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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림의 소리 스크랩 세계최초 비구니 도량 대한불교 보문종 총본사 보문동 보문사(2/2)
현림 추천 0 조회 149 18.12.25 07: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세계최초 비구니 도량 대한불교 보문종 총본사 보문동 보문사(2/2)


보문사를 찾는 초행자는 보문사 대웅전 가는 길의 들머리 찾기가 쉬지않다.

필자도 첫날 보문사에 들렀을 때 대웅전 이정표가 있어 따라가 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통상적으로 가람의 위치로 본다면 선불장이나 극락전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하는데

그 주변을 둘러보아도 대웅전이 있을 법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경내의 보살 한 분을 만나 물어보았지만

쭉 내려가라는 말만 하기에 다시 내려가 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석굴암을 두고 대웅전이라 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극락전을 두고 대웅전이라 한 것이 아닐까?

요리조리 생각하다가 포기하고 돌아왔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한 종파의 본사가 대웅전을 두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검색해 보았더니 분명 대웅전이 있었다.

두 번째 방문하는 날 우연히 보문사 입구에서 한 스님을 만났길래 물어보았더니

아래 사진의 골목길로 들어가라고 한다.

향로각과 보광전 전각 사이에 난 좁은 통로가 대웅전으로 가는 길이었다.



요 골목길을 따라 가면 대웅전이 나온다.



@대웅전

1692년에 묘청 스님이 세웠다는 보문사의 대웅전은 지금은 극락보전으로 편액이 바뀌었다.

팔작지붕 형태에 정면 3, 측면 2칸의 규모로 내부에는 삼존불(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극락보전 좌우승방이란 좌측 심우당과 우측 묘승전을 일컫는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는데

불상의 크기가 고르지 못하다. 추측컨대 조성자와

조성시기가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닌지 추측해 본다.













@묘승전(妙勝殿)

심우당과 함께 1827년 조성되었다.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須彌山)이 있는데

그 정상에 도리천이라는 하늘이 있다고 한다.

 제석천은 그 도리천의 선견성(善見城)에 머무르면서 사천왕(四天王)

 주위의 32 천왕(天王)을 통솔한다고 한다. 이 선견성의 이명(異名)이 묘승전(妙勝殿)인 듯하다.

묘승전에 관한 이야기는 대방광불화엄경 제10권 보살운집묘승전상설게품에 나와 있다.



  

묘승전의 편액으로는 당연히 본존불이 석가모니불이 되어야 하는 데

불상은 아미타불로 보인다. 협시불로는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신 경우는

 대세지와 관음을 모시는 것이 상례인데

대세지보살 대신 머리에 두건을 쓴 지장보살을 모신 경우도 많다.

그런데 좌측 협시불은 관음보살로 보기는 보관도

그렇고 수인으로도 다소 무리가 따르기에

보합을 들지 않았지만, 약사불로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추정해 본다.

후불탱화는 칠성탱이 조성되어 있다. 








신중탱


지장탱


시왕탱






보광전이다. 옛적에는 만세루였다고 한다.


시왕전은 보광전 옆에 위치하며 중간에 이런 통로가 있다.

@시왕전(十王殿)

1970년에 조성된 시왕전은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시는 전각이다.

명부전, 지장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후불로는 지장보살도,

좌우에는 십대명왕도(十代明王圖)와 그의 사자(使者)들을 부조주물(浮彫鑄物) 탱화로 모셨다.

1996년 십대명왕 부조물을 모두 개금을 하였다.




업경대











석존의 성도 20년 후 대애도니의 출가로부터 시작되는 비구니의 역사는 수많은 대덕들이 등장하지만,

항상 내면과 뒤안길로 표현되는 조용한 수행의 장이었다.

그렇게 25백여 년을 흘러오는 동안 뚜렷한 부파나

학파 또는 종파를 형성하지 않았던 비구니계에

종조, 종지, 종단의 종체를 형성한 것이 대한불교보문종이다.

물론 종단마다 비구니회가 있지만, 비구니로만 형성된 독자적인 종단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문종의 성립은

 불교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또한 말법에서 정법으로 가는 과정에

 불법의 보호와 가람의 수호를 맡는다는 비구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보인다.

보문종의 출발은 세칭 탑골로 불리는 보문동의 보문사에서 비롯된다.

고려 중엽 담진국사의 창건 이래 비구니사찰로 이어져 온 보문사는

1936년 이긍탄 스님이 주지를 맡으면서 비구니수행의 요람으로 자리를 잡았고,

특히 송은영 스님이 등장하면서 오늘의 종단으로 발전하였다.

은영 스님은 대전 대덕구 신탄진에서 출생하여 동진 출가한 분이다.

동학사에서 득도하고 보문사로 온 스님은 신심 기도 열정 등 모든 면에서 걸출한 여장부였다.

일제하에서 친일 권승들이 사찰을 수탈하려 할 때 긍탄스님과 함께 꿋꿋하게 도량을 지킨 스님은,

 광복과 더불어 주지를 맡자 보문사 중창에 나선다.

60년대에 삼성각 선불장 산령각 범종각이 모두 이루어져 사찰의 면모가 일신되었고,

 70년대에는 극락전 보광전 호지문 시왕전과 함께 경주 석굴암을 재현한

보문사 석굴암과 오대산 월정사 89층 석탑을 재현한 보문사 9층 탑이 조성돼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렇게 되자 보문사는 한때 단위 사찰로는 국내에서 가장 신도가 많았고,

8천여 평의 대지에 수십 동의 전각이 들어서는 등 도심에서는 쉽지 않은 대규모의 사찰로 자리를 잡는다.

이에 비구니의 질적 향상과 복지 활동 및 재산권의 보호가 시급함을 느낀 스님은

 사중에 보문 강원을 설치해 내전을 공부하게 하는 한편

많은 비구니를 동국대 등 일반대학에 진출시켜 내외 전을 겸비케 했고,

불우노인들의 거처인 시자원을 세우는가 하면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개설하는 터전을 닦았다.

더불어 당시까지 봉은사 용주사 말사 등 조계종에 소속된 상태에서 독립해

 최초의 비구니종단을 창종하니 1971년 보문원을 거쳐 다음 해 보문종으로 등록하였다.

초대 종정에 이긍탄 스님, 총무원장에 송은영 스님이다.

1981년 은영 스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보문종은 새로운 형태로 바뀐다.

지금까지 창종의 발판과 체제구성에 주력했던 모습에서 내적인 결실과 종풍의 진작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보문사 위주의 종단운영에서 많은 말사가 동참해 종단의 위상을 갖추는 계기도 마련된다.

또한, 엄격한 계율과 수행으로 승풍진작을 도모하면서 유치원(3) 어린이집 양로원의 운영 및

보문지의 발간과 합창단의 결성 등 교화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총본산은 보문사이고 종조는 담진국사이며 본존불은 석가모니불이고

소의 경전은 법화경이다. 역대 종정은 이긍탄 정명소 천일조 천혜만스님으로 이어지며,

 총무원장은 송은영 천혜안 정혜일스님으로 이어진다.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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