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심사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죠.
"후보자들이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자기가 제일 잘하는 솜씨를 보여야 해요. 하지만 다들, 어렵고 기교적인 곡, 남들이 '오블리가토'라 부르는 레퍼토리만 골라서 연습하고, 그러다가 콘테스트에서 무리를 범하곤 하죠."
오디션이란 대중 앞에 나서야 할 스타를 발굴하는 절차입니다. 이 연예인이란 직종은 일종의 축복을 받은 직책인 것이, 타인에게 사랑을 주는 위치가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선보이고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아 먹기만 하면 되는 자리라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입장에 설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우
리들 대부분은, 타인에게 더 많은 선택을 받기 위해, 외모도 단장하고, 솜씨도 더 열심히 닦고 벼르며, 웨어를 판촉하기 위해
하루도 긴장을 풀 새가 없습니다. 다니엘 핑크가 그의 저서에서 "인간의 속성은 파는 것이다."라고까지 규정했습니다만, 과연 우리들
모두는 단 하루도 쉴 날이 없이 남에게 팔리기 위해 뛰어야 합니다.
기
업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습니다. 기적 같은 특허를 보유하여, 그 유효기간 동안 시장에 정보와 시방을 제공하기만 하면 된다거나,
거대 규모를 무기 삼아 가격 세팅을 자유로 행할 수 있는 여유로운 처지라면 모를까, 그렇지 못한 입장에서는 시장이 설정해 둔
가격에 맞추어 자신의 물건, 서비스가 팔리기를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기업은, 다름 아닌 마케팅 쪽으로 갖은 술수와 머리를 짜 내는 겁니다. 프라이스 세팅의 재량이 기업에게 허용되지 않는 건 개별 플레이어의 숙명이기 때문이죠.
내가 잘하는 걸 시장에 내어 놓고, 그것이 팬케이크처럼 팔리길 기다린다? 한가한 입장입니다. 한때, 시장의 그 누구도 생산할 수 없는 아이템을 양
산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여, 한번 인정받은 상표 하나로 rent seeking을 종신토록 할 수는 없습니다. 계속 변해야
살아남습니다.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고객이 원하는 방향, 고객이 내심에서 욕망하는 바를, 고객보다 먼저 선수를 쳐서 알아내는
데에까지 변해야 합니다. "내가 잘하는 걸 그냥 줄기차게 반복할 게 아니라, 남들이 인정해 주는 트렌드에 뼛속까지 맞추어
적응하고, 선도해야 한다." 이것이 오디션 참가자들(나아가 스타가 될 지망자들)과 우리 일반인이 처한 처지가 크게 다른 점이라 하겠습니다.
조지 데이 교수가 이번에 내어 놓은 저서는, 마케팅 분야의 각론이 아니라 총론, 그 중에서도 메타적 담론을 섬세하고 자상하게 펼친 역작이라 할 수 있겠네요. 470여쪽에 달하는 분량이 보기만 해도 믿음직하지만, 그 내용 역시 현장에서 치열하게 승부하는 비즈니스맨들의 가슴에, 한 단어 한 단어가 절절히 와 닿는 유용한 지침으로 가득합니다. 이미 시장의 형편이란, 포식자로 가득한 가망 없는 레드 오션에 불과합니다. 가격경쟁이란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어쩌면 그 중에서도 자신을 가장 먼저 링에 나가떨어지게 할)
소모전에 불과합니다. 고객의 충성을 이끌어 내야 하고, 그러려면 그 충성의 대상이 될 가치를 창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
표지에도 나와 있듯 단순한 소비자, 조금이라도 금전적 유리함이 보이면 바로 발길을 돌리는 변덕스러운 고객이 아닌, "열광하는
팬을 만드는 비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책 첫머리부터 "4대 고객 가치 요건"이라는 것을 제시합니다.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요건: 고객 가치 리더가 돼라
두 번째 요건: 고객을 위해 가치를 혁신하라
세 번째 요건: 고객을 자산으로 활용하라
네 번째 요건: 브랜드를 자산으로 활용하라
우선, 고객 가치 리더가 되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고객 스스로가, "돈이 아깝지 않다."고 느낄 만한 만족을 체험하게, 개발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고객의 입장에서 감정 이입한 생산자가 되라는 주문입니다. 그
런데 위의 사진, 오른쪽의 도식에서 알 수 있듯, 이 과정은 일회성으로 종료되지 않고, 무한 루프상의 선순환 피드백을 밟는
알고리즘입니다. 조지 데이의 이 책에서 기존의 입장과 크게 달라진 부분은, 프로세스의 역동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입니다. 화살표의 방향을 잘 보시면, 고객 가치 리더 부문이 모든 의사 결정 과정, 제품의 입안과 기획,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중추적 작용을 수행하며, 사실상 이 책에서 말하는 아웃사이드-인 전략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십시오. 저자들은 고객 가치의 본질을, 세 가지의 서로 다른(독립적인) 벡터의 조합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
성능 벡터: 간단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명품(사치품에 제한된 의미가 아닌)의 속성입니다. 얼마나 품질이 믿을만한가? 나는 잘
몰라도, 다른 (준거)소비자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어떠한가? 이런 걸 걸치고 나가면 얼마나 선망의 눈길로 나를 바라봐 줄 것인가? 이
모든 고려 사항이 바로 "성능"에 포함됩니다.
㉡가격 벡터: 산업 혁명 이래 가장 구매자에게 절실했던 요건은 바로 싼 가격(따라서 높은 접근성)이었습니다. 이에는 물론 싼 가격이 핵심이지만, 빠른 배송 조건도 포함된다는 게 저자의 설명입니다.
