했던 엘림 민박집이 보인다.
좌우로 정말 보기 좋은 진동계곡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니 점봉산 쪽으로 비포장도로가 시작되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은 지난 해 좀 창피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왕눈형, 포포브와 왔던 다음 주에 처가 식구들을 모시고 같은 민박집에서 1박하고 인제를 거쳐 속초로 가려다 길을 잘못 들어 이곳에 와서 엄청 구사리를 먹었던 기억이...
2. 풀꽃세상에서 성대한 아침식사
비포장도로로 한참을 더 들어가 풀꽃세상에 당도하니 주인아저씨와 구별이 잘 되지 않는 사니형과 오솔길 선배, 왕눈이형 등 어제 먼저 와있던 선발대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마당에 차려진 식탁엔 왕눈이표 김치찌개, 닭백숙 등등 아침 식사로는 자못 메뉴가 화려하다. 소주를 몇 잔 곁들여 정말 맛있게, 배부르게 먹었다. 어제 온 선발대가 굉장히 재미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식사를 마친 다음 설거지를 위해 펜션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여러 명이 와서 이용해도 좋을 듯이 시설도 깔끔하고 보기와 달리 꽤 넓다. 남은 음식들을 산에서 먹을 요량으로 닭백숙, 김치찌개 등을 용기에 담아 배낭을 다시 정리하여 곰배령으로 향했다.
3. 곰배령 오르는 길
풀꽃세상에서 차로 출발해서 곰배령, 단목령을 오르는 삼거리주차장 입구에서 국립공원 감시원인 듯한 사람의 통제가 대단하다. 풀꽃세상 여주인에게 차량과 이름을 신고하고 왔음에도 다시 차량번호와 차주 이름을 적고 10여대가 주차된 주차장을 지나쳐 조금 더올라가서 주차할 곳을 찾아본다. 설왕설래하다가 다른 펜션 앞마당에 두어번 들어가 보기도 하고 결국 차를 돌려 처음의 주차장으로 다시 가서 주차하고 곰배령 오를 준비를 한다.
주차장 한켠에선 색다른 딜이 이루어진다. 컴불 형님이 오늘 장인어른 생신 모임이 있어서 8시경에 서울에 당도해야 하는데 산행 후 왕눈이형의 차를 몰고 먼저 서울로 가시기로 했다. 짐작하시겠지만 왕눈이형의 표정이 무진 밝아 보인다.^^
주차장에서 시작된 평탄한 길이 많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끼고 쭉 이어진다. 길가의 꽃 이름도 서로 물어보면서 한동안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걸어 조그만 마을(간성리였나?)을 지나친다. 계곡물이 흐르는 시내의 징검다리를 두어 차례 건너 오르막길이 시작되지만 그리 팍팍하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이런 길이 상당히 좋은데 그 이유는 첫째, 수도권에서 멀고 입구에서 통제하고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다. 둘째, ‘○△산악회’식의 색색의 리본 등 다른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이 원시림으로 이루어진 길이 호젓하게 느껴진다. 셋째, 계곡이 등산로를 따라 계속 이어져서 작은 폭포들에서 나는 물소리가 시원해서 조금씩 흐르는 땀을 심정적으로 식혀 주는 듯하다.
3. 점봉산, 아쉬움을 남기고 뒤돌아서다
조금 쉬어가면서 한참을 걸으니 알대장님이 설명해 주시던 능선이 보인다. 좌로 가칠봉과 우로 점봉산이 보이는- 바로 곰배령이다. 곰배령에 거의 다다른 곳에서 먼저 올랐다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치고, 근처 주민인 듯한 아주머니들이 나물을 뜯는 건지 특용작물을 재배하는 건지 왁자하게 떠드는 모습도 보인다. 고개 마루에 올라서니 점봉산이 운무에 가려 있고, 정면 방향으로 보이는 곳이 한계령 쪽이라고 한다. 고개 위는 평탄하며, 고지대여서 그런지 큰 나무가 거의 없고 야생 풀밭이 쫙 펼쳐져 있다. 여기도 야생화로 유명하다는데 꽃은 별로 피어있지 않았다.
점봉산 쪽으로 걸어가니 장승이 둘 서있고 입산금지 안내문과 국립공원 관리원들이 우릴 맞이한다. 점봉산은 1년 내내 개방되지 않는 곳이란 안내문을 보고 우리의 계획(곰배령에서 점봉산, 단목령을 거쳐 주차장으로 가는 부채꼴 산행, 알형은 내심 조침령까지 갈 생각이 있었을 터... ㅎㅎ)이 틀어졌음을 느낀다. 할 수 없이 장승 앞쪽으로 자리를 깔고 준비해간 떡, 과일 등을 먹고, 한계령 쪽을 배경으로 대문사진 촬영을 하고, 내려가서 단목령을 다시 갔다 오자는 알형의 말을 잠시 무시하고 곧바로 자리 정리 후 하산 모드에 돌입.