㉢관계 백터: 말은 생소하지만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요건이에요. 한번 팔고 그만이 아니라, 제품의 유지 관리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기업의 애티튜드, 혹은 그 결과물로서의 서비스를 말합니다. 가격이나 선능 모두에 만족하지 못해도 우리가 국내 가전을 사는 이유는 바로 AS 때문이죠.
이
벡터는 물론 출발점을 공유하는 세 개의 반직선이라서, 그 뻗는 반경이 길면 길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소비자의 예산이라는 원초적
제약이 있으므로, 상품에 따라, 혹은 소비자 개인의 처지에 따라, 어떤 최저점을 만족시키는 선에서 타협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성분에 무관하게 한 방향의 신장을 최고 역점에 둘 것인지는 일정하지 않겠습니다.
요즘 귀가 따갑도록 듣는 혁신의 가치 역시, 이 책에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
금까지의 논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혁신이라고 무작정 물량 투입 위주로 갈 것이 아니라, 그 방향성을 잘 잡아야 합니다. 시장과
고객에 철저히 눈을 주고 주시하되, 일단 고객이 원하는 핵심 가치를 파악한 후에는, 그 가치 설정에 있어 유리한 포스트를 선점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비록 기업 내부에서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우선적으로 시장에 들이댈 수는 없지만(기업은 설사 탑
레벨의 선도자라 해도,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아닌 이상, 제 편할 대로 상품을 만들고 거둘 수는 없습니다. 이 책에 나와 있지는
않으나, 작년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던 불랙 신라면을 출시한, 그러면서도 '소비자의 인식 부족'을 탓하는 군소리를 남기며 퇴장한
농심의 경우가 그 좋지 않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눈치 빠르고 기민하게 선도가치를 선점한 후에는, 오로지 고객의 기호만 만족시키며, 상황에 끌려 다니지 않은 채 다른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습니다.
일
단 충성스럽게 확보된 고객을 확보한 후에는, 이를 자산으로 삼아 시장에서의 위치를 더욱 굳힙니다. 그 후,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
존재가 된 브랜드를 최종의 자산으로 삼고, 이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변덕스러운 경제 전장에서 그 어떤 인플레나 불경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차대조표 차변상의 최고 핵심 항목으로 올려 놓는 일에 성공한다면, 바로 그것이 일등 글로벌 기업의 미션 완수라고
하겠습니다.
2부에서 4대 원칙의 총론적 서술이 있었다면, 3부에서는 현장에서의 응용을 위한 방법론이 제시됩니다. 사례가 많아서, 앞에서 배운 원칙을 피부에 와 닿는 실감으로 복습할 수 있습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그런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무려 그 예전의 피터 드러커가 한 말, "시장 중심(market orientation)과는 무엇이 다른가? 그 해답을 저자들은 특별히 배려한 편집으로 독자에게 설명해 줍니다.
사진을 보시면, 세 가지 항목으로 요약이 됩니다만, 보는 관점에 따라 상당 부분이 중복된다고 여겨질 수 있어요, 제가 제 개인적 관점에 따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시장 지향은 일회성이나, 아웃사이드-인은 (제가 앞에서도 말한 대로) 무한 반복 루프상에 존재한다.
2. 시장 지향은 일단 균형점이 발견된 후에는 정체적이지만, 아웃사이드-인은 역동적이고, 따라서 혁신친화적이다.
3. 시장 지향은 수동적으로 시장의 눈치를 살피지만, 아웃사이드-인은 주체적으로 가치를 창출한다.
그 외에도 책에서는 강조하기를, 아웃사이드-인 조직은 관료적 경직성이 없고, 누구나 모든 방향에서 의사 개진, 아이디어 제안, 정책 결정에 자유로이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즘 어디서나 강조하는 의사 결정의 신속성과 직결되는 특성입니다. 고객에 밀착하여 정보를 얻어내고, 모든 직원이 정보원 구실을 하며, 얻은 정보는 ?저히 공유하여 생산성을 배가합니다. 아래 사진을 보세요.
인사이드-아웃 기업의 특징은, 경쟁 기업에 대한 통찰을 게을리한다는 데에도 있습니다. 하긴, 가치 창조를 소명으로 하는 기업이, 라이벌에 대한 주시라고 태만히할까요?
저자의 의도와 좀 어긋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영어의 일상용법에서 inside-out과 outside-in은 같은 의미입니다. 둘 다, "철저히 뒤집어서"라는 뜻이죠. 만약 어떤 기업이, 그 능력과 기량이 탁월해서 "나는 그저 내가 잘하는 것만 시장에 시혜를 베풀듯이 만들고, 내 영혼(기업도 영혼이 있어야 한다니까요!)에
거리끼는 바는 손대지 않고 살테야!"라고 한다면, 그게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남 좋고 나 피곤하지 않아서 최상의
선택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한 경쟁의 시대입니다. 남 잘하는 점은 철저히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아서, 나의 장점으로
만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개량하여 절대 우위를 확보하는 세상입입니다. 내 장점은 하루만 지나고 나면 더 이상 나만의 장점이
아니라는, 시장과 세상의 역동성에 문제(?) 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궁극적으로, 아웃사이드-인 프로세스 안에, "내가 잘하는 걸
남이 절대 따라하지 못하게 완성한다는 의미에서의" 인사이드-아웃이 포함된다고 봅니다. 이 원칙은, 요즘 자계서에서 귀가따갑게
강조하는 "온리원이 되라"는 명제와도 무관하지 않죠. 궁극적으로 기업은, 아웃사이드-인의 겸허한 자세로 자체 혁신을 기울이되, 그
소프트웨어의 창의성 면에서는 "인사이드의 순일성"도 유지해야, 그 독자성과 정체성을 대체 불가능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싸이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연예인이 되는 맛에 사는 겁니다. 결과가 나오든 안 나오든 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