4. 컴불형님 염장 지르기
오른 길을 그대로 되짚어 내려오는 길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편안한 산길에 계곡의 물소리는 여전히 듣기 좋다. 전날의 비로 질퍽한 길을 나는 듯이 걸어 주차장에 돌아와 향후의 일정을 협의한다. 여러 가지 안이 나왔지만 속초로 가서 회를 먹기로 결정하고 얼굴에 아쉬움이 많은 컴불형님을 먼저 보내 드리고 속초로 향한다.
새로 개통된 조침령 터널을 지나니 바로 양양방면의 하산길이 우리를 맞이한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사진도 찍고 잠시 쉬었다가 7번 국도를 지나 속초 시내의 다원횟집에 도착했다. 이집은 자연산만 취급한다는 곳인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하여간 미역이 있는 곳에 산다고 해서 미역치 또는 전복을 먹고 산다고 해서 전복치로도 불리는 못생긴 놈을 회쳐서 맛있게 먹었다. 또 이집은 보통 바닷가에 있는 회집(대개 푸짐하다)과는 컨셉이 좀 틀려서 여러 가지 밑반찬(쓰기다시라고들 하지요)이 깔끔하고 맛깔스러운데 양이 꼭 알맞거나 다소 작은 느낌이다.
운짱으로 선발된 나는 최초의 소폭 한잔을 진짜 아껴가며 먹었는데 이게 또 색다르다. 원래 양껏 마시는 체질이라서 아쉬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큰 무리가 없고 오히려 음식이 맛있다.
하긴 컴불형님께 차키를 넘겨주면서 그렇게 좋아했던 왕눈형에게 운전하라고 했으면 아마 다시 보기 힘들었을 거다. 헤헤
여러 병의 소주를 비우던 중 컴불형님과 통화하던 왕눈형의 전화를 넘겨받은 회장님이 마지막 펀치를 날리신다. 산행 출발 때와 도중에 ‘오색에 가면 고속버스도 있구요’, ‘조침령에서 혼자 걸어가려면 힘들겠다’ 면서 컴불형님의 부아를 슬쩍슬쩍 긁었었는데 전복치와 먹는 소주 얘기를 하시면서 약을 올리신다. 누구 염장 지르냐는 컴불형님의 표정이 상상 가능하다. ^^
5. 다시 서울로
오후 6시쯤 속초를 출발해서 미시령 터널을 통과하니 바로 인제 용대리가 나온다. 개인적으로 미시령길을 좋아해서 수십번 다녔는데 터널은 처음 지나 보았다. 빠르고 미끈해서 편하긴 하지만 미시령 옛길의 그 꼬불꼬불한 맛은 또 다른 느낌이다. 하여간 별 막히는데 없이 나는 듯이 달려 강변역에 무사히 도착해서 해산!! 10시 조금 넘어 집에 들어가서 캔맥주 하나로 낮의 아쉬움을 달래고 잠자리에 든다.
하루 일찍 가서 맛난 아침식사를 준비하신 선발대 및 대원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첫댓글 강선리가 맞고요,미역치가 아니라 미역수라고 했지요.생긴 건 정말 못 생겼는데 동해쪽 횟집을 숱하게 들락거렸지만 그렇게 못 생긴 건 처음 봤지요.근데 고기 맛은 정말 맛있었어요.진짜로 왜 그렇게 비싼지에 대해선 글쎄요.저도 조금 고개가 갸웃거려지지요.
조침령터널 지나서 맛있다고 위험한 갓길 주차하고 사 온 떡 진짜 맛있었다. 니가 집사람 준다고 5팩 샀는데 2팩이나 집에 무사귀환한 것을 축하한다.
긴 글인데도 술술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니형님 사진이 정말 예술입니다. 풀꽃들을 클로즈업한 건 작품사진으로도 손색없어보임다.
실례일랑가 몰라도 애덥은 참 구여운 데가 있다. 아구, 지송.
애덥, 귀하가 "막내로 자진납세" 어쩌구 하는 바람에, 1진 막내였던(왕눈 형일 수도 있었지만) 내가 무쟈게 '압박' 느껴 출발기 아니쓸 수 없었다는 거 아실랑가... 하지만 종종 '자진납세' 자청해도 선배된 도리로 굳이 말리진 않을게...^^
후회 막심했다.특히 피엘 회장이 되돌아온 집결지에서 공연 티켓 나눠줄 때는.뭐랄까.내 비좁은 인격 같은 걸 느꼈다.아침에 집을 나설 때 펜션 예약한 돈도 냈고 해서 그냥 가는 바람에 수중에 돈은 없고,너에게 만원 빌려 산 건데,내 마누라 내 가족만 챙긴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2개씩 사서 일행 모두에게 돌려도 그리 큰 돈은 아닌데.반성 또 반성.
너 무슨 일 있었니? 왜 갑자기 소심해 졌냐 ? 농담인데....이거 큰일 났네...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왕눈이 아님) 맞았네....그냥(그냥 형님아님) 떡 맛있다는 소리였는데...니가 어찌 속이 비좁냐 ? 니가 속이 비좁으면 난 소갈머리도 없다. 근데...속 비좁은 사람이 어떻게 "떡"은 아까워 못주어도 덩치가 큰 "자동차"는 공짜로 주냐 ?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